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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감사하는 자와 눈물로 감사하는 자! (빌 4:3-7)

by 【고동엽】 2022. 1. 21.

웃음으로 감사하는 자와 눈물로 감사하는 자! (빌 4:3-7)

 

 


매 주일 사도행전을 읽어 가면서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는 중,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를 주제로 두 번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설교 역시 매우 시의적절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번 추수감사 주일이 감사 부흥회가 되게 하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일까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도 여러분 개개인에게도 강력한 감사의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는가?
지금 경제적인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움의 영입니다. 세상의 영이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은 예상되지만 근심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1930년대에 유럽을 휩쓸었던 무시무시한 전염병인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은 40도 전후의 고열로 대부분 2주 내에 죽었고 숨을 내쉴 때 나오는 호흡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었는데, 이 병에 걸린 사람과 시선만 마주쳐도 걸리게 된다는 소문 때문에 희생자들에게 처절한 고통을 주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한 순례자가 순례의 길에서 흑사병(페스트)과 마주치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흑사병이 대답했다.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가는 길이오."
며칠 뒤 순례자는 되돌아오는 흑사병을 보고 그에게 따졌다. "너는 일전에 나한테 바그다드로 5천 명을 죽이러 간다고 했는데, 어째서 3만 명이나 무고한 생명을 죽였느냐?" 이때 흑사병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내가 말한 대로 5천 명만 죽였소. 그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자기네들 스스로가 죽은 것이오."

여러분, 지금은 정말 믿음의 싸움을 해야할 때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시고 주님이시라면 경제적인 어려움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이길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상황이 아무리 어두워도 감사하는 성도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한 감사의 영으로 성령의 역사의 가장 뚜렷한 역사가 감사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성령의 역사를 부어주실 터인데 감사의 부흥회를 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감사 부흥입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성도들과 교회가 기쁨과 감사의 공동체로 굳게 서있을 때에만 비로소 교회는 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교수는 저서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추억을 소개합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집에 들어오셔서 사업의 파산을 가족들에게 알리셨을 때 어머니는 자기가 지닌 보석 목거리를 내다 팔아서 그날 저녁 잔치를 여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식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면서 친족들 가운데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레오 교수의 어머니는 조용히 그날 저녁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어떤 때보다 기쁨이 필요했던 저녁이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소감을 물었을 때 레오 교수의 아버지는 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보석보다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고 나는 그날 다시 용기를 갖고 내 인생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라고만 찬송하지 않고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방 가운데 선포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생각을 달리 하게 해주십니다. 올해야말로 제대로 감사 주일을 지켜야 할 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짜 믿음의 사람이라면 올해야말로 감사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야 할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해가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힘은 항상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또 감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느냐 하는데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일본 신학자 우찌무라간죠는 하나님에게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 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하나는 아무리 믿으려 해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가 안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원망과 불평 뿐입니다. 생각할 때마다 분합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생각할 때마다 이런 일도 감사하고 저런 일도 감사하고, 이 분도 감사하고 저 분을 생각해도 다 고맙습니다. 다 고마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심령이고, 생각하면 원망하고 분하고 한이 맺히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한 주간 감사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성경에 감사의 부흥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빌립보서를 쓴 사도 바울를 꼽습니다.
빌립보서는 다른 어느 성경보다도 기쁨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처한 상황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간수 네 명이 감시하는 차디찬 감옥 안에 매여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당한 참수터 성당에 가 보면 사도 바울의 목을 올려 놓고 도끼로 내려 쳐 죽인 돌로 된 기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순교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기뻐할 수도 즐거워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 밖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냥 '기뻐하라'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부족했던지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뻐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심령이 그리스도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였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 혹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17번이나 쓰여져 있습니다. 1장 8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가슴 속에는 예수님이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면서 성도들에게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지난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 갇혀서 돌이켜 보니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큰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너무나 감사했던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사,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사의 역사가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감사는 눈물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이 감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감옥에서도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으면서도 감사하는 바울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감사에는 웃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고 눈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올해를 돌아보니 하나님께 특별히 복받은 것이 있습니다. 시험에 합격했던지 승진했던지 돈도 벌고 집을 새로 샀던지 병든 몸이 고침을 받았던지. 이런 일이 생각나면 저절로 웃음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이런 감사도 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이런 복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받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감사는 엉뚱한 데다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감사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나오는 감사는 웃음 보다는 눈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지난 주간은 인턴 전도사 설교 주간이었는데, 그 주간에 고린도전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이 참 대단한 신앙인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생명을 걸고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도냐?”고 무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떠났을 때 들려오는 소문에 교인들이 다 저를 욕한다면 제가 상당히 섭섭하겠지요? 또 나름대로 열심히 목회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교인들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엉망이라면 크게 실망도 되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그 교회를 인해 얼마나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기를 ‘내가 너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실상과 그들의 행위를 보고 감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비록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우상의 도시 음란의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수준에 못 미치는 신자들이지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랑 받기 틀린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은 영적인 자녀들이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나고 허물이 많아도 내 자식이듯이, 사도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잊을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때 웃었겠습니까? 울었겠습니까? 틀림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신앙의 눈으로 감리 교회 사태를 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리교회 현실에 대하여 웃음으로는 감사할 수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감리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고 감리 교회 안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일어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리 교회에 덮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눈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실 역사를 믿으니 감사합니다. 눈물의 감사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며 감사하십니까?
“이 교회는 말씀이 좋고 분위기가 좋고 사람이 좋고 은혜가 충만하고. 다 좋습니다.” 하는 사람들은 웃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도 너무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 더욱 필요한 이들은 눈물로 감사드릴 이들 입니다. 교회를 깊이 알고 보니 이 교회에도 어려움이 많음을 알았을 때 건축비 부채도 많고, 사랑스럽지 않은 이도 있고 불평할 것도 많아서 ‘내가 왜 이 교회에 등록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눈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교회를 지키고 세워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예배당이 완공되지 못하고 시커먼 굴과 같았을 때, 예배당 공사를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때 신학교 동기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기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내려올 때 모두 엄청난 규모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함께 기도하신 후 용두동교회 조재진 목사님께 대표 기도를 부탁드렸는데, 잠시 묵상한 후에 기도하기를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감사합니다 하셨습니다. 그때 그 기도가 제 가슴을 쳤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구나! 불가능한 일이 감사 제목이 될 수 있구나! 알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본당 완공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될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기가 막히게 우리에게 감사하는 역사를 일으시킵니다. 개인 문제든 가정 문제든 기업의 문제든 성령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감사로 부흥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감사 신앙에 있어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장군의 지위를 빼앗겼고, 가정을 빼앗겼고, 제사장에게 갈 수도 없었고, 친구도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급했으면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을 갔을까요? 적진인 블레셋에 위장 도피도 했었지만 침을 흘리고 미친 척하고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윗은 광야를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살던 궁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빗줄기, 모래 폭풍과 우박이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곳입니다. 한참을 헤매던 다윗은 저 너머로 사해가 보이는 한 동굴에 들어가서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곳이 나중에 유명해진 아둘람 굴입니다. 햇볕이 들지 않고 조용하며 안전하였습니다.
어두컴컴한 굴 속에 앉아 있는 다윗을 그려 보십시오. 세상 천지 어디에도 갈 데가 없습니다. 광야의 굴 속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았습니다. 누웠던 다윗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 때 드린 기도가 시편 57편입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렇게 울며 기도하다가 다윗의 마음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억해 냈습니다. 들판에서 홀로 양을 칠 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외롭게 버려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찬양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 57: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감사는 눈물 없이 나올 수 없는 감사입니다. 다윗의 심령 안에 진정한 감사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의 감사가 터질 때 삶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삶은 변화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만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성령에 의하여 눈물의 감사가 터지므로 말할 수 없는 파멸의 위기에서 놀라운 삶의 승리를 얻었던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횟 크리스웰(Whit Criswell)이란 사람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젊었을 때는 교회에서도 일했습니다. 하지만 도박에 손을 대면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월급을 받기가 무섭게 도박판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도박에 정신이 팔려 야금야금 빌려 쓴 돈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결국 크리9스웰은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서 돈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은행 관리자가 잔고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조사 받으러 가기 전날 밤, 크리스웰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차를 몰아 교외 한적한 곳으로 가서 총을 꺼내 관자놀이에 들이댔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몇 차례 연습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총구를 이마에 대고 중얼거렸습니다 당기라고. 당겨! 이 멍청아! 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야!"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옥에 갈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새벽까지 씨름을 하다가 만신창이가 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유서를 발견한 가족들은 벌써 경찰에 전화를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와락 껴안았습니다. 경찰관이 수갑을 채워 연행했습니다. 크리스웰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한없는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거짓의 사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를 얻은 듯 홀가분했습니다. 더 이상 남을 속일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감방에 들어가 머리를 숙인 횟 크리스웰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죄의 종노릇하는 데서 건져내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계속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는 출소한 뒤 교회 일을 도왔습니다. 지역 교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에는 교회의 정식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인근 다른 교회에서 크리스웰을 담임 목회자로 초빙했습니다. 지금 그 교회는 켄터키 지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멸의 위기에서 눈물의 감사로 기적을 경험한 또 한 명의 다윗이 되살아 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감사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간 추수감사 주일을 준비하면서 감사의 고백문을 작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감사의 고백이 앞뒤로 빽빽이 채워지면 산다! 기적이 일어난다! 복받는 문이 열린다.’고 믿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고백을 작성할 때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될지 깨닫게 해주십니다. 감사는 받은 것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가 정말 받았다고 깨달아져야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바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알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이 받은 은혜와 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감사의 고백을 종이 앞뒤로 가득 쓰면 여러분은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이 간증이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십시오. 감사의 기적을 주십시오. 감사의 부흥을 주십시오. 성령님 이 시간에 제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감사로 두려움을 이기고 절망을 물리치고 미움, 원망을 이기게 하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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