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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어도 다시 한 번! (사 40:27-31)

by 【고동엽】 2022. 1. 11.

지쳤어도 다시 한 번! (사 40:27-31)

 

두 가지 이야기로 새 해를 열겠습니다.

제주도에 몇 번 다녀오면서 가장 아름답게 느낀 곳이 있습니다. 사라봉입니다. 다니러 가는 사람들은 잘 안 가는 곳입니다. 나는 부흥회에 가서 가본 곳입니다. 나는 어느 곳에 가든지 아침마다 산책을 하기에 산책하기 좋은 곳을 알려 달라고 하였더니 알려준 것이 사라봉입니다.

해변가, 산, 들 모두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이 사라봉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이사를 가지 못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시 육지로 이사 가더라도 사라봉이 좋아서 도로 이사 오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곳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밑은 바다로 낭떠러지가 되어 있는 데 그 바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제주도에서는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그 바위에 크게 쓰여 있는 글씨가 있습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세요.>

 

다른 이야기 하나 더 드립니다.

영국의 역사를 바꾼 윈스턴 처칠이 상원의원에 출마했습니다. 당당히 이기리라고 모두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낙선하였습니다. 처질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상하여 두문불출하였습니다. 사람을 만나기도 기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서 있던 그는 우연히 벽돌공의 날렵한 손놀림을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벽돌공은 벽돌 한 장을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발랐습니다.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견고하고 거대한 담벼락이 완성되었습니다. 처칠은 할 일이 없었기에 멍하니 그 모습을 처음서부터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처칠은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인생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인생 여정을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다시 한다.>

그 날 벽돌공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그는 다시 정치계에 뛰어들어 평생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성공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언론계에서 2004년도를 한 마리로 표현하는 말을 찾았습니다.

당동벌이(黨同伐異)입니다. 같은 파끼리는 당을 만들고 다른 파는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한 한 해였다는 평가입니다.

경제계에서 우리 민족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우울증과 무기력증>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금년도에도 경제가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64%입니다. 현재 경제 침체가 3년은 갈 것이라고 예견하는 경제가들이 36%였습니다. 한국 굴지의 기업인들 가운데 금년도에 경제가 나아 질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19%였습니다.

우리 경제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 2004년 10대 뉴스중에 하나입니다.

작년도 음식점 20만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사영업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영업에 취업하여 있는 인구가 2280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의 34.9%입니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민족이 다 우울증 환자가 되었고 자포자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 30명 한달 900명입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입니다.

나는 요즈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삶에 의욕이 없습니다. 오랜 병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일을 해도 결실이 없기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복잡하여 지쳐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서 가장 큰 병은 우울증과 무력증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장면입니다. 포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습니다.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절망입니다. 비극입니다. 고통입니다. 40장부터 66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27-30)

 

앞으로 70년이 지나면 해방되어 다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결코 지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지치면 안 됩니다. 왜 지치면 안 됩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1.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인생을 길게 보아야 합니다. 조급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여기만 보면 안 됩니다. 지금에서 지금만 보면 안 됩니다. 여기서 저기도 보고, 지금 내일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화를 가끔 볼 때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죽이려고 뒤로 다가가서 갑자기 총을 댔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모두 가슴을 조마조마해 가며 피를 말리는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였습니다. 나는 속으로 외칩니다.

<저 주인공 절대 안 죽는다. 저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영화가 초반인 데 끝이다>

주인공이 영화 초반에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길게 보면 여유가 있습니다.

 

3살 난 아들을 데리고 아빠가 동물원 구경을 갔습니다. 사자우리 앞에 가서 섰습니다. 사자가 어린아이 앞으로 다가 오더니 입을 딱 벌리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아이는 <아빠!>라고 외마디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왜?>

아빠가 물었습니다.

<저 사자 좀 봐요>

그 때 아빠가 말했습니다.

<너는 사자만 보지만 나는 사자와 너 사이에 창살도 보고 있단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사야의 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바벨좀 보세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바벨론만 보고 있지만 나는 바벨론과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님도 보고 있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문제만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하나님 골리앗 좀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골리앗만 보지 말고 나도 보아라. 나는 영원하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는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하시며, 막힌 것을 뚫으시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우리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무엇이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7-22)

 

없으면 있게 하시고 안 되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결코 지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이 지치지 않는 분이시기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치지 않으시기에 우리도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옆에 모시고 있는 우리는 같이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한 여름에도 까만 양복에 까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하시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통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하시딤을 창설한 이는 바알 쉠 토브입니다. 그가 그렇게 큰일을 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토브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 토브야!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너를 돌볼 수가 없구나. 내 시대는 이제 끝난다. 나는 너를 떠나지만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으신단다. 네 평생 네가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은 네 평생 너를 떠나지 않으신단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너는 세상에 누구도 두려워할 것이 없단다. 하나님을 붙들고 굳굳히 살아라.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이렇게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토브는 아버지의 유언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늘 자기를 지키고 계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통 보수주의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주십니다.

 

1. 지혜를 주십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28-29)

 

명철은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때 그 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늘 지혜를 구하며 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다윗 집안의 자녀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삶은 달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배가 고픈 것을 참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몫으로 나온 달걀을 먹어 치우고 말았습니다. 이를 보고 다른 아이들도 자기 몫의 달걀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 달걀을 다 먹었습니다. 자기 접시만 빈 접시가 되었습니다. 그는 빈 접시를 앞에 놓고 있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달걀 한 개만 빌려다오>

옆에 앉은 아이가 말했습니다.

<빌려 주겠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빌려준 달걀을 내가 돌려 달라고 할 때, 그 달걀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 달걀이 내게 주었을 이익까지 전부 계산하여 돌려준다고 약속한다면 내가 달걀을 빌려주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하고 내 의견을 따를 수 있겠니?>

이렇게 제안하자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지>

순간을 모면하려고 약속은 그렇게 했지만 달걀을 빌렸던 아이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빌려주었던 달걀을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빌린 달걀이 하나였지? 여기 있어>

그러나 달걀을 빌려준 아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야? 그보다 훨씬 많잖아?>

의견이 서로 달라진 두 아이는 다윗에게 시비를 가려 달라고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윗 앞에 나아간 두 아이는 달걀을 빌렸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는 자신들의

의견까지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달걀 한 개가 아니라 그 동안 그것이 만들어 냈을 이익까지

전부 받아야겠습니다.>

두 아이의 말을 듣고 다윗 왕은 달걀을 빌린 아이에게 빌렸던 것을 전부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얼마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를 갚아야 할지 알려 주십시요>

빌려준 아이는 다음과 같이 계산을 한 결과를 말했습니다.

<첫 해에는 달걀에서 병아리 한 마리가 부화되어 나옵니다. 그 병아리가 두

번째 해에는 열여덟 마리의 새끼를 치게 되죠. 세 번째 해에는 열 여덟 마리의

병아리가 커서 각각 열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을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매년

계산하다 보면....>

그러고 보니 그것은 어마어마한 숫자였습니다. 달걀을 빌린 소년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난처해하며 법정을 나왔습니다. 마침 솔로몬이 법정밖에 있는 것을 본

소년은 솔로몬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래, 왕께서는 어떻게 재판하셨느냐?>

<저에게 달걀 한 개에서 생길 수 있는 이익을 전부 갚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숫자의 닭을 제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년의 말을 듣고 난 솔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그 소년에게 좋은 지혜를 일러주었습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잘 될 거야. 밭에 가서 있다가 대왕의 군대가 지나갈 때,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삶은 콩을 심고 있다고 대답해야 해. 너의 대답을 들으면 아마 병사들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의아하게 생각하여 되물을 것이야. 그러면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 보아라>

소년은 즉시 밭에 나가 솔로몬이 말해준 대로 밭이랑에 삶은 콩을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후 왕의 군대가 지나갔습니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뭘 심고 있는 거냐?>

<삶은 콩을 밭에 심고 있습니다>

<삶은 콩을? 삶은 콩을 밭에 심는다고 싹이 돋아 나온 다더냐? 별소릴 다 듣겠네>

소년은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삶은 달걀이 부화되어서 병아리가 되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까?>

병사들이 지나칠 때마다 똑같은 내용의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는 사이에 이 이야기가 어느새 다윗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왕은 곧 소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행동한 것은 네 생각이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왕은 틀림없이 솔로몬이 지혜를 빌려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소년은 사실은 솔로몬이 일러준 지혜였다고 사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왕은 솔로몬 왕자를 불러 달걀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아이는 달걀 한 개만 되돌려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물에 삶은 달걀은 결코 병아리가 될 수 없는 법이니 말입니다>

소년은 솔로몬 덕분에 달걀 한 개만 돌려주는 것으로 이 재판을 매듭짓게 되었습니다. 금년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지치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28-29)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힘을 주시면 지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게 하십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30-31)

 

1. 올라가게 하십니다.

2. 달려가게 하십니다.

리빙스턴은 이 말씀 하나를 붙들고 아프리카를 정복하였습니다. 날마다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일 년 동안 붙들고 살면 반드시 승리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65개국의 내년도 전망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두 번째로 절망스러웠습니다. 우리보다 더 암담한 나라는 그리스였습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4%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잘 해야 그렇습니다. 2% 정도로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미국이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후버 대통령 때였습니다. 대경제 불황이 골리앗처럼 큰 발자국 소리를 내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버 대통령은 인기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언덕 넘어 번영이 있다고 국민들에게 빈 소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1,500만 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실업자들의 홍수 속에 후버 대통령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미국 후버 대통령 다음 대통령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1,500만 명 실업자들이 빵도 없이 버터도 없이 굶주리고 아우성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5천만 명의 농사꾼들이 농산물을 팔지 못 하여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석유도 없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인이 농산물을 사주어야 합니다. 만일 도시인이 농산물을 사지 않으면 농촌인이 도시의 공산품을 살 수가 없어집니다.

동부와 서부가 하나가 되고 남부와 북부가 하나가 되면 불황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진 자가 나누어주는 것이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습니다>

드디어 루스벨트는 미국을 불황에서 빠져 나오게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대통령은 기도로 모든 것을 극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올라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달려가게 하십니다.

금년은 계속 올라가고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 지도자 연구센터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에서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과 성공한 사람들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연구결과 세 가지 공통점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그들에게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끈기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성공하였습니다.

비전 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오늘 말씀은 위대한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읽으며 마치려고 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27-30)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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