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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의를 이루는 믿음! (롬 3:25-31)

by 【고동엽】 2022. 3. 11.

《제14강》 의를 이루는 믿음! (롬 3:25-31)

 

성경에서 안수의 유례는 어느 때부터 입니까? 창27:27절 이하에서 이삭이 야곱에게 향한 안수가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의 별미를 먹고 축복 기도할 때, 머리에 안수 기도했습니다.
그 후 창48:14절에서 야곱이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동시에 안수를 했습니다. 조금 지나 야곱이 12아들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 후 선지자들에 의해서 안수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 예수님께서도 어린 아이를 안수했습니다. 12사도들이 7집사를 안수했습니다. 최근에는 목사 안수, 장로 안수, 집사 안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수 기도가 축복입니다. 안수 기도의 종류를 알아 봅시다!
①직분 안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커지자 12사도가 집사를 세웠습니다. 행6장에 보면 성도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덕을 보인 일곱을 택했습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였습니다.
행6:6절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때 직분의 사명이 분명해 집니다. 그래서 목사 안수, 선교사 안수, 장로, 집사 안수가 생겼습니다.
②축복 안수도 있습니다.
막10:16절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 안수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이었습니다.
창49장을 보면 야곱이 마지막 임종 직후 그의 12아들들에게 축복안수를 해 주었습니다. 12아들 중에 가장 축복 기도를 길게 많이 받은 사람은 유다입니다.
그런데 가장 축복 기도를 많이 받은 유다가 나중 결과적으로 보니 가장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축복 안수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양의 법칙과, 내용의 법칙입니다. 안수 기도의 양만큼 축복 받고, 내용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유다는 ㉠형제의 중심이 되는 복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복 ㉢권력의 조상이 되는 복 ㉣능력의 사람이 되는 복 ㉤복음의 사람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③성령 받기 위한 안수가 있습니다.
행8:17절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빌립이 세운 사마리아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또 행19:6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꼭 안수해야만 성령이 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절히 안수하며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④은사를 받기 위한 안수기도가 있습니다.
행19:6-7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안수할 때 은사가 임했습니다. 은사(카리스마)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요 도구입니다.
이 은사는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더 일하기가 쉽습니다. 마치 괭이로 땅을 파든 것을, 불도저로 미는 것과 같은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데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십니다. 다만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⑤평강을 위한 안수기도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최초의 선교사는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행13: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이미 성령을 받았고, 직분도 받았습니다. 이 안수는 평강의 안수입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에게, 시험을 치기 위해 가는 자식에게,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하는 안수입니다. 이 안수는 '하나님과 동행의 복'을 비는 안수입니다. /믿/
⑥전달되는 안수기도가 있습니다.
신34:9절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것을 여호수아에게 전달시켜 주셨습니다. 안수자의 것이 피안수자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사람에게 안수 받는 것은 엄청난 영적인 복입니다.
⑦재생되는 안수기도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바울이 안수합니다. 딤후1:6절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안수는 가물어 시들어버린 꽃에게 물을 주듯 재생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게 하고, 버렸던 사명을 되찾게 합니다.
⑧병자를 위한 안수기도가 있습니다.
눅4:40절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지난주에 19-24절까지에서 율법과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최고의 가치는 죄를 깨닫고 더 자세히는 율법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몽학 선생과 같아서 예수 그리스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23-24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 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고, '죄를 범하였으매'는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벌써 죄를 범한 자들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하며 칼빈은 '전적부패, 전적 타락'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고 하나님의 형상은 상실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축복에서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하는 의'입니다. 의는 '값어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 참, 진실, 인정' 이란 의미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이신 칭이'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 지는 것을 말'합니다. '너는 죄가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제목소개▶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학자들은 25-26절을 '로마서를 반지로 본다면 본문은 다이야몬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의를 세우신 목적이 나옵니다.
"이 예수를 그의 피로 인하여" 여기서 '인하여'란 '--때문에' 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귀한 진리 하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면 믿음의 강약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예수의 보혈, 예수의 피 때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그것을 통하여'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믿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통하여'란 말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으면 믿음의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사실 현대의학에서는 생명이 피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답니다. 사람의 몸무게 중 13분의 1이 피고, 피의 3분의 1을 흘리면 죽는다는 학계의 보고입니다.
모세는 이미 사람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창세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여기에 감동이 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피 다음에 믿음이 나옵니다. 주님이 피 흘려주셨는데, 그 피 흘림이 나를 위한 흘리심임을 믿는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김 집사 때문에, 이 집사 때문에 예수가 피 흘렸다고 믿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온 세상 죄를 위하여 죽었다는 말은 잘 믿는데 내 죄 때문에 죽었다는 말은 외면합니다. 아닙니다. 예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를 졌습니다.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화목 제물의 역할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분이 누구입니까?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이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화목이란 뜻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원수가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영적 부자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제로 세우셨습니까? 그것은 오직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양편 사이를 화목 시킬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딤전2: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은 예수를 죽게 해서 그 피를 화목 제물로 받으시고 인류의 죄를 전부 간과(패스, 통과) 시킴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셨습니다.
구약의 화목 제물이란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는 제사입니다. 창6:5-7절까지 같이 읽어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악했던지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아 가족은 홍수가 끝난 다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진노를 푸시는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8:20-21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짐승 제물을 드린 제사였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은 노를 푸셨습니다. 제사가 이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신이 죄 없는 몸을 화목 제물로 드렸습니다.
여러분! 짐승 제물도 하나님이 노를 누구려 드렸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제물로 드린 제사란 이건 보통제사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무리 뜨거운 풀무 불처럼 타올랐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죄 없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이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우리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①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목 시켜 주신 유일한 피라고 믿어야 합니다.
②내가 범죄 함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원수 되어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지만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나를 구속하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이제 영생복락의 자리까지 주셨음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의 몸과 마음을 바치며 살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또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신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 예수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라고 했습니다. 참고 또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당장 쏟아져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시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보고도 못 보신 척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눈감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보잘것없는 제물의 피를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꾹 참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을 나타내실 때까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실 때까지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 중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해주셨다는 것입니다.

 

▶26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 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곧 이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그 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세우신 그 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까지 참고 참으셨던 무서운 진노가 한꺼번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어깨 위에 완전히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겠습니까? 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공의로우시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옛날 희랍에 너무나도 성도덕이 문란합니다. 왕이 엄한 국법을 만들었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두 눈을 백성들 앞에서 뽑을 것이다" 그런데 제일 먼저 걸려든 사람이 뜻밖에도 자신의 아들, 왕자였습니다.
임금이 만든 법대로 하면 왕자의 두 눈이 뽑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두 눈이 없으니 어떻게 정사를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임금이 공포한 법을 왕자라고 해서 무마시킨다면 '누가 왕을 따르겠습니까?' 왕의 권위는 치명적입니다.
법은 법대로 살리고 아들은 아들대로 살리는 길이 없으니 왕은 얼마나 고심이 되겠습니까? 신하들은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왕은 왕자를 친히 나무에 붙들어 매고는 단도를 빼들고 왕자의 눈 하나를 뽑았습니다. 두 번째 칼날을 높이 들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았습니다.
이 왕은 법은 법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살리는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런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오늘 본문이 쉬울 것입니다.

 

▶27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이 말씀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인생의 모든 자랑이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음을 뜻합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는 우쭐대고, 선민이라고 자부하며, 교만에 빠져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구원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있는 사람은 어디 손을 들고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있을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법으로냐?"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무슨 원리에 의해서냐? 행위로냐? 네가 잘나서 그러냐? 너에게 공로가 있어서 그러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친히 다 이루어주시고 우리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믿음의 손을 내밀어서 받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고 "너희는 그저 믿음으로 받아라"고 하시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하고 받으면 될 텐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믿음이 가지를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행위 문제가 계속해서 솟구쳐 오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내가 일을 해야만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랑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심리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 평화로운 천국이 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세리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불의한 짓을 하지 아니했습니다. 간음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저는 금식합니다. 십일조도 하나님께 잘 드립니다. 그리고 저기에 있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물론 바리새인이 거짓말로 기도한 것은 아닌 줄 압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무엇인가? 추악한 인간의 모습으로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자랑거리를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은 인간의 다른 죄는 손가락으로 다루시지만 인간의 교만에 대해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루신다" 우리 인간의 교만을 얼마나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지를 잘 표현한 말인 줄 압니다.
"오직 믿음이 법이니라!" 여기서 믿음의 법은 ⑴나를 포기하는 법입니다. ⑵전폭적으로 나의 삶 전체를 주님께 의지하는 법입니다. ⑶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법입니다. ⑷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법입니다. /할/
바울은 계속해서 28절에서 우리 인간에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여러분! 구원받은 십자가상의 강도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는 큰 악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 때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강도가 구원받은 것이 그가 잘나서였습니까? 자기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믿음으로 구원받았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강도가 무엇을 내세우고, 무엇을 자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그에게는 감사와 찬미가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구원문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감사와 찬미가 있을 뿐입니다.
엡2: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교리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들은 수양과 덕행을 위주로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얻어지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28절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진리입니다. 사람이 성취한 사업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에 의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이 돈이 많아 구제를 하고 사회사업을 해서 자신의 명예가 나타난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제를 못해도, 자선 사업을 못해도, 만약 나에게 신앙이 있기만 하면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확실하며 참 포도나무 가지에 접붙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힘이 나에게 평안을 주고 그 평안은 능력을 줍니다. 이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은혜에 감격한 열심 있는 성도들이 봉사를 할 때 그 은혜로 하는 것이요, 전도도, 희생도, 헌신도 다 이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고후9:15절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①은혜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요1서 4:16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42:3절에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55: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7:37-38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한 자입니다. /할/
②은혜의 본질은 영원합니다. 순간적인 것이거나, 가다가 중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조건과 환경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환경과 조건 때문에 변경되거나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허물 많은 베드로도, 의심 많은 도마도, 바울 같은 죄인의 괴수도 끝까지 버림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큰 은혜를 입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③은혜의 본질 속에는 회개를 동반해야 합니다. 어떻게 죄인이 회개하며 참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 회개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심이 은혜입니다.
▶은혜 받는 자의 삶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29절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예나 지금이나 이방 종교에는 신이 많이 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다 신입니다. 바다에는 바다 신이 있고, 또 산에는 산신이 있습니다. 바람 부는 것도 역시 신의 활동으로 보았습니다. 모든 자연 활동이 다 신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에서는 신들의 계급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유일신관'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대인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저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은 되시지만, 너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방인을 미워하고 멸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는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는데 니느웨에 가기가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인가? 요나입니다. 왜 이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를 싫어했습니까? 자기의 사명이 실패할까봐 두려웠습니까? 아닙니다. 그 정반대입니다. 자기의 사명이 성공할까봐 오히려 두려웠던 것입니다. 자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받아주실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잇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묻고 대답하기를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
믿음의 법은 혈통과 관계없습니다. 유대인, 헬라인, 이방인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어떤 한 민족을 봐 주는 법이 없습니다. 신앙은 개인적입니다. 유대인들의 코가 납작해지는 구절입니다.
유대인들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벌써부터 있었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도, 성경도, 잘 알았지만 지식으로 끝났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신학박사 총장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한 친구가 "너 예수 믿느냐?' "우리 아버지가 신학대학 총장이야" 신학대학 총장 아들이라고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짭니다.

 

▶30절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할례자, 즉 유대인도, 또 무할례자, 즉 이방인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에 구원의 길도 역시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도 믿음뿐이고, 이방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도 역시 믿음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롬1: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3: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다 받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시 우리는 다 이방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를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 모두의 하나님의 되셨습니다. /할/

 

▶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이 없으면 믿음의 법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내가 죄인인 것을 모릅니다. 죄인인 것을 모르면 구속이 필요 없고 회개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필요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갈3:24절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것은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지심으로 완성하였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롬13: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마5: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인생이 지켜야 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인생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며 율법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 완성의 효과를 얻게 됩니다.
칼빈은 '제한속죄'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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