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00회] - 황해도 재령교회의 용어 ‘형님’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오늘로 [오늘의 묵상]이 700번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글을 받아 보신 후, 여러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retweet 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여러분들에게 보내기 전에,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답게 예리한 눈으로 정독하면서 오식(誤植)을 수정해 주는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 누이동생 김인자 권사에게도 깊은 고마움과 더불어 치하의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필자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혹 기도하시다 기억이 나시면, 필자의 건강과 계속 집필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개인과 가정, 그리고 하시는 모든 일 위에 성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2022년 6월 8일) 현역 최고령 방송인 송해 씨(95세)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송해 씨는 TV 방송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34년간 일했으며, 이 분야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송해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 4월, 황해도 재령군에서 출생했습니다. 1.4 후퇴 때 월남하여, 해주예술전문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송해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송해 씨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필자가 특별히 재령교회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재령교회가 미국에 보낸 한편의 편지 한통 때문입니다.
오래 전, 필자가 박사 학위 논문 자료 수집 차,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사료보관소’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전 세계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보내 온 보고서, 편지, 메모 등 선교와 관계된 모든 자료가 마이크로 필름에 담겨져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 나온 언더우드 선교사의 자료를 받아서, 마이크로 필름 판독기에 걸어 놓고, 한 컷 한 컷을 돌려보았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이 보낸 자료라 모든 내용이 영어였습니다. 그런데 한 컷을 돌렸는데, 갑자기 한글이 튀어 나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자세히 살펴보니, 1906년 황해도 재령교회가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선교부 총무 Arthur Brown 목사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붓으로 위에서 내려 쓴 글씨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내려간 옛날 식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더 브라운 박사께’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일전 박사께서 본 교회를 다녀가신 후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이 편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편지에 나오는 호칭 때문입니다. 편지 서두에 ‘박사’라는 용어를 쓴 후, 편지 내용 중, 브라운을 호칭하는 대목이 네 번 더 나오는데, 모두 ‘형님’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브라운은 목사요, 박사요, 총무입니다. 얼마든지 목사님, 박사님, 총무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는데도 ‘형님’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교회 내의 성도들 간에 형님이라는 용어를 흔히 썼다는 증거입니다.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가 발행한 <그리스도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평양 서촌 마을에 사는 한 ‘누님’은 평생 애지중지하며 쓰던 재봉틀을 팔아 건축 연보를 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초기 한국 교회 안에 성도들 간의 호칭에 대한 용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겨진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보면, 교회 안에서는 서로 형님과 누님이란 용어를 자주 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남자에게는 형님, 여자에게는 누님이란 호칭을 썼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 간에 모두 직분 명을 부르지요, 목사는 말 할 것도 없고, 장로님, 권사님, 안수 집사님, 구역장님, 청년회장님 등을 씁니다.
한국 사회는 사천 년 동안 관료주의 사회여서 관직을 부르는 문화입니다. 지금도 과장님, 부장님, 팀장님, 전무님, 사장님, 회장님, 차관님, 장관님 등으로 부르지요. 동양은 직책을 부르고, 서양은 이름을 부릅니다.
교회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형님과 누님, 얼마나 정겨운 호칭입니까?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부를 수 없을까요? 조상들의 장점은 배우고, 살려 우리교회가 먼저 혁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울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님과 누님으로 살아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나겠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하헌규, 박종현, 외 5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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