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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눅2:8-14)

by 【고동엽】 2022. 4. 8.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눅2:8-14)

 

눅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말씀이 아마도 바로 오늘 본문일 것입니다. 찬송가에 수록된 성탄송들 가운데서도,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배경으로 노래한 찬송들이 가장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나타난 주의 사자, 곧 천사가 등장합니다. 아울러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한 허다한 천군 천사들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오늘 본문에서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주로 탄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천사나 목자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구주로 나셨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기 위하여 쓰임을 받은 도구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까? 이 세상의 여러 성현들처럼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고상한 삶의 본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셨고, 우리에게 고상한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주된 목적은 이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와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주로 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습니다. 또한 우리는 영화로운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은 진실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이 복된 소식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복음의 선포입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둘째, 복음의 주인공입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의 주인공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셋째, 복음의 목적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복음의 목적을 밝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모든 죄악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 모든 문제, 모든 염려, 모든 고통에서 구원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복음의 선포입니다(The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눅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

장소는 “그 지경(地境)에”입니다. 이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곳을 가리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 밤에, 베들레헴의 인근 들판에서 목자들은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목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양을 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도 본시는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탄생할 당시에는 목자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지를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곧잘 도둑으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당시 목자들에게는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 있는 자격조차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계속해서 자기 양떼들과 함께 들판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매우 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그들은 점차로 심한 멸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비천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제일 먼저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된 사실이었습니다.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이와 같이 메시아가 오실 때, 그 아름다운 소식 곧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마음이 상한 자에게, 포로 된 자에게, 또한 갇힌 자에게 전해지도록 예언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낮고 비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습니까?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천하고 멸시를 받으며 없는 계층인 목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리셨습니다. 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들이 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즉시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들 스스로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사실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빨리 가서 아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눅2: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이 사회적으로는 낮고 비천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할 정도로, 영적으로는 높고 경건했습니다. 우리들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목자들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경건하게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2) 주의 사자가 나타남

13절의 말씀과 같이, 여기서 주의 사자는 천사를 가리킵니다. 천사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천사 가브리엘은 먼저는 사가랴에게, 또한 마리아에게, 그리고 이번에는 목자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마도 아직은 밤이 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모두가 깨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홀연히 목자들 곁에 섰습니다. 그와 함께 주의 영광, 곧 하나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 빛난 영광으로 그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말하자면 이때 하나님은 하늘을 활짝 여시고, 친히 목자들에게 내려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출40: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대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성전에 충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곳에 친히 임재해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에스겔 10장에 나오는 대로,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오랫동안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바로 그날 밤, 하나님의 영광은 다시금 이 땅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이때 일어난 일은 참으로 놀랍고도 큰 사건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두루 비출 때, 목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죄인들이 마땅히 보일 수밖에 없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마10:28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합시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천사가 복음을 전함

크게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천사는 “무서워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곧 이어서 천사는 목자들에게 그들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만일 천사가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면, 그들은 크게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기에 목자들은 무서워 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그들에게 전하여준 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는 참으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전해준 성탄의 소식은 그들의 무서움을 기쁨으로 바꾸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있었던 큰 무서움은 사라지고,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은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동안 우리를 짓누르던 모든 슬픔, 모든 고통, 모든 문제,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고, 성탄이 가져다주는 큰 기쁨만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복음의 주인공입니다(The Person of the Good News).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오늘날”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난 바로 그날을 가리킵니다. 또한 “다윗의 동네”는 유대 베들레헴을 가리킵니다. 미5:2에 예언된 말씀대로,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인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바로 그날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때 천사는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세 가지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첫째, 구주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입니다. 셋째, 주입니다. 

곧 이어 천사는 목자들에게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징표를 주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천사가 사용한 예수님의 명칭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그후에 우리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주었던 징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구주이십니다.

“구주”(救主, Savior)는 구원자, 곧 구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무엇에서 구원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문제, 모든 질병, 모든 고통, 모든 근심,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온 백성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는 천사가 요셉에게 했던 말입니다. 천사가 밝힌 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예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삼하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기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옵니다. 이를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을 높였습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아울러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동시에 가지신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첫째,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눅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했던 말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십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네 권의 복음서들 가운데서, 특별히 마태복음의 주제는 왕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제사장의 역할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으신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계속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히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입으로 사용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정한 선지자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은 그 자체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왕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시고,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이 분명합니다.

 

(3) 예수님은 주(主)이십니다.

벧전3:6을 보면, 사라가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하면서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주”는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높여서 부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때 영어성경에서는 소문자를 사용해서 “lord”라고 표기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예수님을 가리켜서 “주”라고 칭한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여기에서의 “주”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그래서 이때 영어성경에서는 대문자를 사용해서 “Lord”라고 표기합니다. 예수님은 주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은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단입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롬10:9 말씀과 같이,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말고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 곧 하나님으로 시인해야 마땅합니다.

 

(4) 천사가 제공한 징표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sign)이니라 하더니

 

우선 헬라어 원어성경에는 “가서”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가라고 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목자들이 자발적으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목자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표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징표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천사 가브리엘은 자기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가랴에게 징표를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사가랴가 벙어리와 귀머거리로 지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천사 가브리엘은 자기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아에게도 징표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친족이며, 나이가 많고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엘리사벳이 수태한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목자들에게도 징표를 주었습니다. 자기가 전한 말이 사실임을 그들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구주 곧 그리스도 주이신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보란 아기의 몸을 둘러싸는 천을 뜻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아기의 두 팔과 두 다리를 제각기 천으로 둘러쌉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기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며, 아울러 몸이 반듯하게 잘 자라도록 해줍니다.

물론 예수님이라고 해서 찬란한 옷을 입은 채로 태어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태어나시자 말자, 다른 아기들처럼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서 강보에 싸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아기가 강보에 싸인 것은 징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아기들도 똑같이 강보에 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곧 이어서 구체적인 징표를 목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강보에 싸인 아기가 구유에 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구유는 짐승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을 의미합니다. 아기가 강보에 싸여서 구유에 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목자들이 복음의 주인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징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주 곧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대제사장으로, 또한 선지자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는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높이시기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시며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를 우리가 늘 깊이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주를 위하여 낮아집시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헌신하는 일군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복음의 목적입니다(The Purpose of the Good News).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천사들의 찬송을 통하여,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깨닫기 바랍니다.

 

(1) 허다한 천군(天軍)

천군은 하늘의 군대, 곧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단7:10과 계5:11은 천사들의 수를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수를 다 곱하면, 어떤 수치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 언어로 최고의 숫자가 “만”이었기에, 천사들의 무한한 수를 그렇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물론 이때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다 땅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땅으로 내려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내려왔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오늘 본문은 그 수가 허다했다고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는 종종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 함께 모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는 장년 남자만 오천 명이나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때도 적으면 수십 명의 천사들이, 많으면 수천 명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것입니다. 이때 천사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홀연히,” 다시 말해서 순식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때 목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목자들은 단 한 명의 천사로 인해서도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하물며 허다한 천사들이 홀연히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 목자들은 분명히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막13:36과 살전5:3에 의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도 이와 같이 “홀연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이때 허다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여준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아울러 그러면 왜 이때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까?

이때 천사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환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천사들은 예수님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시던 그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을 경배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천사들은 사람의 타락도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어떠한지를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 무한하신 은혜 가운데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과 앞으로 행하실 모든 일들을 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2) 천사들의 찬송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높은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 곧 하늘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유가 그들의 찬송 하반부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여기서의 땅은 지극히 높은 곳과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늘에 비해 땅은 지극히 낮은 곳입니다. 지극히 높은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반면에 지극히 낮은 땅에는 사람들이 살고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땅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 중에 있는 평화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마음의 평화나 심령의 고요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평화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가리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 자신을 화목제로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평화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단서가 있습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엡1:5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예정되어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이 평화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선행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전연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천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천사들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과 함께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천사들의 찬송은 장차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영원토록 부르게 될 찬송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장차 하늘 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믿음을 굳게 지킵시다. 또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28장에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구주로 나셨다는 이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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