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고 망하는 것은 주님의 손에 있다! (행 5:33-42)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먼저 기도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오늘 저녁 특별기도회를 위해서 교회 부채상환을 위한 기도를 했으면 했었습니다.
지난 주간 전군 군목 수련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북한 위기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전쟁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있습니다. 이미 대응하는 모든 작전의 권한을 일선 지휘관들에게 주어져 있어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대단히 급박한 상황에 있습니다.
교회 건축비 상환 보다 더 급박한 기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 나라가 전쟁에 휩싸이면 나라가 무너지면 교회 건축비가 상환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6.25 전쟁 직전까지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의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625전쟁 때, 피란 내려가서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회개집회를 했습니다, 해방 후 극심한 교단 분열을 회개하고 민족을 살려달라고 몸부림쳤던 기도가 우리 교회 역사에 있었습니다. 민족이 중요한 갈림길에 있습니다.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쓰임받는 민족으로 일어나느냐. 아니면 여기서 무너지느냐 하는.
지금 이 민족의 갈라진 틈을 막아서서 기도할 자가 필요합니다.
소돔 성은 타락해서 유황 불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이 시간에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군부를 사로잡고 있는 세력들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고, 이 민족을 지켜주시고 특히 교회와 성도들이 민족의 무너진 틈을 막아서서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온전히 쓸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해서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다 함께 나라를 위해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통성기도)
저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역사 공부를 조금만 해도, 사람 사는 것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공, 인기, 재산, 권력, 건강도 다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은 무너질 것을 붙잡고 살다가 비참하게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불일 듯 일어난 예수운동, 복음운동도 이렇게 무너질 뻔 했습니다.
상황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은 불같이 진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습니다. (33절)
그때 하나님께서 이 복음 운동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주셨는데, 한번은 감옥에 천사들을 보내서 사도들을 건져내시고, 오늘 본문에 보면 당시 유대교인들로부터 존경받던 율법교사 가말리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가말리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38-39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했던 가말리엘은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복음을 듣고 무언가 느껴진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난 날에 있었던 드다의 사건과 갈릴리 유다의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둘 다 세상을 뒤엎을 것 같이 대단하였으나 두목이 죽으니 결국 사그라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운동, 복음 운동도 두목인 예수가 이미 죽었으니 결국 서서히 무너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도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서서히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채찍질만하고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기를 금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일도 주님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가말리엘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가말리엘의 수준에만 머무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지켜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가말리엘은 말년에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이 말을 하는 순간 가말리엘이 예수님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거나 복음에 대하여 확신을 가진 증거는 없습니다. 그는 방관자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지켜보자는 태도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여전히 지켜보자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일까? 좀 지켜보자!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살고 성공하는가?’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자리에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가말리엘은 2천년 전 사람입니다. 이제 막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이 전해질 때 당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가말리엘은 예수 운동과 전도 운동이 진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본인이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켜보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2천 년기간 동안 가말리엘이 말한 결과를 이미 아는 사람들입니다. 가말리엘이 내건 조건은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예수 운동, 복음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맞습니까? 맞지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증거지요. 역사를 보십시오. 유대인들의 박해, 로마 황제들의 박해, 공산당의 박해 등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복음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왕성하게 전파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람으로부터 났다면 벌써 꺾어졌겠지요. 그런데 그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와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결론은 났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인생을 걸어야 할지. 무너지는 쪽에다가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분 중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철저히 살아야지요, 훈련도 받으셔야지요, 제자가 되셔야지요." 그러면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그럽니다. “그저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정도도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잖아. 먹고도 살아야 되잖아. 목사는 직장 생활 안해 봐서 그런 거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예수 더 열심히 더 정확하게 분명히 못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정말 내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으니까 먹고 사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표현대로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하나님의 역사인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분명한 사인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님은 진짜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인생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을 아직도 여러분이 분명히 알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안해 주신 것입니까?
젊은이 교회에서 얼마 전 괴산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후 수요예배 때, 젊은이교회 담당 차길웅 목사님께서 한 청년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괴산 단기선교를 가야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가라는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안타깝더랍니다. 설교 시간에 그렇게 말씀했고 광고를 통하여 몇 주째 광고했고 주위에서 그만큼 권면하였는데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어떻게 말씀하셔야 된다는 말인가? 그 청년은 결국 단기선교에 동참하였고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증거를 안 주신 것입니까? 우리에게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고 순종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너질 것에 인생을 걸고 사는 것입니다.
마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마지막에 무너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하고 두렵겠습니까? 못 들은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부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택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때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했기에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면, 그것으로 끝이라면 아쉬움으로 마치겠지만 영생이 있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이미 알았고 권면도 받았고 기회도 있었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무너지는 인생과 일어서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세상에 끌려 사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먹고 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죽도록 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는 제목으로 설교집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제목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에 대하여 그렇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오히려 큰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면 어떻게 됩니까?
열심 보다 먼저 점검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 글을 연재하고 있는 플러스인생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신앙계라는 이름으로 나왔었습니다. 3월호에 유정옥 사모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은혜받았습니다. 미국 교민 집회를 갔다가 현재 그들에게 닥친 경제적 고통의 어두움이 죽음의 그림자 처럼 짙게 드리우고 있음을 보았답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두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돈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돈의 재앙이 흑암의 재앙처럼 온 것입니다. 돈이 신인 사람들에게는 돈의 재앙이 두렵고 고통스러워야 하지만 하나님을 신으로 믿는 우리는 오히려 이 재앙은 축복의 기간인 것입니다. 마치 애굽에 재앙이 내렸을 때, 애굽인들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기회였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신으로 믿는 자들이 돈을 신으로 믿고 섬기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 경제적 재앙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신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 의 것입니다.
목회 사역을 하기 전에 사업을 했었답니다. 한번은 물놀이 용구를 생산하여 대만, 일본, 홍콩 등으로 수출하고 국내에도 판매하였는데, 한해 여름 특수를 바라보고 많은 물안경을 수입까지 했는데, 그해 여름에 우리나라엔 냉해가 들어 여름이 춥고 태풍이 일찍 오는 바람에 해수욕장마다 일찍 폐장을 하였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안경이 재고로 쌓였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주님께 기도했답니다. 그때 성령께서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물안경까지 다 인수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업 경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재물을 얻는 능을 하나님이 주시므로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재고까지 인수하기로 했답니다. 너도 나도 덤핑 가격으로 어음만 받고 물건을 내주었답니다. 나는 도대체 주님은 이 엄청난 물량의 물안경을 어디에다 파시려는 것일까? 궁금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우리 매장에 오더니 물안경을 하나를 소매로 팔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고 하다가 그 청년에게 때 지난 물안경을 어디에 쓰려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최루탄 때문에 눈이 너무 매워서 데모할 때 쓰려고 해요. 라고 했답니다. 그때 매일 데모였답니다. 창고에 있던 산더미 같이 쌓였던 물안경은 최루탄이 터지는 데모 현장에서 날개돋힌 듯 팔려 나갔답니다. 주님은 물안경을 불안경으로 팔았다고 했습니다.
이후부터 사업을 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고정 관념을 주님의 지혜 앞에서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답니다. 그때부터 사업의 범위가 우리나라라는 작은 영역을 넘어 전 세계로 넓혀진 것이다. 그 이후 여름에도 겨울 물건을, 겨울에도 얼마든지 여름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답니다.
지금은 경제 불황의 때 우리가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일하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더욱 주님께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예수님을 주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 올 한해 우리가 다 큐티를 하게 됩니다. 3월부터는 모든 속회가 큐티로 전환이 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큐티 책자를 사시고 계신데, 여러분 꼭 큐티를 시작하십시오. 큐티를 해보면 그저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내 삶에 적용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큐티를 중단하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큐티해 보면 계속되는 깨어짐의 아픔이 있습니다. 날마다 깨어지는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하다가 어떤 때는 ‘오늘은 안하고 싶어. 편안하게 살고 싶어.’ 또 큐티를 하다 보면 내가 고쳐야 될 것 내가 변화되어야 할 것 순종해야 될 것이 나오니 오늘은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그저 내 육신의 욕구대로 오늘은 좀 그렇게 살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가 위기입니다. 깨어짐이 사실은 복입니다. 육신이 이끄는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반드시 파멸로 끝납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육신대로 사는 것이 편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내가 맞추어 사는 일이 복입니다. 그게 사는 길입니다.
어떤 분이 책을 읽고 상담 메일을 보내주셔서 답을 드렸더니 감사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답장이 고마워서 목사님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서 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국내에서는 전혀 처음 듣는 유의 설교였습니다. 참으로 이런 통로를 통하여 새로운 설교를 듣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으시고 정도를 통하여 비상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에서나 우리 국내 교계를 봐도, 세상 표현으로 그렇게 잘 나가다가 말년에 죽을 쑤거나 탈선하거나 하는 일들이 적지 아니 있잖습니까?
메일을 읽고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심각해졌습니다. 지금은 훌륭해 보이는 목사님도 언제까지 저럴까? 하고 생각하는 교인이 많구나!
만약 날마다 말씀 앞에서 깨어짐 을 포기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사만 그렇습니까?
우리가 다쳐서 기브스를 하고 푼 다음에 그 고통이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쉬면 편한 것입니까? 그러면 그 팔 다리는 못 쓰는 것입니다. 굳어버리니까. 물리치료하면서 겪는 고통이 복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깨어짐의 고통은 감사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이것이 주님이 동행하시는 길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시작하신 길인가? 그 길이 내가 서있는 것인가? 확인하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금식성회에 오셨던 예종규 원로목사님께서 주일 성수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 성수를 주일 낮 예배 드리는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란 주일은 온전히 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사도 공부도 내려놓고 정말 평안하게 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쉬라고 해도 반발합니다. 목사님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주일 예배 드렸으면 됐지, 꼭 쉬기 까지 해야 되는가?
예목사님은 목사가 되기 전에 학교 교사였었는데, 고3 학생들이 아무리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성적이 오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쉼이 없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계속 공부에만 매달리니까 나중에는 아무리 공부해도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이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사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철저히 주일 성수를 하게 했답니다. 너희가 좋은 대학 가려면 주일 날 예배드리고 공부하지 말고 쉬어라. 부모인 권사님, 집사님들이 벌떼처럼 찾아와서 항의하더랍니다. 전도사, 책임질 거요? 왜 공부는 하지 말라고 그래. 교회에서 주일 예배 드렸으면 되지, 학원 가고 과외도 못하게 하는가? 왜 공부하지 말라 하는가? 대학에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을 지겠는가?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주일날 공부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공부하지 말고 자거라. 는 말을 들은 아이가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그 학생이 서울대학교 배지를 달고 와서 전도사님이 시키는 대로 주일 성수하였더니 내가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 동생도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일 심하게 항의 했던 집사님의 아들은 전교 45등에서 17등으로 성적이 향상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학생 수는 3년 만에 100명에서 400명으로 부흥했습니다. 장년 교인 수가 5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쉬니 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살 길 진짜 될 길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마음에 결론을 안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 내 주님, 하나님 말씀이 내 살 길, 아직도 결론을 안 내린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결론을 안 내린 것입니다. 가말리엘 처럼 ‘두고 보자, 지켜보자.’ 아직도 진정 가야 할 길을 몰라 평생 헤매는 구도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여주셨는데도.
우리는 길을 찾았습니다. 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결단하십시오! 예수 믿는 것은 교회만 나오고 나머지는 지켜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예수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반드시 성령의 분명하고 강력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32절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들의 이 담대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할 때 성령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순종이 어떠했습니까?
천사가 사도들을 감옥에게 나오게 한 후 (20절)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제자들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21절입니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에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의 사자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벽에 성전으로 갔습니다. 21절 보십시오!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갔더니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선포했습니다.
(29절)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들은 공회에서 채찍질을 당하고서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42절)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쉬지 않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초대교회가 핍박 중에도 성령께 순종하여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시작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면 빨리 무너지는 것이 잘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쉬울 것 없습니다.
주께서 하신 일이구나! 결론이 났으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만 분명하면 걱정 없습니다.
결과는 항상 최선입니다. 오직 순종 뿐입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너무너무 답답해 하면서 ‘언제 진실이 밝혀지고 내가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감옥에서 나가고 혼자만 남아있는 정말 답답한 가운데 있다가 꿈을 깼습니다. 지금도 꿈이 선명합니다. 일어나서 ‘내가 감옥에 갈 일이 생기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가 왜 이런 꿈을 꾸었습니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금 제 마음 깊은 곳에는 감옥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있을 교회 특별 기도회, 교회 건축비 부채를 상환하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이 저를 마음 속으로는 꼼짝 달싹할 수 없는 감옥에 갇혀놓게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감옥에 갇혀있지 않지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꼼짝없이 갇혀있고 너무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큐티를 하려고 큐티 본문을 펼쳤는데 감옥에서 풀려놨어요. 마가복음 14장 61절이 토요일 큐티 본문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묻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예수님께서 62절에서 대답합니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 말씀 때문에 예수님은 사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꼼짝없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묵상하는데 제 가슴 속에서부터 견딜 수 없는 감동이 막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예수님은 그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권능자의 우편에 앉으신 분이다. 하늘 구름 타고 다시 오셔서 이 땅을 다시리실 분이시다. 내가 감옥에 있다니 말도 안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맡은 일이 힘들다, 버겁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섬기는 주님을 알고 나니까 더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더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 지금보다 100배나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그것은 감사와 찬송일 뿐이지요. 이보다도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 주님을 내가 섬길 수 있다는 것. 내 주님은 무너진 분이 아닙니다. 지금 무너지는 인생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섬기는 주님은 권능자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시고 하늘 구름 타고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너무너무 감격스러워서 큐티하면서 정말 울었습니다.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예수님 내 생명이시니 주님 저는 지금 충분합니다. 그 시간에 저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교역자들과 모임 시간에 그 간증을 잠깐 하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서있습니까? 만약에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무너질 것을 위해서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고 깨닫게 하시면, 빨리 나오십시오. 미련하게 거기서 더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생명이시고 주님이시라면 하나님 말씀을 붙잡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 되었다면 상황이 어려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무너뜨릴 세력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답을 분명히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명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보게 해주십시오. 제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으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니 깨닫게 해주시고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주님 저와 동행하시지요, 주님 가시는 길에 저도 가고 주님 계시는 곳에 제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역사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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