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시 뿐인 세상 재물
1977년 부산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홀로 키우며 고생고생하며 살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임종이 가까워오자 흩어졌던 4남매가 다 모였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데 평생에 다이아 반지 한번 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원통 하구나”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자녀들이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인데 자식 된 도리로 안들어 드릴 수 없지 않느냐? 하면서 조금씩 돈을 내서 다이야 반지를 사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때 맏며느리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최근에 옆집 아주머니가 다이야 반지를 샀는데 그것을 빌려다가 끼워 드리고 어차피 돌아가실 어른이니까 나중에 빼서 되돌려 주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모두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좋을 것 같아서 옆집 아주머니의 반지를 빌려다가 고급상자에 넣은 다음 누워계신 어머니께 가지고 갔습니다. 반지를 받은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는 불빛에 비쳐보고 얼굴에 비비시며 한참 좋아하시더니 물 한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물을 갔다 드렸더니 어머니는 반지를 빼내 입에 털어 넣고는 꿀꺽 하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만족 한 듯 자리에 누우시면서, “나희들이 선물한 반지 애미가 극락까지 가지고 갈란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자녀들 사이에 다이야 반지를 어떻게 찾아 돌려주어야 할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들들이 어머니의 배를 갈라 반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은 어머니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결국 화장을 시켜 드리고 잿더미 속에서 반지를 찾았는데 너무 손상이 되어 버려 도저히 돌려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4남매가 돈을 모아 새 반지를 사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반지를 삼켜 뱃속에 넣으면 저 세상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마치는 날, 이 땅에서 소유한 것 중 실오라기 하나라도 가지고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반납하고 빈손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내 생명과 재물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권영국 목사 2. 빈 손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 당시 알려진 세상의 90%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당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금욕의 철학자이며 반문명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디오게네스에게 대왕이 말했다.“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보시오.” 그때 디오게네스의 대답. “조금만 비켜 주시오. 당신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일화는 후세에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남겼다. 물론 알렉산더 대왕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우는 것이다. 욕심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관에 구멍을 내어 자기 손을 밖으로 내어보였다. 그것은 사람은 결국 빈 손으로 간다는 교훈이었다. 사람은 살아서 흙을 밟고 다니지만,죽으면 흙이 전신을 덮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3. 허무와 절망의 인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클로드 시몽은 인생은 아무런 살 가치도 의미도 목적도 없고 자신은 그저 펜을 들고 계속 무의미하게 쓰는 것뿐이라고 했다. 구라파 정신계를 짙은 먹구름처럼 덮은 절망의 하늘 아래서 실존 주의 철학자들은 나아갈 길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2만의 히피들은 1주일 동안 "우리는 모두 미쳤다 미쳤어."라고 했고 텍사스의 소수의 히피들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인민 사원 교회의 짐 존스는 가이아나에서 900여 명의 자살자를 모집해서 집단 자살을 했다. 허무의 강가에서, 절망의 벽 앞에서 불안의 안개 속에서 세 가지 무의 망령이 의미 없는 소리를 외치고 있다. Nowhereness, Nothingness, Nobodyness. 하나님을 상실한 인간은 무덤사이에서 2천 마리 공산당 귀신, 섹스 귀신, 히피 귀신들린 거라사인 같다. 예수가 들어가야 제 정신이 든다. -예수칼럼 : 김준곤- 4. 허무한 인생 탈세로 고발한 빌 휴즈씨의 이야기이다. 그는 30년간 조선창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16,800파운드를 저축했다고 한다. 적은 봉급 생활로 이만한 저축을 하기 위하여 그가 살아 온 길을 보면, 과자를 산 일도 없고, 담배나 술도 안했으며, 여자를 데리고 데이트도 안했고, 면도는 형의 면도기를 사용하고 친할머니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요구했으며, 밤일을 나갈 때에는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갔고, 꽃은 평생에 사본 일이 없으며, 간식도 안하고 영화구경은 평생에 꼭 한번만 갔었다고 한다. 정말 한심한 사람이다. 생명을 받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은행의 저금통장 한 개 만이 그의 인생이었으니 허무한 한평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내 마음에 예수님을 담지 않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5. 지나면 허무한 삶 어떤 사람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절제하고 퇴폐적인 삶을 살다가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은 '양파 벗기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돌이켜 바른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과거의 친구'가 '어이 친구 자네 세상사는 재미를 포기했다며' 라고 빈정대자 이 사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보게 친구 사실은 그게 아니라네 내가 과거에 알았던 재미가 이제 보니 어리석은 일이었고 어리석게 느껴졌던 일이 진짜 재미있는 일이었다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살고 있어." 6. 지는 해와 같은 인생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려지는 제니 린드는 한때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정상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무대를 떠난 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은퇴한 후 그녀는 많은 돈과 명성과 그리고 수많은 청중들의 갈채를 잃어버렸으나 혼자 사는 것에 만족했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친구가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무릎에 성경을 펴놓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니, 어떻게 당신은 그 최전성기에 무대에서 떠났나요?" 제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나는 성경을 통해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내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어요." 제니는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결국 나는 그와 같은 생활이 저 지는 해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손으로 지는 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7. 공허한 삶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여배우가 있습니다. 그녀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8복음>, <가스등> 등으로 유명해졌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그녀의 연기 때문에 언제나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원래 스웨덴 출신으로서 유럽을 풍미하다가 더 크게 명성을 떨치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헐리우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헐리우드에서 영화에 출연해 두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만한 명배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배우가 성공의 정점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헐리우드여! 실버스크린이여 … 이렇게 황량한가, 이렇게 허무한가….”그녀는 남편과 딸을 버리고 유명한 영화감독과 결혼했다가 얼마 못 가 파경을 맞이합니다. 그 후에도 여러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딸이 계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녀에게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었습니다. 종국에는 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는 갖고 있지만, 목적이 없습니다. 목표는 방향을 이야기한다면 목적은 의미를 묻습니다. ‘왜 사는가’하는 것은 목적을 위한 질문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목표에 대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와 목적을 혼동한 채, 그것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헤매다가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생애를 망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89:47) 8. 무지개 같은 행복 마릴린 몬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希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펜 레터를 안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 행복을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완전한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행복은 살짝 지나갑니다. 무지개처럼 지나갑니다. 붙잡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모래처럼 새어 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환상이고 환영(幻影)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은 만고의 인간이 배워야만 할 지혜입니다. 인생의 종말에서 나폴레옹이 한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헛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정복했지만 나의 왕국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예수는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사랑의 왕국은 날로날로 번져 가지 않는가? 그와 우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영웅들과도 다르며 성자들과도 다르다. 이상한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니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5∼7) 9. 헛된 인생의 목표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의 높은 자리 등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사는 것입니다. / 이동원 10. 허무한 인생 서울이 물난리를 겪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크리스천 교수가 잠을 자다가 집안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 가족들과 밖으로 피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집안의 가구나 식기 옷가지 귀중품을 갖고 나올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이 교수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을 바라보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죽음도 이렇게 맞겠구나.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던 물질을 다 챙겨 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겠구나" 사랑하는 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길을 찾으세요. 11. 허무한 삶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12. 나의 생명을 붙드시는 분 성경: 시54:4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연극배우들은 공연이 끝난 후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면서 짙은 허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원로 배우 강계식씨도 막이 내릴 때 허망함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교회 장로인 그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연극은 달랐습니다. 막이 내릴 때마다 내 생명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며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감동에 젖었습니다. 이것이 은혜 아닌가요] 강씨가 말하는 연극은 하나님의 민족 구원사를 다룬 ‘건너가게 하소서’였습니다. 나라를 생각할 뿐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는 연극은 허탈감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3. 미끼를 쫓는 물고기처럼… 왕년의 미네소타 트윈스의 슈퍼스타였던 야구 선수 커비 퍽켓은 1987년에 그의 팀을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면서 어린 시절부터 품어 왔던 꿈을 이루었다. 누군가가 트윈스의 유격수 그렉 게인에게 그날 라커룸에서 벌어졌던 장면을 묘사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는 선수들이 서로 껴안고, 소리 지르고, 서로의 머리 위에 샴페인을 끼얹고, 트로피를 쳐들어 보였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일은, 평상시 열정이 넘치던 퍽켓이 단 10분 정도만 축하 분위기에 합류했다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한 걸상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했다. 게인은 퍽켓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퍽켓은 슬픔에 잠긴 눈빛으로 말했다. “이것이 전부라면, 인생은 너무도 허무해….” 아마 당신은 그 백만장자 운동선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좋은 직장, 훌륭한 집과 가정, 건강 등 수많은 장점들을 갖고서도 진정한 개인적 평화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종종 삶이 요동치며 달리는 롤러코스터처럼 느껴질지라도, 그 모든 것을 통제하는 운전대 위에 하나님의 손이 얹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내적 평화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의 삶은 미끼를 쫓아다니며 애를 태우는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 / 제임스 메리트 14. 화무십일홍 며칠 전만 해도 벚꽃과 개나리,진달래,목련 등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봄비가 내린 후 꽃잎들은 모두 지고 연한 녹색을 띤 새순들이 눈길을 끕니다.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 참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그 자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일 뿐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벧전 1:24)과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요일 2:17)입니다. 잠시 머무를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15. 남가일몽 예단전에 나오는 순우분이 꾼 꿈을 가리켜서 남가일몽이라고 합니다. 순우분의 집 남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습니다. 우분이 술에 취해 그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두 사람의 사신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가사 국왕이 당신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분은 사신을 따라 느티나무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국왕은 우분을 보고 남가군의 정사가 어지러우니 제발 그곳의 태수가 되어 주기 바라네. 20년 만에 국왕은 비로소 그의 귀향을 허락했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남가의 꿈이란 다만 일장춘몽(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이 사라짐을 비유하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잠깐입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蔑視)하시리이다"(시73:20) 16. 안개와 같은 인생 성경: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최효섭 목사의 명상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돈을 셀 때 하나님은 내가졌던 십자가를 세십니다. 내가 소득을 셀 때 주님은 나의 손실을 세십니다. 내가 값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셀 때 하나님은 내가 주님 때문에 받은 영광의 상처를 세십니다. 내가 즐거운 추억을 셀 때 주님은 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정말 허무한 인간이구나." 인생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도 인생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 네로 황제의 삶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전5:15) 18. 허탄한 삶 서울시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새벽에 몸집이 좋은 신사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왔다. 친구들에 의해 업혀 온 이 신사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의사는 이미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의사는 죽어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죽을 때는 일반적으로 손을 펴고 죽는데 이 시신은 오른손을 펴고 왼손은 꼭 쥔 상태였다. 죽은 사람을 싣고 온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를 하고 부산을 떠는 동안 의사가 조용히 시신에게로 다가가 움켜쥔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시신의 마지막 손가락이 의사에 의해서 펼쳐질 때 그의 손에서 화투 두 장이 떨어졌다. 그 두 장을 보는 순간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어어, 삼팔광땡이네" 사연은 이러했다. 이미 고인이 된 이 남자는 초상집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화투를 쳤다. 새벽녘 가지고 간 돈을 모두 잃어갈 즈음 판돈이 잔뜩 쌓였는데 화투 두 장을 받아들고 살며시 펼쳐보니 삼팔광땡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런 패가 나오면 약조에 따라서 이미 건 판돈의 세 배 이상을 거둬들이게 된다고 한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고 놀란 나머지 화투 두 장을 미처 펼치지도 못한 채 "삼, 삼..."하다가 쇼크로 죽고만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화투 두 장을 들고 말을 더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이나, 화투보다 좀더 큰 땅 문서 서너 장을 들고 아등바등대다 유언도 못하고 죽는 것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눈에 불을 켜고 판돈을 노려보며 자기 앞으로 던져지는 두 장의 화투장에 가슴을 두근대는 것이나,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하여 이 도시에서 장사하고 저 도시에서 물건을 팔아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잠못 이루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야고보서4:14-16) 19. 시대의 특징 한 사회학자가 지나간 40년 동안을 시대적인 변천을 연구하면서 시대들을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미국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만 시대를 늦추어 적용한다면 한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라서 말씀드립니다. 1950년대를 가리켜 허무의 시대라고 했스빈다. 2차 세계대전 속에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삶에 대한 깊은 허무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 때 대이빗 루이스만이라는 사람이 유행시킨 말가운데 '고독한 군중'(The loney crowd)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1960년대를 가리켜 쾌락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허무를 느끼자 탐닉할 수 있었던 것이 쾌락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쾌락의 시대, 그는 이 시대를 가리켜서 New generaton 이라 가리켰습니다. 오늘 현실에 탐닉하는 것,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쾌락의 시대의 한 특징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1970년대를 가리켜서 방황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방황의 시대, 쾌락은 결국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사람은 결국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방황의 시대. 그 다음 그는 1980년대를 가리켜서 우리가 얼마나 전에 경험한 80년대를 가리켜서 이기주의의 시대라고 가리켰습니다.영어로 이시대를 가리켜서 me generaton 그랬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세대다 철저한 이기심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 80년대의 시대적 특징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여기에 5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이 시대를 격으면서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허무의 시대, 쾌락의 시대, 방황의 시대르 그리고 이기주의 시대를 거쳐 이제 우리는 199-0년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이제 살게된 만약 이 시대적 특징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저같으면 1990년 시대를 가리켜서 무관심의 시대라고 가리키고 싶습니다. 무관심의 시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보면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면 제일 많이 하는 말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who care'알게 뭐야' who cares' 이 무관심이 특징입니다. /이동원 목사 20. 대머리(헛수고) 한 남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리가 빠지더니.... 대머리가 되기 시작했다. 궁리끝에 머리를 심기로 했고 비용 마련을 위해 과감히 집을 뛰쳐나가 돈을 벌었다. 갖은 고생을 해가며 2년동안 돈을 벌어 마침내 머리를 심었다. 이제는 누가봐도 정상인의 머리와 다름 없었다. 그는 이런 모습을 그동안 보시지 못한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는 집으로 달려가 문을 차고 들어가며 말했다. "어머니~~~ 저 좀 보셔요, 아들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반갑게 반기며 하시는 말씀..... "야~~ 너 영장 나왔다~" 21. 만추! 그리고 전도서 10월 마지막 주간에 우리교회 성경읽기 순서가 공교롭게도 전도서가 되었다. 전도서는 인류 최고의 지혜자로 평가되는 솔로몬이 늦은 나이, 만추와 같은 나이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솔로몬은 자기 인생의 여름을 다 보내고.. 텅 빈 들판에 내리쬐는 황혼과 같은 만추의 삶을 돌아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솔로몬은 자신의 지나 간 삶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말로 요약했다(전도서1:2). 무엇이 헛되었다는 말인가? 쾌락을 추구했던 삶! 크게 벌였던 사업. 성공하여 많이 모아 놓은 재산. 그리고 품에 안아 보았던 여러 여자들. 그 모든 것이 헛되었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고, 무익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전도서2:1~11). 이런 인생을 산 사람을 보고 어떻게 인류 최고의 지혜를 소유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보통 사람은 인생의 황혼이 아니라, 숨이 꼴깍하고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헛된 일, 무익한 일을 마음껏 해보지 못한 아쉬움과 욕망 속에 죽으니 솔로몬은 그들보다 더 지혜롭다! 솔로몬은 인생의 만추에 와서 천하의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전도서3:1~8). 이 세상에 태어나 잠시 살다가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야 할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고, 자라고, 결혼하여 후손을 남기고, 늙고, 죽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이라면.. 솔로몬이나 석가모니의 생각이 맞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만년에 와서 인생의 목적은, 잠시 후이면 지나가 버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죽은 후에 들어 가야하는 영원한 세계임을 알았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나? 자기를 만드신 창조자를 기억하며 살았나?”로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가 결정된다면 헛되고, 무익한 일에 자기 일생을 걸 것이 아니라, 자기를 만드신 창조자의 뜻과 명령에 자기 일생을 거는 자가 참 지혜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삶을 통하여 영원히 행복한 내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이 한 번의 삶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정기창목사)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12:13~14) 22. 무용의 마지노선 2차 세계대전에 앞서 프랑스는 독일의 공격에 대비한 항구적인 방어진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책을 착안한 당시 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서 그것을 '마지노선(Maginot-Line)'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는 이 요새를 만들기 위해 1927년부터 10년간 공을 들였고 1차 세계대전 때의 경험을 살려 지형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대 전차용의 이중철골벽, 보병을 막기 위한 철조망 지대 그리고 직경 6미터의 콘크리트 벽도 설치했습니다. 발전실, 탄약고, 작전실, 통신선 등도 지하 깊숙이 시설한 그야말로 난공 물락의 요새를 완공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2차 대전이 터졌을 때, 이 마지노선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1940년 5월 독일군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우회해서 침공했고 마지노선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집착하는 그 수고가 이 무용의 마지노선은 아닐까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이진우 / 기윤실 집행위원 23. 내 뱃속은 일반이로구나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을 지나가다가 포도가 익어서 주렁주렁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먹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는 높게 쳐져 있었고 그 틈새는 촘촘해 머리는 들어가는데 몸통이 통과하지를 못했습니다. 맛있는 포도를 먹을 일념에 사흘을 굶어서 살을 뺀 다음 겨우 포도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포도를 실컷 먹고 나오려고 하니 배가 불러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 눈치를 살피며 다시 사흘을 굶은 다음에야 겨우 빠져나오면서 “들어갈 때나 나갈 때나 내 뱃속은 일반이로구나”라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으로 돌아갈지라”(욥 1:21)고 말합니다. 우리가 죽음과 함께 가져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물질을 선하게 사용하다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것입니다. 썩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24. 인생의 치수 사람마다 손이나 발의 크기가 다르듯 사람의 인생도 크기와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손금이 다르고 삶의 기준도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나를 재단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상처뿐이다. 인생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하나님의 예술품이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기 위해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를 수는 없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무엇이 성공한 인생인가. 우리를 만드신 자를 기쁘게 해드리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다. 인생의 성패는 나중에 나타난다. 지금 현란하게 보이는 인생이 나중에는 회칠한 무덤처럼 비참해질 수도 있다. 인생의 나침반을 하나님께 맞추라. 그러면 인생의 방향이 보일 것이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25.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소식 인간에게 가장 절망적인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죽는 것이며, 반대로 인간에게 최고의 기쁨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일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1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아무개가 누구를 낳고 몇 백 세를 향수하다 죽으니라 … 죽으니라 … 죽으니라’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또 다른 인간을 낳다가 죽는 것, 또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다. 인간 지혜의 최후의 자각은 솔로몬이 경험했던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되다’는 허무 의식(전 1장)과 하나님 의식인 것 같다. 그런 자들에게 우리 육과 영을 죽음과 허무에서 부활시켜 영원히 살리신다니, 이 소식 외에 인류에게 전할 말이 어디 있을까? 가슴이 터질 만큼, 미쳐 버릴 만큼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죄와 죽음과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은 개념이나 신화나 소망스런 생각이 아니라 육체의 피 묻은 현실이요, 시공의 사건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의 실존 사건이다. 부활의 영은 내 피요, 살이요, 심장이요, 호흡과 같다. 예수님과 함께 나를 부활시킨 성령의 역사는 내 삶의 순간순간에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성화(聖化)와 영화(榮化)의 영이시다. - 「예수칼럼」/ 김준곤 26. 헛된 그림자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 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명성과 영광에 대한 관심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재산, 휴식, 생명, 건강 같은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재보도 버리고, 실체도 없으며 잡히지도 않는 이 헛된 그림자와 단순한 목소리를 추구한다. - 박홍규의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중에서- * 중요한 것은 명성이나 영광이 아닙니다. 아무리 명성과 영광을 얻은들 밥맛을 잃고 단잠을 이루지 못하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쁨도 충만감도 없는 명성과 영광은 한 순간에 사라지는 헛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명성이나 영광은 뒤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가는 게 아닙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27. 허무(로또 당첨금 써보지도 못하고) 캐나다 노바 스코샤주에 사는 한 할아버지(66)가 11만7천 달러의 로또 복권에 당첨됐으나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사망해 아쉬움을 남겼다. 2일 핼리팩스 지역신문 보도에 따르면 뉴 저머니 지역 양로원에 아내와 함께 거주하는 이 할아버지는 숨지기 1주일 전에 복권공사로부터 당첨금을 수표로 받아 친구들에게 새 트럭을 장만할 계획을 밝히는 등 흥분돼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은행에 넣어둔 돈을 찾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자 친구들은 그에게 너무 늦게 찾아온 행운을 원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연합뉴스 2005.4.3 28. 부(富)의 허무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이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욥7:7, 전1: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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