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대로 산다! (욥 2;7-10)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더라>(욥1;23)
언젠가 성막 쎄미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얼굴이 시커멓게 타서 보기조차 흉칙하고 손가락도 잘라지고 불에 거스린 한 분이 다가와서 <야! 반갑다! 문호야!>라고 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나는 그 순간 섬짓함을 느꼈습니다. 알고보니 신학교 동창 목사님이었습니다.
숨어서 5년을 살다가 외부 세계로 처음 나온 외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창들도 몰랐습니다. 교인들이 두 패로 나누어 싸우는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어느 날 주일 낮 예배를 드리며 설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막 하려고 하는 데 한 권사가 오른 손에는 휘발유를 든 통을 들고 왼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나오더니 외쳤습니다.
<김 장로! 앞으로 나와! 언제까지 싸울 거냐?>
당황한 사람들이 말리러 나가는 순간 라이터 불이 켜지며 온통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친구 목사도 쓰러지고 그 사람은 불타서 죽었습니다. 그 후 병원에서 지내며 수술을 9번 하였습니다. 그 동안 보는 이마다 놀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밖으로 출입을 일체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친구 목사와 하루 밤을 같이 잤습니다. 그 친구는 같이 누워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문호야!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장애자로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장애자만 20명이 모이고 있단다. 이제 나는 장애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어! 내 삶에 정답을 찾았어.>
욥은 동방에서 가장 의인이었습니다. 가장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최고로 깨끗하게 지냈습니다. 철처하게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럴 수가 있을 가 할 정도로 처절한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자녀 10명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다가 한꺼번에 압사당하였습니다.
적군들이 몰여와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노략질하여 갔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몸에 병이 들어 잿더미에 앉아 고름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도망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잿더미에 앉아 흐르는 고름을 빨아내야 했습니다. 동방 최고의 사람이 동방 최하의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 욥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나 욥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 하니라>(욥 2;10)
욥의 아내는 변하고 있고, 욥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감정대로 살고 있고 욥은 정답대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답대로 살지 않고 자기 감정대로 살기가 쉽습니다.
정답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정답을 알면서 정답대로 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다 압니다. 그러나 그대로 살지 못 하여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대로 사는 것일가요?
욥을 중심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이 정답입니다.
어려운 곤경에 처하자 욥의 아내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나 욥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 하니라>(욥 2;10)
욥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정답대로 살았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원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나무, 넘실거리는 호수, 푸르른 하늘, 공중나는 새들을 그대로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배가 고팠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아까운 소질을 농촌에서 썩히지 말고 도시로 나가 보게. 돈을 벌 것일세.> 그는 이 말 한 마디에 파리로 나갔습니다. 꿈을 가졌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행복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시로 와 보니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그림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누드화였습니다. 귀족들이 누드화를 좋아 하면서 비싸도 사서 벽에 걸기를 좋아 하였습니다. 그는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늘 누르고 있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게 아닌 데.....>
어느 날 화실에 앉아서 누드화를 그리고 있는 데 옆에서 화가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 친구는 누드화만 그리는 삼류 화가야.>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굶더라도 하나님의 자연을 그리자.>
그 날로 보따리를 싸들고 다시 농촌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굶어도 바르게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만종입니다. 그가 바로 밀레입니다.
수많은 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정답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위하여 이 곳 저 곳을 다닐 때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지 못 하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두 손을 펼치고 막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지 못 하게 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 썼지만 또 그 곳으로 가지 못 하게 예수님의 영이 막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데 자꾸만 막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환경의 음성임을 영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증거를 방해하는 사건이 생기는 것이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로아로 가서 밤에 되자 잠이 들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보였습니다. 환상속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말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에게 들린 특이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유럽 복음화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루디아라는 여자가 자주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있다가 바울을 맞아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를 세운 이는 바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정답을 찾는 것입니다. 욥은 아내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답입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 하니라>(욥 2;10)
무슨 일에 부딪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2. 맡김이 정답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욥은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구에 배 한 척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장 아들이 원숭이와 놀고 있었습니다.원숭이가 소년의 모자를 벗어 들고 돛위로 올라 갔습니다. 아들은 정신없이 원숭이를 따라 올라 갔습니다. 발밑으로 내려다 보던 소년은 겁에 질려서 올라가지도 내려 오지도 못하고 울 고만 있었습니다.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습니다.
<아들아! 돛을 놓고 바다로 뛰어 내려라. 안 뛰어 내리면 총으로 쏘고 말겠다.>
아들은 더 겁이 나서 바다로 뛰어 내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물속을 뛰어 들어가서 아들을 건졌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품을 뛰어 드는 생활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맡기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목욕탕에 가면 옷장마다 이렇게 쓰여져 있는 글을 보게 됩니다.
<주인에게 맡기지 않은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휴 스티븐(Hugh Steven)은 척 스미스 목사님이 목회하는 갈보리 채플에서 생겼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예수 운동을 할 때 일입니다. 히피족들이 몰려 왔습니다.이들은 맨 발로 다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더러운 발로 들어 와서 고급스러운 양탄자를 못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양탄자를 엄청난 돈을 드려서 갈아야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 교회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영혼을 위하여 히피족이 교회들어 오는 것을 허용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재산 보호를 위하여 금하여야 하느냐? 는 문제였습니다.
드디어 정답이 생각났습니다. 재산보다 영혼을 귀하게 생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히피족들이 엄청나게 구원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이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광주 화정 교회 박 혜수 장로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방배동에 집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을 때인 데 옆에 임 종만 목사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생활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농수산부를 다닐 때라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주택도 정부에서 제공하였습니다. 이제 집을 전세주고 가서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만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믿는 아내가 옆집 목사님이 지하실에서 고생을 하니 지방에서 서울로 다시 올라 올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하자고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박장로님은 그 집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되어 그 지붕이 새고 바닥에서도 물이 솟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씨라는 분과 복덕방에서 계약서를 쓰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잔금을 언제 치루겠냐고 물었더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빠져야 하고, 누구에게 돈을 받아야 하고 얼마를 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돈없이 집을 장만하는 집임을 알았습니다. 박 장로님은 계약서 쓰던 것을 중지시키고 복덕방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기와를 다시 몽땅 가는데 얼마나 듭니까?>
<3천만원 가량 듭니다.>
<그러면 3천만원을 빼주시오. 집을 팔고 지붕이 새는 데 불편하게 어떻게 살겠습니까?>
복덕방하는 분은 20년 이 일을 하면서 흥정이 끝나고 이렇게 지붕값을 다 빼주며 다시 계약서를쓴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였습니다.
농수산부에 감사가 벌어졌습니다. 3,000만원 때문에 늘 끌려 다녀야 했습니다. 골치아팠습니다. 처음 당하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정당함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같았습니다. 감사원에 있는 직원은 막 딱딱거리며 못 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와서 같이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였더니 만나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데 집을 산 최씨가 바로 친척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박 혜수 장로님 이야기가 나왔는 데 그 분이 깜짝 놀라며 집 살 때 이야기를하면서 절대 그 분이 부정을 저지를 분이 아니라고 빨리 사과하라고 하여서 사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맡기는 것이 정답입니다.
모두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3. 소망이 정답입니다.
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 하니라>(욥 2;10)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차분하게 내일을 꿈꾸며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정답대로 사는 삶입니다.
욥이 이렇게 말한 말속에는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후에 욥이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은 복도 주시고 재앙도 주시는 분이시지만 재앙을 주시는 이유는 훈련시키고 정금같이 사용하시려고 그렇게 하신다는 소망의 고백입니다.
소망이 정답입니다.
1999년 7월 3일 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영국 일간지 를 인용한 보도라고 먼저 전제하였습니다. 그 신문은 건강 전문지 <데모 그라피>에 실린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최소한 한 주에 한 차례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이나 오래 산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특히 예배드리는 흑인은 예배 안드리는 이보다 14년이나 더 오래 산다는 결과보고입니다.
1987년 미국 의료 설문지도 이런 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한 마을 인구가 28,000명이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죽은 2,000명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믿고 죽은 이의 평균수명이 82세, 안 믿고 죽은 사람의 평균 수명은 75세였습니다.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항상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을 잃지 않고 굳굳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영국 더럼(Durham)에 있는 석탄광산에서 갱이 무너져서 16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광산을 파헤치고 보니 이런 글귀가 적힌 판자쪽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모든 사람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마지막 죽어 가면서도 결코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가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독수리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독수리의 수명은 40년 가량입니다. 그러나 어떤 독수리는 유별나게 60년을 삽니다. 아주 장수하는 독수리는 70년을 산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독수리의 특성을 연구한 동물학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0년 가량을 독수리가 살고 나면 발톱이 무뎌지고 힘이 나약하여 집니다. 그러면 먹이 사냥이 불가능하여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까부라지는 독수리는 그대로 40년 정도만에 생을 마감하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장수하는 독수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깃털을 다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발톱을 자기가 다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입 부리도 다 바위에 갈아 버립니다. 모든 것을 버립니다.
고통중에 고통입니다.
발톱을 뽑을 때에 고통,
깃털을 뽑을 때에 아픔.
부리를 갈 때에 쓰라림.
이제 그 독수리는 더 이상 하늘의 왕자가 아닙니다. 누가 조금만 공격하여도 대항할 힘이 없는 아주 나약한 존재입니다. 새가 공격하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 독수리에게는 오직 기다림뿐입니다.
얼마 동안 지나면 다시 깃털이 납니다.
발톱이 다시 생깁니다.
부리가 다시 솟아 오릅니다.
그러면 다시 독수리다운 독수리가 됩니다. 다시 제2의 생을 살게 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절대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욥이 그런 독수리같습니다.
다 벗어 버리고 새 출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답대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정답입니까?
1. 하나님의 뜻이 정답입니다.
2. 맡김이 정답입니다.
3. 소망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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