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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신 34;7.

by 【고동엽】 2022. 2. 1.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신 34;7.

 

<모세는 죽을 때 나이 120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런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열고 싶습니다.

지난 주간 고척교회 김 춘희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이북에서 홀로 내려온 권사님은 정부 생계 보호자로 한 달에 38만원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고아들이 많은 전쟁후라 고아원에 들어가서 고아들을 자기 자녀처럼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틈틈이 식당이나 공사장에 나가 일하며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모두 주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니까 외롭지 않아요.>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갈 때 단칸방 세 1500만원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신까지 기증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소박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울렸습니다. 성대한 장례가 치루어졌습니다. 국민일보 보도 기사입니다.

 

요즈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Wellbeing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윌빙(Wellbe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단어가 더 생겼습니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월다잉(Welldying)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또 한 단어가 생겼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고, 잘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를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웰에이징(Wellaging)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윌빙(Wellbeing) 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죽은 것을 월다잉(Welldying)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늙는 것을 월에이징(Wellaging) 이라고 합니다.

 

농사는 금년에 실패하면 내년에 잘 지으면 됩니다.
대학은 금년에 떨어졌으면 재수하고 내년에 잘 들어가면 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으면 다음 올림픽에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단 한번입니다. 유일회입니다. 한번 실패하면 끝입니다. 두 번 다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할 수 있을 가요?

성경에서 그렇게 잘 한 최고의 모델을 찾으라면 모세를 등장시킬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잘 살았습니다.
잘 늙었습니다.

잘 죽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 가요?

wellbeing 인생은 결국 wellaging 하다가 welldying 으로 마쳐야 합니다. 모세를 통하여 그 비결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일을 즐겨야 합니다.

웰빙은 결국은 일을 잘 하는 것입니다. 일을 잘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10시간 춤을 출 수는 없어도 20시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평생 일을 즐겼습니다.

40세까지는 궁중에서 애급의 학문과 문화를 익히는 데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40세부터 80세까지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80세부터 120세까지는 200만명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데 전력을 다 하였습니다.

모세가 휴가를 즐겼다는 말은 성경에 한 구절도 없습니다.

모세가 해외 여행을 갔다는 말도 없습니다.

모세가 가족과 함께 휴양을 갔었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오직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연령에는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적연령 등 4가지 연령이 있습니다.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자연 연령은 많은 데 건강연령이 아주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항상 젊게 살 수 있습니다.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의 비결은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모세는 120세가 되도록 지치지 않고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 나이 120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세는 80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나는 김 병삼 장로님과 식사를 나눈 후 야고보서 강해 두 시간 녹화를 하였습니다. 김 장로님은 독특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성경 66권 요약 강해를 CD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66명 목사님을 뽑아서 한 권을 한 목사님에게 맡겨서 녹화하는 것입니다. 그 강의만 들으면 성경 전체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쏘련어, 인도네시아 5개국어도 만들어서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강 목사님! 내 나이가 지금 79세입니다. 금년에 이 작품을 만들어 완성하고 내년에 5개국어로 번역 완성하면 80입니다. 그리고 내 일을 마치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일을 시작하였는 데 장로님은 80세에 일을 끝내시겠다고요? 이제 시작입니다. 그 CD 완성이 시작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용기를 드렸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23%는 70-80세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6%는 80대 인물에 의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인물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 것은 80세 때였습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어서였습니다.
다니엘 드 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습니다.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70세에 완성했습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도 고희의 나이 70을 넘어서 불후의 명곡을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은 자연 나이가 소용이 없습니다.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의 비결은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세계를 거의 다 돌아 보고 인상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하였습니다. 그 때 순식간에 수천명이 죽었습니다. 그 때 살아남은 병사가 은퇴하고 그 곳에서 그 곳에 온 관광객들에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무료 봉사입니다. 죽기까지 그 일을 하겠다며 그 일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이 웰빙, 웰다잉할 수 있습니다.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는 데도 죽기까지 자기가 하던 땜쟁이 일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일을 즐기는 것이 웰빙입니다.

 

나는 지난 주간 청주 명암 장로 교회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31년 된 교회인 데 집사님 한 분이 25년 동안 꽃꽂이를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돈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것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일 하나를 맡아서 죽기까지 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이 경영하는 음식점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산기슭에 넓고 좋은 땅을 주셔서 멋진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죽기 직전까지 일이었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은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즐겨야 합니다.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은 신비의 삶입니다. 모세가 80세 이전에는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80세 이후에는 하나님이 모세의 주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신비하고 신기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생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80세부터는 하나님과의 삶을 즐겼습니다.

그 후 계속 모세의 생활속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가 내려서 200만명이 굶주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인 한 명이 200만명을 먹여 살렸습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반석을 치면 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온도 조절 자동장치가 구름기둥 불기둥이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기적이요, 하루 하루가 신비요, 매 발걸음이 축복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금호제일 교회에서 우리 지방 지방회가 열렸습니다. 5분의 장로님이 은퇴하였습니다. 은퇴 찬하 예배때 5명을 대표하여 화양 교회 채 의숭 장로님이 이런 말로 답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건대 수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기숙사비가 한 달에 8천원 할 때 한 달에 11,000원씩을 받으면서 4년 동안 장학금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를 100 교회 지어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80세로 은퇴하는 지금까지 63개 교회를 지었습니다. 어제 밤에 TV에서 강 문호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 사명자에게는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나는 기어코 100 교회를 지을 것입니다. 100살까지 지은 후에 아내와 더불어 100살에 하나님앞에 갈 것입니다.>
70 평생을 살아오며 순간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신나게 살아 왔다고 고백하며 답사를 마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할 수 있습니다.

잘 살 수 있습니다. 잘 나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 용인에서 박 복우 목사님과 더불어 해장국집에 들렀습니다. 둘이 식사를 하는 데 50살쯤된 여자가 내 앞으로 오더니 <어머!> 라고 외마디를 외치며 울기 시작합니다.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눈이 시뻘갛게 되도록 우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옆에 서있던 여자가 물었습니다.

<아는 분이니?>

<강 문호 목사님!>

그리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TV 설교를 들으며 결정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눈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바로 웰빙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면 웨다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 웰빙할 수 있습니다.

 

3. 성장을 즐겨야 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의 모델입니다. 죽는 날까지 가나안으로 전진하였습니다. 하루 자고 나면 하루 가나안 땅과 가까워지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기어코 가나안 땅 앞까지 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었습니다.

그 때 모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 나이 120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우리가 잘 살다가 잘 나이를 먹으며 잘 죽으려면,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하려면 항상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전에 원로 목사님과 목욕을 하는 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강 목사! 늙으니까 시력도 약해지고, 의욕도 감소되고, 식욕도 없어지고, 성욕도 사라지고, 목욕만 남아.>


의욕이 사라지면 인생은 끝장입니다.

죽는 날까지 성장하려고 발버둥치면 웰빙, 웨다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날로 약해져도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시92;14-15)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우리의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하여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온전하여 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하여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일가요?

이에 대한 대답을 감리교를 창설한 웨슬레가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온전은 천국에 가서도 온전해지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기독자의 온전은 이 땅에서 온전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가서 온전하여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가는 그 날까지 온전하여 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가장 멋진 웰다잉은 어떤 것일가요?

우리는 잘 살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잘 죽기 위하여서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합니다.

 

나는 우리 장모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으로 가시기 3년 전부터 극심한 치매에 시달렸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다 몰라 보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몰라 보았습니다. 막내 딸 아내도 몰라 보았습니다. 꼭 하나 알아 보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습니다. 누구를 보아도 웃기만 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누구야?>

그러나 나를 볼 때마다 말했습니다.

<강 목사 아냐?>

그는 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강목사가 늘 부흥회 나가니 주말에 죽게 하옵소서!>

그런데 정말 주말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뉴욕에 있는 주말에 돌아 가셨습니다. 미국 집회는 금토일에 합니다. 일년 전에 약속하고 준비합니다. 금요일 뉴욕 스텐튼 아일랜드 교회 강대상에 섰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강대상에 있는 목사님에게 쪽지가 오고 가고 교인들 서로가 수근거립니다. 설교를 마쳤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방금 한국에서 강 목사님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강 목사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그 때서야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았고 돌아 갈 수 없는 형편인 것을 알았습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 오니 이미 장례를 다 마친 후였습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장모님이 주말에 돌아가시게 하여 달라는 기도는 하셨는 데 한국에 있는 주말이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하여서도 기도하여야 하지만 잘 죽기 위하여서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죽는 것이 웰다잉일가요?

 

(1) 성장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잘 죽는 죽음입니다.

태어남도 죽음도 간단히 말하면 생사는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혀 있습니다. 마음대로 이 세상에 올 수 없음같이 마음대로 갈 수도 없습니다. 생명은 무조건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가장 성장의 절정에서 죽는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죽음입니다. 모세가 120세까지 계속 전진, 성장, 성숙, 성취로 달리다가 기력도 쇄하지 않고 눈도 흐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엘다잉입니다.

기도는 응답이기에 기도하면 됩니다.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한창 인기가 있을 대 오스왈드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모든 대통령의 죽음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게 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왜 그렇습까? 성장의 절정에서, 인기의 절정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링컨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창 성장할 때 극장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는 링컨 대통령이 마지막 앉아 있던 피묻은 의자를 만져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웰다잉이 아니라 잘 죽는 것이 웰다잉입니다.

 

(2) 일을 많이 하고 죽는 것도 웨빙이자 웰다잉입니다.

성경에서 모세만큼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찾을 수 없습니다. 200만명을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급 땅에서 해방시켜 데리고 나왔습니다. 일 많이 하고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그야 말로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한 여자였습니다.

그는 평생 구제와 선행으로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힘껏 도와 주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욥바에 머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가서 다비다 집에 가보자고 권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에 갔을 때 놀랐습니다. 수많은 여자들이 와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 손에는 속옷과 겉옷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 분이 살아 있을 때 이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서글프게 다비다의 죽음을 애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다비다는 조용히 일어나 앉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다비다는 웰빙, 웰다잉한 사람입니다.

다비다는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하였습니다.

오늘의 주제 모세도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하였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하와이에서 경비행기로 30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 몰로카이 섬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록도같은 곳입니다. 미국의 문둥병자들을 모두 모아 놓은 곳입니다. 다미엔이 32세에 들어가서 문둥병자들과 함께 살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죽은 섬입니다. 그는 그 곳에 가서 문둥병자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의사가 되어 주었고, 간호사, 목수, 관(棺) 취급인, 장의사, 고아의 아버지등 무엇이든 혼자서 떠맡아 봉사하였습니다.

심지어 무덤을 파는 인부도 되었고 장의사 일을 혼자 맡아서 하여야 했습니다. 17년 동안 일하다가 49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만든 관이 1, 200개였습니다.

1880년 봄 벨기에에 사는 형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형님!
제가 여기에 온 이후 매년 190명 내지 200명 정도를 매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700명의 나환자가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특히 신자를 많이 매장하여 교회에는 빈자리가 많이 생겼으며 묘지에는 팔 수 있는 빈 터를 겨우 찾아냈을 정도입니다. 형님, 병자가 누워 있는 병원과 죽은 사람이 잠자는 묘지는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묵상 장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잘 살다가 나이를 잘 먹고, 잘 죽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하게 된 순교자 이야기입니다.

장작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는 사형집행관을 옆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판사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평생 하나님이 일한 하였습니다.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분에게 갑니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입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숨을 죽이고 보던 사형집행관 판사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였습니다.


<이런 비범한 힘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순교자가 바로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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