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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प्रवचन पूरा

사회갈등의 교회자리

by 【고동엽】 2022. 1. 13.

출20:3 마19:17

사회갈등이란 여러 가지 면에서 말 할 수 있지만 사회전반에 공동으로 나타난 갈등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한 개인이 사회에서 겪는 갈등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가치와 의견이 부딪혔을 경우 가치갈등이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 내면의 가치가 바뀌는 상황을 말하게 된다. 이것은 자기의 가치가 다른 가치가 더 좋아서 바뀌는 중간단계를 가치갈등이라고 하는 점을 감안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서 삶을 두려고 할 때 먼저 삶의 현장은 이 사회임을 아는 것이다. 사회를 보는 우리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선과 악 같은 이분법의 양극화한 갈등구조를 보면서 갈등사회의 구조의 치유를 위한 교회의 자리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우리 안에 부단히 야기되는 긴장과 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안의 갈등은 대체로 이념 또는 신념체계가 기성 질서에 도전 하거나 기존의 신념체계와 모순을 야기 시킬 때 생기며 인류 역사가 전개된 이래로 사회적 갈등은 갈등 중에서도 심각한 긴장 요인은 종교적 신앙 체계에서 파생 한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공동체 안에서 야기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도 신구교의 분쟁이나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쉽게 보는 현실이 되었다. 여하간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들 또는 개인의 심리상태에서 까지도 부단한 긴장과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경험을 한국 사회와 교회는 경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전파된 이래로 문화적 갈등을 야기 시켜 오면서도 발전에 이르렀다. 한국 전통문화와 기독교문화의 갈등은 한국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 했고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보여 준 점에 유의한다. 또한 한국의 정치, 경제의 측면에서 교회는 정치권력에 대해서나 경제공동체를 위해 부단한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성장해서 오늘에 이르렀음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고 새로운 차원의 질서를 가지고 발전해 왔음도 유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들로 인하여 성숙한 단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예컨대 개신교의 개화운동, 독립투쟁, 민중운동, 교육과 후생사업, 민족자립과 조국의 인권운동에 적극적인 참여의 전통이 있는 반면에 개신교가 그 동안 사회갈등 속에서 그 숭고한 전통에 역행하는 요소도 잘못 인식시켜 왔음도 유의해 보는 것이다. 예로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몰지각과 무조건의 배척, 복음을 담고 들어 온 서양문물의 무비판적 수용과 그로 인한 교회는 문화의 빈곤, 정치권력의 부동내지 방관, 근대화 물결에 휩쓸려 비대증. 상업풍조, 배금사상, 종속적 획일성, 교회끼리와 교회 내에서 계층성, 여성차별 등등 교회는 숫한 문제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은 사회적 변화 발전의 과정을 통하여 사회적 개념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갈등이 화해와 상관성을 지니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갈등을 긍정적으로 볼 때 화해는 갈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또 갈등을 통해서 화해는 이루어지기 때문에 갈등은 화해의 필수조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실상 갈등 없는 인간관계나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화해의 궁극적 원형은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데서 찾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막힌 담을 헐고 둘이 하나 되는 성육신의 의미는 바로 화해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하기에 십자가의 공로를 우리는 신앙하는 것이다.

   화해는 공짜가 아니다. 본회퍼의 말대로 값이 비싼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용서와 수용이 따른다.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이웃사랑에 대한 교훈임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모든 관계가 무너져서 사회가 당장 실추할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은 사랑 혹은 아가페의 개념을 통하여 도덕적 형평성과 상호성의 원리를 강화해 주어야 할 책임 소재(所在)인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한 이웃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자리 매김 해야 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도덕관념과 기독교적인 사랑에 대한 비판은 인간의 탁월성에 대하여 그리고 책임의 개념이 어떻게 우리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그 초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실존적 본래성과 인간의 성취에 대한 현대적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죄책감, 기만, 허위의식, 그리고 부당한 짐으로 여겨지는 것들로 부터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서구의 윤리학, 특히 기독교윤리가 부여한 책임의 소재(所在)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간과 사회가 인간됨과 삶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알아야한다.

   인간의 능력이 근본적이고 예기치 못했던 방법으로 증대되면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갈 가치와 규범, 그리고 신념들이 혼미해 짐을 알게 된다. 이것은 죄악이다. 가치관의 위기는 인간 능력의 신장과 맞물려 정치, 경제, 도덕,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와 이데올로기까지도 힘의 사용과 욕구추구를 인생의 의미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을 야기하고 타락하고 만다. 이것을 기독교가 힘을 삶의 최고와 그 가치로 상징하는 것은 인간다움의 의미를 부정하고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경고해야 한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최고선으로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책임적 존재로 삶의 실존으로 살기위해서 주어진 것으로 이해한 점에 유의한다.

   즉 힘은 하나님 앞에서 삶의 통전성(integrity)을 존중하고 함양하는 데 사용되도록 배려된 것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의 의미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관계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통전성을 존중하고 함양시키어야 한다. 삶의 통전성을 존중하고 함양한다는 것이 바로 책임의 의미이다. 그리고 삶의 통전성이 도덕적인 선(善)인 것이다. 이러한 선의 원천과 목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규정되어야 하며 그러한 선이 실현 되는 도덕적 공동체에 있어서도 해당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관계된 규정을 무시하고 선의 실현을 위한 가치관 없이 지나온 오늘의 우리 시대는 그동안 산업화와 급격한 사회발전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일탈현상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제도의 모순에서 비롯한 총체적이고 병폐적인 사회문제점에 놓이고 말았음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교회는 방관자로 서서 보기만 하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앞에는 소득불평등, 빈곤문제, 노동문제, 부정부패, 범죄 및 비행, 환경문제, 정체성 부재(不在), 공동체 해체, 등을 보면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책임의 자리를 보게 된다. 1960년 “책임사회론”의 등장과 함께 기독교와 마르크시즘과의 대화 및 해방신학과 민중 신학 등의 출현으로 사회윤리문제에 대한 관심을 부여 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 윤리적 시각과 인식의 차이가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지지한 점과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결사반대했던 사이에 생겼던 과거사를 두고 오늘의 시대적 정항을 지금에 와서 비교해 볼 때 이웃의 아픔에 참여한 역사의식과 책임의식을 생각해 보니 성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실천이 더 성서적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남북의 통일에 대한 통일의식을 생각해 본다. 한국교회들은 그 대안이 서로 달리 하였음을 아는 것이다. 보수적인 교단들에 의해 계획된 대안은 “북한 선교론”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교단들은 “선교적과제로서의 통일론”이었다. 북한 선교론은 대체로 서 독일식의 흡수 통일을 전제로 하고 통일된 이후에 북한에 선교하고 교회를 설립하고 세속화, 사회주의화된 북한인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통일에는 관심이 없고 통일된 이후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적과제로서의 통일론은 우선 선교보다는 민족의 화해와 국토의 분단 극복을 교회의 선교적과제, 즉 기독교인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윤리적 문제로 보고 실천하고 있는 점이 서로 다름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가 사회문제를 인간의 삶에 나타난 사회형성을 문제 삼으며 삶의 현장에 뛰어 들어 나눔의 사랑을 보여줌에 있음을 유의하게 한다. 사회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자유와 기본 권리들에 속함을 알고 개인적 사회적 책임에 중요한 영역임을 알게 한다. 이것에 대안이 이웃 사랑이며 계명으로 세상에서 삶의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살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통찰(通察)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섬김의 활동을 하려는 근거는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이웃을 위한 사랑의 삶을 친히 보여 주심에 있다. 그 사랑의 삶의 통전성을 이룬 섬김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로 갈등을 극복하려 기도함을 요구한다.

출처/배성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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