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약초요 오해는 독초다! (창 9;18-27)
사람들은 누구나 약초를 먹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독초를 먹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중국 진시황은 불노초를 구하여 오라고 신하를 일존으로 보냈습니다. 신하는 불노초 약초를 구하지 못 하여 돌아 오지 못 하자 중국 위햐에서 일본쪽을 바라보며 신하를 기다리는 조각을 하여 놓았습니다. 위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독초를 약초로 잘못 알고 먹고 죽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약초를 독초로 알고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는 영에 약초요, 오해는 영에 독초입니다.
노아를 통하여 조명하여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지구상에는 노아 식구 8명만 남고 모조리 죽고 말았습니다.
그 넓은 지구가 그의 정원이요, 그 넓은 땅이 모두가 노아의 밭이었습니다. 노아는 포도농사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히 포도주가 많아졌습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적당히 마신 것이 아니라 취할 정도로 마셨습니다. 도가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대낮에 벌거벗고 장막에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자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제일 먼저 본 것은 둘째 아들 함이었습니다. 함은 오해를 하였습니다.
<600년 동안 흠없이 살던 아버지가 방탕하고 있다. 술중독에 걸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홍수가 끝났다고 막가파식으로 살고 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감추어 주지 못 하고 형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 셈과 막내 아들 야벳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였습니다.
<아버지도 그럴 수 있다. 친구들은 다 죽었다. 말 상대가 없다. 혼자 고독하니까 술을 마시다 보니 괴음하셨다. 그럴 수 있다. 더우니까 자기도 모르게 옷을 벗어 던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덮을 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자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체를 보지 않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하체를 덮어 드렸습니다.
노아가 깨어났습니다.
자기가 실수하였을 때 함이 오해한 것을 알았습니다. 셈과 야벳이 이해한 것도 들었습니다. 행동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릅니다. 노아는 세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런데 그 후 어떻게 결과가 이루어졌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말 한 마디도 가감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함의 자손은 바벨로니아인,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 그리고 이집트인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셈족은 아시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이 되었습니다.
야벳족은 유럽인 미국인이 된 것입니다.
노아의 예언대로 함족은 셈과 야벳의 종이 되었습니다. 셈과 야벳이 함족을 종으로 부려왔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살고 있었던 민족이 가나안 민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점령하였습니다. 모두 죽이거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함족은 종살이의 운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고 지배하여 왔습니다. 단 한번도 아프리카가 유럽을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아무리 아프리카가 강한 힘을 기른다고 할 지라도 유럽을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경의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예언한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 함은 종이 된다. 이는 실현이 되었습니다.
2. 야벳을 창대케 한다. 이도 실현이 되었습니다. 미국 유럽을 하나님은 창대케 하셨습니다. 선진국 부요한 나라들은 다 유럽 국가입니다. 그리고 미국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온 세계를 식민지로 부렸던 나라들이 영국, 독일, 스페인, 포르튜갈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는 다 야벳족속들입니다.
3.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된다.
이는 실현중에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야벳의 하나님같이 보였습니다. 영국, 독일, 덴마크, 스페인, 미국이 선교를 지배하고 온 세계를 선교화시켰습니다. 기독교 국가로서 가장 놀랍게 부흥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쓰여진 칼빈 주석은 <셈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지금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일일지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구라파의 교회들은 저녁 3시쯤되어 모두 병들고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 그렇게 웅장하게 지었던 교회들은 모두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텅비고 있습니다. 휴가철이면 목사까지 휴가가고 아예 주일 예배도 드리지 않는 교회들이 수두룩합니다. 나는 독일에서 교회밑에 나이트 크럽을 세주어 주일 밤에도 위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밑에서는 술먹고 춤추는 곳을 여러 군데 보았습니다.
야벳의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지금 부흥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4개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4.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십니다.
미국 영국등 선진국은 창대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됩니다. 이 의미는 무엇일가요?
두 가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1) 결국 미국이나 구라파는 아시아의 문화권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의 선교사는 줄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이 세계 선교를 선도할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물질적으로 창대할지라도 결국은 셈의 영향권안에 들어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2)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칼빈, 케일, 랑게등의 유명한 주석가들 영감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메시야 예수님은 셈족이니까 모두가 복음화되어 예수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장막은 교회입니다. 모두 교회로 들어 오게 되면 야벳은 창대하지만 셈족의 장막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온 세계가 복음화되면 될 수록 셈족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해와 이해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치 백두산 천지의 물과 같습니다. 같은 연못 천지에 있던 물이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으로 가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나 천지 물이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을 통과하면 대서양으로 들어 갑니다. 대서양의 물과 태평양의 물은 도저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같이 살다가 엄청난 반대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가정에서 같이 살던 세 아들의 운명은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엄청난 갈림길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같이 강도짓하다가 같이 잡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같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쪽 강도는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우리를 구하여 달라.> 그 강도는 회개없는 사람도 아무나 예수님은 구원하여 주는 줄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예수님을 이해하였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해한 강도는 지옥으로, 이해한 강도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태평양으로 간 물과 대서양으로 간 물은 기적으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지옥에 간 강도와 천국에 간 강도는 기적으로도 만날 수 없습니다.
이해와 오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오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 가요?
1. 사실을 말하지 말고 사랑을 말하여야 합니다.
사실을 말하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말하면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보는 안경이 중요합니다.
함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실수를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들어난 실수를 또 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감싸주었습니다. 감싸주는 것의 다른 말은 이해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두 대 비행기를 동원하여 쌍둥이 빌딩 두 개를 폭파시켜 수 천명을 한꺼번에 죽였습니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전 세계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오사마 빈라덴 어머니는 공개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세계가 다 우리 아들 찾아 내서 죽이려고 하는 데 우리 아들 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수 천명 아니라 수백만명을 죽였어도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을 감쌀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오해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미워하면 이해할 것을 오해하게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2. 현재를 말하지 말고 내일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수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영원히 그렇게 평가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종합평가하여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는 관뚜껑을 닫을 때 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하였어도 실패자가 아닙니다. 마지막에 일어나면 성공자입니다. 실패가 실패자가 아니고 성공이 성공자가 아닙니다. 마지막 실패자가 실패자이고, 마지막 성공자가 성공자입니다.
야구는 9회 말까지 보아야 합니다.
축구는 후반전 마지막 호르라기 소리날 때까지 지켜 보아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를 한번도 안 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하였더도 일어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이란 실수를 한 번도 안 사람이 아니라 실수하였어도 다시 일어난 사람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불의한 일을 한번도 안 한 사람이 아니라 불의한 일을 하였어도 회개한 사람입니다.
서있는 사람은 한번도 안 넘어졌던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난 사람입니다.
잘 된 사람은 안 되는 일이 한번도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안 되었을 때 다시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난 사람입니다.
노아는 6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홍수때에 노아 가정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술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노아를 불의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 때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여야 합니다. 현재 실수하였어도 내일 잘 하면 됩니다. 시야를 넓게 가지면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게 됩니다.
노아가 술마시고 실수를 하였지만 노아를 실수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역사상 위대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전체적으로 평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안경을 쓰고 모든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보시든지 현재를 보시지 않고 내일을 보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7귀신 들린 여자였습니다. 창녀였습니다. 사람들은 깔보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현재 모습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변화되고 나면 놀라운 여자가 될 것을 미리 보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변화되자 십자가 밑에 가장 마지막까지 앉아 울었던 여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방문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현재로 보면 오해하게 되지만 내일을 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자녀들은 매독환자입니다. 어머니는 정신박약아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임신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가요?>
학생들은 일제히 말했습니다.
<낙태하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베토벤을 죽였다.> 만일 그 때 낙태하였더라면 이 세상에 베토벤은 테어나지 못 할 뻔하였습니다. 언제나 크게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고 넓게 보고, 높이 보고 깊이 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말하지 말고 내일을 말하면 오해할 것도 이해하게 됩니다.
지난 번 뉴욕에 갔다가 부흥회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선교 회장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약간 인색한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에게 와서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 집집마다 못 쓰는 폐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안 쓰는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이 많습니다. 다 교회로 가지고 오게 광고해주세요. 모두 모아 아나바다로 싸게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여 하나님의 일 하나 크게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부탁입니다. 진하게 광고하여 주세요.>
다음 주일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이렇게 광고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선교 회장님이 진하게 광고하라고 하여서 진하게 광고하니 진하게 들어 주십시오. 집에 있는 폐품 그리고 안 쓰는 가구, 안 쓰는 가전 제품들을 모두 다음 주일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바자회를 통하여 팔아서 돈을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여선교회장 생활비로 보태쓰도록 드릴 것입니다.> 예배를 마쳤습니다.
여선교 회장이 씩씩 거리며 목사님 사무실로 찾아 와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광고하세요. 잘 나가다가 왜 끝에 가서 그렇게 광고하세요. 언제 제가 생활비로 쓰겠다고 바자회 하겠다고 하였나요? 내가 얼마나 부자인데 내게 생활비를 보태 주겠다는 것인가요?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나를 망신시켰으니 다음 주일 정정하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회장님이 부자라고요? 아무리 부자면 하나님보다 더 부자요?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폐품, 안 쓰는 가전제품 팔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요? 회장님! 회장님 지갑부터 열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다가 돈이 모자라면 바자회를 하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계세요.> 이 말을 들은 회장님은 화내지 않았습니다.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기 지갑을 열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훌륭한 여선교 회장님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서 멋진 목사이고 진실로 훌륭한 여선교 회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어려움이 있어도 내일 잘 되면 됩니다.
현재 실수 많이 하였어도 내일 완전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해는 약초요 오해는 독초입니다. 이해하게 되면 약초가 되고 오해하면 독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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