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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놀라운 약속! (요 14:7-18)

by 【고동엽】 2022. 1. 29.

너무나 놀라운 약속! (요 14:7-18)

 


요즘 우리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주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던 120명 문도에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것이 임하였듯이 교회 안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요즘 바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들판에 나가면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꽃들이 핍니다. 꽃이 싫다고 꽃을 꺾고 돌아다녀도 꽃은 핍니다. 봄 바람 때문입니다.
지금 봄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 바람이 모든 성도들의 심령에도 가정에도 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을 때,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대단히 두려워하고 근심했습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영생 천국의 비밀에 대하여 말씀하시고는 너무나 중요한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째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하고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는 약속입니다. (12절) 둘째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는 약속입니다. (13-14절)
정말 믿어지지 않는 약속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데 그것을 제자들이 한단 말입니까? 정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며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까? 정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질까? 그러나 이 두 가지 약속들은 또 한 가지 주실 약속에 따라 오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께서는 이제 십자가 지실 구원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께로 가시지만,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신다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다시 승천하신다 하더라도 근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님은 분명히 다르시지만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이십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기도 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본문에서 아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사실상 한 가지로 역사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나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기적은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보았다면 하나님을 본 것이나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오신 것과 같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사역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제자들이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일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계셨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7절)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그 때 빌립이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8절) 질문하였는데,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9절) 말씀하시면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안되면 내가 그 동안 행했던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까, 사람이 한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처럼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말씀하신 의도는 예수님께서 앞으로는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게 하시려고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따를 때는 또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예수님이 승천해 가시고 눈에 보이는 분은 아무도 없는데 예수님은 똑같은 사역을 계속하신다. 성령님으로 주님은 역사하신다는 그 사실을 제자들이 믿어야 이제 성령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오늘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도 참 신비한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보고도 안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역사이지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깨닫게 하고 믿게 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님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하신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리고 예수님에게 순종하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성령님의 역사를 그냥 예수님의 역사라고 같이 쓰고 있는 부분이 여러 구절이 나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같이 쓰셨어요. 물론 성령님과 예수님은 다른 분이시지만 왜 이렇게 썼느냐 하면 성령님은 전적으로 예수님만 증거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믿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성경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입니다. 얼핏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신 것이 우리에겐 더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왜 그렇습니까?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육신으로 계속 계시는 것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데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성지순례 중에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드렸더니 권사님 한 분이 조크를 하셨습니다. 이상한데요, 그 주일에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서 큰 은혜로 역사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육체로 같이 계셨다면 예수님의 역사가 성남과 예루살렘에서는 동시에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 너무나 먼 곳이라 두 곳에 동시에 역사하는 것이 언듯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태양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을 보면 어떨까요? 동시에 두 곳을 다 봅니다. 성령님은 지구상의 모든 성도들에게 동시에 역사하실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다 성령님의 역사를 힘입고 살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었다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예수님을 단 5분 정도만 만나려 해도 몇 십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24시간 365일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친밀하고도 살아있는 관계 속에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고아’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데, 이 말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이제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아처럼 산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혼자 살아간다, 모든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한다, 고독하다, 보호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아도 실제로는 혼자 산다는 뜻입니다. 먹어도 자기가 책임져야 되고 잠자리도 자기가 책임져야 되고 자기 미래도 자기가 다 계획해야 되고 그 결과도 다 자기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결코 고아로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공자 믿듯이 부처 믿듯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정말 내 구주시고 내 주님이셔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병든 것이 고침을 받고 세상을 이길 능력을 받게 됩니다.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세심히 보신 분들은 깨달으셨겠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시기 보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신 관계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설혹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몰라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역사가 성령의 역사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에 보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사 중 하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이 하신 역사를 그대로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를 그냥 예수님의 역사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롬 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갖게 된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난 다음입니다. 그 때 하나님을 새롭게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것과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들어갔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학적이고 철학적으로 아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다가 제일 첫 구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부분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이 믿어지니 이미 모든 응답을 얻었음이 믿어졌습니다. 더 이상 다른 기도가 없어졌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고백이 그대로 믿어지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아버지 품 안에 있는 것 같은 은혜를 누립니다. 이것이 저만의 체험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의 체험이고 축복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모세나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좀 더 하나님을 잘 믿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빌립과 같은 심정이십니까? 오늘 이 시간에 ‘나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다. 내가 진짜 하나님을 분명히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면 신앙 생활을 분명하게 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이미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이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모든 믿는 자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하고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분명히 붙잡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옛 사람은 죽었고 이제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며 주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 분명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것이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요즘 안수 기도 중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도가 바뀌면서 그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안수 기도할 때 그저 간절히 하나님께서 그 성도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그리고 풍성한 복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나는 죽고 예수님이 하셔야 함 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안수할 때 나의 생각, 열정 조차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 역사하옵소서. 성령님, 역사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성령님의 역사입니까? 기도했습니다. 그 때 부목사들이 안수하게 하라. 내가 역사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심야기도회 때 부목사님들께 안수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으로 역사하신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주님 혼자서 이 땅에 계시면서 주님이 역사하셨다면 얼마나 하셨겠어요? 주님은 하나님께로 가시고 성령님으로 제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니까 복음이 유럽으로 아시아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저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 혼자 기도했다면 밤을 새워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약속하신 일임을 알았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하고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예수님은 3년 6개월 동안 열두 제자 중 한 명은 실패하고 열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한 번 말씀을 전할 때 3천 명, 5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3년 동안 사역하였으나 베드로는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고, 안드레는 러시아 정교회의 복음의 씨앗이 되었으며, 도마는 인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행 1:4-5)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모든 성도들은 아버지의 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주시옵소서! 저에게도 약속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두 다 성령님을 받습니다.
오늘 성찬을 합니다. 성찬은 놀라운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주님이 만나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라.’ 성찬을 통해서 주님을 우리를 계속해서 만나주시겠다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제 성찬을 받으실 때 여러분에게 오늘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어린 아이과 같이 믿고 구하십시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이 시간 저에게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는 영적인 회복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에게는 권능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두려움과 근심에서 평안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제게 확신을 주십시오.” 오늘 성령님께성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찬을 받기 전에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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