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울면 살아가며 웃는다! (애 2;11-19)
한국인은 눈물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눈물의 챔피언 나라>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물이 많은 민족입니다. 눈물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국인 배우들이 세계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연기는 우는 연기라고 합니다. 연기를 하면서 정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연습을 합니다.
새가 소리를 내는 것을 서양인들은 노래한다고 합니다(Bird is singing) 그러나 우리는 <새가 운다.>라고 말합니다. 한이 많은 민족이라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대한민국(大恨民國)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독일민족은 정복자 민족이라 여유를 가지고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1900년 동안 나를 잃어 버렸었기에 너무 아파서 유머를 발전시켰습니다.
내가 가장 많이 운 것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입니다. 얼마 전 DVD로 다시 한 번 보고 또 울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선지자는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BC 626년 요시야 왕 13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었습니다(렘1;2,2;3) 그런데 그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 범죄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를 살려 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예레미야는 생명을 걸고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외침에 귀를 기우리는 이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레미야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예레미야는 한 사람의 의인이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의인도 없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고 말았는데 예루살렘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징계 받은 상황이 오늘 본문입니다.
1. 바벨론의 침입
하나님은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성전을 파괴하고, 성벽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2. 기근
어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노인들과 아이들만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니 극심한 기근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잡혀간 사람들은 종으로 저주스러운 생활을 하여야 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굶어 죽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때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12)
그 때 일어났던 이야기 한토막이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아들 넷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집안에 양식이 있나요?> <예. 항아리에 양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그 여인은 너무나 배고파하는 남편을 위하여 조금 남은 양식으로 밥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밥그릇에 밥을 조금 남겼습니다. 자녀들 생각이 나서 배고픔을 참고 남긴 것입니다. 그 때 큰 아들이 밖에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배가 고파 밥그릇을 박박 긁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프니까 바닥에 있는 것까지 긁어 먹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네 동생들도 좀 주어야지. 다 먹지 말아라.>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바벨론 군대들이 그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아들들을 모두 잡아 손가락을 잘라 죽여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살해된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의 손가락을 찾았습니다.
큰 아들 손가락을 찾은 아버지는 손가락을 자기 눈 속으로 집어넣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손가락으로 양식을 긁었지. 내 눈이 그것을 보았기에 못 하게 하였지. 그러므로 내 눈 속에 네 손가락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얼
마나 비극적인 이야기입니까?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3. 원수들의 조롱
이스라엘을 미워하던 원수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15-17)
어느 곳을 보아도 예루살렘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래도 소망이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민족을 사랑하며 끝까지 붙들고 몸부림친 참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눈물로 눈이 상할 정도로 울었습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외쳤습니다. 간이 땅에 쏟아질 정도로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가 <기도하면 희망이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 때 피를 적게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살아가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요.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 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18-19)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울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예레미야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4가지가 움직이는 것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기도하려고 하니까 입이 움직입니다.
2. 손이 움직입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예레미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3. 귀가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귀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신경질이 났습니다. 목표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금식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짜증을 부리고 혈기를 부렸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참아라.>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왜 금식 기도할 때에는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고 혈기를 부릴 때에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 때 내가 내 음성을 들려주려고 하니까 너는 기도를 그치고 내려갔단다.> 기도 중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4. 눈을 움직여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에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물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면 극단적인 상황도 돌이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울면서 기도하면 웃으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확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왜 울면서 기도하면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가요?
1. 눈물 속에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진실합니다. 눈물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다고 할 때 우셨습니다.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진실을 보시며 눈물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25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53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나라를 통치한 왕입니다. 아버지 아하스 왕은 성전에서 거룩한 기구들을 취하여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비야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보다 어머니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주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 이후에 최고로 성군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쪽에 강대국 앗수르가 자주 이스라엘을 쳐내려 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사람의 힘이나 군사력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8만 5천명을 다 전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성경은 무슨 병인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죽게 된 병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통곡하며 눈물을 보이며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사38;3)
히스기야에게는 눈물과 진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38;3)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눈물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황해도 재령 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 찬유 장로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업이 잘 되어서 주일성수도 잘 하시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하시고 신앙생활에 모범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을 2층 양옥으로 잘 짓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에 꿈을 꾸는 데 하나님의 책망이 있었습니다. <내 집은 양철집으로 두고 네 집만 이층 양옥으로 그렇게 잘 짓느냐?> 밤에 자다가 이 음성을 들은 그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회개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서야 하나님의 집이 너무나 초라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날 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흠뻑 울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당장 하나님의 집부터 짓겠습니다.>
이튿날 그는 설계사를 데려다가 성전부터 다시 설계하고 짓고 그리고 자기 집을 완성시켰습니다. 이것이 당시 한국 최초의 성전이었던 황해도 재령 동부 교회였습니다. 울며 기도하는 이는 웃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눈물 속에는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웃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눈물은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 눈동자도 움직이라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노사 분규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회사 이야기입니다. 노조 측은 20%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측은 그렇게 임금을 인상하면 회사 운영이 안 된다면서 절대 불가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타협의 틈이 없었습니다. 결렬이었습니다. 감정 대립까지 하고 양 편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폭우와 함께 천둥 번개 치면서 나갈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양 편은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침묵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회의실 문틈으로 물이 새 들어와서 사장 머리와 옷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노조 위원장은 빨리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윗옷을 벗어 사장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우리 때문에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이 때 사장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고맙소. 나는 당신들이 나와 회사를 적으로 생각하는 줄만 알았소.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는 진심을 보았으니 요구를 들어 주리이다.>
사장은 주머니에 도장을 꺼내더니 20% 임금 인상안에 도장을 찍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노조 위원장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장님! 아직 도장을 찍지 마십시오. 우리도 양보하려는 선이 있었습니다. 20% 인상으로는 회사 경영이 어렵습니다. 낮추겠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회사가 어려워도 당신들이 잘 되는 것이 좋아요. 20% 그대로 해요> <아닙니다. 사실은 15%도 과합니다.> 서로 높이고 낮추려는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은 그 회사를 살렸습니다. 눈물에는 감동이 있기에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웃으며 살게 합니다.
3. 눈물 속에는 건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루 흘릴 수 있는 눈물 량은 1입방 cm입니다. 생후 2-3개월 후부터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에게는 울음은 있어도 눈물이 없습니다. 노년에는 눈물샘이 말라 눈물이 적게 흐른다고 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눈물은 흐르게 됩니다. 눈물은 더러운 것들을 씻는 역할도 합니다. 눈물은 더러운 감정을 씻어 내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많이 우는 이들이 건강합니다.
어떤 의사는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를 눈물에 두는 이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밖으로 돌면서 스트레스도 풉니다. 때로는 맛있는 것도 여자보다 잘 먹고 많이 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더 오래 사는 것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눈물이 많다는 것입니다.
TV에서 연속극을 보면서도 웁니다. 조금만 슬픈 일을 당하여도 웁니다. 그래서 여자의 무기는 눈물입니다. 눈물을 억제하여 생기는 대표적인 병이 암입니다. 똑같은 암 병 환자라도 감정 표현을 잘 하는 환자는 암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형무소보다 수도원에서 암 발생 율이 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윌터 스미스 박사에 의하면 힘껏 울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눈물을 삼키며 참는 사람보다 감기에 잘 안 걸린다고 합니다.
눈물을 억제한다는 것은 감정표현을 억누르는 것이고 자기를 위장하는 것입니다. 솔직한 고백이 없는 메마른 생활입니다. 전인격적인 성장은 언제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울면서 기도하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건강이 주어지기에 웃으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눈이 눈물로 상할 정도로 울라는 것입니다. <내 창자가 끓으며> 창자가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울라는 것입니다.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간이 쏟아질 정도로 울라는 것입니다.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눈동자가 쉬지 못 할 정도로 울면서 기도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었습니다.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웃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말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어느 날 밤에 한 할머니가 봇짐 하나를 들고 지하실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사연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하소연하였습니다.
이북에서 월남하였습니다. 아들 안고 월남하여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열심히 길렀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공부를 잘 해 주었습니다. 서울상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집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고생을 면하는가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서울 명문대를 나온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이 출근하면 집안에는 이 할머니와 며느리 둘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아들이 출근만 하면 시어머니를 마구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시장가는 것, 빨래, 청소 모두 식모처럼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조금만 잘못하면 꼬집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때리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며느리한테 수년을 맞고 지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학대가 더욱 심하여 갔습니다. 견디다 못 한 할머니가 괴나리봇짐 하나를 싸들고 가출한 것입니다. 갈 곳에 없으니까 지하실에 개척하는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목사님이 ‘아들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펑펑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들과 며느리 사이는 금실이 좋아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부부 사이에 금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한 마디도 안 했어요. 내가 입 다물고 살면서 아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았어요. 더구나 손자까지 있어요.’ 이 할머니는 펑펑 울었습니다.
입을 열면 아들과 며느리 사이가 어떻게 될 것을 아는 할머니는 눈물을 혼자 흘리며 긴 세월을 산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삶은 아들을 웃고 살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울며 기도하고 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웃고 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는 유명한 명화입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폭군 네로가 신하 한 명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하여 울면서 말합니다.
‘눈물단지를 가지고 와라. 내 눈물은 귀하다. 가족들에게 내 눈물을 갖다 주어라. 그리고 네로가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말해라’ 네로가 흘린 눈물은 눈물단지에 받아 보관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정말로 귀한 눈물입니다. 하나님은 울며 기도하는 사람을 웃으며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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