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22-32
우리는 세상이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기를 기대하고 경제 형편이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이웃이 변하기를 기대하고 남편이 변하기를 기대하고 아내가 변하기를 기대합니다. 변화에 대하여 기대하는 마음이 새해에도 여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변화에 기대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사람으로 하여금 원망으로 바꾸어진 경우도 많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한 평생은 변화에 대한 기대 심리에 매달려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좀처럼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약점에 대해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의식이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나 상대방보다는 명분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변화를 말할 때에 타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변화란 자신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인생의 자기 변화입니다. 인생에게 아무리 많은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야곱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삼촌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는 야곱이요 형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여전히 야곱일 뿐인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외삼촌의 변화요 형의 변화요 상황의 변화였습니다. 허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야곱 자신의 변화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변화된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찾아오시면 인생을 변화시키십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내면을 변화시키십니다. 인생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목적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사람이 훌륭하던 훌륭하지 못하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변화는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시기 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의 생에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극적인 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속이기를 잘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이미 '속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얍복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의 민족이 그의 이름을 따서 나라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되기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몇 가지 과정을 분명한 표현을 통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우리가 현재 있는 상습적인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맡기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변화시키는 일이 수 천년 전에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몇 가지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위기의 자리에 두시는 것입니다. 야곱과 천사는 오랜 시간동안 씨름을 하였고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무승부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날이 새면서 야곱은 씨름으로 매우 피곤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면 이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원하실 때 우리의 모든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게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망 속에 우리를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을 붙잡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만 두도록 인생의 주위를 위기를 사용하십니다. 인생이 어떤 위기에 있다면 하나님을 보라는 신호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의 둥지를 들어서 흩어 놓습니다. 어미는 그 둥지를 불편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새끼를 강제로 나는 것을 배우도록 합니다. 이것은 새끼 자신들의 좋은 삶을 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만드십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환경은 우리의 환경에 위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위기가 아니면 관심을 하나로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위기가 있다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여러 곳에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환경을 제거하시고 사람을 외로움에 두실 때가 있습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그 밤에 얍복강가에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관심을 하나님께 두게 되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 인생에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가족이라도 방해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분방하지 말라고 한 것도 거꾸로 보면 오직 하나님께 나가기 위한 일에는 배우자라도 방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을 꺽는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이 계속해서 놓지않자 환도뼈를 쳐서 환도뼈가 위골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도망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밤새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내게 무언가 새로운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도뼈가 위골되었으니 이제는 도망도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그 몸에 가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우리 자신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들은 쉽게 포기하면서도 내 자신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을 포기한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도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그러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은 마지막 자신 생명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주어진 이름인 것입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경험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천사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었을 때 그는 야곱이니다 고 했습니다. 천사는 이미 야곱을 알고 계셨습니다. 물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었던 이유는 그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대답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삶과 충성을 스스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대답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사람마다 자신의 충성을 스스로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고백하게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롬 14:12)"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문제를 시인하지 않는 한 우리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약점도 부족도 솔직히 시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솔직히 자신을 시인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일에 솔직하지 못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할 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우리의 현재 모습을 솔직히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시고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했습니다. 이 말은 과거의 너는 진정한 의미에서 네가 아니다. 앞으로 미래의 네가 너 자신의 모습이다 고 했습니다. 연약하고 간사한 네가 너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변화를 받은 네가 너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부족도 나의 모습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될 미래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점과 부족에 붙잡힌 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로 당당히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만나보면 과거의 자신을 붙잡고 사는 사람도 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과거를 털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를 붙잡으면 우리는 비참해지고 하나님을 만난 미래를 붙잡으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출처/조병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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