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감사가 나오면 산다! (시 50:14-15)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행복한 한 주간, 군선교사, 미자립교회 목회자 부부 정성껏 섬겼습니다.
그런데 너무 큰 반응에 당황하였습니다.“대단해요!”우리 보다 더 큰 교회, 더 크게 섬기는 교회도 많은데 왜 그럴까? 아마 빚 많은 우리 교회 형편을 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 후, 도와달라는 교회가 쇄도하였습니다, 다 도와드릴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이러한 섬김에 대하여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올 때, 예배당 공사가 중단 상태였고 교인은 500여명 남았고 빚은 이미 130억이나 되었습니다. 완공을 위하여 최소한 200억 가까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지 않으면 담임하겠다고 나서기가 불가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풍랑을 잔잔케 하신 주님이십니다. 주여 저에게 이 교회로 가라 하셨으니 이제 내가 여기서 목회하는 것은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님 만 믿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일본 중앙영광교회 5억을 도와야 했을 때, 은행 빚을 내어서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교회 건축 문제는 주님께 완전히 맡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예배당을 완공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엄청난 부채가 있었지만 우리는 예배당을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빚은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줄 믿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믿음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240억이 넘는 엄청난 부채가 계속 마음을 눌러오는 것입니다. 이자도 갚지 못할 상황에 몰린 적도 있었고, 심지어 심장 쇼크도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제 믿음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것인가?
정말 하나님께서 부채를 다 갚아주신 것을 믿었다면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려면 믿는다는 말을 하지 말든지!
누구든지 이 교회에 와 보고 빚 없는 교회 같이 보여야 믿음이 아닙니까?
이따금 교인들 중에“빚 많은 교회에서 낭비가 심하다”는 책망 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면 정말 그런가 살피고 조치를 취합니다. 낭비는 결코 믿음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빚 없는 교회처럼 보인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평안입니다.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늘 제자들이 믿음없음을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고, 건강의 어려움, 가정의 어려움, 자녀들의 어려움 등이 늘 우리를 눌러오지만, 어려움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움과 염려의 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짜 믿어야 합니다. 염려 근심 속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얼마나 모순입니까?
그러나 두려움도 염려도 없는 믿음이 대단하지만 아직 진정한 믿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목회하면서 보니까, 선천적으로 성격이 천하태평인 사람도 있더라구요. 처음에는 믿음인 줄 알았습니다. 생각이 모라라서 겁이 없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하나님을 믿을 것이면 차라리 내 주먹을 믿어라” 하는 사람도 얼핏보면 믿음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두려움이 없고 염려하지 않는다고 믿음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환란 당한 자에게 하나님께 구하라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시 50:14-15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 감사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찬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기 전에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예수님을 믿을 때 만이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보다 교세가 훨씬 큰 어느 교회는 예배당 건축을 포기하고 학교 등을 빌려 쓰면서 예배당 건축헌금 수백억원을 모아서 사회적 기업에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왜 너희는 못하느냐?”하셨습니다. “저희 교회 부채가 많아서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저 스스로 모순임을 깨달았습니다.
빚을 다 갚아주셨다면 무엇으로 주님께 감사할까? 이 마음으로 빚없는 교회처럼 저희도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 감사주일 헌금을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식당교회, 도서관교회, 공부방교회, 하나 하나 씩 세워갑니다.
예배당 완공 후, 큰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차를 타고 오다가 괴로와할 이들이 많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교회 주변의 작은 교회, 부흥되면 어려운 교회를 많이 돕겠습니다. 지금부터 하라. 1000명 정도 될 때부터 미자립교회 선교사 파송을 시작, 속회는 1년에 몇번은 미자립교회에 가서 예배드립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예수님을 정말 만나면 우리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감사가 됩니다.
평안하다, 믿는다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사로 기적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도저히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어서 짐승들이나 사는 광야 굴 속에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두컴컴한 굴 속에 들어간 다윗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그 때 드린 기도가 시편 57편입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렇게 울며 기도하다가 다윗의 기도가 바뀝니다. 들판에서 홀로 양을 칠 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지금도 외롭게 버려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눈물과 한탄의 기도가 찬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시 57: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의 눈에는 눈물이 펑펑 흘렀을 것입니다. 감사가 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고 하셨는데, 이 믿음은 정학하게 말하면 감사인 것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다윗만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지은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몽골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벌러르'라는 자매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교회로 들어오더랍니다. 이 자매는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 가지고 찾으러 뛰어나갔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하니까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왔다는 겁니다. 몽골에서의 소는 삶의 기반이요 재산 목록입니다. 소 한 마리가 보통 사람의 1년치 월급과도 같습니다. 이 자매는 예수 믿은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소를 포기하고 교회로 달려온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배를 마치자마자 예배당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잃었던 소가 예배당으로 찾아온 겁니다. 소를 잃어버렸을 때에 소를 찾는 기쁨을 포기하고 예배의 기쁨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은 예배의 기쁨과 소를 찾는 기쁨을 모두 얻게 하셨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자매이지요.
감사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한번은 나라를 위하여 너무나 마음이 안타깝게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입니까?”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바꾸어“우리나라를 인하여, 이 민족을 인하여 감사합니다.”고백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감사하니까 깨달아집니다. 우리 민족의 은혜에 대한 욕심, 경쟁심에 가까운 열심, 계산없이 달려드는 기질을 통하여 세계 선교에 쓰임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순종하여 감사하였더니, 정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정말 너는 교회 빚이 많은 것에 대하여도 감사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저는 교회 빚이 많은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예배당을 완공하려고 결단한 것은 본당을 계속 굴처럼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건축법을 어겨 계속 벌금을 물게 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예배당을 그렇게 빚을 내어 짓냐? 큰 교회를 이루려는 욕심많은 목사라는 비난이 사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제게“유 목사님, 교회 빚이 많다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 다 빚진 자라고 하지 않았나요?”하시는 것입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
물론 성경의 빚진 자라는 의미가 재정적인 빚과는 다르지만, 빚진 자의 심정만큼은 같은 것입니다. 저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그 심정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8년간 엄청난 부채를 갚아가면서 빚진 자의 마음이 어떤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이렇게라도 깨닫게 하시는군요. 이제부터 정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사명 감당하겠습니다.”
어려운 교회 목회자. 선교사, 그들 앞에서 저는 빚진 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섬기면서도 지난 8년간 이자를 포함하여 150억을 갚았습니다.
여러분, 빚이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빚진 자’의 심정을 이렇게라도 깨닫게 하시는구나 감사하면서 그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여 복음과 사랑을 전하며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토마스칼라엘은 평생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아내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는 그 시체를 붙잡고 "여보, 5분만 눈을 떠주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하고 꼭 해주고 싶어." 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감사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고난이 크다면 이제부터 진짜 감사함으로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개그맨들도 감사합니다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감사는 남보다 무엇을 많이 가졌다거나 원하는 것을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오는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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