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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휘장 틈으로 나는 소리! /눅 23;44-49(강문호)

by 【고동엽】 2022. 2. 1.

찢어진 휘장 틈으로 나는 소리!

 

눅 23;44-49

 

도적이 도둑질하러 어느 집 담장을 넘었습니다. 문틈으로 소리가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가 들렸습니다. 먼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여보! 나 먹을 것이 없어요.>

도적은 문틈으로 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잘못 들어 왔구나. 가난한 집이로구나.> 그 때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똥이라도 먹어요.> 도적은 놀랐습니다.

<똥을 먹을 정도로 가난하구나.>
그런데 계속 이런 말이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나 먹을 것이 없어요.>

<똥이라도 먹어요.>
도적은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화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휘장 틈 사이로 들려오는 영적인 음성을 같이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고난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며 운명하실 때에 신비한 네 가지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1. 지진이 일어났습니다(마27;54)

2. 갑자기 어두움이 깔렸습니다((눅23;44)

3.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이 부활하였습니다(마27;52)

4. 이 때 또 한가지 신비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51)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7-38)

 

마태와 마가는 휘장이 찢어지기 전에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셨다고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다른 이야기를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눅 23;44-49)

 

누가는 휘장이 찢어진 후에도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합하여 보면 휘장이 찢어지면서 예수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휘장이 찢어지기 전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셨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있는 힘을 다 하여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 소리를 다 들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장에서 이를 생생히 보고 들은 예수님을 죽이던 백부장은 진실된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다>(47절)

 

유명한 영화 <왕중에 왕>이 있었습니다. 명화였습니다. 왕중에 왕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영화를 감독한 이는 데밀 감독입니다. 그가 왕중 왕을 촬영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때 엑스트라는 모두 200명 정도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이도 있었고 안 믿는 이도 있었습니다. 데밀 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 전에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부탁하였습니다.‘

<여러분!

조용히 5분 동안만 십자가를 바라봐 주십시오.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관계없습니다. 다만 시선은 십자가만 바라 보아야 합니다. 종교가 없는 분은 어머니 생각을 하여도 좋습니다.>

이제 장엄한 오르간 연주되면서 십자가를 모두가 바라보며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데밀 감독은 이런 장면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하였습니다. 모든 이들이 정신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모두가 울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십자가에 매료되었습니다. 심지어 로마 병정 역을 맡은 이들까지 십자가에 매료되어 있는 순간이 연출되었습니다. 데밀 감독은 그 때의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나의 허물을 대신 책임지고 인간이 되셨고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감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로 십자가는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육체가 찢어지실 때에 이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밑에서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찢으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휘장이 찢어지기 전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찢어진 휘장 그 틈 사이로 들리는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큰 소리이기에 분명히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1. 짐승 피 시대가 끝났다.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완전히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 틈 사이로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짐승 피 시대가 끝났다.>


이런 외침입니다.

그 휘장은 무엇하는 휘장입니까?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입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해마다 대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피를 양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휘장에 피를 7번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16장 16절에 지성소를 속죄하라고 하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휘장에 피를 뿌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휘장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휘장이 없는 성전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제 짐승 피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를 흘리심으로 예수 피 시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짐승 피의 유효기간은 1년입니다. 그렇기에 1년마다 제사를 반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피의 유효 기간은 영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피이기에 단번에 한번으로 끝납니다.

짐승 피는 덮는 피이고, 예수님의 피는 닦는 피이기 때문입니다. 짐승 피는 구속하는 피이고, 예수님의 피는 도말하는 피입니다.

 

이제는 짐승 피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구약은 소, 양, 염소 그리고 비둘기 피로 죄를 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옷은 비누로 빨지만 죄를 피로 빨게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였습니다.

성전을 부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 와 보니 성전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짐승 피로 죄를 찟을 장소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완성되기까지 닭을 잡아 닭 피로 죄를 씻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느 5;18)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대속죄일이면 닭을 잡아 죄사함을 받고 있습니다. 닭장 차를 회장 앞에 세워 둡니다. 그 앞에 랍비가 서 있습니다. 대 속죄일이면 가족들이 함께 와서 헌금을 드립니다. 랍비는 닭 한 마리를 꺼냅니다. 그리고 그 가족에게 내밉니다. 온 가족이 닭위에 안수하며 일년 동안에 지은 죄를 전가시킵니다.
랍비는 선언합니다.


<이 닭이 당신 가족의 죄를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목을 땁니다. 그리고 피를 땅에 뿌립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이 닭이 당신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으므로 당신들의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통에 던집니다. 닭들이 쌓이게 되면 고아원이나 양노원에서 가지고 갑니다.

 

나는 발리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닭 한 다리에 날카로운 칼을 맵니다. 두 마리 닭에게 그렇게 한 후 앞 마당에서 싸움을 시킵니다. 처절하게 싸우며 여기 저기 도망다니고 따라가면서 피를 온 집안에 묻힙니다. 그러면 일년 동안 그 집안의 죄가 사라진 것입니다.

 

모나코에 가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님이 성막 공부를 하러 왔다가 돌아 갔습니다. 그 곳 죄사함 의식을 비디오로 보내 주었습니다.

TV에서 국왕이 일년에 한번 양을 직접 잡습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온 가족들이 양을 준비하여 놓았다가 양을 잡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일년 동안 모든 집안의 죄를 씻습니다.

이렇게 짐승 피로 죄사함을 받는 곳이 지구상에 여러 군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휘장이 찢어지면서 이제는 짐승 피 시대가 사라졌습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큰 소리가 들립니다.

 

<짐승 피 시대가 끝났다.>

 

 

2. 제사가 끝났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큰 소리가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말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고,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이고,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이고, 법궤의 중심은 십계명이다.>

 

소위 양파론이라고 말합니다. 양파는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옵니다. 계속 벗겨나가다 보면 알맹이가 있습니다. 그 알맹이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성전은 언젠가는 무너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는 성전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폭탄선언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21;6)

 

AD 70년 7월 9일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그 성전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금으로 만든 성전이었습니다. 못 하나하나도 금으로 썼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못까지 찾으려고 성전을 모두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돌 하나에 돌 하나가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성전이 없습니다.

이제는 성전 아닌 교회에서 하나님께 제사 아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이런 것입니다.

 

<구약은 짐승 피로 제사드리고 신약은 예수 피로 예배드린다.>

 

구약에는 예수님 피가 없습니다. 신약에는 짐승 피가 필요 없습니다. 구약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신약에는 제사가 없습니다. 이제는 짐승 피가 예수님 피로, 제사가 예배로, 성전이 교회로, 제사장이 목사로 바뀌었습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제사가 끝났다.>

 

3. 안식일이 끝났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큰 소리가 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식일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시며 휘장이 찢어진 후부터는 주일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완전이 찢어져서 둘이 되었습니다. 아래부터 찢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표징입니다.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부터 시작됩니다.

완전히 다 찢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실 때 다 찢어졌습니다. 다 이루실 때 다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이같이 완전히 찢어져 누구나가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가 들어 났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휘장은 두께가 15cm였었다고 합니다. 휘장이 찢어지자 300명의 제사장들이 달려 들어서 다시 꿰메었습니다. 그러나 다 꿰메자 말자 다시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꿰메기를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히 인간이 정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데만(Haldemann) 주석가에 의하면 두 마리의 황소가 양쪽에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는 단단한 휘장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찢으셨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지진이 있었는 데 지진 때문에 찢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진때문이라면 하필이면 두 조각으로 찢어질 리가 없습니다. 갈기 갈기 찢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지 않고 아래부터 위로 찢어질 것입니다.

 

휘장이 찢어진 후로 안식일 예배가 주일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의 날, 생명의 날 초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우렁찬 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끝났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그 후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모임을 갖지 않고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도 늘 안식 후 첫 날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율법은 안식일이고, 복음은 주일입니다.

이제는 안식일이 아닙니다. 주일입니다. 유대교와 안식일 교회는 아직도 안식일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큰 소리가 있습니다.

 

<안식일이 끝났다.>

 

4. 죄와 저주가 끝났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큰 소리가 또 있습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진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구약에서 짐승이 죄인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저주가 사라졌습니다.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진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너무나 아름다운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나타나면 주변이 환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세상에서 그렇게 추할 수 없을 정도로 이그러져 있었습니다. 불에 타다 남은 부지갱이같은 흉측한 얼굴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어머니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 싫어서 그는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어머니를 소개하여 준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갔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배고플 것을 걱정하여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로 갔습니다. 딸의 교실을 찾아 갔습니다.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거의 귀신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누구냐?>

이 여학생은 도시락을 받으면서 친구들에게 어머니 듣는 데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 식모야.>

그리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 온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어요?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어요.>

그 때 어머니가 울고 있는 딸 옆에 앉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딸아!
엄마 얼굴이 이렇게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 있단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만 있었단다. 내가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미 집은 불덩어리였지. 그러나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 갔다.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말렸다. 소방수들도 네 생명을 포기하였을 때였단다.

그러나 나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 갔어. 안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 나왔다. 나는 너를 안고 있기에 내 얼굴을 무엇으로 가릴 수가 없었다. 너만 꼭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심한 화상을 얼굴에 당하였다. 병원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생명을 건졌단다. 그러나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다.>

딸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나 감격하여 어머니 품으로 달려가 안겼습니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며 말했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 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내가 당할 것을 어머니가 당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당할 것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요한 사도도 예수님의 고난은 스스로 당한 고난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18)

 

19세기 미국의 교육자 호라스만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소년 감화원을 짓는 개원식에서 이런 연설을 하였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감화되어 새 인생을 살게 된다면 이 건물을 세우는 데 든 예산과 인력은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개원식이 끝나고 한 신사가 호라스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한 말은 너무 과장된 말이 아닙니까?>

이 때 호라스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지나치다니요? 만일 그 아이가 당신 아들이라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찢어진 휘장사이로 크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죄와 저주가 끝났다.>

 

5. 새 길이 열렸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소리가 또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아담이 따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과 인간과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담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순간에 육체되신 휘장이 찢어질 때 새롭고 산 길이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외침이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고 있습니다.

 

<새 길이 열렸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큰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큰 소리를 질렀다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다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확실하게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진리라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휘장이 찢어지기 전 후에 큰 소리를 지르렸습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들리는 큰 소리는 무슨 소리일가요?

1. 짐승 피 시대가 끝났다.

2. 제사가 끝났다.

3. 안식일이 끝났다.

4. 죄와 저주가 끝났다.

5. 죽음이 끝났다.

 

고난 주일에 이 외침을 영적으로 듣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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