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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도
하박국 3:17~19
2002.7.7.주일 낮 맥추감사절 설교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설교: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작년에 소록도를 다녀오셨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가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소록도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줄 압니다. 저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아직 가보지 못한 섬입니다. 그 섬이 어떤 섬인지 혹 젊은 학생들은 모를 것 같아 알려드린다면 그곳은 나병,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던 시절만 해도 나병에 대한 옳치 않은 소문이 많이 떠돌았습니다. 문둥병자들이 자기 병 낳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느니...그런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들이 떠돌아다녔습니다.
사실 우리 성경을 빨리 새롭게 번역해야 하는데 그 중에 정말 심각한 곳이 병자들에 대한 호칭입니다. 소경, 절둑발이, 문둥병, 그리고 과부, 이런 말은 당사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특별히 나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문둥병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한센씨 병"이라는 명칭입니다. "한센"이라고 하는 의사가 이 병의 균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한센씨 병"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병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약4,400년 전에도 이미 이 병이 있었던 것이 확인된 병입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 이 병에 대한 기록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병은 癩菌(나균)에 의해 생기는 병인데 처음에는 작은 상처를 통해 우리 몸 안에 들어오지만 들어온 다음에는 신경을 통해서 피부 속으로 서서히 잠식해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점차 온 몸에 번지면서 신경이 마비되고 결국 살은 썩고, 뼈도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비틀어지게 된답니다. 심지어 눈에도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썩는 경우가 있고 물렁뼈가 있는 부분은 다 문들어지고 끊어지고 한답니다. 그래서 눈, 코, 손가락부분들이 문들어 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입술이 없어져 이가 다 드러납니다. 발가락도 없어집니다. 손가락도 없어집니다. 신경이 죽기 때문에 아픈지도 모르고 살다가 다 썩기 때문에 절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소록도에 가보니 팔 다리를 절단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병이 나병입니다. 그래서 <天刑의 病>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 교회에 오시는 많은 강사들이 나아만 장군 이야기를 한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설교를 들을 때 고통스러워한답니다. 맹인 교회에 초대받아 가서 설교를 해도 소경 바디매오 이야기를 본문으로 삼는다던지...이렇게 그들을 의식해서 설교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고 팔자를 고쳤다>는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은혜를 받더라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 그 교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기는 소록도인데 이 소록도 옆에는 지라도라는 섬이 한군데 더 있다"고 하더랍니다. 거기를 가보아야 진짜 소록도를 본다고 하더랍니다. 그 곳을 가보겠냐고 하기에 선뜻 대답을 하기 힘들었지만 가보겠노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섬은 성경에 있다며 하박국 3장 17절을 찾으라고 하더랍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이 읽은 말씀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포도 나무에 포도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그러나 그럴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로다..."성경을 찾아 읽은 다음 전도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답니다.
목사님! 이 소록도는 "찌라도"의 섬입니다.
우리가 병약할지라도...우리가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지라도...우리가 비록 병으로 이렇게 흉한 모습으로 죽어갈지라도...
우리가 비록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곳이 바로 찌라도의 섬, 이곳이 소록도입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그 말을 듣고 아멘하며 은혜를 받았답니다. 그 섬은 실존의 섬이 아니라 믿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은 어딥니까? 여러분에게도 "지라도"가 있습니까?
우리는 형통하면 감사하나 불통하면 감사하기 어렵습니다.합격하면 감사해도 불합격했는데 감사키 어렵습니다. 승진하면 감사해도 좌천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면 감사키 어렵습니다. 농사가 풍년이면 감사해도 흉년이면 감사키 어렵습니다. 내 계획대로 되어지면 감사해도 계획이 다 틀어졌을 땐 감사키 어렵습니다. 이기면 감사하는 지면 아쉬워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이며 소록도 나병환자들이 보여주는 감사입니다.
형통치 아니할지라도... 건강치 못할지라도... 불합격했을지라도...흉년을 맞았을지라도 감사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이것이 뜨거운 감사이고 이것이 신비한 감사입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감사입니다.
여러분! 얼굴이 남들보다 조금 못 생겼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인간입니다. 서울에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웃었습니다. 자기는 어렸을적 부터 무척 못생겼다고 합니다. 청소년시절, "아랑 들롱"을 좋아했는데, 남자들은 다 그렇게 생겨야하는 줄로 믿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아니, 이게 뭐야?" 웬 괴물이 자기 앞에 서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대학시절에 자기 방엔 아예 거울을 걸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얼굴이 못 생겨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조금 일그러졌거나 화상을 입었어도 신체의 일부분 장애가 있어도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환자라니! 얼마나 절망에 빠지겠습니까? 날마다 일그러져 가는 자기 모습을 보아야 한다니... 게다가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 합니다. 부부끼리도 헤어져야 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같이 살 수 없습니다. 평생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자기 생을 저주하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환자가 되고도 감사할 수 있다면, 나환자일지라도... 하며 감사한다면 그건 진정 기적적인 일입니다.
몇 년전 I.M.F 이후 많은 가정에 불화가 쌓이고 이혼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다 줄 때는 "헤헤 호호" 하던 아내가 돈을 못 벌어다 주니 "나 당신 같은 사람과 못살아!" 하고 헤어진다면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남편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아내가 진정한 아내가 아니겠습니까.
제 간증을 할까요? 옛날에는 신체장애에 대해 한번도 감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장애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집사람이 옆의 어느 교회 이야기를 해주는데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옆의 어느 교회가 대박 터졌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어떤 분이 새로 등록을 해서 엄청난 헌금을 해서 빚을 다 갚고 기도원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대박이라는 말에 화가 나기도 했으나 속에서 솔직히 배가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질투하고 배 아파하는 나를 보니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요?
우리 교회는 그런 20억 짜리 성도, 아니 2천만원 헌금할 교인이 없을지라도..."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라!" 이것이 진정한 신앙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못난 목사가 남이 잘된 일을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속 좁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저절로 안되기에 하나님이 명령을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려도 치료가 빠르다고 합니다. 미국 정신병 의학회에서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가장 좋은 약 세 가지로 "감사와 기쁨과 기도"를 꼽는다고 합니다. 가정의 불행이 어디서 옵니까? 불평에서 옵니다. 교회의 병이 어디서 옵니까? 불평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불평이란 틈 사이로 잡초가 자라납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런 잡초들을 죽입니다. 또한 감사는 축복을 불러옵니다. 감사하는 만큼 그 삶이 윤택해집니다. 신앙이 성장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감사라는 단어 사용이 참 인색합니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이 말이 생활화되었습니다. THANK YOU 이 말은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미국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라로 세워주셨습니다.
어느 교수가 두 제자를 봅니다.
한 학생은 시골에서 올라와 공부하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등록금도 제 때 대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30만원씩 시골 부모님께 보내드립니다. 방학 때가 되면 즉시 시골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구리 빛 얼굴이 되어 올라옵니다. 이 학생은 4년 동안 부모가 찾아오는 법도 없고 돈을 부쳐주거나 도와주는 것 하나 없는데 그 마음엔 늘 감사가 넘칩니다.
또 한 학생은 서울의 부잣집 아들입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부모가 돈도 주고 자가용까지 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가 대화해 보니 그 학생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학교 자주 찾아오시는데 아들은 귀챦게 생각합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이 두 학생의 앞날을 바라보면서 - 누구의 앞날을 밝게 보았겠습니까? 어느 학생이 성공적인 삶을 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감사를 해야 할까요?
1.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크게 입벌려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흐린 날도 맑은 날도 감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없을지라도, 힘들지라도 아플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조건을 볼 때 감사할 것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아주머니의 남편이 매일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와 술주정을 합니다. 하루는 그 부인이 술에 골아 떨어져 자는 남편 옆에 앉아서 신세 타령을 하다 생각해 보니 "범사에 감사하라"는 목사님 설교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하나님 아무리해도 감사할 것은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하고 기쁩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성령께서 뜨겁게 역사하시면서 구체적으로 감사할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과부보다 낫지 않은가?" "술 취해도 길거리에 누어 얼어죽지 않고 기어들어오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주일이면 교회 가라며 집 봐주니 감사", "자기는 안가면서 미안하니까 헌금도 주고, 이만하면 고맙지 않은가"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그때 남편이 목이 타서 물 찾느라고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울고 있어야 할 부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지 뭡니까?
남편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으니 부인은 구체적으로 고맙고 감사한 것이 많아 기도하고 있었다며 감사내용을 얘기해 주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도 내일부터 교회에 나가 줄께"하더랍니다.
하박국의 노래, 기도, 감사를 보세요. 포도, 무화과, 감람류는 이스라엘의 특산물입니다. 또한 목축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牛羊은 절대적인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흉년일지라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겠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우리는 어느때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2.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가진 것 없으나 나는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그 자체로 인하여 감사하며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뭘 받아야 감사하고 뭘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받은 것, 얻은 것 없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며 모든 것을 가진 것임을 믿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영적 수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모습으로 감사해야 할까요?
3. 감사는 뜨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생일을 당했다고, 회갑을 당했다고, 집을 샀다고, 결혼을 했다고 수십만원씩, 혹은 수백만원씩 들여 잔치를 하고, 음식 먹기도 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정작 하나님 앞에는 째째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 감사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감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우리의 신앙 고백이 듬뿍 담긴 그런 감사가 드려져야 합니다. 맥추 감사절! 단순한 절기라고만 생각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신 감사절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시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복을 받을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지는 이런 절기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런 절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보십니다. 제발 형식으로 폼만 잡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감사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감사는 내 신앙의 수준입니다./감사는 내 신앙의 고백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감사하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비록 없을지라도, 비록 넉넉치 못할지라도, 비록 공부를 잘 못할지라도, 비록 대박이 없을지라도 그럴지라도 감사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감사하며 사십니까? 여러분에게 이 말이 은혜로 깨달아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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