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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극복의 비결! (왕상 19:9-14) 

by 【고동엽】 2022. 3. 13.

위기 극복의 비결! (왕상 19:9-14)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써 그는 일정한 주거가 없이 광야에 기거하면서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다녔습니다(왕하1:8).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으로 아합 왕의 잘못을 서슴치 않고 책망했고 그 당시 유행하던 바알신 우상숭배 척결에도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용기, 신앙, 정의감, 애국심을 갖춘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활동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행한 능력과 기적들입니다.
왕상17:8-16절을 보면 사르밧 동네에 사는 과부집을 찾아가 가루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통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을 행하였고, 왕상17:17-24절을 보면 병들어 죽게된 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었고, 왕상18장을 보면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물었던 땅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
아합왕을 책망하고 기적을 행하고 바알우상의 전을 무너뜨리던 엘리야가 왕상19장에서 보면 탈진과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 당시 아합왕의 왕후는 이세벨이었는데 왕을 책망하고 바알우상을 척결하는 엘리야를 아합왕보다 이사벨이 더 증오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는 통첩을 했고 그 통첩을 받은 엘리야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렇습니다. 배가 크면 부딪쳐오는 파도도 큰 법입니다. 큰사람, 큰 인물은 큰바람을 맞게 됩니다. 신앙도 큰 신앙이 되려면 시련도 겪고 풍파도 겪게 됩니다.
▶왜 엘리야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탈진과 위기에 빠지게 됐는가?

 

첫째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0).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사람은 홀로 있기에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55세 된 남편이 성인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미망인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채 고통받다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일년이 지난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혼자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나는 그이 곁으로 가고 싶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 다니는 딸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는 혼자다. 나는 홀로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로웠고 고독했고 우울했고 그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18절을 보면 '바알을 숭배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자 7,000명이 남아 있다'고 했고, 하나님이 엘리야 '곁에 앞에 위에' 계셨는데도 그는 '오직 나만 남았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14)'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행불행이 갈라집니다.
과학자들은 뇌를 소우주라고 합니다. 뇌 세포는 한번 생겨나면 다시 그 세포수가 불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재생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0살이 넘으면 하루에 10만개 이상의 뇌 세포가 죽어가고, 늙을수록 죽어 가는 뇌 세포 수가 늘어납니다.
전문가들은 뇌 세포를 놀리지 말고 자꾸 써야 뇌 세포가 죽고 뇌가 쪼그라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혼자다.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뇌 세포를 죽이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고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성림교회가 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믿/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결코 절대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둘 째 '생명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10절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또 14절 끝에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까봐 겁내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산 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이세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손에 죽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실패, 이별, 고통, 원한, 억울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생의 마침표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담하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종착역이고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입성 식이라고 생각하면 담담할 수가 있습니다. 죽음은 끝도 종착역도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소망입니다. /믿/
절망과 실의와 탈진과 위기 앞에 서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9절을 보면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1절에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섰으라'고 하십니다. 그 날 그는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탈진과 절망과 위기는 끝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내가 겪고 있는 탈진과 침체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건강한 생명도,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지키시고 보호할 때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합시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내가 네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리라'는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드리는 성림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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