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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강 범죄한 이스라엘의 멸망(9:7-10)

by 【고동엽】 2022. 4. 15.

제50강 범죄한 이스라엘의 멸망(9:7-10)

 

9:7-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아모스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다섯 개의 묵시를 차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묵시의 핵심적인 내용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스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암9:10)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아모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야. 괜찮아.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야"하면서 스로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죄를 지은 것도 잘못이지만, 그러나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데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차례의 징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다 놓쳐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모스가 경고한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크게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지는 7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특권의식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두번째 대지는 8∼9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을 당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멸망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시지, 의인을 죄인과 함께 심판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지는 1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대상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7절 말씀부터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전달자 양식입니다. 아모스는 지금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두 개의 질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수사학적인 질문입니다. 첫째 질문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입니다. 대답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를 유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니오를 유도하고 있습니까? 본 질문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자명합니다. 너희들을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구스 족속이나 하나님께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구스 족속은 지금의 에디오피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얼굴이 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별반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바로 구스 족속입니다. 그래서 민 12:1에 보면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민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른 나라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을 꺾으시는 말씀입니다.
두번째 질문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입니까, 아니오입니까? 역시 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출애굽했다고 해서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너희들에게만 유일한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같은 역사가 다른 이방 나라들에게도 역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실례가 오늘 본문에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올라오게 한 것과, 또 하나는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한 것입니다. 갑돌은 지금의 크레테 지방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갑돌 또는 그렛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원 고향입니다.
(렘47: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멸하시리라
(겔25:16)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습2:5) 해변 거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아람 사람들의 원 고향은 길(Kir)입니다. 아모스는 이미 아람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갈 것임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암1:5) 내가 다메섹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거민을 끊으며 벧에던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길에 이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왕하16: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당시 블레셋이나 아람은 다 이스라엘의 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는 나라들에도 역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같은 똑같은 은총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일반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골고루 햇빛을 허락해주십니다. 또 단비를 허락해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총을 베풀어주셨을 때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출애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적으로 보세요. 블레셋이나 아람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은총을 받았지만 그러나 저들은 이스라엘에 패배했습니다. 블레셋은 다윗에게 패배했습니다.
(삼상17:46∼54)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삼상18:6∼7)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삼하5:17∼25)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삼하8:1) 이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그리고 아람 나라도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에 의해서 역시 패배한 경험이 있습니다.
(왕하13:22∼25)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 하셨더라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왕하14:25∼28)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그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이라고 하는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셨지만 이스라엘도 범죄할 때 역시 블레셋이나 아람처럼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값없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하는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땅 위에 널려 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떠한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아모스는 이미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아람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1장과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순서가 어떠했습니까?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다메섹으로 대표된 아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가사로 대표되었던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순서가 어떻게 됩니까? 먼저 이스라엘로 시작해서 블레셋, 그 다음에 아람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순서가 뒤바뀌었지요? 이러한 것을 무슨 구조라고 합니까? X형 구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그릇된 특권의식을 깨뜨리고 난 뒤에 8∼9절에서 아모스는 다시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발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9: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절 말씀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사용한 낱말입니다. 무엇인가 중요한 말씀이 나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보세요. "주 여호와 내가"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내가"라고 하지 않고 "주 여호와 내가"라고 했습니다. 더 강조를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무엇인가 심상치 않고 중대한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범죄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범죄한 나라일 경우 그 어떠한 나라든지 구분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메섹도 심판하시고, 가사도 심판하시고, 에돔도 심판하시고, 모압도 심판하시고, 유다도 심판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조차도 저들이 범죄할 경우에는 역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주목하여 벌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주목한다"고 했습니다. 범죄한 나라를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철두철미하게 감시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죄한 나라의 백성들이 하늘에 올라간들, 음부에 내려간들, 또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은들, 바다 깊이 숨은들 하나님의 눈길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셔서 그 결과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지면에서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지면에서 싹 쓸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노아 시대에 인류의 죄악이 관영했을 때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해서 인류를 지면에서 멸하신 것처럼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대단히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는 단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단서가 붙었습니까?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야곱의 집에 알갱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회중에 들지 않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모든 인류가 다 멸망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구해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될 때도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오늘 본문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 줄 압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금 전달자 양식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7절 첫 부분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했고, 8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로 끝맺음을 했습니다. 덮개형(inclusio)입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9절은 8절의 부연적인 설명입니다.
(9:9)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명령하여"라고 했습니다. "내가"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명령하셨습니까? 그 다음 부분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는 만국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족속을 체질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열국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시는 도구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모스는 이미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었습니다.
(암3:11∼12)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
(암4:2∼3)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5: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6:7)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암6: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암7: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암9: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체질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체라는 것은 추수할 때 알곡과 부스러기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굵은 체가 있고, 가는 체가 있습니다. 굵은 체는 굵은 돌이라든지, 겨나 줄기와 같은 것을 걸러냅니다. 그리고 알곡은 밑으로 떨어집니다. 반면에 가는 체는 어떠하겠습니까? 흙먼지라든지 부스러기는 밑으로 떨어지게 하고 알곡은 체 위에 남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체는 굵은 체이겠습니까? 가는 체이겠습니까?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알갱이는 위에 남고, 부스러기와 같은 쓸모 없는 것은 땅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말 성경에서는 가는 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추수 때 무가치한 것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같이 죄인들은 다 멸하시지만, 그러나 알곡들, 의인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갱이는 단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갱이 된 자는 아무리 체질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한 알갱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대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신우상에 절하지 않다가 저들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저들을 극렬한 풀무불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풀무불 속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상치 아니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실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는 마음이 든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알갱이냐, 부스러기냐, 혹은 알곡이냐, 쭉정이냐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체질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성도는 체질과 키질 같은 환난을 통해서 오히려 밝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알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창고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곡식같지만 바람에 나는 겨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판날에 견딜 수 없습니다. 결국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10절 말씀을 보십시다. 10절은 9절의 비유를 좀더 자세하게 부연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들, 알갱이가 되지 못한 죄인들은 그 결과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칼에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지만 혹독한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알갱이 된 의인은, 남은 자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와 쭉정이인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둘 다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똑같이 죄를 짓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깨닫고 즉시 회개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에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불신자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목이 곧습니다. 마음이 할례 받지 못해서 강퍅합니다. 이 시간 요일1:9∼10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보십시다.
(요일1: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를 짓고 있었지만 스스로 속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헛된 희망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다. 우리에게는 결코 화가 미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들의 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 다음에 하늘 나라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 생각에 반드시 하늘 나라에 와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는 정반대로 우리가 판단하기에 절대로 올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사람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형편없는 자기 자신이 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란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인 줄 압니다.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지 못한지를 단적으로 일깨워주는 말인 줄 압니다.
여러분, 고전 4:3∼4의 말씀이 생각나시지요?
(고전4: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사도 바울은 세 종류의 판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었습니다. 첫째로, 사람에게서 받는 판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매우 작은 일입니다. 신경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소신이 없고 줏대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번째 판단이 있습니다. 양심의 판단입니다. 물론 첫번째 판단보다는 솔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판단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판단에만 신경 쓰다 보면 독선적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세번째 판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판단입니다. "주께서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우리가 늘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길는지 짧을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직분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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