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미친 사람! (행 26:24-32)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총독 앞에서도 당당했고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당당했고, 유대인들 앞에서도, 이방인들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이 정정당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덕적으로도 깨끗했고 경제적으로도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본 바울은 아깝고 답답하고 미친 사람과 같았습니다. 바울은 난지 팔일만에 할례 받은 정통 유태인입니다. 공부도 할 만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께 미쳐서 ‘여길 가도 예수, 저길 가도 예수, 총독 앞에서도 예수, 왕 앞에서도 예수, 감옥에서도 예수, 거기서 나와도 예수, 집안에서도 예수, 길거리에서도 예수!’ 완전히 미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바울은 하고 있었습니다.
성공 출세를 마다하고,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고생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바라본 베스도 총독은 “네가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의 눈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참 생명의 기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그토록 좋은 세상조건을 다 포기하고 예수를 선택했습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18).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본래 바울의 희망은 주의 종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선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꿈은 자기 스승 가멜리엘처럼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유대 종교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신흥종교로 부상하고 있는 기독교 세력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길을 막고 다른 길을 주신 것입니다. 그 길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이었고 사단의 권세를 벗어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난 이후 그는 그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은인 가운데 생명의 은인이 제일 크고 귀하다고 합니다. 친구 중에 제일 귀한 친구는 예수 믿게 해 준 친구입니다. 이유는 내 생명을 죄에서 구원해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내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분,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주신 분, 나를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해주신 분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셨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셨고 지옥에서 천당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 예수님이 안 좋을 수 있습니까?
KBS TV 쇼 중에 진품명품이라는 쇼가 있었는데 가짜와 진품을 구별하는데 굉장히 어렵답니다. 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가짜와 진짜가 비슷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는 것도 비슷하고 모습도, 표정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예수님이 있으면 진짜고 없으면 가짜입니다.
바울의 신앙은 진짜입니다. 그래서 다 포기했고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성공해도 예수, 망해도 예수, 오늘도 예수, 내일도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분명하고 명확한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높이고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제일 좋기 때문입니다.
아마추어 선수는 자기 돈 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프로 선수는 돈 받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 선수의 경우는 게임에 이기면 더 좋고 졌다고 해서 퇴출 되거나 감봉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로선수의 경우는 다릅니다. 성적이 부진하거나 게임에 지면 연봉이 줄고 출전이 제한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돈 받고 선교사가 된 것도 아니고 연봉 받고 전도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예수님이 좋고 하는 일이 즐거워서 한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능률도 성과도 오르지 않습니다. 그 일을 즐겨야 합니다. 십자가도 즐거운 마음으로 져야 합니다.
513장 찬송가사 가운데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즐겁게 하는 일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를 맞아도 좋고 밥을 굶어도 좋고 풍랑을 만나도 감옥에서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러 매 맞고 쫓겨나고 밥 굶고 감옥에 들어가는 일을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좋은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겪어야 할 일들이 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손으로 천막을 만들어 선교 비를 충당했습니다. 멀고 먼 길을 걷거나 배를 타고 순회하며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기쁘다, 기뻐하라는 권면을 하곤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가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가 좋아지면 세상이 좋아집니다. 사람이 좋아집니다. 친구가 좋아지고 하는 일이 좋아집니다. 교회가 좋아지고 책임이 좋아집니다. 예수님이 좋으면 다 좋아집니다.
▶결론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말씀으로 삼겠습니다. 엡6: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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