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 여행(지도)

by 【고동엽】 2022. 2. 22.

바울 전도 여정 ❸제 3차 전도 여행(A.D.52-53, 56-57년) 일정(행18:23~21:26)

바울은 제 3차 전도 여행 중에서 에베소에서 신약의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기록하였고, 고린도에서는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⓵2차 여행을 떠나기 전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동반하는 문제에 이견이 있어 크게 다투고 결별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과 함께 구브로 섬으로 갔고, 바울은 실라와 동행하게 됩니다.(행15:36-18:22). ⓶사도 바울은 실라 그리고 디모데와 같이 유럽으로 건너 가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됩니다.(행 16:11~40)

 

출발 ➀수리아 지역 안디옥(Antioch)(현, 안타키아)(안디옥 교회 A.D 45-54년까지 베드로가 목회한 교회 지금은 베드로 교회, 비록 동굴이지만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이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 최초의 교회이며 동시에 최초로 성도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교회이다(행 11:26), 실라(실루아노)는 바울와 공행하여 안디옥을 출발하여 여행하다가 투옥 - 행 15:40)-> ➁다소(염소털 직조물과 천막제조업이 유명한 바울의 고향-행)-> ③더베(터기 남부 지역 – 행14:20)-> ④루스드라(Lystra)(디모데와 함께 할례를 향하여 유대인들의 자극을 피하며(행16:2) – 성령이 환상 가운데 아시아로 전도를 허락하지 않고 유럽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 행16:6-8)-> ⑤이고니온(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바울을 시기하여 능욕하고 돌로 치려하여 피신했던 곳-행13:51)-> ⑥비시디아 안디옥(Antioch)에서 바울의 설교가 처음으로 기록됨(행13:16~41)-> ⑦에베소(Ephesus)-다시 찾는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3년을 머물면서 안수 도중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고 유대인의 회당에서 3개월 동안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고 두란노 서원(셀수스 도서관)에서 2년 동안 강론하였으며(행 19:9),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복음을 깨달은 마술사가 마술 책을 불사르기 하였다, A.D. 55년 이곳에서 고린도 전,후서를 기록하였으며, 우상숭배를 질타하는 바울 설교 이후 은으로 만든 신상 등의 우상이 안 팔리자 결국 은제품 세공자들의 폭동이 일어나 바울과 갈등에 휘말리기도 했다(행 19:23-41), 풍부한 학식과 함께 은한 아볼로가 천막제조사인 아골라 부부의 가르침에 기꺼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다(행 18:24), 이후 아볼라는 고린도 교히의 주요 인물중 하나로 사역했으며(고전 3:3,10) 바울은 그를 에베소에 무도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으로 갔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 부탁한 말씀에 따라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서 말년에 A.D.85-90년에 요한복음과 A.D.90년에 요한 서신(요1,2,3서)를 저술하였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시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해당을 통해 가이사랴로 갔으며 3차 전도 여행시 다시 이곳을방문하였다(행 18:19, 19:26, 고전 15:32, 딤후 1:18) -> ⑧드로아(Troas)(3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에도 빌립보의 네압볼리에서 배를 타고 5일만에 이곳에 도착하여 전도 동행자들을 만나 7일간 머물며 집회를 했던 곳이다. 또한 바울이 심야에 설교를 할 때 창가에 걸터 앉아 졸고 있던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으나 살려준 곳이다(행 20:9-12) 터기 서북쪽 지역으로 밤에 마케도냐 사람이 나타나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본후 이를 하나님의뜻으로 알고 이곳에서 배를 타고 첫 유럽 전도를 위해 마케도냐의 네압볼리로 간다. - 행16:8-9)-> ⑨네압볼리(Neapolis) 2차 전도 여행시 유럽의 첫 상륙지점, 3차 여행에서 돌아갈 때 에압볼리에서의 동행자는 ⓵소바더 ⓶아리스다고 ⓷세군도 ⓸가이오 ⓹디모데 ⓺두기고 ⓻드로비모 등 7명이었다(행 20:3-4), 오늘 날 그리스의 까발리(Kavalla)라는 불리는 항구도시로 (행16:11)-> ⑩빌립보(Philippi) (마케도냐의 첫 성읍으로 자색옷감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행 16:14-15) , 귀신들린 여종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을 내쫓는 곳이다. 바울과 실라가 풍기 문란 죄로 체포되어 옷이 찢기고 매를 맞은 후옥에 갇혔을 때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으로 옥문이 열리게 하고 교도관들에게 복음을 전한 곳(행16:23-36)-> ⑪데살로니가(Thessalonica)-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일행은 암비볼리(Amphipolis)와 아볼로니아(Apollonia)의 회당들을 들려 복음을 전하면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메시지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심판이다(살전 1:10), 유대인들의 핍박이 극심하여 결국 베뢰아로 피신하지만 훗날 복음의씨가 되어 데살로니카 교회의 신앙의 크나큰 밑거름이 된다.(행 17:1, 빌 4:16, 딤후 4:10, 살전 3:6-10) -> ⑫베뢰아(Berea)-마케도냐의 도시로 결국 유대인들이 이곳까지 달려와 군중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키면서 바울을 박해하자 다급한 나머지 후일을 기약하며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 놓고 바울 홀로 아덴(아테네)으로 피신하였다(행 17:10-15), -> ⑬아덴(Athens – 아테네)-그리스도의 수도로 그리스도 신화등 우상숭배와 철학의 도시임을 간파하고 분노한다(행 17:15-16, 살전 3:1), 여러 회당장과 아고라(시장, 광장)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였다(행 17:16-23), -> ⑭고린도(Corinth)- ⑨네압볼리(Neapolis) 에 상육한 바울은 ⑩빌립보(Philippi) ⑪데살로니가(Thessalonica) ⑫베뢰아(Berea)⑬아덴(Athens – 아테네)을 경유하며 지나서 고린도에 도착한다, 그때가 A.D.57년 경으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렀던 3개월 동안 ‘로마서’를 써서 겐그리아 교회의 뵈뵈라고 하는 여집사를 통해 로마에 보냈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바로 가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헤치려는 하는 첩보를입수하고 다시 오던 길로 마케도냐를 경유하여 돌아가기로 한다. 즉 고린도는 3차 전도 여행의 귀환점(Turning Point)이었던 것이다. 아덴에서도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고린도에 도착한다, 그러나 악조건에서 대행히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부부를 만나서 거처와 전도사역의 도움을 받는다(행 18:1-3), 얼마후 베뢰아에 두고 왔던 실라와 디모데가 이곳으로 다시 합류하여 1년 6개월동안 전도활동을 하며, 또한 적대감을 가진 유대인은 바울을 총독 갈리오의 재판장에 바울을 끌고 가서 처벌을 요구한다. 그러나 갈리오의 재판은 바울의 무제를 선언하며 유대인들 스스로 해결을 요구하며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앤다(행 18:5-16), 이에 흥분한 유대인 군중들은 오히려 바울을 핍박한 회당장(소스테네스)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나 갈리오 총독은 못본째 상관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A.D. 51년에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써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 바울과 동거동락했던 아굴아 브리스길라 부부는 선교중요선을 알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교역자를 섬기는 가운데 에베소와 로마까지 따르면서 함께하게된다(고전 16:29, 롬 16:3-5) -> ⑮앗소(Assos)(god 20:13)- 고린도를 출발한 바울은 귀로에 올라 오던길을 되돌아 ⑬아덴(Athens – 아테네) ⑫베뢰아(Berea) ⑪데살로니가(Thessalonica) ⑩빌립보(Philippi) ⑨네압볼리(Neapolis) 를 다시 경유하여 앗소에 도착한 동행자들은 해상으로 이곳에 이르러 합류한 다음 이곳에서 배를 타고 ⓵미들레네섬 ⓶가오섬 ⓷사모섬을 경우하여 밀레도에 도착한다.

-> ⑯밀레노(Miletus) - 3차 여행 귀로에 에베소를 거치지 않고 곧장 앗소를 거쳐 밀레도에 당도한 것은? ❶오는 길에 에베소서에서 3년을 머무르면서 교회 설립을 마쳤고 믿을 만한 교역자와 장로들을 두었기에 돌아가는 길에 들리지 않아도 안심되었을 것이며 ❷예루살렘에 도착해야 할 일정이 촉박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행 20:15, 딤후 4:20),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 자신이 떠난 후에 유대인들이교회를 해칠까 염려하면서 잘 관리할 것을 당부하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의 석멸한 장소이다(행 20:18-38), -> ⑰로도(Rhodes) 밀레도를 출발하여 이틀 만에 로도에 도착한 바울은 일행을 대동하고 곧장 서둘러 배를 타고 바다라로 갔다(행 21:1) -> ⑱바다라(Patara)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베니게(페니키아:레바논)로 건너갔었다(행 21:1-2), -> ⑲두로(Tyre) 오늘 날 레바논 구역인 두로는 B.C. 3,000년 경에 세워진 고대 베니게(페니키아)의 항구 도시로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애굽을 연결하는 바다의 중심 요충지요 제조, 상공업 무역의 중심 거래처였다(왕상 5:1), 예수님께서 이곳에 사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신 곳이기도 하다(마 15:21-28), 바울이 바다라를 출발하여 구브로 섬을 왼편에 부면서 지가 긴 뱃길을 타고 두로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제자들을 만나 7일간 머물러 있을 때 바울의 선행에 감동을 받은 이곳 주민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을 가는 것을 막았으며, 막상 바울이 떠날 때에는 그들의 처자까지 항구에 나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전송하고 배가 떠난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갔었다(행 21:2-7), -> ⑳가이사랴(Caesarea)- 7집사 중 한명인 빌립의 집에서 유숙하며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고, 이곳에서 아가보 선지가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 될 것임을 알려주었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가지말 것을 눈물로 권유하였으나 바울은 단호하게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죽을 각오를 표명하면서 제자 몇 사람과 구브로 섬 출신 ‘나손’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떠났었다(행 21:7-16), ‘나손’을 데리고 간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 집을 소유하고 있어 그 집에 머무르기 위함이었다(행 21:10-17),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그 집에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 곳이다(행 10장), 바울은 전도 여행 중 3번 이곳을 방문하였고 2차 전도 여행 때도 이곳에서 안디옥으로 떠나면서 여행을 마감했었다. -> ㉑예루살렘(Jerusalem) 바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으나 이방 사람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성선을 더럽혔다고 선동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이방 전도 여행에서 사역해온 내용을 낱낱이 보고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행 21:19), 그러나 소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소란을 일으키면서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행 21:27-30), 결국 천부장(백부장 위의 지역 통치자)이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여 영내로 끌고 들어갔으며,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임을나티내 보이기 위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이방전도의 사명을 받게된 경위를 설명하자 가죽줄로 채찍질을 하였다(행 21:39 – 22:11), 바울이 자신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로마시민에 대한 재판은 총독에게 있으므로 월권한 것에 두려움을 느낀 천부장은 결박을 풀고 공회로 데려가 서둘러 이송채비를 하고, 죽이려는 유대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주둔 병력의 절반가량인 470명을 동원하여 그간의 사정을 적은 밀서와 함께 가이사랴의 총독으로 보내어진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었다(행 23:10-23) 가이사랴(Caesarea) -로마 총독 앞에서의 변론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닷새 후에 대 제사장 아나니아(후에 유대인 반란 때 허롯 궁전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죽임을 당함)가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총독 벨리스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2년간 투옥시켰고, 후임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무죄임을 알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에서 재판 받기를 제의하였을 때 바울은 이송도중 살해당할 위험을 느끼고 자신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것을 내세워 가이사랴에서 총독에게 재판받기를 호소하여 총독 베스도에 의해 가이샤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행 24:24 – 25:12), 재판이 시작될 때 바울은 한날 죄수의 몸으로 초라하게 ㄴ타났지만 재판의 막바지에 가서는 왕과 총독의 당화해 하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도리어 복음을 증거하고 권면하는 사도로서의 위엄마저 보여주었다(행 26:24-32), 재판결과 로마 황제 앞에서 판결받기를 요청한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겨져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배편으로 시돈에 이르렀다. 사도 바울의 로마행로가 시작된 것이다(행 27:1-3) ->

 

 

 

 

출처 : 주님 손 교회
글쓴이 : 황성옥목사 원글보기
메모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