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의 내용 엡1:7
※‘복음 설교’, ‘십자가 설교’ 이런 것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감격을 잃어버렸으니까..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복음 설교’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그래도 ‘복음의 감격’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같이 성경말씀을 읽겠습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잠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을 ←설교 제목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잠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을(그 인자와 진리의 사랑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새기며,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입니다.
<십자가로 돌아가자. 십자가 신앙을 회복하자>라고 말을 하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마음 깊이 기억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랑의 내용’에 대해서, 3가지 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죄의 용서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내용입니다.
사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처럼 죄를 용서 받지 않고서는, 즉 악인에게는
그 어떤 평강도, 기쁨도, 소망도, 행복도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않고서는
모든 인간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롬3:23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은.. 오늘날 비참한 인생을 사는,
현대인의 삶을 보면.. 잘 아실 것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값을 pay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물쩡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 값을 치르는 과정에서.. 사람은 ‘사망의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사안에 따라, 그야말로 뼈가 마르고, 속이 타는 듯한 고통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모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악 가운데 이 땅에 태어났고, 이 땅에서부터 ‘지옥 같은 삶’을 경험하다가
나중에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원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죗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의 대속 제물로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고귀한 피를, 그 생명의 피를 흘려서,
그 핏값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 하신 것입니다.
오직 그것을 믿고, 진실로 자기 죄를 회개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Good News입니다.
▶죄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새 생명을 주신 그 크고 보배로운 구원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의 도움으로,
죄를 이기고 살 수 있는.. 즉 믿음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죄의 종으로
죄에게 지배를 당하며 살지 않습니다.
죄를 싫어하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살기를 좋아하는,
성품이 변화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 노예가, 주인에게서 해방된다면.. 그 얼마나 큰 빚이요, 은혜입니까?
우리는 그 보다 백 배, 만 배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자는, 죄의 종에서/마귀의 종노릇에서/어둠의 나라의 속박에서
의의 종으로/예수님의 종으로/하나님의 나라로.. 그 호적이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늘 쉽게 잊어버리면서 삽니다.
‘십자가 신앙’이란.. 그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다시 그 은혜로 돌아가는 신앙을 뜻합니다.
◑2.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칭의)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용서하신 후,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이제 그의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에게 ‘의롭다’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에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로 깨끗케 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롬5:9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의의 겉옷을 입어야만, 죄인인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으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는,
진노의 하나님 앞에, 그 공의로움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주신 것 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는 없는 것 입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 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져야만 합니다.
그 피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 입니다.
▲일화 “네 아버지가 누구지?”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벤 후퍼 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아주 작은 체구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 벤 후퍼와 어울려 노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그를 놀리며 멸시했습니다.
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꼭 한 번 교회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사람들을 의식해, 예배 시간에 늦게 들어가서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가 마치기 전에, 다시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벤 후퍼는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감동에 젖어 눈을 감고 말씀을 되새기고 있는데,
벌써 그 사이에 예배가 끝나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벤 후퍼도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면서,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12살 된 어린 소년 벤 후퍼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 하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모두들 숨을 죽이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궁금해 하며, 목사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다시 환한 얼굴로 벤 후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알겠다.
너는 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가 있어!”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벤 후퍼의 등에 대고 목사님은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 벤 후퍼가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 취임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그날이
바로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이며,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뜻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그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믿는 자에게 이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오직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은 사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으며
그 분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는 그 어떤 의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옷 입을 때,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칭의를, 그 ‘사랑의 내용’을 ←설교제목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 노예는요, 옛날 로마시대나 또한 근대 미국과 유럽의 노예들을 보면,
목에 무슨 쇠고랑을 걸고 다녔습니다. 노예의 표식인 것이지요.
아니면 이마나, 팔뚝에.. 잘 보이는 곳에.. 화인을 찍어서 다녔습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노예의 표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기 전에는, 그 표식을 벗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 과거에, 그런 죄의 속박, 마귀의 노예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죽기 전에는, 그 속박을, 그 쇠고랑과 화인을, 벗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그 속박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감격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3. 화목을 이루심
그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목케 되면.. 연쇄적으로 인간들과도 화목케 됩니다.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모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지불하심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친히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위하여 친히 죽으셔서 당신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지극히 크신 하나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즉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즉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증거인 것 입니다.
▶저는 너무나 죄악 된 모습만이 저에게서 나타났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내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은 오직 죄악 된 죄 투성이의 모습밖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죄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때 이런 죄로 말미암아 제 심령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주님 앞에 몸부림을 칠 때, 예수님께서는 제게 이 말씀을 저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롬5:8
여러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로운 사람으로 살 때에, 내가 선을 행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이구 네가 그렇구나. 그럼 내가 너를 도와야 되겠구나’ 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죄인으로 더러움 가운데 우리가 죄악 가운데
화장실의 구더기 같은 그 더러움 속에 빠져 있을 때
그 더러움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내 더러운 모습과
내 온갖 죄악 가운데 빠져 있을 바로 그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셨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 그 사랑이 여러분 가운데서 느껴지십니까?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고하신 사랑 때문 인 것입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잘것없고 더럽고 추악하고 가치 없는
나의 죄악이 가득 찬 죄인의 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신 그 사랑,
그 가치 없는 나를 위해서, 죄악 된 나를 위해서, 벌레 같은 나를 위해서,
죄인중의 괴수인 나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하나님 그 자신인 그 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셔서, 그 의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그 분이신 것 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뵐 수 있겠습니까?
이건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크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하나님의 성품이신 것 입니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화목을 입은 사람만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롬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인간으로서 살지만
우리의 신분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우리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어찌 이 땅에서 가치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신분이 은혜로 이미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사랑 말하지만, 피상적/습관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늘 십자가를 묵상하는 가운데, 그 사랑이 정말
내 가슴에서 전율을 일으키는, 그런 사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항상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있는데,
어떻게 그 원수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앞에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붙어 있을 때에
그 어떠한 것도, 그 어떠한 죄악도, 그 어떠한 시험도
우리를 넘볼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이 우리를 감당치 못하며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해 죽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어떻게 감히 해 볼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히11:38
왜요?
하나님의 사랑을, 이 큰 사랑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이 사랑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왜요?
나의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만드신 하나님!
내가 죄악 속에 있었을지라도,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대적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능력과 권세가 우리 가운데 있는데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부르심의 뜻대로,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쁨의 자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것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그 크신 은혜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에 길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곳은 필리핀의 어느 바닷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아고오(AGOO) 해변의 모든 바닷물을 먹물로 삼는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이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한다 할지라도
어찌 다 기록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많은 죄악을 탕감 받은 죄인과
나는 죄를 짓지 않아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탕감 받은 죄와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인입니다.
저는 죄인중의 괴수라고도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죄 가운데 살았던 자입니다.
이 날까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죄투성이고
어느 것 하나 흠 없다고 어느 것 하나 깨끗하다고 주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없는
그런 자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고, 나 같은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너무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를 만큼
하나님 앞에 감사 할 뿐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경배하고,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하여 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만큼 선하시며, 하나님이 얼마만큼 좋으신 분인지,
또한 하나님이 얼마만큼 귀중하고 소중한 분이신 것을 맛보아 알라’ 는 것 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주 맛있게 보이는 음식이 차려져 있고
어떻게나 좋은 냄새가 풍겨나는 음식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먹어보기 전에는
이것이 짠맛인지 달콤한 맛인지 쌉쌀한 맛인지 우리는 알 수 가없습니다.
제가 이곳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 여러분(현지인)들의 음식이 어떤 맛인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 또한 저희 나라 음식이 어떤 맛인지, 맛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만큼 선하신지,
얼마만큼 좋으신 분인지.. 맛을 보아 알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에서, 우리에게 맞추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이리로 올라오라. 너희들은 스스로 너희를 깨끗케 하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독생하신 아들을,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율법과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너희는 이것을 지켜라 이렇게 지키면 복이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내릴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룰을 정하시고 쭉 선을 그어 놓으시고
‘이리로 넘어 와라’ 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릴 것이다.
이렇게 저주가 목적이셨을까요?
결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복과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어떠한 복이요?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 땅에서 자녀 잘 키우고
그들이 시집 장가 가는 것 보고 그들이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이 땅에서 장수하며 좋은 차에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누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나의 아버지, 나의 창조주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나오며,
그 하나님을 부르며, 그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 그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
그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으로 풍요로운 것, 그것이 바로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하며
그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품 안에 돌아오는 자녀들을, 환영해 주십니다.
▶억만 죄인이라도.. 하나님과 화목케 될 수 있습니다.
눅15장에 나오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은요,
재산을 다 탕진하고…
그는 사업하다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실패해서 망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창기들과 더불어 탕진하고 돌아오는 그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다리며 문 밖에 서 계시다가
먼 발치에서 아들을 알아보고, 돼지 똥으로 범벅이 된 그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입맞추고 품에 안고 노래하며 춤추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맛보아 알라고 주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분의 사랑을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그 분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혹시 실패 가운데 있으십니까?
여러분 오늘 죄악 가운데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더욱 품에 안으십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품에 안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피 흘려 죽게 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오직 그 사랑을 믿으면, 그 사랑을 받아드리면,
그리고 그 사랑 앞에 나오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죄 없다 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여러분의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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