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의 위력! (출 17:8-16)
여러분은 기적이 있다고 믿습니까? '기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신기한 일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눈으로 똑똑히 본 것만 믿으려 합니다. 로또의 기적은 은근히 바라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적은 믿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도, '희망'이 있다는 것도 사람들은 다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믿습니다. 만약에 없는 것들이라면 '사랑'이라는 말도, '희망'이라는 말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자에게만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에게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기적은 바라는 사람에게만 일어납니다. /믿/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처음부터 기적으로 시작되고 기적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서 만일 기적을 제외한다면 성경은 표지 두 장만 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모두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적은 지나간 과거에만 있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믿음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식적인 태도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과 인간들을 창조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기적 가운데 제일 큰 기적입니다. 성경은 온통 기적의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홍해를 가른 것도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갈랐더니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일어난 결과이지 모세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열두 제사장이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에 발을 먼저 밟으니까 갈라졌습니다. 이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조건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돌고 함성을 지르니까 그 철벽과 같은 여리고 성이 폭삭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심도 기적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런 기적은 어떻게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소경을 보게 하셨으며, 중풍병자를 걷게도 하셨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것 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바람 부는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으며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도 기적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사라진 것이지 하나님의 기적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도 기적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아멜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원수 아멜렉이 이깁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종일 붙들고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더니, 결국 승리하여 그곳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여 승리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할/
여러분, 오합지졸인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아말렉을 기도로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세의 손도 귀하지만 그를 돕는 아론과 훌의 손도 귀합니다. 저는 오늘 아론과 훌의 손을 작은 손으로 비유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큰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 작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작은 손길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이고,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이끌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결속력 강한 성도들만 있다면 비록 그 수가 적다할지라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멘!/ '창조적인 소수가 이끌어 주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손의 위력이 위대합니다. ◀제목 소개!▶
1. 본문의 배경은 무엇이고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이란 곳에 도착하여 여정을 풀었는데 그곳은 마실 물이 없으므로 다시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2절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합니다. 또 3절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평에 길들여져 있는 민족입니다.
①언제 아멜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는가? 원망하고 불평할 때 아멜렉이 공격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도 언제 사단이 역사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원망하고 불평할 때 사단은 역사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 신앙의 태도입니다. 심령이 병들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심령은 벌써 병들었다는 징조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축복 대신 재난을 불러오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을 자꾸 하면 자연히 우리 앞에 감사할 일이 다가오고 축복이 다가 오지만 불평하면 불평할수록 원수 마귀가 우리를 고통 속으로 끌고 갑니다. /믿/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2:5절에서 우리에게 당부하기를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아멘!/
②아말렉 족속은 믿음에 후손이 아닙니다. 창36:12절에 보면 아말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의 소생인 에돔 족속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에서는 자기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 권리를 팔아버린 세속적인 존재로써 육신에 속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요3: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말렉은 열국 중에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지만 육신을 쫓는 민족의 종말은 멸망뿐입니다.
③아말렉은 그 당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 당시 애굽이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면서도 이 아말렉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말렉은 하는 행동이 아주 얄밉습니다. 신25:18절에서 이 전쟁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곧 그들이(아말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이스라엘) 길에서 만나 너희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아말렉군을 이스라엘의 후반부를 습격해서 약하고 피곤한 자들을 먼저 치고 그 다음은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을 포위했습니다. 강한 나라 군대가 싸움을 해도 비겁하게 했습니다. 이래서 이스라엘 진영에서도 부득불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모세는 할 수 없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젊은 사람들을 모아 급조된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아말렉과 싸우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을 따라 싸울만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쟁터로 나가 아말렉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정말 예상할 수 없었던 대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무기를 가지고 있는 아말렉을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군대가 완전히 이긴 것입니다. 큰 감격이요 기쁨이었습니다. /할/
어떻게 이런 승리가 가능했습니까? 탁월한 여호수아의 지도력이나 작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아말렉이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비밀 무기가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모집된 군대가 상당한 전투력과 힘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아말렉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열세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이긴 것입니다.
④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이긴 사건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있던 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두 진영이 잘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섰습니다. 9절에서 모세는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모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귀합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들어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상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더니 파죽지세로 공격해 오던 철통같은 아말렉군이 이스라엘 앞에서 우수수 추풍에 날리는 낙엽처럼 뒹굴며 후퇴를 하고 맙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계속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곤해서 손을 내렸더니 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모세의 손이 내리자마자 도망가던 아말렉 군이 뒤돌아 역습을 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게 됩니다.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크게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고,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완전승리를 위해서는 모세가 손을 계속해서 들고 있어야 하겠지만 모세도 인간인지라 피곤하여 계속 손을 들고 있을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물론 아론에게도 손이 있고 훌에게도 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손을 든다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손은 교회의 담임목사나 전도사의 손이 됩니다. 주의 종이 강단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면 성도들의 환경과 생활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축복해 주신 것처럼 교회를 통해서 세운 종의 입술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아멘 입니까?/
이제 아론과 훌은 모세가 계속 손을 들고 있어도 피곤하지 않을 방법을 간구하게 됩니다. 아마 큼직한 돌들을 모아놓고 모세를 그곳에 앉히고 그들은 양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잡아 올렸을 것입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대하여 육신적으로는 동생이나 영적으로는 형님입니다. 모세를 모셔놓고는 아론은 이편에서, 훌은 저편에서 모세의 올린 손을 붙잡고 있으니까 해가 지도록 모세는 손을 들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는 창칼이나 군대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도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고 그 능력으로 전혀 불가능했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아멘!/
⑤오늘 본문은 대표적이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이 싸움에서는 네 종류의 사람 역할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앞에 나가서 싸우는 군사들입니다. 최 일선에서 칼과 창을 들고 피를 흘리며 적과 싸우는 군사들로, 그들의 공로는 대단히 크며 그 역할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둘째는 이 군사들 바로 뒤에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그 신앙적 용기를 가지고 진두지휘합니다. 장군으로서의 수고와 고뇌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자리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이긴 다음에는 지휘관 장군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면류관을 씌워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오늘 이 전쟁은 지휘관인 여호수아 뒤에 또 모세가 있습니다. 모세는 산 위 높은 곳에서 손을 들고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목적도 방법도 결과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 지금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것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아래서는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백성들이 전쟁을 하고, 산 위에서는 계속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손이 들려 있으면 전쟁에 이기고 내리면 집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전쟁을 이기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모세는 80이 넘은 노인입니다.
넷째로 아론과 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세의 양쪽에서 한 손씩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이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모세의 팔을 붙들었고 전쟁은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누가 승리로 이끈 것입니까? 지금까지 설명 드린 네 사람의 역할이 다 중요하고 수고했습니다만 가장 결정적인 중요한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삼상17:47절에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담대히 외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승리는 결정적인 것입니다.
⑥이스라엘은 전쟁을 할 때에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⑴이스라엘의 싸움은 언제나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저들을 네 손에 붙였다. 네 발로 밟은 땅은 다 네게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⑵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을 정복키 위해 여리고성을 정탐한 뒤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니 들어가서 취하자고 믿음의 눈으로 관찰했습니다.
⑶성결함입니다. 수3:5절이나 7:13절에서 계속적으로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⑷순종입니다. 가감 없는 절대 순종으로, 다 죽이라고 하면 다 죽여야 합니다.
⑸협력입니다. 협력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입니다. 이 전쟁에서 보듯이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을 순종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전쟁에는 승리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패전한 입장에서 구구한 변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싸움은 언제나 이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그런 전쟁이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처럼 일만하다가 나온 사람들입니다.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훈련도 받지 못한 이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서 싸우라고 하십니다.
⑦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⑴이 싸움을 통하여 스스로 승리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백성들로 하여금 승리의 영광과 승리의 의미를 누리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⑵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입니다. 행동적으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믿음의 단련으로 너희가 직접 나가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⑶이 전쟁을 통해 백성들이 완전히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⑷교육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 백성을 교육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계셨던 것입니다. /아멘!/
2.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①여호수아와 같은 앞장서는 장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역사의 선봉에는 항상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실질적인 공로는 여호수아에게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택한 백성 중에 택한 자였습니다. 족장중의 족장이었습니다. 복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전투에서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두려워 할 때 담대함으로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을 지고 앞장서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멘!/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인가?
⑴여호수아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적극적인 마음과 입을 가진 사람입니다. 남들이 두려워 할 때 담대함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이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아멘!/
⑵모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말대로 행하는 사람, 지도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에 따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예수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교회는 됩니다. 사실 여호수아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지만 한 사람이 앞장을 서야 전체가 움직입니다. /아멘!/
뒤에서 기도로, 영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여호수아와 같이 실제적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싸우고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왜 나만 이렇게 위험한데서 해야 하느냐'고 했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실천하는 성도들의 손, 싸우는 손, 순종하는 손, 봉사하는 손을 원하십니다. 이 손들은 복 받는 손입니다. 이 손은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말하지 않고 행하는 손입니다. 엔진에 불이 붙어야 자의 모든 부속품이 움직입니다. 엔진만 가지고 차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엔진에 먼저 불이 붙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끌고 본을 보이며 앞장서는 자가 있어야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여호수아가 됩시다! /할/
②기도하는 모세의 큰손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들려 있는 모세의 큰손은 과거에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높이 들려 있었고, 현재에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아말렉 군대 앞에서 높이 들려있었습니다. 모세의 큰손은 과거의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열 재앙이 내릴 때, 그 손이 높이 들려있고, 홍해를 육지같이 가를 때도 그 손이 높이 들렸습니다. 물이 없어서 불평하던 이스라엘백성 앞에서 모세의 큰손은 하늘을 향해 올라갔을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역사가 임했습니다.
지금은 아말렉의 큰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모세의 큰손이 들려있습니다. 미래에도 이스라엘 앞에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들고 있어야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성도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종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⑴손을 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합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만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여호와여, 우리로 승리케 하옵소서!' 아말렉을 쳐달라고 여호와께 전적 의지하는 신앙고백이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SOS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긴급SOS입니다.
⑵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키는 고백입니다. 전쟁에서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한다는 표시입니다.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는 표시로 두 손을 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두 손을 든 것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구급신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자기를 항복시키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항복시키지 못한 사람은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킨 사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의 두 손을 듭니다.
⑶하나님께 온전하게 복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욕심, 내 힘 가지고 살아온 모든 삶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십니다. /할/
⑷또 그것은 충성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내 모든 삶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⑸그리고 기도의 손을 드는 것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축복의 손이었습니다. 예배마치는 시간, 목사가 손을 드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주의 종의 기도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⑹그리고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팔을 들고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실험해 보면 압니다. 10분만 들고 있어도 팔이 저려옵니다. 한 시간만 지나면 팔에 마비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었는가? 본문에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기도의 손이 높이 올라가는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에게 반가운 뉴스가 아닙니다. 북한이 핵문제도 그렇고 땜 방류 사건도 그렇고, 신종 풀로 그렇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들의 개인적인 사정은 어떻고, 가정적인 사정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다가 기적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우리도 손을 들고 기도하면 기적이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믿/아멘!/할/
▶왜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까?
⑴우리 인생살이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모세는 그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을 때에도 기도했고, 마라의 쓴 물을 만나서 백성들이 원망할 때도 기도했고,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를 때도 기도했고 아말렉이 공격해온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기도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할/
우리들도 남이 아는 문제가 있고, 남이 모르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많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도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키고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⑵우리는 약하고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약하고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항복시키고 기도하면 강해지고 한계를 뛰어넘어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비결이 기도에 있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능력의 사람이 되는 비결도 기도에 있습니다. 내 한계를 넘어서 더 넓고 더 높은 세계를 보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결이 기도에 있습니다. /믿/
⑶모든 악의 세력은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 때에 아말렉은 물러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기도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시험과 문제는 물러갑니다. /할/ 기도하면 홍해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지고 쓴 물은 단물로 바꾸어집니다. /아멘!/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항복하고 기도에 매달렸더니 질병이 물러가고 15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항복하고 기도하면 원수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에게 오는 이 모든 적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떠한 문제 앞에서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들면 넉넉히 감당하고 적은 물러가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⑷기도하면 은혜 받고 능력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고 무지한 사람이 지혜로와 지고 방황하던 사람이 새 비전을 갖게 되고 맡은 일을 잘못하던 사람이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됩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무디는 기도하여 능력 받아 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폭력배 두목이었던 김익두가 기도하여 능력 받아 대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무능하다. 가진 것 없다. 배운 것이 없다. 돈이 없다.'고 낙심하거나 타령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받고 싶은 만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분량만큼 그릇 만큼 하나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⑸기도하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늘 창고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저축이 많이 되어 있으면 때가 되면 찾아서 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저축 해놓은 기도 덕분에 오늘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떨어지고 나면 찾아 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저축이 무엇입니까? 앞날을 위하여 오늘 쌓아두는 것입니다. 기도는 저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저축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할/ 시28:2절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짓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아멘!/
③아론과 훌의 협조하는 작은 손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고가 함께 있습니다. 가나안의 정복은 모든 이스라엘백성의 희생과 헌신의 결과입니다. 여호수아만의 공로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여호수아만이 땅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수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승리하려면 군대의 모든 병사들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앞에서 싸우는 보병만이 아니라 포병도 있어야 합니다. 공군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보급 병의 지원도 여자들로 구성된 의료지원단도 중요합니다. 첩보원도 필요합니다. 모든 분과가 함께 움직일 때에 승리의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담대한 용사일지라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면 공격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영적 전쟁에서 싸울 많은 성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모세의 손은 큰손입니다. 그러나 피곤이 올 때가 있는 별 것 아닌 인간의 손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피곤하면 내려와 이스라엘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에 아론과 훌의 손은 작은 손이었지만 모세의 손으로 해가 지기까지 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고, 모세의 손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아니했다는 점에서 아론과 훌의 손이 크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손입니다. /아멘!/
아론은 모세의 형이요, 훌은 모세의 누이동생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출24:14절에 보면 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모세의 대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 하였고, 출31:2절에 보면 거룩한 뜻으로 성막의 기구와 장식들을 만든 유대지파 브살렐의 조부이기도 합니다.
⑴이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에 비하면 모두 작은 손들입니다. 이 작은 손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섬기는 손입니다. 위하는 손입니다. 돕는 손, 보조하는 손, 협조하는 손이라고 주석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모세의 능력의 큰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론과 훌의 작은 손도 없어서는 결코 안 되는 손입니다. 이 작은 손들의 역할이야말로 아말렉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손입니다. /할/
주석가 '알버트 벵크'는 말하기를 '이때 모세만 있었다면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불행스러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아론과 훌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⑵작은 손에 대하여 경영학적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경영학적이란 말은 숫자적인 비율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는 조직적인 체제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큰손과 작은 손의 수적 인 비율을 보면 큰손은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손은 두 개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큰손은 하나이고, 작은 손은 많은 것이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맞는 것입니다. 즉 지도자는 한 분이어야 하고, 보조자는 많아야 한다는 원리를 적용할 때, 가정은 행복하고 개인은 성공하고 국가는 부강해집니다. /믿/
출18장의 천 부장, 백 부장, 오십 부장, 십 부장을 두어서 통치한 것도 경영학적인 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모세는 세세한 것까지 재판을 하느라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눈코 뜰 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인이 이 모습을 보고 딱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면 천 부장, 백 부장, 오십 부장, 십 부장을 두어서 작은 일을 십 주장이 처리하고 정 어려운 것만 그대가 처리하면 이 나라의 정치가 잘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날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원리도 이때부터 적용되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삿7:18절에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하면서 지도자 기드온 한 사람을 치켜올린 손을 300명이었습니다. 비록 300명에 불과한 소수의 무리였지만 기드온은 대장으로 한 일사불란한 행동체제의 공격은 그 수가 약400배가 더 많은 적군인 미디안 군사 13만 명을 죽임으로 기적의 승리를 거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정의 큰손은 하나면 됩니다. 교회에도 나라에도, 큰손은 하나면 됩니다. 그 다음에 작은 손이 많아야 승리합니다. 각 기관의 장은 한사람, 그 다음에는 그 기관의 장을 위해서 섬기는 손이 많을 때 경영학적으로 그 부서나 그리고 교회나 나라를 부강해짐을 아셔야 합니다. /아멘!/
역사상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이 성공한 배후를 보면 그들을 섬긴 작은 손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루터에게는 수많은 개혁 전의 개혁자들이 있었고,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이름 없는 봉사자들이 있었고, 어거스틴에게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의 숨결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에게는 어머니와 사모님, 오정모집사와 조만석 장로가 있었기에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 큰 교황청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낡은 문짝에 95개항의 항의문을 달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종교개혁을 원하는 개혁자들이 루터에게 큰 성원을 그에게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루터를 큰손으로 만든 작은 무수한 손들이 있었습니다. 4백만 노예 해방자 링컨에게도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가 가는 길에 횃불을 밝혀준 이름 없고 빛 없는 무수한 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주의 종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의 종의 영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도 인간인지라 피곤해지고, 약해질 때가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의 협조하는 손이 있어야 교회는 부흥되어지고 성도들은 영적으로 살게 됩니다. /아멘!/
약5: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손들이 의인의 손입니다. 이들이 모세를 받들고 합심기도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기는 없었지만 아말렉 군사를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할/
우리의 기도가 식어질 때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말씀의 칼이 무뎌집니다. 엡6:17절에 보면 말씀은 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말씀의 칼을 무엇으로 갑니까? 기도로 갈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약해지면 말씀의 칼이 무디고, 말씀의 칼이 무디면 아무리 적병을 쳐도 목이 잘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 마귀의 가슴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기도 없이 잘되는 것이 없다. 기도 없이 잘되면 기뻐하지 말고 걱정하라, 왜냐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다가 몽땅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기도는 우리 조상들이 시험하여 본 유일의 무기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⑶본문에 아말렉과 싸워 이겼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 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기록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됩니다.
⑷기도는 '여호와 닛시' 깃발을 꼽게 하는 비결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깃발은 이스라엘에게 힘을 주고 전쟁에서 승리를 준다는 의미에서의 깃발입니다. 모세가 쌓은 단은 감사의 제단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고백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16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싸울 때마다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싸워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케 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아멘!/
▶역사적으로 계시적인 깃발을 보고 승리한 사건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로마제국은 주후 64년부터 313년까지 기독교인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때문에 당시에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리는 콜로세움과 지하 묘지교회라는 카타콤이 유명합니다.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에 의해 잡혀 먹히기도 했고, 지하 묘지 교회에 숨어서 신앙을 지켜갔습니다.
주후 303년에 데오크렌틴 황제가 죽자 각 지방에 있던 총독들과 왕자들 사이에 정권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황제의 아들이었던 콘스탄틴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을 때 그는 환상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 아래는 분명히 라틴말로 '너는 십자가의 깃발로 승리하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콘스탄틴은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하고 부왕이 핍박하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10년 간 계속되었으나 끝내는 환상중의 예언대로 승리하여 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바로 주후 313년이었고,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제국을 통일한 첫 사업으로 핍박당하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정했습니다. 이는 그가 환상 중에 본 십자가로 승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자에게 힘과 방패와 승리의 깃발이 되어주십니다. /아멘!/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여호와는 나의 방패요 나의 승리'라는 의미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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