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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체질개선/창 39:19-23

by 【고동엽】 2022. 1. 10.

신앙인의 체질개선/창 39:1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즘 체질개선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체질개선할 것이 참 많습니다. 먼저 땅을 개선해야 합니다. 오늘 논과 밭에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해서 그 좋던 땅이 모두 산성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땅이 건강하고 기름져야 하는데 산성화되면 땅이 면역성이 자꾸만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생산되는 식물들이 병충해에 약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 강하게 농약을 뿌리게 된다. 그러니까 땅이 산성화되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말이 토양을 개선하자는 말입니다. 땅에 비료를 주지 말고 거름을 주고 농약을 치지 말고 농작물을 가꾸어서 땅이 스스로 건강성을 되찾게 해서 그곳에서 우렁이 살고 메뚜기가 살고 미꾸라지가 사는 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땅이 건강성을 회복한 땅이고 기름진 땅이고 거기서 나온 식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기농법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 사람의 체질도 개선해야 합니다. 사람도 산성화된 땅에서 재배된 채소를 먹고 열매를 먹으니까 자꾸만 사람의 체질도 산성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탄산음료를 마시고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운동량은 적으니까 오늘 사람들이 면역성이 떨어져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알레르기가 발생하고 그럼니다. 오늘 우리 생활에도 빨리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유행하는 모든 병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땅이나 체질 뿐 아니고 신앙의 체질도 개선해야 합니다. 신앙도 아주 좋은 믿음의 체질로 신앙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시대는 지극히 인간주의를 표방하는 합리주의적인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인간주의적입니다. 그 결과 믿음이 약화되고 소망도 약화되고 신앙적 모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모험을 피하고 놀이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매사 불안해합니다. 모험이 없으니까 신앙의 감격이 없습니다. 눈물이 고갈되니까 기도에 깊이도 없고 맥을 잡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신앙에 체험이 없으니까 이론신앙으로 빠져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신앙풍토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빨리 체질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내의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감격이 생기고 신앙적인 모험이 감행되고 깊은 기도가 솟아나오고 마음에 신앙적인 넉넉함과 푸근함이 주어지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체질이 잘 개선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요셉의 모습을 보면 “아 저것이 믿음이구나.” 하고 금방 알고 느끼게 됩니다. 요셉은 참 곱게 자란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구김 없이 자랍니다. 그러니까 형들로부터 상당한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상상도 하지 못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전락합니다. 어느 집에 가서 노예로 종살이를 합니다. 청천병력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주인으로부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때 요셉은 완전히 몰락의 길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별생각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그런 때도 있다지만 요셉의 경우는 가장 악성 환경에 빠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의 모습에서 믿음으로 체질이 잘 개선된 모습이 나타납니다.

 

 

 

“긍정의 생각”

 

 

 

본문 39:4를 보면 “주인이 요셉에게 집안의 모든 일을 다 맡겼다”고 했습니다. 또 39:21에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간수장이 옥중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요셉이 비관만 하고 신세타령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섭리와 이유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이고 그러기에 요셉은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며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체질이 개선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그 환경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긍정의 생각을 갖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곳에 꿈이 있고 꿈이 있는 곳에 성취가 있습니다. 믿음이 이렇게 개선되면 우선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발생합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내일의 일도 운명도 문제도 다 맡기게 되는 신뢰가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긍정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신앙체질이 개선되어야 가능합니다.

 

 

 

“긍정의 삶”

 

 

 

사람이 살면서 오늘의 현실만 보면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현실은 대부분 불만족한 환경입니다. 오늘 현재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은 몇 사람 없습니다. 대부분은 불만족 상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존재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살고 누명쓰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더라면 인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무지만 바라보았더라면 그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 때 자신의 처량한 처지만 바라보며 살았더라면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나 아브람이나 모세는 한결같이 앞날을 보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그날에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나 뜻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시원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긍정의 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고 긍정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농부는 오늘 먹을 것이 없으면서도 씨를 땅에 뿌려버립니다. 땅에 뿌려버린다는 것은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농부는 할 일이 없어서 씨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먹을 것도 없으면서도 땅에 씨를 뿌려버리면 추수 때에 가면 최하 60배 최고 100배의 결실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래를 믿고 바라보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체질 개선된 신앙입니다. 개선되지 않으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저 산 너머를 보고 기대를 가지고 꿈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높은 산만 볼뿐 산 너머의 세계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어느 추장이 후계자를 뽑기 위해 유능한 세 젊은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저 높은 산으로 가서 귀중한 것을 가져오라.” 그랬더니 이 세 젊은이가 각각 산에 올라가 소중하다는 것을 한 가지씩 가지고 왔습니다. 한 젊은이는 추운 산꼭대기에서 핀 꽃 한 송이를 꺾어들고 왔습니다. 또 한 젊은이는 산꼭대기 양지바른 곳에서 움돋은 새싹 한포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젊은이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왜 빈손으로 왔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산에 올라가 보니 저 산 너머에 넓은 들판이 있었습니다, 추장께서 빨리 쾌유하셔서 우리 부족을 이끄시고 저 넓은 세계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추장은 그 젊은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합니다. 그 젊은이는 다른 젊은이들이 보지 못하는 저 산 너머에 있는 넓은 세계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이 복입니다. 그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체질개선되면 우선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뜨입니다. 요셉이 그 환경을 저주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예로 살던 집에서는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고 감옥에서도 인정을 받아 옥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그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펼쳐질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열심히 살았던 것입니다. 신앙인은 믿음이 개선되면 이 눈이 뜨이게 됩니다.

 

 

 

“긍정의 기다림”

 

 

 

신앙생활 하면서 먼저 배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신속하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죽은 후에 응답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급하게 기도하던 분들이 응답이 오지 않아서 시험들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 아주 푸짐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장차 네게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많은 자식을 주겠다, 그리고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복은 넓은 땅과 많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받고 75세의 나이에 의심 없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었습니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은커녕 100세가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아들 하나를 주지 않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 속았다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지도 않았고 그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하면 500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 사후 5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어른 남자들의 숫자입니다. 어린아이 여자 노인들이 빠진 숫자입니다. 그 숫자를 다 포함하면 그 광야에 최하 300만 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소 떼와 양떼가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상상을 해 보십시오.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꼭 하늘의 별처럼 많고 이 땅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지 500년 후에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에서 너무 성급하고 오늘 내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시험 들기 좋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긍정의 신앙으로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 얼마를 있었는가 하면 꼭 10년을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시간도 10년이면 긴 시간인데 그 당시 기약도 없고 희망도 없는 감옥에서 10년을 있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하나님의 연단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10년을 참고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나 요셉이 그 암흑의 시간에 끈기 있게 기다렸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어떤 섭리로 나에게 다가오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10년 후에 감옥에서 꺼내서 총리자리로 올려놓지 않습니까. 그래서 체질이 개선된 믿음은 긍정의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이 있습니다.

 

 

 

“긍정의 말”

 

 

 

본문 40:8절을 보면 감옥에서 동료들과 함께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동료의 얼굴을 보니까 수심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수심이 가득하냐,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니까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이상한 꿈이라 불안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말합니다. 여기서 요셉이 말하는 초점을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꿈이냐, 나에게 말해 보라, 그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긍정이라는 말의 초점은 언제나 하나님께 귀결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귀결되는 말은 언제나 선하고 긍정적입니다. 하나님께 귀결되는 말은 한 번도 부정적이거나 불화를 야기하거나 불평하거나 하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귀결되는 언어는 항상 소망적이고 희망적이고 평화적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죄수에게 걱정하지 말고 말해보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하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체질이 개선된 신앙은 그 말의 중심이 언제나 하나님에게 귀결되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초점이 되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체질 개선된 신앙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강조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강조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한때 참 어려웠는데 내가 잘 참아냈습니다.” “그때 남들이 다 외면하고 있을 때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조그만 교회에 부임했는데 내가 밤잠 안자고 노력했더니 오늘 대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신앙이 어설픈 신앙입니다. 이 신앙은 빨리 체질을 개선시켜야 합니다. 개선시키지 않으면 교만해지고 나타내고 나를 계속 강조하는 신앙으로 굳어 갈 것입니다. 오늘 신앙인들이 대부분 이렇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교회들이 서로 불화하고 분열되고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신앙이 개선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언어는 상당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말은 그 사람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말 한마디는 그 사람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언어생활이 건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내 보내며 집집마다 가서 먼저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복을 빌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빌고 복을 말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빈 평안과 복이 그 집에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생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실력을 믿고 나를 그에게 맡기는 생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의 인도자 되심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은 예수의 심장을 내 심장에 갈아 끼우는 삶입니다.

 

그때 내 생각이 긍정의 생각으로 바뀌고 내 눈이 긍정의 눈으로 바뀌고 내 말이 긍정으로 언어로 바뀌고 내 믿음이 긍정적으로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믿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체질이 개선되어서 요셉의 지혜로운 신앙처럼 발전되어지는 믿음의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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