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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께 경배 드린 동방박사! (마 2:1-12)

by 【고동엽】 2022. 4. 4.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린 동방박사! (마 2:1-12)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여러분!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언젠가 서울·경기 지역에 있는 중 고등학생 377명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산타클로스’라는 대답이 29.9%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크리스마스 추리로 13.4%였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한 응답자는 7.2%에 그쳤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는 ‘산타클로스’는 전설 속의 인물이랍니다. 우리가 말하는 산타클로스라고 알려진 인물은 AD 270년 옛 터키 항구 도시였던 파타라에서 태어나 343년 12월6일에 사망한 ‘성 니콜라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분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결혼 적령기에 있는 ‘세 자매’가 돈이 없어 ‘거리의 여인’으로 팔려나갈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갖다 주었는데 이 자루가 기원이 되어 오늘날 ‘선물을 담는 산타의 양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 니콜라스’가 산타클로스가 된 것은 여러 나라를 항해하던 네덜란드 선원들에 의해서 전해지는 과정 중에 네덜란드 발음인 ‘신텔 클라스’가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그 발음이 변하여 ’산타클로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산타클로스가 좋은 선물을 주는 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산타크로스가 빨간 옷을 입은 것은 성탄절에 맞춰 코카 콜라선전을 위해 빨간 옷의 산타크로스를 만든 것이 오늘의 산타크로스 복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화가 ‘하돈 선드블롬’(1899∼1976)은 코카콜라의 로고 색을 상징하는 산타의 빨간 옷과 콜라의 거품을 상징하는 풍성한 흰 수염의 삽화를 그렸습니다(1931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광고). 그 결과 누구도 모르는 산타크로스의 옷은 빨간 옷과 얼굴에는 하얀 수염이 달인 모습이 마치 진짜 산타크로스인양 전 세계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은 아기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Christ)와 예배(Mass)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의 원래 뜻은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동방박사들처럼 그분을 찾아가 그분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믿/

  이 크리스마스를 약자로 헬라어의 첫 자 X를 사용하여 X-mass라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이 그야말로 X-mass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즐기고, 그리고 죄짓는 날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탄생하신 주인공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동방박사들이 처절하게 외쳤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질문에 바른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분이십니다.

  ▶유럽의 한 교회에 가면 교회당 벽면에 성경 영웅들의 성화가 그려져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어느 한 쪽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길을 따라가 보면 거기 예수님의 성화가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요 역사의 주인공도 예수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과 모든 사건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도 예수요 우리의 소망도 예수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이름이 예수요 우리가 엎드려 경배할 이름도 예수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린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소개!▶

 

  우리는 지금 정보와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박사하면 무조건 우러러 보았는데 요즘은 박사도 흔해서 별로 우러러 보지도 않습니다. 박사실업자도 많습니다. 요즘은 가짜 박사들이 많아서 진짜 박사들이 존경받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도 박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굽에 박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측근에 머물며 왕에게 국정을 자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꿈을 꾸고 해석을 해보라는데  풀지 못하고 쩔쩔맸습니다. 그때 요셉이 나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정확하게 꿈을 해석하였고 그 결과 애굽은 칠년 대 가뭄의 재앙을 지혜로운 요셉의 지도력으로 쉽게 풀어가게 되었습니다.

  또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시대에도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비슷한 지위에 있으며 왕의 자문을 했는데 왕의 꿈을 알아맞히지 못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나아가 하나님의 계시로 꿈을 알아맞히고 해석까지 정확하게 해주어 위기를 넘깁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그 박사들의 어른으로 수석 총리로 삼았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박사들이 등장합니다. 신약에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멀고 먼 다른 나라의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예수님께 경배하고 찾아 왔는지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을 제쳐두고 이름도 모를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셔서 주 나심을 알리고 영광을 받으셨는지도 신비로운 일입니다. 당시에도 박사급의 지식과 지혜가 탁월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박사라고 다 진짜 진리를 알고 있고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무늬만 박사지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말로 어렵게 떠들며 자신의 지식의 깊이를 과장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부정직한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속이며 자신의 능력을 대단한 것처럼 위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학위가 몇 개냐? 어디 출신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진리를 터득하고 그 진리 안에 거한 자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복 받은 자입니다. /믿/

  오늘 본문은 동방 박사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1:11절에 보면 그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영접치 아니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그 예수를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아멘!/

  본문은 1-8절까지는 전반부로 예루살렘에서 된 일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9-12절 까지는 베들레헴에서 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아기 예수는 ‘헤롯 왕’ 때 ‘베들레헴’으로 오셨습니다(1-2).

 

  1-2절에서 예수의 탄생과 관련해서 세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⑴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는 헤롯 왕 때였습니다. ⑵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유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⑶또 중요한 사건은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①헤롯왕은 누구인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왕의 인물됨은 ‘그는 유능하고, 교활했으며, 아울러 잔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으로 유대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인간적으로는 유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일명 헤롯 대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제 1성전, 포로 후에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을 제 2성전, 그 뒤에 헤롯왕이 다시 재건한 성전을 제 3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헤롯은 로마의 황제인 시저에 의해 주전 47년에 유대인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가 7년 후인 주전 40년에 분봉 왕으로 임명되어 예수님이 탄생할 무렵까지 오랫동안 그 땅을 다스렸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0세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했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또 자신이 사용하던 금 접시를 녹여 백성들의 식량을 사들임으로 해서 백성들을 감동시키는 정치적 수완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내와 장모를 죽이고 장남과 다른 두 아들도 죽인 비정한 인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열 명의 아내를 두고 살면서 그 중에 한 명은 자신의 동생 빌립으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만든 인륜을 저버린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성경학자 ‘바클레이’에 의하면 헤롯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유언하기를 백성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자신이 죽는 순간 같이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두고 모두 다 잘 죽었다고 저주를 퍼부으며 아무도 눈물을 흘려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죽는 그 시간에 맞추어 그 사람을 죽이면 백성들이 그 사람을 위해 애통할 때 자연히 그 사람에 묻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이런 야비한 유언을 한 것입니다.

  이런 악독한 인간이 통치하고 있던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왕을 대표하는 헤롯이 통치하고 있는 그 세상 속에,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 평화의 왕이신 그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헤롯의 거짓을 보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헤롯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서 태어난다.’고 예언되었는지 알아보게 해서 그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에게 그 아기를 찾으면 곧바로 알려주어서 자신도 경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찾자마자 죽일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자신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을 알고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그때를 기준으로 해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마음에도 없는 거짓된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태도도 정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평소부터 성경을 매우 잘 아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메시아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어쩌면 그렇게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메시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②가장 작지 아니한 베들레헴은 어떠한 땅이었을까요?

  유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곧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에브랏’입니다(창35:19). 베들레헴에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또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했던 곳이 바로 이 베들레헴입니다. 이곳에서 그의 후손인 다윗이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베들레헴은 일명 ‘다윗의 동네’라고 불렸습니다(눅2:4).

  유대 땅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아주 작은 고을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고을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을 중 하나가 됐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그곳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 땅은 어떠한 땅인가?

  ⑴축복의 땅입니다 6절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성경은 베들레헴을 '가장 작지 않은' 땅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과거 사사 입산이 태어났고(삿12:8-11), 다윗의 고향이었으며(삼상16:1),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곳(시132:5)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메시야가 예언을 성취시키며 탄생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메시야를 배출한다는 것은 한 고을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명예와 축복을 얻은 것입니다.

  ⑵그 땅은 고난의 땅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당시 베들레헴에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약 20여명 가량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 아이들을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를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헤롯은 20여명이 아니라 2만 명이라도 거침없이 죽였을 탐욕과 살인적인 금수만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죄 없이 죽은 아기를 부둥켜안고 너무도 큰 충격에 실신한 아기 엄마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 땅은 과거 옛 야곱의 부인인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 죽은 땅인데(창35:19) 이번에는 아무 죄가 없는 유아들이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메시야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이처럼 참혹한 핍박과 고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피비린내 나는 고난의 땅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충성하려고 하면 반드시 고난이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강하고 건강하게 할 뿐입니다. 고난의 중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들을 지키시고 높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고난을 넘어 더 믿음이 성장하고 건강해 지는 놀라운 성탄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⑶사명의 땅입니다.  6절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곳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다른 고을들보다 훨씬 돋보이는 곳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 때문에 영광을 입고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단순한 예수님의 출생지로 끝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베들레헴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 모든 고을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베들레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참된 베들레헴과 이스라엘이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이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이 파송 받은 선교지입니다. 이 사명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 주십시오."

  아인슈타인은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 사명 때문에 대통령직을 거절했습니다.

 

2.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한 ‘동방 박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들로 어느 날  하늘에 이상한  별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그 징조가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가 나타난 것으로 확신하여,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를 의미하는데 주석학자들은 멀리 '동방’을 페르시아로 보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 지역입니다. 그 멀리에서 그들은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별의 인도를 받고 왔다는 뜻입니다.

  ①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고 기다리면서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민24:17절에 ‘한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별을 연구하던 중 갑자기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움직입니다. 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즉시 별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고 찾아가 경배 드린 사람들로 기록된 것입니다. /할/

  신앙인에게는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 얼마나 소중한 마음입니까? 사모함이 있고 기다림이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서 7년을 하루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7년을 하루같이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 동방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의 예언을 그대로 믿고 그래서 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밤마다 이슬을 맞으며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별의 징조를 연구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별이 나타나자 과감하게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에는 이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느냐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삶의 내용에 따라 나의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아멘!/

  ②동방박사들의 일성이 무엇인가?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온 자들입니다. 저들의 입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이방인이 틀림이 없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말은 당시 이방 나라에서 유대에서 탄생할 메시야를 부르는 별칭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 질문은 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계17:14).

  사9: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들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로 오실 유대인의 메시야’로(미5:2) 확실히 믿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는 질문 속에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질문이요, 새로운 임금의 통치를 알리는 물음’입니다. 그래서 이 물음 앞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을 피웠습니다.

  ③헤롯왕의 소동에 대해서!(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했다는 말은 ‘동요했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왕위가 위태롭지 않을까?’ 라는 공포에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인해서 소동을 한 것은 헤롯왕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예루살렘도 더불어 소동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동안 헤롯왕이 자기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짓을 해 왔는지 익히 보아왔습니다. 헤롯은 자기 왕권에 위협을 느낄 때에는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잔인한 사람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사람들은 헤롯이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소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짐작하기를 머지않아 헤롯에 의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몰아닥칠 것을  예루살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덩달아 두려움에 떨면서 소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④메시야 탄생에 관심이 없었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자!(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질문과 헤롯의 질문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도 헤롯왕도 똑같이 그리스도가 나신 곳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전연 달랐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신 곳을 알고자 했고, 헤롯은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그가 난 곳을 알고자 했습니다.

  헤롯이 소집한 종교지도자들은 전문가답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헤롯이 원하는 바를 알려주었습니다. 5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이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내용을 들어서 그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구약 미가서 5:2절에 예언된 말씀으로 대답했습니다. 미가선지자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6)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밖에 있는 베들레헴이 먼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그 멀고 먼 동방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영접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 땅에 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방 박사들이 보았던 별도 보지 못했고,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알려주던 천사들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만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아멘!/

  요1: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⑤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은 어떤 별인가? 2절 ‘그의 별을 보고’

  이 별은 천체에 떠있는 그런 별과는 다른 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갈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은 낮에는 구름 기둥이 되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그들을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의 빛난 별처럼 밝게 비추면서 동방 박사들을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9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동방에서 나타났던 그 별이 사라졌다가 문득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동방 박사들을 앞서 가면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10절을 보면,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다시 보게 되자 얼마나 기뻐했는가 보세요!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할/ 이런 기쁨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아,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인도해주시는구나!’ 이런 체험하는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할/

  ⑥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달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즉 예배드리기 위해 왔다는 고백입니다.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경배라는 말은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하다’, ‘엎드려 절하여 존경심을 표하다’라는 뜻입니다. 마4:9절에서 ‘경배하다’, 요4:20절에 ‘예배하다’ 그리고 막5:6절에서는 ‘절하다’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의 뜻은 Christ(클라이스트)와 mass(미사)의 합성어로 미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11절에서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단순히 무릎만 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경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경의만 표한 것이 아니라,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경배는 언제나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에게도, 요셉에게도, 마리아에게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오직 아기 예수님에게만 경배했습니다. 예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경배의 행위를 드린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자가를 온전히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멘!/ 천군천사들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면서 찬양(예배)했습니다. /아멘!/

  ⑦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을 생각해 보자!(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대세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왕 앞에 나아갈 때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표로, 여기에 나타난 세 가지 예물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상9:7-8)

  이 세 가지 예물이 단순한 예물에서 끝남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영적,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⑴황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황금을 드린 것은 왕으로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그 통치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복종과 감사를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사신으로 갈 때에 반듯이 황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⑵유향은 값비싼 향유로써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례 할 때 사용하는 향료로써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물을 가지고 연결하여 주는 가교(교량) 역할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결정적인 사역 중에 하나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막 휘장을 열어 하늘가는 길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요14:6/

  ⑶몰약은 시체를 염할 때 사용하는 방부제로서, 매우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죽었을 때만 그 시체에 바르는 고가의 값비싼 물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몰약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예물로서 매우 합당한 예물입니다.

  여기서 또 황금은 왕을 인정하는 믿음을 상징하고. 유향은 그리스도의 향기와 성도의 향기를 상징한 것이고, 몰약은 죽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왕에게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굳은 마음의 결의로 상징입니다. /믿/

  대상16:29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⑧우리들도 이 시간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을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장이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높이는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할/

  그 다음에 우리의 몸을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함께 우리의 몸을 예물로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할/

  또한 우리의 재물을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함께 우리의 재물을 예물로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재물을 주님께 예물로 드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 소년은 오병이어를 주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소유와 재산을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휴우즈’와 ‘록펠러’ 두 재벌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거부 ‘하워드 휴우즈’는 ‘휴우즈 항공기 회사’를 설립했고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지배하고 TWA항공사와 ABC방송회사도 운영하는 세계적인 부자였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의 말년 10년을 이 사람처럼 외롭고 고독하게 지낸 사람은 없답니다. 그는 외부인을 전혀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하 직원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와서 ‘자기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노이로제에 걸려서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계열사의 사장들에게 지시할 때도 전화나 마이크로 하고 얼굴을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혹 누가 음식에 독을 넣지 않았을까 하고 염려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가 젊었을 때 그 준수한 용모로 수많은 여자와 관계하여 자식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한 사람의 아내도, 한 사람의 자식도 오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의 많은 재산이 자신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그는 많은 돈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자유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경건한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았을 때, 자선사업이나 남에게 베푸는 삶을 영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록펠러 1세’는 좋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여 미국의 재벌이 되는 과정에서 동업자들을 압박하여 피해를 준 것을 회개하고 말년이라고 하는 57세를 지나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자선사업가로 삶을 마쳤습니다. 그는 재산을 가졌으나 좋은 일에 썼고 명랑하고 행복한 대인관계를 가졌습니다만 재산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 가지 기록이 있는데 ‘⑴가장 가난한 사람에서 최고의 부자가 된 것, ⑵다 죽었던 사람이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던 것, 그리고 ⑶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많은 것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록펠러는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처치’라는 허드슨 강가에 경치 좋은 곳에 대리석으로 웅대한 교회당을 지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매주일 가족과 함께 그 교회에 다녔고, 온 가족이 예배참석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들만의 가족석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거부가 한차고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또한 사회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였고, ‘록펠러 의학연구소’를 창립하여 미국인에게는 물론 인류를 위하여 좋은 일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록펠러는 자기를 아는 겸손한 분입니다. 그의 아들, 흔히 록펠러 2세로 알려진 ‘넬슨’이 자기 집 가정부와 결혼한다고 하자 그 사실을 알고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 와서 아버지 록펠러에게 “아드님이 식모하고 결혼한다는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고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우리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에서 못살아 미국으로 이민 올 때는 우리 며느리가 될 사람의 집보다 훨씬 가난했습니다. 우리집안은 며느리네 집안보다 형편없는 집안이었다.’고 하면서 기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이런 분이 진짜 부자입니다.

  그 며느리는 결혼 후 대학에 진학했고 온갖 교양을 갖추어 미국 사교계의 큰 별이 되었습니다. 넬슨은 평생 박애사업과 종교 사업을 하여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의 손자, 록펠러 3세는 뉴욕 지사에 3선 연임하였고 공화당의 거물이 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부통령이 되었고, 록펠러 센터의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록펠러 자신이 자선사업을 많이 하고 그 후손들이 다 잘된 것은 모두 경건한 신앙생활에서 온 축복입니다. /믿/

 

3.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가?

 

  ①구원의 축복입니다. 마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②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마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③기쁨의 축복입니다. 눅2: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④ 평화의 축복입니다. 눅2: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⑤부요케 하시는 축복입니다. 고후8: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임마누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겁날 것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셋방에서 살아도 천국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호화판에 살아도 지옥생활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사십시오. 그리하면 우리 마음에 천국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의 오심을 맞이한 것처럼 여러분! 이제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는 귀한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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