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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1명전도법 - 류익태 지음

by 【고동엽】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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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1명전도법 - 류익태 지음

 

전도는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교회와 협동해야 한다. 교회의 분위기가 전도와 거리가 멀어지면 성도들 역시 침체되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전도에 소극적인 자가 되고 만다. 복음전도에 소극적인 교회는 개인의 영성이나 교회의 기능이 굳어져 결국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체질적으로 전파력이 약해진 공동체는 자기들끼리만 좋아하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새로운 사람들, 죽어가는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그러나 한사람 전도를 시작하면 교회가 활력이 넘치게 된다. 교회 안에 생기가 넘치고, 모든 성도가 사역자로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전도하는 교회 공동체에는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생겨난다. 하나님께서는 꼭 전도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생각지 않은 사람들을 보내 주신다. 왜냐하면 교회가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관리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인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된다. 물론 교회의 부흥은 숫자가 많아지는 차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대상자를 정할 때는 친밀도, 즉 아는 관계를 우선적으로 선정해야 한다. 아는 관계의 대상자가 없다면 아는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사람이 전도대상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에도 외침 전도자의 능력이나 열심은 따라가지 못할 만큼 특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의 전도 환경은 새로운 전도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가가호호 다니면서 전도하지만 별 효과가 없고,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고 총동원전도라 하여 이벤트를 열어도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름 있는 부흥사들이나 연예인들을 초청해서 부흥회나 이벤트를 벌인다고 해도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우리 민족은 연과 인맥이 이성적 판단을 뛰어 넘을 정도로 견고한 민족이다. 한국인의 성격과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볼 수 있는 연과 인맥은 정에서 연유한 것으로 아는 사람에 대한 특별한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 감성적 강화는 인맥을 형성하고 결국 연이라는 이름으로 그 관계를 공고히 한다. 이처럼 관계의 토대가 되는 정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이다. 따라서 전도대상자 선정에서도 인맥과 연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요소이다.

 

정분에 치우치는 경향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인맥의 현실적 중요성을 전도에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한명 전도의 지혜이다. 정은 함께 어울리는 경험을 통해서 굳게 형성된다. 함께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흉허물 없이 지내는 과정이 정을 강화한다.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는 필연적인 인간생활에서 전도자는 사람들과 좀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한사람 전도를 위해서도, 그리스도인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꼭 전도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원만하고 흠 없는 관계에서는 전도도 수월하다. 특히 아는 사람을 전도할 때 중요한 것은 전도자의 인격과 도덕성이다. 전도자의 뛰어난 인격과 도덕성은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을 인도하는 삶의 전도가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사랑하며 선행을 베풀어서 관계를 증진시키면 전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정서적 능력을 넘어서는 관계를 회복하려면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미운 감정을 가지고 계속 살아서는 안될텐데... 하는 후회가 인다. 이 마음의 소리를 기도에 담아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과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를 주님께 구하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들과 화목해야 하는 당연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온전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주님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사랑은 시간과 물질을 들여서라도 감수하되 미운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를 새롭게 회복할 수 없다.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때로는 불편하고 미운 감정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 그 감정을 평생 품지 말고 개선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은 전도라는 거대한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면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전도라는 큰 수확을 얻게 된다.

 

전도는 처음과 마지막 모두 기도이다. 전도는 사람의 말솜씨를 넘어서는 영적인 사역이므로 인간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는 기도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기도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로 전도의 전 과정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기도는 능력전도의 출발점이다.

 

전도대상자가 예배에 빠질 때 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결국 금세 교회생활과 멀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전도에서 제외될 사람은 없다. 어떤 경우라도 옥토를 만들어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한다. 길가 딱딱해진 밭은 개간이 필요하고 돌밭은 돌을 골라내면 되는 것이다. 가시떨기 밭은 가시떨기를 베어내면 된다. 전도의 씨앗이 발아되는 밭을 만들려면 힘이 들어도 척박한 땅을 옥토로 가꾸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아는 사람에게 생활로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그가 기독교에 호감을 보이는 옥토가 될 수 없다.

강조하거니와 전도대상자에게 복음의 씨앗이 잘 심겨지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생활의 점검이다.

 

자기의 목적(전도)을 위하여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대방을 전도로 꾈 수 있는 지혜가 전도자에게 꼭 필요하다. 전도자가 이리떼 같은 세상 속으로 복음을 들고 나갈 때 뱀처럼 지혜로우면 전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뱀과 같은 지혜는 있는데 비둘기 같은 성실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교활해져서 균형을 잃게 되고 결국 전도를 이룰 수 없다. 반면에 지혜 없이 성실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혹 바보로 비춰져 전도의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하철 안이나 공공장소에서 외치는 전도방법이 과연 효과적일지 생각하게 한다. 지혜와 성실을 고려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여타의 전도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전도자의 위대한 모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도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은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생활을 본받지 않고서는 능력있는 전도자가 될 수 없다.

 

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의 전도사역을 중심으로 전도자로서 예수님의 3대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능력전도를 하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이 떨며 도망하고 병자를 치유하시는 가운데 네 죄가 사해졌다 라고 말씀하셨다. 전도할 때 특별한 능력이 나타난다면 두말이 필요없을 만큼 큰 효과가 있다. 예수님의 전도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철저히 의뢰한 결과이다.

예수님의 순종의 백미는 나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른 십자가 사역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순종하면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신뢰와 순종은 우리를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게 할 것이다. 전도는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순종하는 실천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집요하리만큼 대단하셨다.

전도는 이렇게 전도대상자 한사람의 영혼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반응이다.

 

 

셋째, 예수님은 일상이 곧 전도였다.

예수님은 생활 그 자체가 전도였기 때문에 전도의 기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상황을 매개로 전도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죄를 깨닫게 하는 놀라운 능력도 발휘하셨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과 같이 도그마에 빠진 이들에게는 직접적이며 개인적인 도전으로 진정한 신앙의 자리로 나오게 만드셨다. 이런 모습은 전도가 일상이 되지 않으면 찾아볼 수 없다. 전도가 일상이 되신 예수님이셨기에 어려운 신학논쟁으로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는 경우도 없으셨다.

 

예수님은 일상적인 예화로 상대를 설복시키셨다. 또한 생활 그 자체가 곧 전도인 예수님의 방법론은 단순했다. 전도가 생활이기 때문에 전도대상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다. 전도가 생활이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방법론에 편향되지 않으셨다.

 

전도자에게 생활이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복음을 말해야 한다.

전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성령의 사역이다.

어떤 이들은 전도의 은사가 있어야 전도한다고 말한다. 이는 은사를 빌미삼아 전도하지 않는 부담을 덜어내고자 하는 핑계일 뿐이다.

 

 

 

출처 : 브니엘
글쓴이 : noemisu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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