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 겸손한 위인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쩌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쩌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입니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 휫필드와 웨슬리
감리교의 창시자는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입니다. 두 사람은 목회의 방법이 같았고 구령의 열정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해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의 신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던 한 사람이 휫필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데,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휫필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을 것이고,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휫필드의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신학이 다르지만 웨슬리 목사의 능력과 영향력을 인정한 휫필드 목사의 태도는 매우 훌륭합니다. 우리는 조지 휫필드처럼 온유함과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링컨의 구두
링컨 대통령이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보좌관이 말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구두를 직접 닦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되어가지고 남의 구두도 닦아줍니까?”
지금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생일 것입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접받기만를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링컨의 구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자신을 낮추었을 때 빛나는 것이라고….”
우리 교인들은 세상속에서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하는지 늘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 겸손이란
우리는 늘 겸손한 성품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무관심하면 교만이라는 잡초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모든 잡초가 그러하듯, 잡초는 좋은 씨앗들을 쉽게 해쳐 버립니다. 겸손은 아주 피기 어려운 꽃이요, 아주 힘들게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겸손이란 성품을 가꾸어야 합니다.
- 강준민의《성품 속에 담긴 축복의 법칙》중에서 -
* 겸손은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므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들의 긴 인생 여정속에서, 삶을 윤택하게 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아주 피기 어려운 꽃이요, 힘들게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교만이란 잡초가 자라게 되어 마음의 정원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겸손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세우는 것이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겸손하게 행동하되 비굴하지 말라. 중요한 사람인 척하지 말고 중요한 사람이 되라. 자신은 행동으로 만족하고 그에 대한 얘기는 남들에게 맡겨라.
- 윤문원의《지혜와 평정》중에서 -
* 처음 시작했을 때의 첫자리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때의 첫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래서 늘 한결같으면서 새롭고, 늘 용기가 넘치면서도 거만함과 교만이라는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겸손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낮아짐의 능력
낮아지면 두려울 것이 없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거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홍수가 나서 온갖 물건들이 다 떠내려갔다. 가구 냉장고 텔레비전…. 이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우리는 참 행복해요. 홍수가 나도 잃을 것이 없으니!”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다 아버지 잘 둔 덕이다.”
잃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개그맨 신상훈씨가 쓴 책에 보면 한 살부터 123세까지 나이별로 특징을 적어 놓았다. 86세에는 짠 음식 먹는 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미 그런 것을 걱정할 나이가 지났기 때문이다.
92세에는 야생버섯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한다. 독버섯 먹어서 죽을 확률이나 자연사할 확률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이드는 것은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듦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내의 극심한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 60이 되면 오토바이를 사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할 것이다. 그때는 위험을 즐겨도 될만한 자유로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70세가 넘으면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을 하고 싶다. 또 암벽 등반도 하고 싶다. 나이가 나에게 더 자유로움을 주게 될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강력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더 가지려고 하는 것,쥐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내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아닌가. 낮아지면 하나됨을 이룬다. 연합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툼과 경쟁심 때문이다. 헛된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분열이 일어난다. 분열이 있던 곳에 하나됨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분명히 낮아지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툼과 허영의 치료제는 무엇인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다툼과 허영을 깨는 힘은 오직 겸손한 마음에 있다. 겸손한 자는 다툼을 깬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낮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다. 정직하게 자기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겸손한 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등병이 화내는 것 봤는가. 병장쯤 되어야 화도 나는 것이다. 분노 속에는 숨겨진 교만이 있다. 내 주변에 분열이 있는가. 스스로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겸손의 모습을 회복하라. 두려움도 사라지고 하나됨의 능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 3등칸의 슈바이처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위대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슈바이처가 도착할 기차역 앞에서 기다렸습니다.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1등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2등칸을 타고 왔나 생각해서 사람들은 다시 2등칸 쪽으로 몰려갔습니다. 역시 거기에도 슈바이처 박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3등칸 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등칸의 맨 끝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내리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박사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 1등칸을 타고 오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말하였습니다. “4등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사람이 겸손하면 그의 인생의 앞길에는 존귀함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그 길에는 패망이 있을 뿐입니다.
/피영민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이웃을 위한 겸손
유명한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 박사가 앨라배마에 있는 터스키기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 지역의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백인 부인이 그가 워싱턴 박사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흑인이려니 해서 멈춰 세우고 몇 달러 줄 테니 장작이나 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총장은 그때 특별한 일이 없었고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그녀의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주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 그가 돌아간 후 그 집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다음날 아침에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 사죄했습니다.
그러자 부커 워싱턴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가벼운 육체노동을 좋아합니다. 그 뿐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요” 하며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을 세워주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 겸손은 더욱 존귀하게
영국의 간호원이었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만 3천명의 호열자 환자를 치료함으로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어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에 전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명예스런 훈장이나, 자기 영광받기를 즐겨하지 않은 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년 8월 15일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들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이팅케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위인전을 보면 김모재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교훈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식들 중에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 원치 않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겸손함과 조심성을 가지라. 이것이 참사람의 위덕이니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의복을 입은 짐승으로 세상을 마칠 것이라."고 교훈했다. 그리고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에 높은 산이나 큰 나무들 중에 거하지 않으시고 볼품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교만한 자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자 중에 거하시기를 즐겨하시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게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 노 수도사의 겸손
성 브라더 로렌즈 수도사는 싸움이 제일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에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그 문제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처음 부인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네! 그러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한달, 두달, 석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쏟아졌습니다. 석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차 수도원을 들렀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들은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겸손으로 그 후부터 그곳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 윌리엄 캐리 이야기
윌리엄 캐리는 위대한 선교사이며 우수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도의 34가지 방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인도에 왔을 때 어떤 이들은 혐오와 경멸의 눈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어느 만찬회 석상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한 사람이 캐리를 망신시키려고 여러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캐리씨,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면서요?”라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캐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구두짓는 사람이 아니라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자신은 구두를 만들 줄도 모르는 수선공에 불과했다고 겸손히 대답한 것입니다.
선교의 사역 후 마침내 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느 본문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해준다고 하면 ‘오!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라는 구절을 읽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겸손을 잃지 않고 훌륭히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겸손한 대통령
본문 : 시 10:17 , 잠 3:34
● 시 10: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 잠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겸손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링컨은 백악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대통령의 비서는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임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각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냐니?”
“한 나라의 대통령님께서 직접 구두를 닦으시다니요?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께서….”
“이것 보게. 자기의 구두를 자기가 닦아 신는 것이 이상한가? 구두 닦는 일을 천한 일로 생각한다면 자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야. 대통령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똑같이 사랑받는 자녀일 뿐이라네.”
링컨의 비서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서있을 뿐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겸손할 때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은 배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겸손한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언제나 겸손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 겸손함을 잃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교만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라
본문: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20세기의 성자라고 불리운 슈바이처 박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람바네대 병원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부족하여 모금운동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은 모금차 그의 고향에 돌아왔는데, 고향역에는 그를 영접하려는 많은 친지와 동료들이 모여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으레 1등 칸에서 나올 줄 알고 그 앞에 모여 있었는데, 그러나 박사는 맨 뒷쪽인 3등 칸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영접객들은 “어째서 3등칸에 타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웃으면서 “4등 칸이 있어야 말이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입을 옷은 겸손의 옷보다 더 좋은 옷은 없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 3)
어떤 사람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앙생활에 있어서 첫째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겸손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둘째는요?”
“겸손이오.”
“그러면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그는 다시 “겸손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가장 훌륭한 모습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과 하나님 경외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겸손하고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 복과 은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습니다.(잠29:23)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는 자기가 가진 권리도 포기할 수 있을 때 참된 겸손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나로 하여금 더욱 겸손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이 매일 자라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겸손을 실천한 옛 성도들과 같이 우리도 허리를 굽히고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믿음이 좋은 한 여인의 대답
본문 : 시 149:4 , 잠 18:12
● 시 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어떤 동네에 믿음이 아주 좋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잃고 일찍이 혼자가 되어 말할 수 없는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믿음으로 잘 견디며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이 여인을 존경하고 칭찬했습니다. 믿음이 너무 좋은 그녀의 소문을 들은 다른 동네의 여인들은 그녀를 찾아와 “아주머니가 바로 그 큰 믿음을 가졌다는 분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됩니다. 다만 작은 믿음을 가지고도 크신 하나님을 믿고 살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큰 복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뿐입니다.”
겸손은 좋은 믿음을 갖기 위한 필수적인 귀한 성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 항상 겸손한 모습을 지닌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주님!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항상 겸손하십니까?
/김장환 목사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겸손의 의미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내게 때때로 의미의 혼란을 일으켰던 말 중의 하나가 겸손이라는 단어였다. 최근에 주님께서 형제들을 통해 보여주신 겸손의 의미는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오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즉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자기의 장점과 잘한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약점이나 잘못한 것까지 포함하여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인류만을 생각하신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장점에만 관심이 있으면 우월감에 빠지기 쉽고 자신의 약점에 지나치게 민감하면 열등의식을 갖게 되므로 본질적으로 우월감과 열등감은 자기를 돌아보고 남과 비교의식을 가질 때 생긴다는 동일한 근원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겸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으므로 자기 자신의 우월한 점 때문에 교만해지지도 않고 약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약점이나 강점이나 어떤 환경이든지 하나님께서 필요를 위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과 이웃에만 관심을 갖는다
겸손
겸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짓된 겸손과 참된 겸손입니다. 거짓된 겸손은 존경과 명예를 멀리함으로써 겸손한 사람이라고 여김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가를 스스로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참함을 잘 알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이것은 위장된 겸손 곧 은밀하게 감춰진 교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겸손을 겸손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인내를 가지고 행동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고 또 죽습니다. 그들은 자신이나 피조된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조롱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며, 멸시를 받으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애쓰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참된 겸손은 내면에 속한 것으로서 외적 행동과 상관이 없습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일, 검소한 옷차림, 고분고분한 말투, 이런 당신을 보고 하나님이 겸손하다고 인정하실 까요? 이런 것은 지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참된 겸손을 위해 반드시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당신의 영혼에 스며든 타락의 엄청남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이 완전한 선하심으로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깊은 영성 체험하기」/ 진 에드워즈 편
접시 닦는 수도원장
성 브라더 로렌즈 수도사는 수도회 본부로부터 싸움이 제일 많기로 소문난 어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그 수도원은 원장이 공석중이었습니다. 로렌즈 수도사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에게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처음 수도원에 들어오는 신입 수도사는 나이 불문하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일부터 하는 것이 전통인 모양이었습니다. 로렌즈는 겸손하게 "네! 그러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로렌즈 수도사는 한달, 두 달, 석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의 엄청난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쏟아졌습니다. 로렌즈 수도사는 아무 말 없이 그 구박을 다 받으며 신입수사들이 자는 문간방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수도회 본부 감독이 순시차 수도원에 들렸습니다. 젊은 수도사들도 감독 앞에서만큼은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본부에서 로렌즈 수도사님를 3개월 전에 이 수도원 원장으로 임명하고 파송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로렌즈 수도사는 빙그레 웃으며 남은 접시를 마저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교만하고 무례하던 젊은 수도사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그곳은 아주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으뜸이 되어라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으뜸이 되어야 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말아야 한다. 중간 근처도 가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두각을 나타내고 번성 번영 번창해야 한다. 안 믿는 사람만도 못하다느니, 별 차이가 없다느니 해서는 안 된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듯 형통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크고자 하면 할수록, 으뜸이 되고자 하면 할수록 첫째, 남을 섬겨야 한다. 둘째, 이웃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둘을 합치면 '겸손'이다. 겸손해야 한다. 이를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본을 보여 주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겸손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으뜸이 되게 하신다.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출처:한태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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