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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망 예수 / 마 28:1-10

by 【고동엽】 2022. 4. 7.

세상의 소망 예수

 

                                     마 28:1-10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

                     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

                     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 갔습니다. 가서 세 번 놀랐다고 합니다. 하나는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줄 몰랐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 보고 놀랐습니다. 또 그 사람은 꼭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천국에 갈 줄 꿈에도 몰랐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주어진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이 주어진 것도 축복일고 은혜 중 은혜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아침입니다. 오늘은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찬란한 아침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온 세상에 소망과 희망이 주어진 아침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다“(1)고 했습니다. 마 27장은 치가 떨리는 이야기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골고다로 끌고 가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모습은 눈뜨고 볼 수가 없는 장면입니다. 골고다에 도착해서 죽이는 장면은 더욱 끔찍하고 처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임당하고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로마군인 들이 그 무덤을 지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마 27장의 내용은 비참함과 비통함과 캄캄한 장면이 나오는 장입니다.

 그런데 28장에 들어서면 갑자기 그 캄캄하던 어둠을 깨고 찬란한 아침의 광명이 비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간밤은 역사상 가장 어둡고 불안하고 두려운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처절한 밤을 지새우고 여 제자들은 동이 트이기 무섭게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여인들이 무덤을 보려고 갔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시체에 향품을 바르려고 갔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밤새 한잠도 못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이 트기가 무섭게 무덤을 달려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등입니다. 이 여인들이 가장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인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주님은 일요일 날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안식일이 아닌 부활의 날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길고 무거운 율법의 시대가 마감되고 부활의 주님을 중심으로 새 시대가 개막되고 주님의 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시간이 최초의 주일새벽 시간이 된 것입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 천사들이 .. 돌을 굴려놓고 있었다”(2)고 했습니다. 그 새벽에 큰 지진이 일어났고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유독 마태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광경을 설명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 27장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고 무덤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출 19장18절에서는 “시내 산에 구름이 빽빽했다고 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강림하셨는데 큰 소리가 나고 땅이 진동하고 온 백성들은 두려워했다”고 하였습니다. 행 16장26절에서는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감옥에서 찬송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고 터가 움직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배후에서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고 유대인에게는 심판을 의미하고 역사에 있어서는 새로운 구원사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천사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상은 번개 같고 옷은 희였다(3)고 하였습니다. 천사의 몸에서 광채가 났다는 말입니다. 희다는 것은 거룩과 순결을 뜻할 것입니다. 변화 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할 때도 그 모습이었습니다(17:2). 오늘 사람들이 천사하면 의례히 흰옷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경에서 표현한 것 때문일 것입니다. “지키던 사람들이 그 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4)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 군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천사의 임재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들었는데 예수가 무덤 속에서 살아나고 하늘의 천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때서야 지키던 군인들은 예수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떨었을 것이고 그래서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와 있던 마리아들은 그 천사가 두렵기는커녕 그지없이 반가웠을 것입니다. 로마군인 들은 예수를 죽이는데 일조한 사람들이었으니 죽은 사람처럼 떨며 몸이 굳었을 것입니다.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질 때 압도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기절하기는커녕 얼마나 환희와 감격과 놀람이 있었겠습니까. 신불신이 이렇게 다릅니다. 한편에서는 두려움에 떨고 기절하였지만 또 한편에서는 환희와 반가움과 기쁨의 소식으로 놀랐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5-6).

 로마군인 들은 기절해 있고 여인들은 천사의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 천사는 중재자의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 1장20절을 보면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잉태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눅 1장11절에서는 세례요한이 잉태될 때도 천사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자주 등장해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구원의 소식을 전해 주었고 심판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또 천사가 예수의 부활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라”(7) 부활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은 더 이상 무덤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소식은 초특급의 소식입니다. 굿 뉴스입니다. 이 여인들은 초특급 독점 뉴스를 가지고 뛰어갔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신바람 났겠습니까. 

 막 16장7절을 보면 “천사가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천사가 제자들과 베드로를 분리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 왜냐하면 베드로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한 제자입니다. 십자가의 과정에서 여러 번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불신을 노출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러니까 강조해서 그에게 전해주라고 했을 것입니다. 굿 뉴스는 빨리 전해야 합니다. “가서 예수의 부활을 전하라”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소식은 빨리 전해 주어야 하는 제일가는 굿 뉴스입니다.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했다”(8)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인들은 천사의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충격은 혼합된 충격입니다. 그것은 “무서움과 기쁨”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달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두려움과 기쁨은 서로 모순된 감정입니다.

 예수의 부활 소식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은 초유의 일이고 이제까지 그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처음 듣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이 세상에 기쁨과 충격을 안겨 준 사건입니다. 이 제자들이 이렇게 놀랐을 정도면 로마 군인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를 죽인 군인들은 또 얼마나 놀랐으며 예수를 죽인 주역들인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의 놀라움과 빌라도는 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더 극적인 장면은 여 제자들이 제자들에게 부활소식을 가지고 달음질 칠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9). 

 그 순간 여제자들은 달려들어 예수님의 발을 붙잡았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12제자들 같았으면 보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여자들을 만드신 것은 대 성공입니다. 굿 아이디어입니다. 어느 작가는 “이 세상에 여자들이 없었다면 삭막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만 있는 집은 삭막합니다. 하루 종일 말이 없습니다. 웃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딸만 있는 집은 정감이 넘칩니다. 하루 종일 수다가 있습니다. 웃음이 있고 온기가 있습니다. 이 여제자들이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3년 동안 주님을 따르며 지극 정성으로 주님을 섬기고 받들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눈물로 따르며 십자가의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무덤에 묻힐 때 그들은 기절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 밤을 충격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모두 저절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 결과 천사로부터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나셔서 “평안하냐, 무서워 하지 말라”(9-10)고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래서 예수의 부활 소식이 이 세상에 전파되게 된 것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의 의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몇 마디로 요약하기가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 역시 몇 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부활을 요약하자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속성을 증명한 사건

 

 하나님의 생명은 지극히 풍성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사망에 매여 있거나 무덤에 가두고 묻어 둘 수가 없습니다(행 2:24).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그래서 누구든지 그 예수와 접붙인바 되면 동일한 부활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다음에 우리도 그렇게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하는 새 창조의 시작

 

 이 세상에 부활이라는 새 질서가 주어진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이 부활로 인해서 죽음도 극복하게 되었고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끔찍한 것도 아주 끝나는 것도 썩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닌 시작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에도 새 의미가 부여되어 영생이 주어졌고 영원이 주어지고 천국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에게 새로운 창조의 질서가 시작된 것입니다.

 

 죽음을 이길 이유 주어짐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하나님 뜻을 좆을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복음을 열심히 증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은 신앙인에게 무한한 힘의 원천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부활 신앙이 온갖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로우리(R. Lowry) 목사는 미국 남북 전쟁 시 전쟁에 나가 싸우다 큰 부상을 당하자 죽은 줄 알고 시체무덤 속에 던져졌습니다. 시체 속에 던져질 때 물컹함을 느꼈는데 그 시체들 속에서 그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식이 점점 가물가물해 질 때 그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로우리야 일어나라, 내가 사망의 무덤에서 살아났느니라.”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힘을 얻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집에 와 생각할 때 생각할수록 감회가 컸을 것이고 지난날 생각하면 엄청난 은혜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를 상기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글을 쓰고 그 글에 스스로 곡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찬송가 160장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영국의 덜행지방에 있던 탄광에서 갱이 무너졌습니다. 164명이 생매장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어둠속에서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발굴현장에서 큰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축복 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산소부족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갖고 준비하고 이 글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을 믿고 기쁨으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힘이 부활이 주는 힘입니다. 이 힘은 의지나 용기나 뱃장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활에는 모든 제약을 극복하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변화의 원동력

 

부활은 이 세상에 일대 변화를 안겨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때 다 변화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를 부인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나는 예수를 위하여 다 버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예수만 알기로 작정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이렇게 변화를 일으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큰소리만 치던 사람이 위급할 때는 도망하고 숨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는 비로소 참 전도자가 되어 나가 성공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내 손가락을 예수님의 옆구리 창자국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말을 해도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말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마는 철두철미하게 부활을 부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멀리 인도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그 스스로 창을 맞아 순교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질서를 마련해 준 사건입니다. 사람이 부활을 믿을 때 신앙의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부활을 믿을 때 신앙이 신앙다운 신앙이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누구든지 변화를 받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굳게 잠겨있던 다락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확실하게 만날 때 나의 인생이 변화하고 나의 삶이, 삶의 목적이, 신앙이 체질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에 온갖 소망을 준 사건입니다. 부활은 인류에게 주어진 은혜이고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오늘은 부활의 아침입니다. 이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의 가정에 이 땅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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