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복음서 녹취 6

by 【고동엽】 2022. 1. 30.
이것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중요한 것이 교리의 차이입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오경, 토라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주장했던 사두개인들은 뭐를 믿지 않냐면 내세를 믿지 않습니다. 영을 믿지 않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습니다. 천사를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오경에 보시면 내세나 심판이나 부활이나 이런 얘기들이 거의 안 나옵니다. 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던 사두개파는 이런 교리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경 뿐만 아니라 예언서와 성문서와 구전 율법까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던 바리새인들은 내세를 믿습니다. 심판을 믿습니다. 부활을 믿습니다. 영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사역의 현장이 다르다, 사두개파는 성전, 바리새인들은 지역에 있는 회당입니다. 그다음에 사두개파는 주로 제사장 그룹, 귀족 그룹, 바리새인들은 비레위인들, 평신도들입니다. 사두개파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쳤던 십일조를 받아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바리새파는 십일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요? 레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냐면 자기가 노동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 바리새파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누구죠? 바울입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후손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비레위인입니다. 자기가 사역을 한다고 해서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바리새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교리가 다르다는 겁니다. 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던 사두개파는 내세나 심판이나 부활이나 영이나 천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경과 예언서와 성문서와 심지어 하나님이 말로써 주었다는 구전 율법까지를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던 바리새인들은 내세를 믿습니다. 부활, 천사, 심판, 영을 다 믿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의 중심 권력을 장악했던 사람들은 사두개파였습니다. 왜요? 예루살렘 성전이 유대교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D 70년에 그 성전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 유대교의 중심 권력이 사두개파에서 바리새파로 넘어오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 여러분이 꼭 기억하셔야 될 정말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구약을 쭉 읽으시다 보면 구약에는 내세에 대한 언급이 거의 안 나옵니다. 부활에 대한 언급이 다니엘 12장 2절에 한 번 나옵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구약에는 별로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은 이후에 사후 세계에 대한 언급, 부활,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에 대한 언급이 구약에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의 중심 권력이 누구였다고요? 사두개파입니다. 사두개파가 가지고 있는 교리가 뭐죠? 내세와 부활과 심판과 천사와 영을 믿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두개파가 거의 천년 가까이 유대교의 권력을 장악했는데 그 사두개파가 유대교의 권력을 장악할 때 토라가 정경이 된 것이고 예언서가 정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AD 90년경에 성문서가 정경이 되면서 구약의 39권이 확정됩니다. AD 70년에 성전이 무너지면서 사두개파는 몰락하게 되고 AD 90년경에 성문서를 정경으로 확정한 사람들은 바리새파입니다. 다시 한번, 토라가 정경이 된 것은 주전 400년경입니다. 예언서가 정경이 된 것은 주전 200년경입니다. 토라와 예언서를 정경으로 확정할 때 유대교의 중심권력은 누굽니까? 사두개파입니다. 사두개파는 부활과 내세와 천사와 영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라와 예언서에는 이런 내세에 대한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안 나옵니다. 그런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사두개파가 몰락하고 예루살렘의 중심권력, 유대교의 중심권력이 바리새파로 넘어갑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중심으로 해서 성문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했을 때가 AD 90년입니다. 이로써 토라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하는 구약의 39권이 정경으로 확정됩니다. 성문서인 다니엘서에는 부활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왜 구약에 사후 세계에 대한 언급이 별로 안 나올까, 왜 구약에는 부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안 나올까,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의 중심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구약에는 사후세계나 내세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하셔야 될 종교 그룹이 열심당입니다. 열심당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장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마치 일제 시대때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 무장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열단이라든가, 북로군정서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당시의 열심당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에서 이스라엘이 힘으로 정복이 된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서 로마와 맞짱을 떠야 한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해방하기 위해서 무장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열심당입니다. 이 열심당을 로마는 강도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좌우에 강도가 달립니다. 그 강도를 길거리에서 돈 내놔 하는 그런 강도로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 강도를 레스타이라고 하는데 바로 열심당원입니다. 로마에 독립운동을 펼쳤던 열심당원들을 좌우에 매달아 죽인 겁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에도 열심당 출신이 한 명 있습니다. 누굽니까? 젤롯당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열심당 사람들은 로마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로마에 빌붙었던 매국노들을 암살하기도 했습니다. 그 암살 대상 0순위가 누구냐면 로마에 빌붙어서 이스라엘 동족을 괴롭혔던 세리들입니다. 우리 복음서에 보시면 세리는 홀로 다니지 않고 항상 세리는 군병들과 함께 다닙니다. 소위 군병이라고 하는 사람은 세리들의 보디가드입니다. 군병들과 함께 다니지 않으면 어떤 유대인이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당원들이 세리를 많이 암살했는데, 예수 공동체 안에 젤롯당 출신의 시몬도 있고 세리 출신의 마태도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시몬이라는 사람과 마태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시몬은 마태를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겠죠. 마태는 죽지 않기 위해서 도망을 다니겠죠. 쫓고 쫓기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로 인해서 한 몸된 공동체를 일궈낸 겁니다. 그래서 예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냐면 예수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로 인해서 한몸 된 공동체를 일궈낸 것이 바로 예수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세상이 쌓아 놓은 엄청난 담 때문에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신앙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요한 4개 종교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째가 에세네파, 둘째가 바리새파 이 에세네파와 바리새파는 하시딤 그룹이 분화된 것입니다. 에세네파의 주요 그룹은 제사장 출신들이고 바리새파는 비레위인이었습니다. 보시면 에세네파, 사두개파의 공통점은 제사장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하대합니다. 왜냐하면 에세네파와 사두개파는 대부분 제사장 출신이다 보니까 비레위인인 평신도 바리새인들을 좀 하대했습니다. 하시딤에서 에세네파와 바리새파라는 종교그룹이 분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사역의 현장, 그다음에 신분, 그들이 믿고 있는 교리,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정경의 범위에 있어서 차이가 많았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유대교의 중심권력이 사두개파에서 바리새파로 전환된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로마에 대한 무장 독립운동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 꾼 사람들이 바로 열심당입니다. 이 열심당원들을 로마는 강도라고 불렀고 예수님 좌우에 달려 죽었던 강도가 바로 무장 독립운동을 펼쳤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열심당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고 세리 출신의 마태도 있었습니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쫓고 쫓기는 관계였을, 원수였을 그들이 예수로 인해서 하나된 공동체를 일궈낸 것이 바로 예수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이고 그것을 나중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4절에 예수님이 세상의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세상적으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로 인해서 하나됨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시간에는 신약 27권에 대한 전반적인 개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검색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서 녹취 7  (0) 2022.01.30
[시가서(시편) 3강]  (0) 2022.01.30
[시가서(욥기) 2강]  (0) 2022.01.30
[시가서(욥기) 1강]  (0) 2022.01.30
한국 천주교 약사  (0) 2022.01.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