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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예수님

온전케 하시는 온전하신 예수! (히 12;1-4)

by 【고동엽】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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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케 하시는 온전하신 예수! (히 12;1-4)

 


30여년전 프랑스의 한 잡지에서 세계의 저명인사 1백명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지구가 파멸할 날이 예고되었습니다. 지구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들고 탈출하라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들고 지구를 탈출하겠습니까?>
세계 저명한 이들 100명이 선택한 제일 귀중한 것은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보관중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壽衣)였습니다.
그 다음이 미로의 비너스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귀중한 물건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언제나 대답합니다.
<법궤입니다.>
법궤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에 계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두 가지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주이십니다.
2.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1. 예수님은 믿음의 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이 한 마디 속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아르케곤>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아르케곤이라는 말은 아르코에서 나왔는 데 아르코라는 말은 <지배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그 분의 지배아래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그 분의 지배아래 들어가 있습니까? 그 분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힘들고 고단하고 피곤하여도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아까워도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있습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여기고 있습니까?
스펄젼 목사님은 교회에 들어서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부터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이니까 하나님을 보는 듯이 늘 인사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 곳에 계신 것으로 알고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 분의 지배를 받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아칸소주의 주도시인 리틀록에서 심각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인종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백인 학생들은 교문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습니다. 계속 무력 충돌로 심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흑인과 백인 사이에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온갖 공포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보고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받았습니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여야 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직접 그 곳으로 가겠소.>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무릎쓰고 그 곳으로 그 것도 혼자 갔습니다. 그리고 한 흑인 학생의 손목을 잡고 교문으로 들어 섰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들어가지 못 들어 가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흑인과 백인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죄인은 천국 문으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신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믿음의 주이십니다.
고대 희랍의 연무장에는 뛰어난 무사들의 경기 모습을 그린 커다란 그림을 붙여놓고 그 아래에 이런 문구를 써 놓았습니다.
<주목하라! 모방하라! 반복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 원리를 활용할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을 본받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을 주목하라! 주님을 모방하라! 주님의 일을 반복하라!>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2.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 아버지는 목사이기에 내가 목사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목사이기에 아들 희일이기 목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기에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온전케 하는 이의 헬라어 원어는 <텔레이오텐>입니다. 텔레이오텐이라는 말은 <완성자><완전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완성자이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다.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까?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온전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까? 우리는 영혼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육을 다 회복시켜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 영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은 죽이는 영이고 예수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불을 붙인 촛대는 빛을 내는 것처럼 예수님에게 닿은 영혼은 산 영이 된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63)

예수님은 영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일본 카토릭 작가 엘도 슈사꾸가 쓴 소설 <침묵>은 세계적인 명작입니다. 물론 베스트 셀러입니다. 일본 기독교인들의 순교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소설속에 후미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을 모두 체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열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예수님 얼굴을 동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얼굴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거냥 지나가면 사형을 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교도 판별법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도 후미에 앞에 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혀서 일그러진 예수님의 얼굴을 울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는 차마 예수님 얼굴을 밟을 수가 없어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 상이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나를 밟아라. 본래 나는 밟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온 몸이다.>
로드리고가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지금까지 결정적인 순간에도 침묵하셨기에 나는 괴로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침묵한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리고가 예수님 상을 밟는 순간에 닭이 울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들려 주었던 닭울음소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처럼 그는 통곡을 하면서 나중에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에덴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면에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시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영이 파괴되고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던 영이 파괴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즉 혼이 파괴되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부부로 맺어 졌을 때에는 <내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라고 고백하였던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으로 하여서 따먹었나이다> 라고 여자 핑계를 댔습니다.
하와는 <내 책임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뱀이 따먹으라고 하여서 따먹었다고 뱀 핑계를 댔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증오의 관계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영이 파괴된 후부터 혼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혼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악한 생각이 선한 생각으로 회복됩니다. 부정적인 정신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문제가 해결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 전에 미국 모 도시 한인 교회에서 3일간 집회하고 돌아 왔습니다.
교인들 100여명중에 99%가 국제결혼한 여자들이었습니다. 성질이 거칠고 막 되먹은 여자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그래도 알고보니 그들의 영속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움은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여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못 된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여자는 미국인과 살면서 한국인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한국 남자를 남동생이라고 데리고 와서 한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이 눈치채지 못 하게 오빠라고 속이고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는 미국인이 바람을 피는 데 바람피지 말라는 말을 영어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서 자다 말고 주방으로 가서 칼을 들고 와서 <짤라>라고 소리를 지렀습니다. 그 남자가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이 한국인 아내가 싫증이 나니까 꽁꽁 묶어서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산속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투 끝에 묶었던 끈을 푸르고 살아 났습니다.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가끔 들어오면 미국인 남편에 대한 증오로 살인할 것같은 분노가 끓어 올랐습니다. 이 목사님을 이렇게 성질이 거친 여자이니까 그 여인을 붙들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여자 정신이 올바로 돌아 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정신이 돌아 오면 살인합니다.>
그러나 이런 거친 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마음을 모으고 물질을 모으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톨스토이가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진정으로 받아 드렸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화되었다. 이전에 바라던 것, 이제는 바라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 이제는 안 좋게 보이고,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이전에 내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가 허무함을 알게 되었고, 거짓을 자기를 꾸민 것이나, 여인들과 즐겁게 지내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은 정신을 온전케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육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아담과 하와가 영이 파괴된 된 후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가려면 병들어야 합니다. 그 때부터 육체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자 육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병에 들었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온전하게 회복됩니다.
기계를 제일 잘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기계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이 그 건물에 하자가 있을 때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를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을 만드신 예수님은 우리 몸을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채찍에 맞으면서까지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팔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천근만근 날마다 때마다 언제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 죄책감은 육체적인 병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제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여졌습니다. 치료불능의 판결을 받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억울하였습니다. 그 창녀는 병석에서 전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부흥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분이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씀이 신비롭게 들렸습니다. 그 창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 정말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면 내 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내 죄도 받아주시옵소서!>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 배가 편안해짐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배가 점점 정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순간 <정말이다. 그 분 예수는 내 죄도 짊어지셨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의 배에 평안이 왔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창녀에게는 기쁨이 강물처럼 찾아들었고 병에서도 놓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4) 모든 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영혼육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도 온전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되던 일이 됩니다. 막힌 일이 뚫어 집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한 일이 풀어 집니다.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만사를 다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에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주일 낮예배 30명쯤 모일 때였습니다. 철야기도를 하는 데 한 분이 100만원짜리 수표를 한 장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밤에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셔서 세계선교의 도구로 쓰시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빨리 건축을 하십시오.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이 수표를 받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30명밖에 안 모이는 데 어떻게 교회를 짓습니까? 그러나 이 분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드렸으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후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축복하셔서 2년만에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2년만에 그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목사님! 저를 기억하시나요?>
<그럼은요? 우리 교회 제1호 건축헌금자인데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지금 그 헌금이 첫 열매가 되어 건축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목사님 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일 아파트 추첨이 있습니다. 1동부터 18동까지 있습니다. 당첨이 되면 2,500만원 프래미엄이 있습니다. 특히 9동과 10동은 한강을 내려다 보고 있기때문에 너무 경치가 좋아 5,000만원 프래미엄이랍니다. 기도받으려고 왔어요>
나는 오른 손을 엊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튿날이었습니다. 이 분이 추첨장에 나갔습니다. 인산인해였습니다. 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구슬을 집는 데 두 개가 잡혔습니다. 하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어떤 것을 버릴가요?>
이 때 어제밤 기도에 오른 손을 얹고 기도받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왼 쪽 것을 버렸습니다. 꺼내고 보니 9동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박수소리를 뒤로하고 공중전화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기쁨의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육을 다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면서 어떤 일이든지 잘 풀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엘파소 한인 장로교회 집회중에 만난 김 시재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초신자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에 마지 못 하여 나갈 때입니다.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작정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체면상 1년 동안에 5,000불을 하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는 생각보다는 교회 다니려면 이 정도면 체면은 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다 바쳐도 되는 형편인 데 조금 조금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엘파소 국경에 차려 놓은 옷 가게가 얼마나 잘 되는 지 50만불 약 6억 5천만원 상당의 집을 살 정도로 돈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는 내게 간증하였습니다.
<목사님!
예수님께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는 데 어쩌면 그런지요? 5oo만원 드리고 5억짜리 집 계약하였습니다. 나 잔금 치루러 갑니다. 꼭 100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꼭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결론으로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부터는 믿음의 주요 영혼육을 온전케 하시고 모든 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서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1979년 2월 19일이었습니다. 2천 2백 25미터 산위에서 추락하였는 데 그 산꼭대기에는 눈과 얼음으로 덮여 이었습니다. 온통 바위뿐이었습니다. 그 비행기에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심한 부상으로 숨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며 아들에게 겨우 말했습니다.
<아들아. 산을 내려가라. 포기하면 안된다. 살아 계신 예수님이 너를 도울 것이다.>
아들은 15세였습니다. 그 아들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으며 내려오다가 구출되었습니다. 온 미국의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가 달려 들어 물었습니다.
<어떻게 죽지 않고 내려 왔니?>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몇 번 죽을 뻔 하였습니다. 눈 속에 쓰러져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털보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었을 것입니다. 그 분을 보고 힘을 내서 다시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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