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밧 과부의 신앙! (왕상 17:8-16)
이솝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룩 소, 검은 소, 붉은 소 세 마리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한꺼번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사자가 얼룩소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 소가 뽐내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자가 이번에는 붉은 소와 검은 소 있는 데로 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마리 가운데서 얼룩소가 제일 기운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 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니 그게 참말이냐?'고 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두 마리의 소는 얼룩소의 말이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라 있는 힘을 다해 덤볐습니다. 검은 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이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좋아라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답니다.
여러분, 공동체는 화목이 제일입니다. 가정도 화목이 제일입니다. 교회도 화목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133:1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화목한 가정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할/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이 지은 '즐거운 나의 집'(Sweet Home)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나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입니다.
본래 그 사람은 '가정 무용론 자'이었답니다. 가정 없이 정처 없이 방황하며 살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때 그는 파리 어느 길목에서 폐병에 들어 죽어가면서 '돌아 갈 곳은 가정밖에 없다'는 노래를 짓고 죽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갈 곳은 집밖에 없습니다. 돌아옴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아멘!/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가정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고, 아들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나중에 아들이 돌아 와 잔치를 하는 데 어머니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어쩌면 탕자는 어머니가 없어서 더 타락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그러니까 아내가 없는 가정은 아픈 가정입니다. 탕자의 가정은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최고 유명했던 수상은 역시 처칠입니다. 그가 영국에서 대인기를 얻고 있을 때 한 신문사에서 처칠 수상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 스승에 이르기까지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명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지'를 물어 왔습니다. 처칠은 그 때 신문사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귀사가 조사한 내 스승 명단에 한 명이 빠졌습니다.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나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는 귀한 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부모일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처럼 좋은 분은 없습니다. 명절 때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시골의 부모님들, 도시의 자녀들이 들뜬 마음으로 시골의 부모를 찾아가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박한 인간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고 말합니다. /할/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한 가난한 가정의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제목 소개!▶
①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본문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엘리야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 뜻 그대로 엘리야는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임을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 아합의 박해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믿기 어려운 그런 시대에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살았던 사람이 바로 본문의 엘리야입니다. 그가 사르밧 과부댁에서 몇 년을 거친 후에 그 과부의 입을 통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마땅히 들어야 할 칭호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멘!/
그는 길르앗의 디셉사람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어두운 시대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불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팔레스틴 모든 지역에서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둠과 부패 속에서 하나님은 한사람을 일으켜 세웠는데 그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죄로 말미암아 나라는 두 동강이 나면서 남쪽은 유다나라가, 북쪽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북 이스라엘은 열 지파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왕들이 한결같이 사악한 인물들로 아주 비극적인 역사를 겪은 나라입니다.
1대 왕인 '여로보암'이 22년 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서 여기 저기에 우상을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강요하면서부터 고난과 비극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는데 그는 2년 동안 집권하였는데 성경은 '그가 아비의 길로 행하더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15:26).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원래 성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나답 역시 아버지를 따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아사'라는 군대장관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나답'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아사는 24년 간 집권하면서 역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아사'가 죽은 후에 그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르는데 '엘라'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왕위에 앉아있던 2년 동안 밤낮으로 술만 퍼마시다가 역시 군대 장관이었던 '시므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시므리'는 7일 동안 왕위에 앉아 있다가 '불에 타' 죽습니다. 최단명의 왕위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오므리'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왕상16:25절에 보면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지금까지의 북 왕조의 모든 왕들이 다 나쁜 왕이었지만 오므리에 비하면 세속적인 말로 '새 발의 피'입니다. 그리고 6년 후에 오므리가 죽고 그 아들 '아합'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배경이 바로 이 '아합'왕 때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아합은 역대 임금 중에 가장 악한 왕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 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바로 아합의 부인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로써 아마 정략적인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가 사마리아 성에 바알의 신당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성지에 우상의 전각을 세운 악한 여인입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역사에 남녀 모두를 합쳐서 가장 악한 사람을 뽑는다면 '이세벨'이 단연 금메달 감입니다. 아합 왕은 그 부인 이세벨의 치마폭에 폭 싸여 꼼짝도 못하고 시키는 데로 하는 공처가였습니다.
왕상16:30절에 보면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악을 행했습니까? 왕상16:31절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무슨 소리인가?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해야할 선민 이스라엘이 이제 여호와 신앙은 자취를 감추고 곳곳에 바알 신전이 세워졌고,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활약이 시작된 것입니다. 또 왕상16:33절에 보면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아합왕은 그의 부인 이세벨이 시키는 데로 바알과 아세라 묵상을 세워 우상의 전각을 높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계명을 주시면서 제일먼저 강조한 것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십계명의 제 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입니다. 제 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묵상은 남신, 여신으로써 음란 신입니다. 이세벨의 농간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전을 다 훼파하고, 그곳에 바알 신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워 백성들에게 섬기라고 강요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종교와 정치와 도덕과 인심이 썩어서 칠흙같은 어둠만이 가나안 땅을 온통 뒤덮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이때 등장을 합니다. /할/
②엘리야 그는 누구인가?
⑴그는 한마디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약5:17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한 마디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라의 멸망을 보면서 그는 기도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⑵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하나님 비를 내리지 마시옵소서' 왜 이런 기도를 했습니까? 당시 어리석은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잘 섬겨야 아들, 딸을 잘 낳고 또 그 신은 풍요의 신이니 비가 잘 내려 곡식이 잘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바알이나 아세라는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줌으로 무지한 백성들을 건져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서 곡식이 잘 되게 하셨건만 무지한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빌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된 줄 아는 무지를 고쳐주기 위해서 '하나님 저들에게 비를 내리지 마시옵소서! 저들에게 비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을 알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할/
여러분, 엘리야의 이 기도가 응답이 되었겠습니까?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기도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도의 응답을 주시는 분입니다. /믿/
약5:17절을 보세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할/
비만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비만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이슬도 오지 않았습니다. 유대 땅에서는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이슬만으로도 상당한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나라 이슬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대나라는 일년에 비가 두 번 옵니다. 그것을 이른 비, 늦은 비라고 합니다.
이른 비는 10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오는데 이 이른 비가 와야 밀과 보리를 파종합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비가 거의 안 오다가 3월 중순쯤 늦은 비가 오는데 이 비가 와야 곡식이 알이 듭니다. 그런데 '삼 년 6개월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이슬 한방울 안 내린다고 하니 그 땅은 사막입니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목숨을 걸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는 바알을 잘 섬겨서 나라가 잘되고, 바알을 잘 섬겨서 농사가 잘 되는 줄로 생각하시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주장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우로가 없을 것이오', 여러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위험한 말이 아닙니까? 폭군 아합왕이 그 말을 듣고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엘리야는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런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능력이요, 담대함입니다. 우리 모두 담대 합시다. 어떤 세력 앞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질병 앞에서도, 환난 가운데서도, 사업의 위기 속에서도 담대하십시오, /할/
⑶그의 신앙의 진실을 1절 한 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 사람입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러분,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은 참 귀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아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 그 언약을 성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아멘!/ 이 신앙이 귀합니다. 이 신앙을 붙들고 살면 우리는 이 땅에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영 육간의 강건함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처럼 죽은 신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지금도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이런 신앙을 가진 자는 어떠한 조건과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믿/할/
⑷그린 시냇가의 기적을 체험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3-6).
이제 아합 왕에게 경고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습니다. 사악한 아합 왕이 자기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한 아합은 방방 곳곳에 방을 붙이고 엘리야를 잡는 자에게 현상금을 걸고 수배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오셔서 엘리야에게 지시를 합니다. 3절에 '그릿 시내가에 가서 숨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시기를 4절에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할/ 하나님이 이토록 세심한 약속까지 해주십니다.
5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약속하신 것은 응답해 주십니다. 5-6절에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여기서 그가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무슨 말씀인가? 엘리야는 하나님의 숨으라는 그 명령에 곧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에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할/ 이 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믿/ 엘리야는 순종했으므로 까마귀를 통하여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때 까마귀를 쓰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내 생애 속에 간섭하시고 역사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그런데 여기 6절까지는 참으로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7절부터는 또 다시 엘리야에게 어려운 시험이 옵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물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강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시냇가를 인도하셨나요? 하나님이 엘리야를 강가로 인도하셨다면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을 텐데 왜 시냇가로 인도하셨습니까?
여기에 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조그마한 시냇가로 인도하셔서 엘리야가 하나님을 열심히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풍성한 복을 쏟아 부어주시지 이렇게 감질나게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신32:15절을 보세요!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수단과 방법이 좋아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며 교만해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절대 교만에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
⑸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는 명을 받은 엘리야!(8-9)
엘리야는 시냇물이 말라버리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엘리야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하나님이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환경을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환경이 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업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 건강한가? 못한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
③사르밧 과부의 신앙은 무엇인가? 신앙은 배우는 것입니다.
10절에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 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사르밧'이라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훈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곳에 보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현지 훈련을 보낸 줄 믿습니다.
여기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즉각적으로 순종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까지의 거리는 약12Km입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이 사막의 거리를 지날 때, 한번쯤은 불평할 만도 합니다.
'하나님! 피곤하고 지친 저를 왜 그런 곳으로 가게 하십니까?'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주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할/
이제 하나님은 그동안 까마귀를 사용하셨는데 이제는 과부를 사용하십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었던 엘리야는 사람의 따스한 손길로부터 제공하는 음식을 얼마나 먹고 싶었습니까?
⑴사르밧 과부의 형편은 어떻습니까?(12)
사르밧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과부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시쳇말로 혹 떼려다가 하나 더 붙이고 마는 꼴이 되었습니다. 기근을 피해 살길을 찾아왔다가 얻어먹기는커녕 엉뚱한 사람 장례까지 치러야할 판이 될 뻔했습니다. 양식이라고는 달랑 한 끼 분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아끼고 아꼈지만 이제는 그거라도 아들과 함께 나눠먹고 죽겠다는 그런 형편입니다. 과부는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한끼 남은 식량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선지자가 무엇을 해야 옳다고 하겠습니까? 이렇때 주의 종이 난감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⑵그런데 엘리야가 그 난처한 처지에 있는 과부에게 무슨 말을 했는가?(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런 몰염치의 말이 어디 있는가? 선지자 정도라면 자기 비상식량이라도 풀어서 보태주었어야 할 텐데 '먼저 내 떡부터 만들라'고 하니 주의 종의 얼굴이 두껍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의 종은 전해야 합니다.
'감사해라! 기도해라! 전도해라! 봉사해라! 십일조를 하라'는 말들은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고 신경질 날만한 당부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의 종이 매일 당부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 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믿/
⑶엘리야의 약속은 무엇인가?(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실 엘리야가 그렇게 몰염치하게 부탁한 것도 이 말씀의 약속이 있었기에 그것을 믿는 엘리야가 자기에게 먼저 떡을 가져오라고 강하게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⑷사르밧 과부의 순종을 보세요!
이제 이 여인이 믿음으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이 양식을 선지자에게 나눠 줄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귀한 양식이기 때문에 내 아들과 자기를 위해 먹을 것인가?' 이것은 순전히 그 여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15절입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할/
순종이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무슨 말씀에 순종했는가? 11절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 이 명령에 15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할/ ▶이 여인의 순종은 어떤 순종인가?
㈀이 여인은 환경에 관계없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입니다. '아멘'은 순종하겠다는 고백이요 다짐입니다.
고후1:19-20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할/
아멘은 크리스천만이 사용하는 고유의 용어입니다. '아멘'은 기독교에만 있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도와 찬송을 할 때 '아멘'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와 우렛소리와 같았었다'고 신학자 '제롬'이 말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멘이 많아집니다. 지금도 기도소리와 찬송소리가 우렁차고 아멘 소리가 큰 교회가 부흥하고, 또 아멘 하는 사람들이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믿/할/
▶'아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입술로 하는 아멘, 마음으로 하는 아멘, 행동으로 옮기는 아멘'이 그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느 때 '아멘' 하고 소리쳤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멘'을 합니다(느5:13).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기 위해서도 '아멘'을 합니다(고후1:20).
▶하나님 앞에 축복 받기 위해 믿음으로 '아멘'을 합니다(엡6:24).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확신할 때 '아멘'을 합니다(계1:7;22:20).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하고, 축복 속에서도 '아멘'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이요, 아플 때도 '아멘'입니다.
'아멘'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삼상15:22절에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낳다'고 했습니다. 순종한 다윗은 복을 받았지만, 불순종한 사울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순종은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요,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덕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문을 열어 드리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믿/
우리가 잘 아는 요2장에 가나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주님의 말씀대로 빈 항아리에 아구까지 물을 채우니 맹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면 하늘 문이 열려지고, 맹물 같은 내 인생이 포도주와 같은 단물 인생으로 바꿔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순종의 여인 사르밧 과부가 주의 종을 대접했다가 큰복을 받았습니다(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할/ 먹어도, 먹어도 퍼내고 퍼내도, 고갈이 없는 샘 줄기의 복을 받았습니다. '조지 물러'는 그의 90회 생일에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부족한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드리는 자는 모든 것을 받습니다. /할/
▶록펠러는 평생 4,982개의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제적인 큰 축복을 주셔서 세계 제일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번은 기자가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미국 내의 그 많은 사업가들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해도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 많은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을 했는데도 어떻게 세계 제1의 부호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까?'
록펠러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씨는 반드시 풍성한 결실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위대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하나님의 경제학은 세상의 경제학과 다릅니다. 세상의 경제학은 사업에 재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제학은 하나님께 재투자하는 것입니다. /할/
▶한국교회의 고전적인 실화가 있습니다. 대구에 가면 서현교회라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지어질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었답니다.
그 교회에 지금은 작고 하셨습니다만 정규만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했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울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한 번 멋지게 짓고 싶습니다.'
그 후 정 장로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이 회복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정 장로님은 건강이 회복된 후에 목사님을 설득하고 교인들을 설득해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정 장로님은 그 당시에는 큰 부자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 장로님은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쳐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정 장로님에게 하늘 문을 열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 무렵 대구에서 이상한 병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을 고칠 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 장로님의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서 먹기만 하면 감쪽같이 그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삽시간에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한약방에는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자기의 순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결과 정 장로님은 큰돈을 벌게 되었고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멋진 예배당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할/
우리교회에도 정 장로님과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은 부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환경이 어려워도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할/
프랑스의 칼뱅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라고 했고,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카고에 로즈라는 신앙이 좋은 처녀가 있었습니다. 로즈는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작은 개척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도 했습니다.
로즈가 일하는 식당은 닭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하루는 손님이 없어서 음식이 많이 남았습니다. 매니저는 어차피 둬야 팔지도 못하니까 식당에서 만든 닭 요리를 직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로즈가 늦은 밤에 닭 두 마리를 들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두 남자가 따라왔습니다. 로즈의 팔을 탁 잡고 골목으로 막 끌고 갔습니다. 두 남자가 끌고 가니까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로즈는 닭 두 마리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 더 깊은 골목으로 끌려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로즈야! 그 닭고기를 꺼내 먹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에 내가 어떻게 닭고기를 먹습니까? 닭고기가 먹힙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잔소리말고 꺼내 먹으라니까!' 또 그러십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도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로즈는 강도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닭고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입에만 물었지 뜯어먹으려니까 먹히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골목으로 딱 들어서는 순간, 큰 개 두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개들이 닭고기 냄새를 맡더니 어슬렁어슬렁 이 처녀한테 다가왔습니다.
강도 둘은 큰 개 두 마리가 다가오니까 겁이 덜컹 났습니다. 이 개들은 닭고기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인데 자기들한테 오는 줄 알고 놀라서 냅다 도망을 쳤습니다. 이 로즈라는 처녀가 닭고기를 한 개, 두 개 집어주니까 개 두 마리가 따라와서 강도 둘을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할/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행5:32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 벧전1: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마음에 즐거움을 주십니다. 사55:2절에 '나를 청종(순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재앙이 물러갑니다. 렘26:13절에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순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순종도 습관입니다. 무엇이든지 해본 사람은 잘합니다. 기도도 해본 사람이 잘하고, 충성도, 전도도, 사랑도 해본 사람이 잘합니다. 맛을 봐야 맛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순종하는 좋은 습관을 쫓아 살다가 하늘 문이 열려지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사르밧 과부가 체험한 기적의 통로가 있습니다.
▶기적은 결단에서 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기적은 결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결단은 순종을 낳고 순종은 축복을 낳고, 축복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할/
▶기적은 내게 있는 것을 드릴 때 나타납니다. 오병이어의 주인공처럼, 사르밧 과부의 전 재산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병의 약간의 기름을 드렸더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실 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고 '지팡이 뿐입니다'라고 하자 '그것을 들고 바로에게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손에서 옵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으로 떡을 구워 하나님의 종의 손에 올려드렸을 때 거기서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가 주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수 천명을 먹이고 열 두 바구니를 거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손에 드릴 때, 하나님의 손에 잡힐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순종의 여인 사르밧 과부는 그의 평생에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인색하여 먼저 먹어 버렸다면 기적은 없었고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었더니 날마다 기름과 가루가 통에서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아들의 생명을 다시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17절 이하의 보면 그의 아들이 죽게되자 엘리야의 기도를 받고 아들의 혼이 다시 돌아오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22절에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할/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까마귀와 과부를 통해서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많은 까마귀들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없어 보이나 우리를 도울 보이지 않는 과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쓰시는 그 까마귀와 그 과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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