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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가? (눅 19:1-10)

by 【고동엽】 2022. 2. 8.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가? (눅 19:1-10)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소유하고 얻으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유한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얻고 잃은 것을 바로 알아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저의 고향 선배 한 사람은 몸은 약했으나 의지가 강하고 무엇인가를 시작했으면 끝을 내는 집념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굶기도 무척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을 품은 것이 바로 돈이었습니다.
그가 서울에 올라와 한을 품고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남들이 놀 때, 밤새워 일을 했고, 남들이 먹을 때, 더욱 더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그 결과 그의 나이 40이 지나서는 큰돈을 굴리며 여기저기 부동산을 사 모았고, 사업도 크게 했습니다.
그런 그가 50이 조금 넘어서 너무 무리한 탓에 몸에 병이 들어 결국은 그 좋은 집도 그 잘되는 사업체도 쌓아둔 물질도 한번 만족하게 써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살아가지만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그 돈 때문에 아우성을 쳐야 할까요?
이 세상은 잃어버린 자의 아픔과 얻는 자의 기쁨이 쌍곡선을 이루며 달려가는 곳입니다. 재산을 잃은 것은 잃어본 자만이 느끼는 고통입니다. 이보다 더 큰 아픔은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아픔입니다.
저는 집에서 키우던 개 진주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릅니다. 더 큰 아픔은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잃어버리는 아픔입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본 인생체험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욥은 오직 한 가지 믿음이 있었기에 이 모든 슬픔을 극복하고 드디어 새로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가 끝내는 하나님께로 가야할 존재'입니다. /믿/
이 사실을 모르면 자신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은 아무리 얻고 또 얻어도 자기를 잃어버리고 있다면 이 사람은 참 불쌍하다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게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앞서야 한다는 이유로 밤낮으로 고민하고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무가치한 것을 얻으려고 고귀한 가치를 잃는다면 그것은 큰 불행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 얻으려고 세상과 가까이하면 하나님은 멀어집니다. 렘2:13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가 어떤 웅덩이라고 합니까?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것과 세상 적인 것을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데는 성공했는데 진실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세를 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팔아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고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잃어버리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권세를 얻은 것 같았는데 그만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얻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잃은 것이 무엇인가 바로 알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다고 해서 좋아만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그 안에 생명처럼 소중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면, 이 사람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를 바로 안 사람입니다. 빌3:7-9절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은 그의 육체를 신뢰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난지 3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지만 유대인의 절개를 굳게 지켰고, 히브리말만 절대 고수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서 가장 열성분자였고, 정통파인 바리새파에 속했고, 유대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박해했으며 율법의 테두리에서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육체적으로 보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기를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배운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성취를 버렸고, 인간의 모든 명예와 지위를 버렸고, 겸손히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다렸던 인물이 되었습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배운 지식으로 최고의 인격에 도달하고 행복을 얻는 지름길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런 것들이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고 배설물처럼 미련 없이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지식, 이론은 다 버렸고, 하나님을 아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 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행여나 오늘 이 자리에 믿어야겠는데 믿어지지 않아서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믿는데 방해가 되는 자기의 지식과 판단과 이론과 교만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것입니다. /아멘!/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명예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되면 행복한 줄 압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 것 때문에 자기를 불안하게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또 출세하여 죄짓고 비참하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가진 것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강남의 일식집 여사장은 외제차를 탔다는 죄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강도가 돈 많은 사람을 고르다보니 그 여사장이 희생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질을 잃으면 적은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명예를 잃은 것은 큰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건강을 잃은 것은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었다면 그 사람은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 잃어버려도 믿음만 있다면 다시 해결됩니다. 믿음 안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아멘! /할/ 신앙은 여기까지 와야 맛을 알게 됩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믿음 하나 지켰더니 하나님이 끝내는 갑절의 복을 주었습니다. 욥42:10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할/
지식이 참 좋은 것이지만 지식이 많아짐으로 믿음을 잃었다면 그 사람은 여기서 비참해집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 정말 축복 받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돈 때문에 신앙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도 주시는 능력을 주시지만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좋아합니다. 성공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공 때문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다면 그 사람의 성공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잃어버렸다고 해도 믿음만 붙잡았다면 그 사람은 그 모든 것은 다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 재물이 있습니다. 땅도 보이고, 진급도 보이고, 서울대학도 보입니다. /믿/아멘!/
우리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고후4:18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는 세계는 시간적으로 잠깐이요, 보이지 않은 세계는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현세에 소망을 두는 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
인생은 현실에서 참 만족을 얻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이 채워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로 채워질 때 만족하게 됩니다. 또 이 세상은 우리가 천년만년 살 곳이 못됩니다. 약4:14절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보이는 세계는 어둡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는 광명하고 즐겁습니다. 현세는 죽음과 질병이 있으나, 내세는 죽음, 슬픔, 이별, 질병, 배고픔, 눈물이 없는 곳이라고 계21장에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를 찾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습니까? 허무한 세상에서 자기의 명예나 공로를 세워 정치적인 위치에서 자기의 이름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인생은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렘17:13절에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세상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더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 생명 록에 내 이름 석 자가 기록되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할/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수고를 하늘에 생명 록에 행위 록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부자였으나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으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와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국가의 요직에 있었으나 매국노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넝마인생이 되었습니다. 좋은 집에 살았으나 평안이 없었습니다. 지식인이었으나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삭개오는 이처럼 풍부하게 가진 자였으나 자기 존재는 너무도 비참한 존재임을 깨달은 자입니다. 삭개오는 얻은 것보다도 잃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는 돈 버는 데는 성공했으나 진실을 잃었습니다. 그는 출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양심은 잃었습니다. 그는 명예를 얻는데 성공했으나 가정의 행복을 잃었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인생을 뒤돌아보니 허무함이 그의 가슴에 휘몰아쳤고 인생의 참 만족이 없었기에 그의 삶은 날마다 우울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할/
당시에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문제 가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삭개오는 어떤 기복 적인 복을 구하려고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소유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존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목적에 따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찬498장에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속에 지금 오셨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는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죄 사함을 원하는 자에게는 자비와 은총을 베푸십니다.
여기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9절에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그는 구원의 감격에 외치기를 '주님! 내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삭개오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순결'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부모가 삭개오를 낳고 순결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순결'이라는 이름의 뜻으로 삭개오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세리가 되어 순결하게 살지 못 했습니다. 제대로 세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많이 붙여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다시 순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순결하지 못 하게 번 돈을 모두 다 도로 주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5분만에 재산을 다 없앤 사람입니다.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사오며' 벌써 반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나머지 반을 도로 나주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헌금의 수준을 한 번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삭개오는 헌금 수준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단 5분만에 재산을 모두 헌금한 이가 바로 삭개오입니다.
▶미국에서 큰 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어떤 의사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그 병원에 병자 한 명이 찾아 왔습니다. 경호원들이 따라 온 것을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랍의 왕자였습니다. 곧 그 나라의 왕이 될 분이었습니다. 의사는 너무나 고귀하신 분임을 알고 정성을 다 하여 최선을 다하여 치료했습니다. 왕자는 완벽한 건강을 찾았습니다.
그가 돌아가면서 진료비 청구서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의사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받아야 할까? 받지 말아야 할까? 많이 받아야 할까? 할인해서 받아야 할까? 아예 받지 말아야 할까? 형식적으로 5만원만 청구할까? 부자요 고귀한 분이니까 1,000만원 청구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의사가 교회 목사님에게 의논을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목사님이 좋은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 분에게 그 분 수준에 맞게 내고 싶은 만큼 내라고 권하십시오' 의사는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고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 수준에 맞게 당신 마음대로 지불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답장과 함께 돈은 왔습니다. 편지에는 당신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는 내용과 함께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억 원짜리 수표였습니다. 의사는 기뻐서 목사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며칠 뒤에 의사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목사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당신 수준에 맞게 당신 마음대로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 의사가 얼마나 하나님께 헌금을 했을까요? 아직까지도 한 푼도 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다시 삭개오를 보십시다. 주님을 만나는 순간 삭개오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자기의 욕심이 벗겨지고, 치사스런 자기의 명예가 다 벗겨지고 보니 자신의 모든 소유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 진정한 자유는 물질로부터의 자유 인줄 믿습니다. /아멘!/

 

1.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이 무엇인가?

 

①물질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 관의 변화가 왔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입니다. 보통 세리가 아닙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세무서장입니다. 수십 년 세리로 살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로마에 충성하는 사람을 골라서 세리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리가 된 사람들은 세금을 잘 걷어서 로마 정부에 잘 바치고 로마에 충성을 다 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만이 로마시대에 출세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세리장까지 된 것을 보면 보통 충성한 것이 아닙니다. 긴 세월을 세금을 거두어 바치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여리고는 예루살렘 바로 옆 동네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에 통행세만도 엄청난 곳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세무서장 하면 막강한 자리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삭개오는 세리 장으로 있으면 권력과 부를 한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뽕나무에서 영접한 후에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돈을 모으기만 하던 자가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서 제일 먼저 물질적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돈이면 최고인줄 알았던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자 믿음 없이 살아온 것이 허무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찾은 것입니다. /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믿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고도 믿음을 잃었다면 완전 실패자입니다. 믿음은 생명이요,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삭개오는 거듭나게 변화된 사람의 모델입니다. 예수를 만나자 말자 물질 관이 바꿔졌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버는 것이 아니라 쓰려고 벌어야 합니다. 우리는 쌓으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하여 쓰려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아멘!/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사업에 부도가 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사업도 다 망가지고 명예도 물질도 다 잃어버리고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처음으로 신구약 성경을 읽고, 또 잃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은 자기가 세상에서 대단한 존재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교만했고, 직위와 명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짓누르고 무시했습니다. 그런 그가 교도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요, 돈을 벌었으나 교만했고, 결국 망하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예수 안에서 다시 발견하고 믿음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는 간증하기를 지금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로 알고 장학재단을 세우고 선교단체를 세우고 열심히 목사님을 도와 일하고 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목사님, 공장 문을 닫는데 폐업 예배 좀 드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보통 개업예배나 몇 주년 기념예배 또는 축복예배는 많이 드리지만 목회를 그렇게 오래 했어도 폐업예배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서 사연을 들어봤더니 그가 교회 다닌 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봉사다운 봉사한번, 제대로 해본 일이 없고 교회도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고 형식적으로만 예수님을 믿었답니다. 그때는 사업이 너무 잘 돼 공장을 확장하고, 사원들을 늘리고, 그러다 보니까 교회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상에 묻혀 세상 연락에 매일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무역이 끊기고, 공장에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자신했던 건강에 이상이 오고, 가정에 불화가 자주 생기고, 그러다 보니 잘되라고 고사도 많이 지냈고, 점쟁이한테 갖다 바친 복채도 수없이 많았는데도 앞뒤가 꽉 막혀 영 헤어 나온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고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그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로 생각되더랍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비웃었던 자신, 그렇게 신앙으로 바로 살아야 한다고 경고해 주신 목사님의 말씀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고백하기를 '이제 사업은 오늘로 폐업이지만 내 신앙은 오늘부터 개업입니다' /할/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은혜의 문으로, 축복의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믿/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고백이 무엇인가?
삼상2:6-7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할/
여러분, 믿음을 절대로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은 다 잃어버려도 낙심하지 마시고 지금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 믿음 밖에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내가 지금 믿음 밖에 있다면 돌이켜 주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멘!/
이 두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깨달은 자입니다. 돈은 잃어버리고 명예를 잃어버렸지만 그 사람들은 더 소중한 하나님을 얻은 자들입니다. /아멘!/
여러분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재산이 날아갔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아니면 건강을 잃어버렸습니까? 탄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신앙은 정검해 보십시오, 내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는가? 내가 진정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는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교회 관에 정착하지 못하고, 목자 관에 정착하지 못하고 사명 관에 정착하지 못하고 충성을 잃어버렸다면 여러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도, 건강도, 명예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 회복할 수가 있는데 믿음을 잃어버리면 내 교회관, 내 목자관, 내 사명관을 잃어버렸다면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관이 바른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내 목자 관에 정착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담인 목사인 내가 제일 많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담임목사를 따돌리고 기도해 보십시오, 절대로 축복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적인 축복은 우리 행복한 교회를 통하여 담임목사인 저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려주십니다. /할/
사람들은 내가 신경 안 쓰고, 봉사 안 하면 교회가 근방 문 닫는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문 닫게 하지 않습니다. 충성하는 자를 통해 복을 주시고 모든 일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교회 관에 정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명관에, 또한 내 목자 관에 정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②물질의 노예로 살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노예 생활이란 자유가 없는 생활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돈만 바라보고 돈의 노예가 되어 돈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저 돈이면 다 인줄 알고 도도하게 돈만 모으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도 모르고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것도 모르고 돈만 모았는데 정작 그 안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만족이 없었습니다.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물질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나이다' 이것이 곧 자유인의 선언입니다. /할/
오늘 현대인들은 자유인으로 사는 것 같으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삼손처럼 눈이 멀고, 욕망의 노리개가 되어 사슬에 묶인 채, 맷돌 가는 운명의 노예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었고, 명예, 이성,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노예는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참 자유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십시다. 이 자유는 삭개오처럼 남을 도와주는 기쁨의 자유입니다.


③물질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사람을 얻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물질관계가 변화될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변화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고 인간관계가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인간관계가 변화되었습니까? 삭개오의 첫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관심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은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삭개오는 오랫동안 세금을 거두면서 돈을 짜내는 것이 지상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현듯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돈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빚을 얻어 돈을 바치던 이들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삭개오는 이제 그들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삭개오의 두 번째 관심은 자기와 안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삭개오는 거듭나는 순간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세금을 거둘 때 정직하게 거두지 않았습니다. 비단 삭개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세리들이 다 그랬습니다. 10만원을 받아야 한다면 20만원 받아서 자기가 10만원을 요즈음 말로 삥땅을 친 것입니다. 삭개오는 거듭나는 순간 돈을 착취하던 잘못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싸들고 다니면 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내 이웃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알고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의 반절을 주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뜻을 알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 당시 '화제의 인물'이 된 줄 믿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 중심에서 이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④욕심을 잃어버리고 가장 최고의 복인 구원의 복을 얻었습니다.
삭개오에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자 주님이 드디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9절도 다시 한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아멘/
삭개오에게 이제 하나님의 비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던 삭개오가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비전을 본 것입니다.
삭개오 가정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 가족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이 출입하던 이 집에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습니다.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오는 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재물은 단순한 구제 금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삭개오는 여리고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할/

 

2. 삭개오의 이런 위대한 신앙의 발전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①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보고 싶어하는 마음, 이 마음이 귀합니다. 삭개오가 왜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그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을 위해, 병 고치기 위해, 결혼을 목적으로 나온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의 동기는 매우 순수했습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이것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는 동기였습니다. 여기 '보고자 하되'라는 말은 '보기를 열망하되, 간절히 사모하되'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모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고전12:13절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딤전3:1절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함은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시편에도 '주의 성전을 사모하나이다. 내가 여호와를 앙망하나이다. 주의 은혜를 갈망하나이다. 내가 주의 은혜를 사모하나이다.' 이런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모한다는 이 말의 뜻은 참 흥미롭게도 욕심을 품는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한 여자를 사모한다는 것은 그 여자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했습니다. 그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의 모든 공무를 제쳐놓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 예수가 여리고에 왔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만나고자 한 것입니다.


②삭개오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달려가는 신앙, 여러분 신앙은 앞을 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안드로포스' 즉 '위를 보고 걷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③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장애물(난관)을 극복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했지만 두 가지 난관이 가로 막혀 있습니다. 하나는 키가 작은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키 작은 것은 내적인 제약이요, 사람이 많은 것은 외적인 제약입니다. 신앙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난관이 있습니다.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④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의 모습을 보세요!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 모습이 축복입니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주일을 기쁘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접하십시오! 우리는 영접기도문을 주일마다 합니다. 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⑤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후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 '누구든지'라는 말은 인간적인 차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은 '인간이 거듭나고 새로워지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안에'라는 '연합, 교제, 연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며 그리스도와 날마다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할 존재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삶은 이미 다 지나가 버린 것이고 이제는 새로워진 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살던 우리가 이제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목적 삼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신분이 달려지고, 목적이 달라지고,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달라졌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멘!/
여자가 결혼을 하면 새색시 또는 새댁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람자체가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하기 전보다 더 늙은 헌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도 결혼을 하게 되면 새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색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을 한 여자는 그때부터 남편을 위해 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아내를 위해서 여자는 남편을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나이가 들은 신랑도 새 신랑이라고 하고 나이들은 신부도 새색시라고 합니다. 같은 의미로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⑥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⑴가치관이 변해야 됩니다. 과거에는 육신에 속한 것들을 귀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영혼의 것에 값어치를 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영혼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변하다.'라는 말은 '빙그르 돌다. 뒤집어엎다. 돌아온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변한다는 것을 180도 빙그르 돌아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썩고 병들고 타락한 내 삶을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리는 영적 혁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아는 것만으로는 변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변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변하지 못합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을 내 심령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합니다.
⑵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값어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삶의 목적이 바뀝니다. 본문 15절에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우리 삶의 목적이, 어떻게든 내가 더 잘 살고 행복하게 쾌락을 누리며 살아보겠다고 하는 나 중심적인 목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찌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할/
⑶삶의 방법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하라'는 히브리어는 '하다쉬'인데 '다시 세우다, 수선하다'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분쟁하고 싸우면서, 또한 목적을 위해 악한 일을 서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내가 손해를 보아도, 불이익을 당해도 깨끗하게 삽니다. 죄악을 끊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땅위에서 많은 손해와 어려움과 가난과 질병을 겪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이제부터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르고 깨끗하게, 의롭게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할/


⑦지금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찾으십시다.
⑴인생의 본분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 자신을 아는 일은 가장 기본 조건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만이 자기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신의 고귀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⑵사명을 잃어버린 자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행20:29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카알 힐터는 '인간 생애에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깨닫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나를 충성 되이 보시사 사명을 맡기셨다'고 감사했습니다.
군인이 사명을 모르면 큰일입니다. 정치인이 사명을 모르면 큰일입니다. 신앙인이 사명을 모르면 큰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⑶본향을 잃어버리고 사는 자가 있습니까? 오늘 삭개오처럼 구원의 확신을 얻는 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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