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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인생의 고백! (시편 39:4-12/전도서 2:17-23) ?(고)이중표목사 |

by 【고동엽】 2022. 1. 2.

허무한 인생의 고백! (시편 39:4-12/전도서 2:17-23) ?(고)이중표목사


우리는 추석 명절을 지내면서 고향을 찾아가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을 찾아서 성묘를 합니다. 추석 명절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회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든지 생존해 계신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한 시를 우리에게 썼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
종말은 죽는 날입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반드시 사람은 죽는 날이 옵니다. 자기 죽음을 알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죽음을 압니다. '언젠가 나는 이 세상을 떠난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 자기 나이를 알아야 합니다.
'연한의 어떠함'은 나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살 것인지 알려 주십시오. 나의 사는 날을 알려주소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은 짧습니다. 얼마쯤 살았으며 또 얼마나 살 것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사는 날을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와 미래에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셋째는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5-6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5-6절)
이 말씀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한뼘 길이 밖에 안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살아있는 사람일지라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으니 걸어다닌다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이니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림자 같은 것이고 우리의 사는 날은 한뼘 짧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잘 묘사한 솔로몬 왕은 인생의 헛됨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바람을 잡는다'는 말을 전도서에서 열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 바람을 손에 잡을 수 있습니까 못잡습니다. 바람을 잡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 인간의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눈으로 본 것을 가졌으며 입으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으며 몸에 입고 싶은 옷은 다 입어봤습니다.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습니다. 인생으로서 그의 영화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생애 향락을 누려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말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2-4)
솔로몬은 왜 해 아래서 사는 동안 인간의 하는 모든 일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먼저 인생의 세월이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5절) 이것은 인생의 짧음과 허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세월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실로 인생은 사는 날이 짧습니다. 덧없이 갈 뿐입니다. 그래서 옛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 청춘 누구 주고 뉘 백발 가져온고
백발이 오고가는 길 알았던들 막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이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야고보 사도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사 38:12)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우리 인생의 한 때 아름다움이 들의 꽃처럼 시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실감합니다. 한 때 아름다웠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쉬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인생 자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 90:3-5)
이 세상 어느 것도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지진이 나면 빌딩도 무너집니다. 정권도 무너집니다. 때가 되면 청춘도 내놓고 건강도 무너집니다. 명예도 빼앗깁니다. 든든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억척스레 모은 재물도 결국은 내 손에서 떠납니다. 돈을 모으는 것은 욕심일 뿐이지 누가 가져가든지 가져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벌어서 모으고 또 모았다가 사기꾼 말에 속아서 다 빼앗깁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버느라고 과로해서 그만 병들어서 병원에서 다 빼앗깁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모아서 평생에 쓰지 못하고 간직했다가 죽으면 자식에게 빼앗깁니다. 살아서 받아야 유산이지 죽어서 받는 것은 유산이 못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전 5:10-11)
솔로몬처럼 영광을 다 누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것이 잘 산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
눈으로 보아서 만족한 것이 있습니까 귀로 들어서 만족한 것이 있습니까 눈으로 보아서 만족한 것이 없고 귀로 들어서 만족한 것이 없습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만족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람난 남편들 보면 거의 다 부인이 미인입니다. 또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싶어 세계 일주를 하지만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봐도 결론은 그것이 그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느 것 하나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람 잡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욕심이 한이 없어서 좋은 집에 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저도 신림동에 살 때 화장실이 밖에 있으니까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화장실에 가기 싫으니까 버팁니다. 버티면 위 아래가 힘듭니다. 그런데 신반포에 개척하러 와서 월세 얻어서 사는데 화장실이 안방에 있으니까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날씨가 추워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만족이 없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부인이 장례식장에서 "아이고 우리 남편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 가기를 그렇게 소원하더니 죽었구나" 하고 통곡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새 살림 꾸려 전셋집에 들어가 살았는데 서로 사랑하며 사니까 전셋집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개구쟁이라 주인집 장독을 깨뜨리니까 주인이 "방 빼" 해서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내가 돈 벌어서 집 사야지" 하고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모아서 집을 사서 들어갔습니다.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강남에 사는 친구가 집들이 한다고 해서 가봤더니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아파트에요. '야, 돈 벌자' 해서 또 억척스럽게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모아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몇 되니까 아침마다 화장실이 전쟁이라 그래서 '화장실이 둘 있는 집으로 이사 가야지' 해서 안먹고, 안쓰고, 안입고 돈을 모아서 화장실이 둘 있는 넓은 아파트를 사서 들어갔습니다. 가서 집들이를 했습니다. 친구들과 거나하게 마시고 나서 다 보내놓고 잠자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넘어져서 죽었습니다. 화장실 바꾸다가 죽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직장 바꾸다가 죽고, 직위 바꾸다가 죽고, 옷 바꿔 입다가 죽고, 명예 바꾸다가 죽었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것을 바꾸어 살아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바꾸어 타도 그것이 그것입니다. 옷을 바꾸어 입어도 그것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서 자리를 바꾸어 올라가도 그것이 그것입니다. 훈장 바꾸어 달아도 그것이 그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러나 나의 주여 이제 무엇을 바라고 살리이까 당신 외에 또 누구를 믿으리이까" 이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돈이 가지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돈으로 옷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양은 돈으로 못삽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밥 맛은 돈으로 못삽니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력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약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침대는 돈으로 살 수 있으나 잠은 돈으로 못삽니다. 돈으로 물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세계일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천국은 못갑니다.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좁은 집에 살면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어디에 살든지 인간에게 문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늘의 행복을 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오직 인생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모두 목마른 존재입니다. 헛된 일에 헤매다가 목마르고 갈증나고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헤매다가 죽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터진 웅덩이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심령이 터졌습니다. 죄로 터졌습니다. 욕심으로 터졌습니다.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집어넣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파스칼은 "우리 중심에 한 공백을 두었나니 그 공백에 하나님이 계실 때까지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심의 한 공백은 하나님이 앉을 자리입니다. 아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공허할 뿐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복으로 만족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주는 은혜로 만족해야 합니다. 살아도 예수 안에서 살고, 죽어도 예수 안에서 죽고, 먹어도 예수요, 잠을 자도 예수요,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내 가슴이 하늘로 채워지고 내가 길을 걸어도 우러러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만족시킨 것이 이 세상에 있던가요 살아오면서 무엇으로 만족했습니까 아무것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더 이상 속지 말고, 마음을 이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을 예수께 빼앗겨 예수로 만족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예수에게서 찾아야 됩니다.
20대, 30대까지는 눈으로 보는 세계를 즐기는 때입니다. 그래서 사춘기라고 말합니다. 사춘기는 봄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그때는 인생이 눈으로 보고 남이 가진 것 나도 갖고 싶고 남이 보는 것 나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40대부터는 사추기입니다. 사추기 인생은 가을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가을은 아름다운 꽃이 없습니다. 그때는 열매가 가치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이가 40이 넘어갑니까 이제는 자기 삶의 의미를 맛보아야 됩니다. 40이 넘은 사람이 꽃을 따라 다니면 불쌍한 것입니다. 그래서 40이 넘어서 바람나면 추합니다. 40대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빅터 프랭클린의 단편 소설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난쟁이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이 난쟁이는 거꾸로 서서 공을 돌리고 접시를 돌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던져 주어서 그것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나마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긴 신부님이 성당에 데려다가 심부름하며 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난쟁이고 성당에 온 뒤로부터 차츰 차츰 얼굴에 생기를 잃어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 미사를 드리면서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가진 재능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는 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다."
그때 난쟁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은 거꾸로 서서 공 굴리는 것 밖에 없는데, 접시를 돌리는 것 밖에 없는데 이것이라도 주님께 드리자'
밝은 낮에 드리자니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서 성모 마리아상 앞에 가서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발가락으로 접시를 돌리고, 자기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난쟁이는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다 부렸습니다. 이 일을 매일 매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난쟁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삶에 보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청소부가 성당에 가서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난쟁이가 거룩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신부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청소부의 얘기를 듣고 신부님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난쟁이가 무릎을 꿇고 "성도 마리아님, 제가 가진 재주는 이것 뿐이옵니다." 하면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며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쇼를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신부님이 혼을 내려고 가는 순간 성모 마리아가 내려오더니 무릎을 굽혀 한쪽 손으로 그 곡예사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대가 나를 기쁘게 했노라 그대 땀을 내가 받았노라. 그대 눈물을 받았노라 그대의 재능을 내가 받았노라." 하고 말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신부님이 무릎을 꿇고 "오, 주시여, 나도 저 난쟁이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땀을 쏟아 주께 드릴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주님을 위해서 땀 흘려 보았느냐 마음을 바쳤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슨 일로 최선을 다했느냐"
혹시 한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서러워 울던 때는 있었겠죠, 한맺혀 울던 때는 있었겠죠.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가슴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 바쳐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고 싶은 감동이 오는 때가 있습니까 '내가 순교해야지' 그런 마음이 우러나는 때가 있습니까 날마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을 쏟아 주님께 드려지는 마음, 땀을 쏟아 바치는 그 마음, 내게 있는 재산 얼마인지 알지 못하나 한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쏟아내는 그 손길이 있을 때 주님이 '아, 그대가 바람을 잡으려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성령의 바람을 탔구나!'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바람을 잡아 흔들리는 사람 되지 말고 내 속에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 그 바람 타고 그 바람으로 살고 그 바람으로 능력을 얻어 주께로 나아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이 길지 않습니다. 분명히 종말을 알아야 됩니다. 연약함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것은 묻을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은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바람 따라 산다 말하지만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람 따라 가야 합니다. 이 은혜의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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