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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들도 함께 기뻐야 진정한 감사이다! (신 16:13-17)

by 【고동엽】 2022. 1. 16.

어려운 이들도 함께 기뻐야 진정한 감사이다! (신 16:13-17)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11월 셋째 주일에 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주일을 정하여 지킵니다.

해마다 감사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해는 감사할 것이 넘칠 수도 있지만, 어느 해는 어려운 일만 겹친 해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마다 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제게는 감사절이 힘든 절기입니다. 제가 어릴 때,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날 교인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살기도 힘들고 불안한데, 뭔 감사주일이야.”그 때 제 마음에 교인들이 감사주일을 싫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잡았던 모양입니다. 지금부터 대략 40년 전일이니 정말 힘들고 궁핍하던 때 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감사절이 되면 제 귀에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가 많이 좋아졌지만, 제 기억에 제 어릴 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하다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푸념 섞인 기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하나님, 좀 품위있게 목회하고 싶어요. 가져오라! 헌금하라 하지 않고 가져가십시오. 받아가십시오. 부담없이 오십시오. 그렇게 목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감사 절기를 지키라 하시고, 감사헌금을 유난히 강조하십니다.

16-17절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정말 하나님 답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고 불안한 요즘 형편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모르셔셔 우리에게 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알아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매년 감사주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이유가 언제나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며칠간 작년에 돌아가신 한 목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교우들에게 남긴 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저보다 두 살이 많으신 분인데, 참 목회를 잘하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마음으로 교우들에게 남긴 글들을 하나 하나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무슨 생각이 들까? 그 목사님의 글 속에는 시종“감사하다.”하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임종하기 얼마 전, 섭섭한 일이 있어서 12년 동안이나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교회 사무장이었던 분을 찾아달라고 하여 만나는 장면은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그 책을 덮으면서 내게도 감사할 것이 참 많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았으며 감사합니다 하라고 하고 선생님께도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엎드려 절 받기 식이지만 부모에게도 감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십니까? 부모가 보기에는 자녀들이 너무나 귀한 은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눈에 보기에는 자녀들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해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자녀들은 늘 불만투성이입니다. 그것이 부모에게는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은 감사하게 하고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복을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사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시누이 둘이 출가했답니다. 그런데 한 시누이는 친정에 오면 항상 혼수감이 적다느니, 나를 위해서 해주신 것이 무어냐는 등의 불평하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시누이는 집에 올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평하는 시누이가 오면 시어머니가“얘야, 이것도, 저것도 다 감추거라, 네 시누이가 보면 큰일난다.”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시누이가 오면, 시집으로 돌아갈 때에 이것도, 저것도 싸주고, 더 싸주지 못해서 안타까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받은 것에 감사가 없는 사람, 끊임없이 요구만 해 대는 사람,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 주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감사와 축복은 밀접하게 연관된 것입니다.

잠 3:9-10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라”

고후 9:6-10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감사절을 힘써 지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너무나 쉽게 감사를 잊고, 불평 원망 하는 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비록 광야에서 살았지만 기적을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매일 만나를 먹고 이따금 메추라기를 먹었고,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마셨고, 여벌 옷도 신발도 없었는데 옷이 낡아서 못 입었다거나 신발이 해어진 사람도 없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고 누리는 은혜에 대하여는 아무런 감사가 없었고 오히려 계속 원망 불평만 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불평 원망의 죄가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 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사람의 뿌리깊은 죄성 중의 하나가 감사를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제 새가족이신 은퇴 장로님 한분이 우리 교회 교역자들은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참 인자하셔서 부교역자들에게 부드럽게 대하실테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입니다. 아마 부교역자들은“하나님은 아시지요.”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드리지만 저도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큰 잘못임을 깨닫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10년쯤 전입니다. 한번은 어떤 부 교역자에 대하여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 일로 잘못한 교역자를 심히 꾸짖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제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한마디로“목사님이 무섭습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메일을 받고 비로서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한 주간 기도했습니다.“주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그때, 들려주신 성령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오직 기쁨과 감사함으로 행하라!’그러나 곧 질문이 나왔습니다. “무조건 기뻐할 수 없는 일도 있지 않습니까? 교회 일이 제대로 안되고, 불성실하고, 잘못되고 있을 때는 책망하고 바로 잡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성령님께서 되물으셨습니다.‘그래서 좋아졌느냐?’나는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아닙니다.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화날 일은 더 많아지고, 관계는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기쁨과 감사로 행하라, 모든 일에 모든 순간에 그리하도록 힘쓰라. 그리고 문제에 대하여는 오직 쉬지 말고 기도하라.’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교회를 치리하는 일과 사람들을 거느리는데 있어서 내가 일하지 않고 주님께서 역사하도록 하려면, 나는 쉬지 않고 기도하고, 그리고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화내고 원망하면 주님은 아무 일을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망 불평의 죄를 짓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감사절을 주시고 우리를 망하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건강을 잃었습니까? 사업이 어려워졌습니까? 가정에 위기가 닥쳤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까? 자녀가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까?

그렇다면 종이를 펼치고, 감사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묻고 받아 써 보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429장 가사를 보면“세상 모든 풍파 약한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했습니다. 환란을 당할 때, 우리에게 더욱 감사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가 나오면 삽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께 귀를 기울이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받은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절기를 주시고 반드시 감사하게 하시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4절에서 추수감사절이 노비나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와도 함께 즐거워할 절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추수감사주일은 하나님께도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가난한 이웃에게도 기쁜 날이 되어야 진정한 추수감사주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 제사를 드릴 때, 이상한 규정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중에 바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사가 있었는데, 감사의 제사인 화목제입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되, 그 날로 다 먹으라는 것입니다, 혹 서원제인 경우에는 다음 날까지 먹어도 되지만 그 경우에도 셋째 날이 되면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리하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제물로 비둘기를 잡거나 곡식 가루를 바칠 수 있지만, 좀 넉넉한 가정에서 소를 잡고 양을 잡는 경우, 하루나 이틀 만에 그것을 다 먹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감사 제사를 드려 잡은 제물을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게 하시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2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 곡식이든 감람나무든 포도나무든 자기 것이라고 다 추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일부를 남겨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추수하다가 단을 떨어뜨리거든 줍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어 갈 수 있도록 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생길 때, 언제나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그들이 기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그토록 감사하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사가 풍성하면 어려운 이들은 그만큼 더 기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감사하는 자가 더 복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추수감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진짜입니다.

저는 올해 1년이 참 행복하였습니다. 주님과 가까워진 것도 그렇지만, 그 어느 해 보다 어려운 이들을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우리 교회는 모든 감사절 헌금을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다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 헌금은 분립 교회 개척에 사용하였고, 추수감사주일 헌금은 재난구호비로 전액 사용합니다.

2년 전 추수감사주일 설교를 준비하다가 이 본문을 강해하는데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추수감사헌금은 우리 교회 살림에 사용하지 않고, 전액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러나 깨닫기는 했지만 우리 교회 재정 상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장로님들도 동의해 주셨습니다. 그것아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지진 때, 신속히 재난 구호비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수해가 났을 때, 구호비를 보내주었습니다. 강원도의 어려운 교회 수리를 해 주었고, 많은 어려운 시설과 사람들을 돕고, 밥차를 구입했고, 노숙자 급식을 하고, 무료 식당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교회 재정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올해도 전액 재난구호비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어려운 주거환경에 사시는 이들을 위하여 노후 주택을 개량해 주는 일들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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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식당교회, 도서관교회, 공부방교회 시작하게 됩니다.

언젠가 미자립교회 실태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목회자가 생활이 되지 않고 교회가 존폐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동하여 오는 교인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죄책감 같은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되, 한 교회씩이라도 생활비를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사역에 전념케 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힘을 다하여 감사합시다.

우리의 감사가 넘치면 어려운 이들은 그만큼 더 기쁠 것이고 하나님의 기쁨이 더 크실 것이고 우리에게도 복이 될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체면 치례로 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진정 경외함으로 드립시다. 복을 심읍시다.

감사절은 우리의 삶을 뒤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명한 심리학자인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추억을 소개합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느 날 집에 들어오셔서 사업의 파산을 가족들에게 알리셨을 때 어머니는 자기가 지닌 보석 목거리를 내다 팔아서 그날 저녁 잔치를 여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식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면서 친족들 가운데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레오 교수의 어머니는 조용히“그날 저녁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어떤 때보다 기쁨이 필요했던 저녁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소감을 물었을 때 레오 교수의 아버지는 “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보석보다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주었고 나는 그날 다시 용기를 갖고 내 이샌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감사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감사절을 마음을 다하여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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