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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요 18:1-11)

by 【고동엽】 2022. 1. 21.

아직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요 18:1-11)

 

 

이제 요한복음 강해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요한복음 18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생애 마지막 기사가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큰 은혜가 있는 부분입니다. 저에게는 요한복음 18장부터의 강해가 가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등산으로 말하면 산의 정상 부분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처음 듣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우들은 너 무나 많이 들었던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십자가가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십자가” 사건으로 생각하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놀라운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만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아마 상당히 많은 분들은 여전히 마음이 두려우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니! 이 말씀이 나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하신다면 착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에 예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점에 대해서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냐가 아니라, 십자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당당함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똑바로 서서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무리들을 만나셨습니다. 오히려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병정들이 누가 나사렛 예수인지를 물을 때 내가 바로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권세에 병정들이 쓰러졌습니다. 병정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가는 것인지 호위해 가는 것인지 이해가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때 당당하셨습니다.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붙들려 가실 때 그들은 대단히 두려웠고 십자가 앞에서 우왕좌왕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래도 수제자라고 예수님이 병사들에게 붙잡히는 모습을 보고 이를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검을 휘둘렀습니다.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칼 쓰는 솜씨는 없었거나 겁을 먹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결국 붙들려 가시자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2절에 보면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한 제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극심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닥치면 흔들립니다.

그러나 누구나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빌 3:7-12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십자가의 길을 억지로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길을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모든 유익한 것을 다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 중에 혹시 지금 이 시간까지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두렵다고 할지라도 오늘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여러분 마음을 바꾸어주셔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이 길을 달려가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두려움이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느냐, 아니면 십자가의 길에 대한 두려움이 다 사라졌느냐? 하는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힘들다 어렵다, 안된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핵심이 아닙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얼마나 큰가? 희생이 얼마나 큰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길이 정말 사는 길이고, 또한 그 길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길임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려운 사람에게는 아무리 작은 길이라고 그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두려울만한 일이 있어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의 영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이만 들어도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두려움이 어떤 실체가 있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고 두려움의 영 때문에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두려움으로 우리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풀무불과 사자 굴로 위협합니다. 사람들에게 돌을 맞게 합니다. 목적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여 예수님과 분리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나도 있고,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을 나도 가야 하는데 그 길이 십자가를 지는 길일 경우에 마귀는 두려움으로 나를 묶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나는 못할 것 같아, 나는 도무지 할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합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힘들어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제거하시기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 지옥에 던져지는 사람들 리스트가 나옵니다. 가장 첫 번째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 같습니까?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계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러분, 두려워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입니까?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핍박과 환난을 두려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중간에 떠난 자들을 말합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가지 못합니까?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자니 겪어야 될 고생이 있고 희생이 있고 져야 될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이킨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결코 소홀히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심각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끝까지 동행하기 위하여 굶어도 좋고 망해도 좋고 죽어도 좋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에 아직도 두려움이 있습니까? 정말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봐 두렵습니까? 내가 망한다 하더라도, 내가 혹 죽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예수님계신 곳에 내가 있고 주님이 가시는 그 길에 내가 갈 것이라고 하는 답이 와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여러분 안에 만약에 굶을까 두렵고 망할까 두렵고 죽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아직까지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아직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으로는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다고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366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라 사랑하라는 말씀보다 훨씬 더 많이 성경에 나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두려움의 영적인 실체와 뿌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 두려움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복을 받는 길을 열어주셔도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 길을 가는 동안에 내가 겪어야 될 어려움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혹시 힘들어서 십자가지는 것을 외면하고 안락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입니까? 정말 십자가를 지는 길을 외면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어 행복한지 알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는 다행히 십자가의 고난을 피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졌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하였을까?’ 예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전혀 기쁘지도 않았고 고기를 잡으러 돌아간 것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한 베드로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서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어주셔서 겨우 회복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두려움의 영이 떠납니다. 십자가의 길이 복받는 길임을 알게 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 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님은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가셨던 예수님 그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셨으니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오신 사람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두려워서 다 떠났습니다. 심지어는 마가복음 14장 52절에 보면 어떤 제자는 잡으려고 오는 로마 병정이 겉옷을 붙잡으니까 그만 옷을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채 스트리킹해서 도망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고 완전히 변했습니다. 담대하게 전도하고 하루에 3천명씩, 5천명씩 구원시키는 사도가 되었고 순교로 그 사명을 마치는 대 역사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시면서 두려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가고 주님이 계신 곳에 있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된다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버님이 목회하시는 것을 보고 자라면서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었지만 고생스런 삶, 특별한 사역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토밭 사역지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옥토가 되라고 했지 옥토밭만 찾아다니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그 정확한 뜻을 모르고 나름대로 해석하였습니다. 편하고 대접받고 편안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복이고 성공인 줄 알았습니다.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체험하고 달라졌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기에 더 좋다면 한 쪽 다리를 바치고 장애인이 되겠다고 기도했던 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대학원 졸업을 포기했던 일,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 돌짝밭 사명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서원했던 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SIM(serving in mission) 필스테인 선교사가 한국에 오셔서 중국의 지하 교회 이야기를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 여성 두 명이 지하 가정교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곳, 어떤 전도자도 가지 않으려 하는 곳에 우리를 보내주십시오.
당신들은 예수 믿은 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초신자인데요. 목사님의 이 말에 두 여성은 우리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몇 년 동안 예수 믿어야 복음 전하러 갈 수 있다 는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곳에 가려면 특별한 훈련을 좀 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보았는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수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정말 가고 싶다면 선교 단체를 소개해 주겠소. 그 때 두 여 성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냥 어디로 가라고만 해주십시오. 우리를 파송할 선교 단체를 찾아서 언제나 전도하러 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목사님은 그들을 중국의 어느 외딴 섬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간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크게 걱정을 하였고, 실제로 그들은 바다 속에 집어넣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2년 후에 그들은 전도지를 구하기 위해 파송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들을 유럽에서 오신 목사님들 앞에서 간증을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뭔가 했을 것 아닙니까? 소문으로는 2년 동안 13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하던데요. 그 말을 들은 유럽의 목사님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도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3개가 아니고 31개입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생겼습니까? 목사님은 믿는 사람이 220명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 교회에 7명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제일 작은 교회의 교인이 220명입니다. 그러면 제일 큰 교회는 몇 명입니까? 4천 명이 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는 그냥 기도했습니다. 물론 기도했겠지요. 기도 말고 또 뭘 했나요?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물어봤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우리는 두렵게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더욱 힘들게 느껴집니다.
‘믿기만 하면 될까?’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사명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십자가로 져야 할 어려움이 큰 것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어떤 고난도 두려워지지 않는 기적을 더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 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여전히 “목사님, 저는 왜 안되지요? 저는 여전히 두려운데요.”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좌절하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렵게 하는 것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떠나고 믿음이 생깁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커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를 바라보는 자는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9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잡으러 온 병사들에게 제자들은 가게 놓아주라고 하셨습니다.
(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제자들에게 어서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때였기 때문입니다. 성령받지 않고는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예수님은 아셨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책망 한 번 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전도자의 길을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두려움을 이기게 해 주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문제는 고난이 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이기 힘을 주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두려움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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