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믿음, 그 보상! (행 16:19~34)
우리가 일본에게 지배받을 때 이야기를 하면 늘 유관순 여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에게 지배받을 때 이야기를 하면 미리암 여인 이야기를 늘 합니다.
미리암은 일곱 아들을 잘 길렀습니다. 어머니 말이면 절대 복종하게 길렀습니다. 놀라운 교육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하나님을 믿지 못 하게 하고 로마 신 앞에 절하게 강요하였습니다.
미리암 8식구는 생명을 걸고 절하지 않았습니다. 붙잡혔습니다. 한번만 절하면 살려 준다고 하여도 한 결같이 절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 앞으로 끌려 왔습니다. 큰 아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황제는 한번만 절하면 살려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황제의 <죽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죽였습니다.
둘째도 그랬습니다. 여섯 명을 다 죽이고 일곱 번째 아들에게 황제가 말했습니다. 마지막 아들은 어머니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어머니! 나도 죽으면 어머니 혼자 남는 데 누가 어머니를 받들겠어요? 난 어떻게 해야 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네 형들이 찬란한 광채 안에서 쉬고 있다. 그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니? 이 악한 사람들 말을 듣지 말고 사랑하는 형들 음성을 들어라> 아들은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황제가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너는 어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내 말을 들으면 살려준다. 내가 섬기는 신이 그려진 이 반지를 던질 터이니 너는 그 반지를 주우려고 몸을 굽혀라. 그러면 너는 절한 것으로 인정하여 주고 살려 주겠다>
아들은 말했습니다. <오! 악한 당신에게 저주가 있기를...> 황제는 화가 나서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앞으로 나가면서 나를 먼저 죽이고 아들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꼭 끼어 안았습니다. 팔꿈치 사이로 칼을 꽂아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들이 죽자 이 여인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는 승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내 영혼도 데리고 가 주옵소서> 그리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할 때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어머니인가? 지금은 아들들과 함께 영원히 있겠구나!> 천사들이 울부짖었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어머니인가? 일곱 아들이 그렇게 죽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이방인들은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하는 것이 몸에 밴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신비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신경입니다. 두 가지 신경이 우리 몸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운동신경과 자율신경입니다. 운동신경은 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경입니다. 팔 다리 목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이나 내장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심장을 움직이게 하고 쉬게 할 수 있다면 수많은 이들이 간편하게 자살하였을 것입니다. <심장을 멈추게 하고 싶다> <숨 쉬는 허파야! 잠깐 쉬게 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대로 멈추게 할 수 있으면 수많은 이들이 간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이런 신경을 자율신경이라고 합니다. 이같이 운동신경과 자율신경으로 우리 몸을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교감신경은 불안, 초조, 공포, 미움, 질투 등 나쁜 감정의 지배를 받는 신경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저절로 위액이 나오지 않습니다. 미움의 감정이 들면 성적 욕망이 사라집니다.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안 좋은 환경이라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즐거워하면 엔도르핀이 저절로 나옵니다. 부교감신경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지만 감정만은 우리가 지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기도하고 찬송하면 기뻐지면서 온 몸에 부교감신경이 활동을 하여 좋은 반응을 나타내 줍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들려 귀신같이 점을 잘 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데리고 있는 주인은 그 여자 때문에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재주부리는 곰을 가지고 돈을 버는 서커스 주인같이 수입원이 이 여자였습니다. 바울이 보니까 귀신에 사로잡혀 사는 생활이 너무나 비참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쳤습니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주인은 이제 더 이상 그 여자 때문에 돈을 벌수가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끌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으로 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습니다.
<이 자들은 우리가 믿는 로마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긴다. 그리고 이상한 신을 전도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옷을 찢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쳤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발에 착고도 단단히 채웠습니다..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이 발동한 것입니다. 이 때 홀연히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착고가 저절로 풀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보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틀림없이 죄수는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죄수를 놓친 간수는 사형입니다. 사형당할 것이 두려워 자살하려고 칼을 배에 댔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는 놀랐습니다. 지진, 저절로 그 든든한 문이 열린 것, 누구도 풀어주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착고가 저절로 풀어진 것,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인 데 도망가지 않은 것 등 모두가 놀랄 것뿐이었습니다.
간수는 벌벌 떨면서 바울 앞에 가서 엎드리고 물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바울이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중심 말씀입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차려 주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결론적인 마지막 말씀입니다.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울과 실라의 믿음은 자율믿음이었습니다. 세 믿음을 자율적으로 지켰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세 가지 위대한 믿음을 보겠습니다.
1. 기도의 믿음
바울과 실라는 그런 밤중에도, 그런 깊은 옥에서도, 그런 아픔 중에서도, 그런 상황에서도 저절로 기도의 자율신경이 움직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앵무새는 저절로 노래하듯이 우리는 항상 저절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는 곳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물었습니다. <랍비님!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랍비가 말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기도 잘 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의 자율신경이 움직여야 참 성도입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있습니다.
2. 찬양의 믿음
바울과 실라는 찬양하였습니다. 자율신경입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찬양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속에 거하시는 분이시기에 찬양을 너무나 좋아 하십니다. 그래서 찬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을 맡은 루시퍼는 하나님 옆에서 지냈었습니다. 성전에 성가대가 4천명이었습니다. 사울이 악신에 걸려 병들었습니다. 의사들이 와서 약을 지어 주니까 병에서 나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타면서 찬송을 불렀더니 악신이 떠나고 사울의 병은 상쾌하게 나았습니다(삼상16;23) 찬양은 능력입니다. 다윗 시대의 사람들은 다윗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미친 사람> 이것이 다윗의 별명입니다.
시편의 약 3분의 2가 다윗의 작품입니다. 시편 103편에 있는 다윗의 노래에 담긴 다윗의 고백이 이런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할지어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송축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장도, 위도, 창자도, 쓸개도 다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다윗은 정말 찬양에 미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었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영국 뉴 잉글랜드 어느 농가에서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언제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앉으나 서나 아이에게 젖을 줄 때나 재울 때는 늘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리까? 나 거기 가리이까?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이 찬송을 듣기만 하면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지었습니다. 울다가도 이 찬송을 듣기만 하면 편안함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들어 점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찬송소리가 점점 약하여지더니 드디어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입니다. 아이의 행복은 그친 것 같았습니다.
얼마 후 새 엄마가 생겼습니다. 구박이 심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가 보던 성경을 품에 안고 도시로 가출하였습니다. 혼자 살면서 결국 타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청년이 되었지만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방탕생활을 하가가 결국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숙집에 누워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 교회 전도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하숙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간곡하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하여도 이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도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청년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습니다. 냉정하였습니다. 전도사도 힘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하다 말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혼자 흥얼거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이 수고 언제 그치고 나 거기 가리까 나 거기 가리까
이 찬송을 듣는 순간 청년은 갑자기 몸부림치며 탄식을 하였습니다. <아! 어머니의 찬송!> 청년은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을 꺼내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몸부림치며 울어댔습니다. <어머니!> 그러면서 갑자기 방탕한 생활을 회개하였습니다.
인생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죄악의 쇠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얼굴에서는 평생 맛보지 못 하였던 기쁨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찬송이었습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양으로 옥문을 연 것처럼 오늘 날로 기도와 찬양은 기적을 주고 있습니다.
6.25 전쟁 중에 일어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당시 이리 교회를 섬기며 일하시다가 공산군에 체포되었습니다. 공산당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 예수 믿는 교회입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전혀 하나가 될 수 없는 기름과 물이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포로를 처형하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목사님도 처형장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그 목사님은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잘 죽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고 나자 마음이 편하였습니다. 이왕 한번 죽을 것 어쩔 수 없는 형편은 감사로 받아 드리자고 작정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비우자 평강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편안하여졌습니다. 그러자 입술을 열리고 저절로 입에서 찬송이 나왔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이 찬송에서 "만세반석"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까 점점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점점 찬송이 커졌습니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천국 문이 열리고 그 천국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간다는 찬송을 힘 있게 하니까 인민군 소대장이 목사님의 등을 세차게 후려치며 소리쳤습니다.
<야! 이 새끼야! 입 닥쳐! 이런 나쁜 놈은 잔인하게 죽여야 해!> 그러면서 목사님을 개 패듯이 주먹으로 치고 소총으로 때렸습니다. 발길질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골짜기로 끌고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깊은 골짜기로 오자 북한 소대장은 주저앉더니 엉엉 울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왜 우십니까?> 소대장이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도 이북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예수님을 믿었어요. 한 동안 예수님을 잊고 있었는데 방금 목사님 찬송을 듣고 잃어버린 주님을 찾았어요. 목사님! 빨리 도망가세요!>
이 말이 하고는 산을 향하여 총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소대장은 사라졌습니다. 기도와 찬송은 능력입니다. 옥문을 열 수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에게 찬송을 불러 드리라고 창조하셨습니다.
도봉산 음식점에 갔더니 어느 부자가 회갑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하는 이를 불러 왔습니다. 그 사람은 하루 일당을 받고 창만 하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가 창을 부르러 와서 음식을 나르면 안 됩니다. 청소를 해도 안 됩니다. 노래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열심히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3. 전도의 믿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간수에게 전도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감옥에 왔고, 전도하며 감옥 문을 나섰습니다.
하고 싶다고 전도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에 밴 습관으로 전도하고 사명으로 전도한 것입니다. 이런 환경 중에도 전도하는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나는 우물가 선교회 최 대하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90년 겨울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한때 강남에 있는 한 룸살롱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였습니다. 룸살롱 같은 음란 지역에 위장취업하고 들어가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들과 주인과 종업원들에게 전도하려고 하는 결심이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가장 그늘 진 곳에 전도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들처럼 행동을 하려고 하여도 쌍소리를 할 수 없었고 음란을 짓을 그들처럼 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조금씩 경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데 올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목사님은 그들과 친해지기 위하여 최대한 애를 썼습니다. 손님들이 없는 대낮시간이면 동료 웨이터들과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대기하는 아가씨들과 동전 따먹기도 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냥과 담배를 준비해 가지고 로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담배를 찾는 아가씨들이 있으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짓궂은 손님들의 잔인한 요구를 견디다 못해 술좌석에서 뛰어 나오는 아가씨의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통곡하는 아가씨와 같이 울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포장마차에 마담과 같이 가서 앉아 몇 시간이고 푸념을 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마음을 줄 수 있을 때가 되었습니다. 아주 친하여졌습니다.
목사님에게는 그런 생활이 고역이었지만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밀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세계를 점점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들보다 관대하게 대했던 이유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습니다. 24일은 보통 날보다도 손님이 많았습니다. 저녁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8개의 룸이 모두 찼습니다. 단골손님들조차도 돌아가야 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하고 생일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웨이터와 호스티스들에게 생일 축하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누구의 생일파티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웃기만 하였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술좌석은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루돌프 사슴코를 불렀습니다. 심지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가요처럼 연주되기도 하였습니다. 징글벨 소리도 술좌석에 울려 나왔습니다. 고함소리도 나왔습니다. 온갖 음담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술 취한 이들은 즐기고 있었습니다. 술과 음란과 욕설과 거룩한 캐롤 송 모두가 뒤범벅이 된 난장판이 12월 24일 술집 풍경이었습니다.
드디어 12시가 넘었습니다. 셔터가 내려지고 손님들은 아가씨를 끼고 여관으로 갔습니다. 우리 웨이터들과 짝짓기에 참여하지 못한 아가씨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집로 돌아가기 전에 한 방으로 모였습니다. 새벽 2시 30분이었습니다. 세어 보니 17명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전등불을 끄고 케이크에 불을 붙였습니다. 모두 누구 생일인지 몰라 궁금해 하였습니다. 남궁 마담이 누구의 생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견디다 못 해 물은 것입니다. 최목사님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처음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복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야기, 아담과 하와의 죄지은 이야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시켜주시러 오신 이야기, 그 분은 그늘 진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사랑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외롭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오늘이 그 분 생일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분이 오신 목적이 바로 여기 있는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러 오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마침내는 여기저기서 눈물을 씻어 내고 있었습니다. 훌쩍 훌쩍 우는 소리도 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슴에 안아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 받던 그들을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란하였던 공간이 가장 거룩하게 드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두는 그 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소리쳐 찬양하며 처음으로 그 곳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출근하며 성경을 더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룸살롱 방은 자연히 하루에 한 번씩 성경을 공부하는 방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직장을 하나 둘 떠났습니다. 그러나 성경 공부 반에는 어디로 가든지 모여 들었습니다. 그 룸살롱 성경공부는 그 후 2년간 계속 되었습니다.
이제는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룸살롱 주인이 이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없애버리고 다른 일을 그 자리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술집 주인에서 교회로 돌아와 아름다운 성도가 되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마 20:28)
우리는 성탄절에 500명을 초청하여야 합니다. 나는 금식기도를 하고 설교할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날 초청을 못 할 분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벌금 10만원을 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와야 합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 와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밖에서 서서 예배 드려야 합니다.
인천 계산 교회 최 세웅 목사님이 이런 광고를 냈더니 정말 한 여자가 아이를 업고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하는 곳입니다. 이번 성탄에 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세 가지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믿음, 찬송하는 믿음, 그리고 전도를 그치지 않는 믿음이 최고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그 믿음을 지키고 나갈 때 옥문이 열리는 보상을 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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