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만드신 이유
마 10:29-3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
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
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자는 현
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지난 한 주간동안 뉴스의 초점은 사람 죽인 뉴스였습니다. 34세 된 젊은이가 10여 개월 동안 21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보다 더 한심한 일은 그렇게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는데도 그 이웃의 사람들이 10여 개월 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함께 이웃하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뭔가 삶을 잘못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모두 돈과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몰두해 살아가는 동안 이웃을 모르고 너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건의 장본인은 34세 된 젊은이입니다. 지금 한창 미래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동분서주할 때인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모두 너무 보이는 것에 집착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아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저 하늘위에 있는 별이나 달이 보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에 별을 만드신 이유는 사람들이 탁한 공기 속에서 살아가다가 하늘의 별을 보고 마음과 정신과 생각을 맑게 하라는 뜻입니다. 별을 보면서 추해진 마음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고 잃은 꿈을 되찾으라고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별을 보고 노래했고 시를 지었고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삶이 없이 모두 아래만 쳐다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현재 정도에서 이탈되고 궤도에서 멀어져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별은 반드시 저 하늘에만 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간 위인들, 사명자들, 성자들, 헌신자들도 모두 별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서 모두 스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흐트러진 사람들의 삶을 바로잡아 주는 기준이었고 잣대였고 표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시대마다 성자들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되새겨보고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I
저는 지난 주간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그 책은 “성 프랜시스의 전기“입니다. 신학교때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찬찬히 읽으면서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도 프랜시스의 숭고한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흐트러진 모습을 바로잡아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1182년 이태리 아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인이었던 아버지 피에톨 띠 벨라드와 경건한 신앙인 어머니 마돈나 피카 사이에 프랜시스가 태어납니다. 프랜시스가 태어날 때 난산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진통이 왔는데 아이가 나오질 못합니다. 그때 문밖에 지나가던 어느 성자가 나타납니다. “마구간에 짚을 깔고 거기서 아이를 낳으면 순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족들은 급한 마음에 마구간에 짚을 깔고 산모를 누이니 성자의 말처럼 아이를 순산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 아이가 예수처럼 태어났으니 범상치 않은 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아이가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명이 요한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언뜻 세례요한을 생각하고 그 이름을 거부하고 ”프랜시스”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프랜시스가 탄생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마구간에서 태어난 의미와는 다르게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 파티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다가 1203년 11월 어느 날 프랜시스는 중병에 걸리게 됩니다. 날마다 뼈골이 상접해 갑니다. 어느 날 저녁때 산타 마리아 수도원에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양떼 울음소리가 밖에서 들려옵니다. 그때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아름다운 아시스여, 아시스는 여전히 아름다운데 내 아들은 벌써 이곳을 떠나야 하는가, 아니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프랜시스는 혼수상태에서 마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 괴롭다, 날 살려줘, 너는 누구냐, 네가 죽음의 사자냐, 나를 데려가려 왔느냐, 제발 나를 놓아줘, 살려줘“ 하며 고함을 지르고 몸부림을 칩니다.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아들을 깨우며 어머니가 근심스런 얼굴로 말합니다. “꿈을 꾸었구나.” 온몸에 땀이 흠뻑 밴 채 초췌해 있는 아들이 말합니다. “꿈이 아니었어요, 죽음의 사자가 날 잡아 끌었어요, 그래서 소리쳤어요, 그때 천사가 날도와 주었어요, 아니면 나는 끌려가고 말았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 아들이 깊은 상념에 빠지더니 회개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방탕자의 삶을 살았는가, 어머니, 내가 마귀에게 끌려갔더라면 지금쯤 내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는 그동안 값없이 살았어요. 벌써 내 나이 23세입니다“하고 후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을 위로합니다. “아 내 아들아, 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구나, 과연 몇 해만에 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는 거냐, 하나님께 무엇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참 기쁘구나, 하나님이 너를 큰 그릇으로 만드실 모양이구나, 이것이 연단이라는 것이란다, 독수리가 높은 창공을 날려면 호된 훈련이 필요하듯 이것도 네게 주시는 연단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프랜시스의 병이 치유됩니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된 후 처음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갑자기 찬란한 빛이 비추어 오더니 구름 저편사이에 작은 문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사의 합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은혜 받은 자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것이 너희 영혼의 새로운 문, 여기로부터 영원한 본향에 이르리, 영광 돌리세, 십자가의 주께 영광 돌리세“. 프랜시스는 그 순간 깊이 생각합니다. “나의 장래와 미래와 나에게 주어진 몫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할 일은 무엇이며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프랜시스는 그곳에서 마침내 마음에 다짐을 합니다. “나는 평생 가난한 자와 거지들을 위해서 살겠다.” 이것을 소명의 발견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이 내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는 때입니다.
II
신앙인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시험과 유혹이 오는 법입니다. 프랜시스가 그런 결심을 하자 아버지의 반대가 거세었습니다. 아버지는 돈에 열중했습니다. “돈벌어라, 돈이 있어야 힘이 생긴다, 돈이 있어야 사람들이 굽실거리게 된다, 약한 놈을 넘어트리고 쑥쑥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거지들과 친구하고 몰려다니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보통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보통 아버지들은 그런 아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격렬했습니다. 그래서 프랜시스가 기도를 합니다. “이 마음 변치 않게 하소서, 이 뜻을 굽히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주께서 이 뜻을 이루게 하소서” 하고 더 강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뜻을 세웠다면 강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중도에서 포기하게 되고 그러면 그 태도가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이 방해가 따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렇게 강렬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자는” 그랬습니다. 그 말은 실제로 버리라는 말이 아니고 반대를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반드시 반대가 있을 것이니 그 반대들을 효과 있게 극복하라, 이겨라 그 말입니다. 이기고 나면 마침내 복이 오고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기고 나면 나에게, 그리고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까지도 복이 주어집니다. 그 복을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프랜시스가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어려워할 때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었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참 좋은 스승이었고 신앙지도자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이렇게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거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똑바로 가거라, 엄마는 널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 격려에 힘입어 프랜시스는 마음으로 재삼 다시 다짐합니다. “진정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려면 그 사람들처럼 길거리에서 동냥을 받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거지가 되지 않으면 거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모르면 참다운 위로자가 될 수 없다”하고 그는 그 각오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갑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문 곁으로 가서 거지에게 사정해서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거기 앉아서 거지의 삶을 체험합니다. 그런 면에서 체험이라는 것이 참 소중한 경험입니다. 거지가 되어보지 않으면 거지를 깊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이해하려면 배고파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습니다. 실패자의 심정을 알려면 실패해 보지 않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프랜시스는 거지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친히 거지가 되어봅니다.
III
거지의 삶을 경험하고 다시 고향 아시스로 돌아옵니다. 돌아와 보니 당시 그 지역은 한창 나병이 퍼져서 곳곳에 병원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고향 아시스에도 나병원이 세워졌는데 그 병원 앞을 지나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습니다. 그래서 코를 막고 빨리 병원 앞을 지나서 한참 지난 후에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프랜시스야, 이제 거지의 형편도 경험하여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의 마음도 알아야 되겠다, 그러니 너는 가서 나병환자의 발아래 엎드려 무릎을 꿇고 그 고름을 씻어주어라, 네가 그 일을 하지 못한다면 너는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러니 너는 싫다는 생각과 싸워 이겨보아라. 그러면 너는 한없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길을 가다 보니 누군가 길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보니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때 마음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한쪽 마음에서는 “빨리 여기를 떠나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한편 마음에서는 “프랜시스야 네가 싫어하는 것이 도리어 한없는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그를 안아주어라, 너는 지금 제일 중요한 시험에 부딪쳐 있다. 너는 지금 불쌍한 사람을 두고 달아나려 하고 있다, 자, 너는 지금 이기는가 지는가 하는 네 인생의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그러니 그 고민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다 결국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나병환자의 손을 들고 그 상처 난 손과 목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일어나 가던 길을 갑니다. 그때 온몸에서 환희와 승리감이 올라옴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나는 해냈다, 나는 이제부터 나병환자의 친구가 되겠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느낀 그는 아시스에 있는 성 데미안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내게 바른 믿음을 주십시오, 온전한 사랑을 베풀며 살게 해 주십시오, 진정으로 나병환자를 사랑하고 친구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 눈을 들어 십자가를 올려다보았을 때 순간 찬란한 빛이 비추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프랜시스는 그 순간 참 엄청난 영적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고 거리의 전도자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렇게 결심한 그는 법원에 달려가 모든 재산과 재산상속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씁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에게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제는 다른 것은 다 쓸데없다, 이제부터는 오직 실행뿐이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본격적으로 전도자의 길을 떠납니다.
이 프랜시스가 거리에 나가 본격적으로 전도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담아 들어주었습니다. 그가 아시스의 갑부 집안의 아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모든 기득권, 재산, 상속도 포기하고 전도자 되었다는 점, 젊었을 때 방탕 생활하던 그 젊은이가 변화를 받아 전도자 되었다는 점 때문에 더 호소력을 주었습니다. 모두들 신기해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마태복음 10장에 의거해서 사도적인 청빈생활을 시작합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맨발로 비지팡이와 전대 하나만 소지하고 돌아다니며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다니며 전도를 하니까 이곳저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기적은 가까운 친구들이 감동을 받고 전도자로 합류해 왔습니다. 또 거지들도 감동을 받고 전도자로 합류해 왔습니다. 또 한번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수도원에 도적들이 들어왔습니다. 밥을 달라는 그들을 수도사들이 혼내서 좇아버렸습니다. 프랜시스가 돌아와 그 보고를 받고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인데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좇아 보낼 수 있느냐, 먹을 것을 가지고 산속을 찾아서 정중히 사과하고 주고 오라“고 음식을 싸서 보냅니다. 그랬더니 그 강도들이 며칠 후에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우리도 당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라나섭니다. 그러니 얼마나 정열적으로 전도했단 말입니까.
마침내 그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기운이 진해갑니다. 그래서 프랜시스는 베루나 산으로 올라가 최후의 기도를 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주소서, 하나는 내가 육체적으로 괴로움을 겪어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하소서, 그리고 또 하나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참으셨던 그 타는 듯한 사랑을 나도 가지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를 할 때 그는 이사야가 본 그 환상 여섯 날개 가진 천사들에 둘러싸인 보좌에 앉은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때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 순간 프랜시스는 자신의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고 오른쪽 가슴에 창 자국이 나서 피가 흘러 속옷을 적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아시스로 돌아오자 아시스 사람들은 프랜시스를 성자로 받아 줍니다. 그래서 모두 나와서 그의 귀향을 환영하는데 그때 나병환자 하나가 프랜시스의 손을 잡자 그 순간 병이 나아버립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가 전도를 합니다. 나병환자들의 상처에서 고름을 닦아줍니다. 그 몸을 씻어줍니다.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나병병자들의 상처들이 아물고 고름이 마르고 딱지가 떨어지고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몸이 쇠약해져서 1226. 10. 3. 44세 나이로 임종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프랜시스의 일생의 모습을 통해서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게 됩니까. 프랜시스는 분명 하나의 별입니다. 스타입니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나의 삶의 모습을 되새겨보고 비추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이 세상에 세워놓으신 하나의 기준이고 잣대고 성자고 표본입니다. 그의 삶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삶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혼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을 하는데 혹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는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도 가지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오늘 탁한 세상에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런 역할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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