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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하는 전도 (벧전 2:18-25)

by 【고동엽】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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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하는 전도 (벧전 2:18-25)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결코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오히려 삶 그 자체여야 합니다. 전도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생업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살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삶으로 하는 전도’여야 합니다. 그러면 ‘삶으로 하는 전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소명을 깨닫는 삶

 본문 21을 보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베드로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명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소명을 받았을까요? 18절을 보면 이 말씀은 ‘사환’에게 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환이란 종 또는 노예라는 말입니다. 당시는 주인과 노예라는 신분 제도가 엄격하던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노예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본문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 말하는 소명은 2중적인 소명입니다. 하나는 종으로서의 부르심입니다. 당시 신분제도 상  종인 그리스도인들은 상전 곧 주인들을 종으로서 성실하게 잘 받들어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선한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주인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종으로서 성실하게 잘 받들어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도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 종들이 성실하게 주인을 받들어 섬기면서 선을 행할 때 주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 전도의 문이 열려서 그 주인들도 결국 예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인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으로 주인을 향한 전도자로의 부르심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르심은 이중적인 부르심입니다. 직업인으로서의 부르심과 전도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

 

  ‘의사 전도왕’으로 알려진 이 병욱 원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외과의사로서 주로 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분인데 재수술률이 아주 적은 명의로 소문난 분입니다. 정말 의사로서 좋은 의사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분은 편작처럼 환자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겸손한 의사여서 정말 존경 받는 인격적인 의사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분은 진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정말 훌륭한 전도하는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원래부터 의사로서 전도를 열심히 했던 분이 아닙니다. 한 번은 외국에 한 세미나에 참석을 했었답니다. 호텔에서 한 종업원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마음속에 강열하게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일정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 순간 전도를 하지 못했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그 밤에 그 종업원이 자살을 했더랍니다.

  그날 이분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도에 매진하게 됐답니다. 자기가 의사로의 부르심만 받은 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부르심도 받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이중적입니다. 훌륭한 직장인, 훌륭한 사업가, 훌륭한 근로자로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아울러 있지 말아야 할 것은 일터 전도자로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삶으로 하는 전도는 이런 부르심을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삶

   19절을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종이 때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때가 있지만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고 견디면 이것이 아름답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인 종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했지만 믿음으로 잘 참고 견디면 나중에 주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된 뒤에 그와 그의 삶을 아름답게 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0절을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인인 종인 역시 선을 행하는 도중에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가 있지만 이것을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 보실 때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으로 하는 전도는 그 삶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불신자들이 인정하고 또 칭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기뻐하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 군대생활할 때 일이 생각납니다. 최전방 철책선 근무 때 일입니다. 여름철이면 비무장지대 사계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가서 무성하게 자란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한 부대가 이 작업을 하다가 병사들이 지뢰를 밟아서 몇 사람이 죽고 일개 분대가 크게 다쳤습니다. 이 사고로 그 부대는 철수하고 대신 저희부대가 투입됐습니다.

  병사들이 잔뜩 긴장했습니다. 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대대장님이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매일 작업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 앞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작업 현장에 투입됐는데 맨 앞에 지뢰를 탐지하는 병사들이 나섰고, 바로 그 뒤에 사계청소하는 팀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 때 대대장님이 선두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대대 군종사병과 중대군종사병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자청해서 대대장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3개월간의 작업 도중에 단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든 작업이 다 끝난 뒤 부대가 큰 상을 받았습니다. 대대장님도 훈장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진급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우리 부대병사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앙케이트를 조사해 보니까 이 사건 이전의 복음화율은 35%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의 복음화율은 약 70%에 육박해 있었습니다.

  저는 불신병사들의 눈에 이 일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일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런 기쁨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불신자들 눈에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는 일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 사람의 인격이 아름다워야 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매력’입니다. 이 말로 바꾸어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력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삶으로 하는 전도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연예인처럼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매력적일까요? 요즘 많이 사용되는 ‘예능’이라는 끼가 있는 사람이 매력적일까요? 사실 일터에서 매력적인 사람은 돋보이고 뛰어난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선 일터에서 매력적인 사람은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함께 있으면 늘 위로를 받습니다. 함께 있으면 힘이 납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불신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름답습니다.

   다음으로 일터에서 매력적인 사람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눈에 띠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서 눈에 띠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없으면 왠지 분위기가 가라앉고 일이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없을 때 그 빈자리가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불신자들이 볼 때 없을 때 그 빈자리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이 볼 때 매력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전도하려고 하면 불신자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할 경우 ‘너나 잘하세요!’라고 전도자들이 핀잔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일은 삶으로 하는 전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본을 받는 삶

   본문 21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이를 잘 참고 견디신 것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오신 것도 몰랐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시고 계시는데 그것이 복음인 줄 몰랐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해 줍니다. 요 1:5을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리고 요 1: 11을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이 예수님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는데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했는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거절을 참으셨습니다. 그 거절을 잘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절하던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거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예수 믿고 말고요 교회 나가고 말고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만나게 되는 반응은 우선 거절입니다. 때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때론 점잖게 거절합니다. 때론 불쾌하게 거절합니다. 때론 협박하며 거절합니다. 또 전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거절 때문에 전도하기 두려워합니다. 자칫 이 거절로 일터에서 맺어 놓은 좋은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를 주저합니다. 전도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거절과 박해를 견뎌내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할 때 생겨나는 거절을 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겨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절을 극복해 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전도하는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다가 거절을 당하면 누구라도 위축됩니다. 두려워하게 되고 자칫 전도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성령께서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를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전도대상자가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대상자가 늘 그대로면 전도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전도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전도대상자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서서히 그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해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 외에 또 중요한 것은 집요함입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유비가 제갈량을 얻게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가서 간청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또한  ‘십벌지목’(十伐之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한 번 전하고 거절하면 실망해서 포기하면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삼고초려를 하든지 십벌지목을 하든지 집요함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 합니다. 전도는 단기선교 가듯 특별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전도는 ‘삶으로 하는 전도’입니다.

   우리가 삶으로 하는 전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매일의 삶 속에서 전도자로의 부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매일의 삶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전도하며 거절을 당할 때 예수님 생각하면서 잘 이겨내야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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