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처럼 복 받는 비결 (시편 41편 1-13절)
< 진정한 복의 의미 >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최초로 복을 주신 존재는 사람이 아닌 공중의 새와 물속의 생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공중의 새와 물속의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창 1:22).” 그 구절을 보면 복은 ‘생육, 번성, 충만’이란 단어에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말씀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기까지는 다른 생물들과 복의 내용이 같지만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추가 말씀이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왜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오해하면 무자비한 정복자처럼 자연과 모든 생명을 함부로 훼손해도 된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 나오는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땅을 잘 관리하라!”는 명령이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은 “생물을 잘 보살피라!”는 명령입니다. 결국 가장 복된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전자의 성공을 이룬 후 자연을 잘 관리하고 생물을 잘 보살피는 후자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즉 전자의 성공에 추가해서 후자의 살핌까지 있어야 진정한 복이 됩니다.
록펠러는 53세 전까지는 전자의 성공만 있었기에 악덕기업주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복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53세에 죽을병을 통해 깊이 회개하고 그 이후에 후자의 삶을 추구하며 많은 교회와 목회자를 도왔고 여러 자선기관과 교육기관을 세워 뜻 있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악덕기업주란 오명을 탈색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이웃을 보살피는 삶으로 진전시키지 않으면 결코 복이 되지 못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전자의 성공을 이룬 경제계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후자의 살핌을 추구해야 인생이 불행하게 끝나지 않고 이름이 오명으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서 성공했지만 오명이 더 크게 남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삼성이 지금 가장 속히 만들어야 할 ‘특별과제 추진팀(task force)’은 ‘산재를 회피하고 노조를 막으려는 팀’이 아니라 ‘사회의 없는 자를 보살피려는 팀’입니다. 전자의 성공을 이루고도 후자의 살핌을 외면해서 오명을 남기고 가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의 재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만 나그네와 이웃을 보살피는 삶에도 탁월한 ‘살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는 전자의 삶을 이뤘지만 75세에 과거의 삶의 터전을 떠나 믿음과 나눔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지구 역사상 사람으로서는 가장 위대한 삶을 살고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는 지금부터 약 3900년 전입니다. 그렇게 오래 전의 인물이 지금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십시오. 역사상 아브라함처럼 더 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많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영향력을 현대까지 미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처럼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역사에 남은 것은 믿음 안에서 후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왜 다윗이 가장 복된 삶을 살았습니까? 완벽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다윗도 믿음 안에서 후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 다윗처럼 복 받는 비결 >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설교를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22절).” 얼마나 복된 선언입니까? 또한 다윗의 최후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었다(36절).”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런 인물이 되고 그런 인물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되어야 하고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윗이 가장 복된 존재가 된 것은 예수님이 그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 최대의 축복은 다윗처럼 우리의 후대 중에 인물이 나오는 것이고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복 받는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가난한 자를 보살피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다윗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건져주시는 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지켜주는 자를 지켜주시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를 보살펴주십니다.
또한 다윗은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치유의 은혜를 주신다고 고백합니다(3절). 그러므로 치유를 원하면 명의를 찾거나 치유집회만 다니지 말고 가난한 자를 살피려고 해야 합니다. 치유집회에 가서 능력 있다는 사람의 손에 머리를 갖다 대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서 자신의 돕는 손길을 펼치는 것이 더 큰 치유의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가난한 자를 괴롭히면 발병 확률이 커지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면 치유 확률이 커집니다.
가난한 자를 살피는 사람은 대개 책임의식도 강합니다. 다윗은 책임의식이 아주 강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책임의식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활용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일은 저주가 아닙니다. 흔히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일의 저주가 생긴 줄 알지만 타락 전에도 하나님은 에덴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일은 자기 위치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주는 복의 터전입니다.
어느 날, 사무엘이 사울 대신 새 리더를 세우려고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불렀습니다(삼상 16장). 그때 이새의 8명의 아들 중 7명이 사무엘 앞에 섰지만 사무엘은 그 중에서 리더를 뽑지 않고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당신 아들들이 다 모였습니까?” 이새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막내가 지금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그 막내아들을 불러오라고 한 후 그를 새로운 리더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사무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복을 받겠다고 급히 달려온 이새의 7명의 아들들에게는 복이 주어지지 않고 “형님들! 가 보십시오. 저는 여기서 양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했던 다윗에게 복이 주어진 것을 보십시오. 참된 복은 자기의 할 일과 책임을 다할 때 주어집니다. 믿음은 최선의 땀을 지향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질 때 부름을 받았고(16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수선할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19절).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을 제자로 선택했습니다. 주어진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개 믿음도 좋습니다. 교회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람만 다닌다는 일부의 오해를 풀어주는 책임적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책임감이 있고 희생하고 땀을 흘릴 줄 아는 성도에게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다윗이 용기와 능력이 넘치는 리더가 된 것은 소년 시절 목동의 일을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을 보살피면서 곰과 사자를 물리치는 용기와 능력을 배양했습니다. 그 용기와 능력으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일터에서 그런 용기와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용기와 능력은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할 때 생깁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있게 하신 분야에서 열심히 일할 때 능력도 받고 축복도 받습니다. 그 능력과 축복을 활용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살피는 사람이 다윗처럼 복된 존재가 됩니다.
2. 자기를 고치려고 하십시오
어느 날, 체육관 집회를 자주 하면서 신유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한 강사가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82년에 남쪽 지방으로 집회를 가다가 자동차가 섰습니다. 라디에이터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근처에 인가가 없고 물을 구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기도했습니다. ‘자동차야! 움직일지어다!’ 그러자 자동차가 움직였습니다.” 그 얘기를 몇 십 년 동안 집회 때마다 하면 신도들이 “아멘!”하고 소리칩니다. 그때 그 강사가 말합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기도하면 섰던 자동차도 움직입니다!”
그처럼 30년 전의 얘기를 30년 동안 집회 때마다 써먹으면서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설교 내용이 거의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 말만 들으면 청중들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과 섭리를 왜곡해 듣게 되고 자기 변화는 외면한 채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을 수단화해서 복만 추구하는 기복주의에 빠집니다.
사실상 그런 체험들은 지금도 성도의 삶에서 수없이 일어납니다. 자녀에게 사고가 있었지만 큰 사고가 아닌 것도 은혜였고 매일 사고 없이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매일의 은혜가 30년 전에 열이 나서 자동차 시동이 꺼졌다가 다시 시동이 켜진 것만 못하겠습니까?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성도는 매일 그런 체험 가운데 살기에 그런 체험 얘기가 오래 전 과거 얘기일수록 현재의 역동적인 신앙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도 그런 집회에 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능력의 손도장을 찍겠다고 하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허황된 능력을 쫓으면 진짜 열매와 진짜 체험은 더 멀어집니다. 반면에 믿음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은혜 체험은 더욱 넘치게 됩니다. 믿음은 책임성과 땀을 포함해야 하기에 하나님이 “관리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혼자 다 하실 수 있지만 성경을 보면 “내가 다 해주겠다.”고 하시지 않고 “내가 너를 도우리라! 너를 붙잡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결국 이런 말입니다. “나를 믿고 일을 도모하라! 믿음으로 일하라! 실제로 행동에 나서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힘을 성도의 일을 도맡아 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행동하는 성도를 돕는데 사용하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우선적으로 관리하고 다스려야 할 제일 대상은 바로 자신입니다. 다윗은 이웃도 잘 보살폈지만 자기 관리에도 탁월했습니다.
본문 4절에서 다윗이 “나를 고치소서!”라고 고백한 것은 문맥의 의미대로 하면 자신을 병에서 고쳐달라는 의미지만 회개를 통해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결국 자기를 병에서 고치려면 먼저 자기의 심령을 고쳐야 합니다. 즉 건강의 은혜를 입으려면 회개를 통해 자기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만 풀어지길 원하지만 다윗은 문제와 고난과 병의 원인이 자기 죄에 있음을 깨닫고 진실한 회개를 통해 먼저 자기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자기 변화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물론 자기란 껍질을 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복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진통입니다. 복은 돈이 있고 잘나고 똑똑하고 편안한 것이라기보다는 영혼이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영혼이 만족을 느낀다는 말은 고통이 없다는 말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고난이 있으면 고통을 느끼고 잠시 실망도 되고 낙심도 됩니다. 그래도 그 고통을 자기 변화의 기회로 삼으면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집니다.
삶에 고통이 있으면 고통이 마땅하게 주어졌다고 여기는 회개자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할 때 시므이가 저주하자 하나님이 그런 저주를 허락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시므이의 저주를 들으면서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죄와 우리야를 죽인 죄를 생각하면서 “마땅히 당할 일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처럼 고난 중에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시므이를 죽이는 대신 자기를 죽이는 회개 고백을 했습니다. 그처럼 누군가로부터 악한 말을 듣거든 분노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고통 중에 원망하지 않고 원수조차 미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는 사람보다 다윗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더 인정해주십니다. 참된 믿음도 자기 죄와 허물을 인정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처럼 힘든 일이 생길 때 분노 대신 다윗처럼 자기 죄와 허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는 사람이 다윗처럼 누구보다 복된 존재가 됩니다.
3. 고난 중에 기도하십시오
성도가 고난을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면 원수가 조롱합니다. “저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저렇게 고난당하는 거야. 이제 죽을 거야. 저런 사람은 죽어도 마땅해!” 그처럼 상처에 식초를 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런 악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5절). 그리고 병든 자기를 찾아와 아는 척 하면서 별로 맞지도 않는 말을 가지고 다윗의 고난을 가중시키고 남에게 정확한 사실도 아닌 거짓말을 퍼뜨리는 원수들도 많았습니다(6절).
살다보면 자신도 가족이나 친구에게 본의 아니게 그런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위로자가 되려면 고난당하는 사람 앞에서 고난의 이유를 진단하는 식의 말을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유대 문헌은 고통 받는 자가 먼저 대화의 문을 열 때까지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의 심정과 처지도 잘 모르고 함부로 하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숙한 사람은 그런 말도 다 가려서 지혜롭게 듣지만 병으로 약해지면 그런 성숙함이 발휘될 힘이 약해지기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에 대해 수군거리며 해치려고 했고 그가 중병에 들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7-8절). 그처럼 원수는 악한 말을 전파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고난을 가중시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 입술이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입술에 지퍼를 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 것 같아도 최대한 말을 삼가야 합니다. 병의 원인은 사람의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구절에서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은 종이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자신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던 가까운 친구도 고난 중에 다 도망갔다는 뜻입니다. 그때 다윗은 그들에게 그에 마땅한 보응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고난을 하나님이 기도하는 삶으로 초청하는 것으로 여기고 기도하면서 무수한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기도는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은혜의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쓰는 스토리가 아닌 자녀와 함께 써가는 스토리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계기로 하나님과 대화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의 기도 순간에 응답의 타이밍을 맞추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하시는 절묘하신 하나님입니다. 그처럼 고난을 통해 기도하라고 도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 주시는 은혜의 손길을 체험할 것입니다.
4.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십시오
다윗은 고통 중에도 최종 승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원수가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는 줄 알았습니다(11절). 게다가 주님이 자신을 온전히 붙들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실 것이란 확신도 가졌습니다(12절).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시편은 5권으로 이뤄진 성경책입니다. 그 책마다 마지막 부분에는 본문처럼 아멘이 두 번 나옵니다. 본문의 시편은 첫 번째 책의 마지막 시편으로 이 시편에서 다윗은 책의 마지막을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끝내면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도전했습니다. 그처럼 영원히 찬양하라는 말은 결국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범사에 감사합니까? 고통조차 하나님이 선한 목적 하에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할 때 시므이가 저주하는 말을 하자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말했습니다. “아비새야!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는데 하물며 그 베냐민 사람은 더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니 그냥 저주하게 두라.” 엄청난 자제력입니다. 그는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에게 “사람이 간사하구나! 어떻게 저렇게 상황에 따라 마음이 변할 수 있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 일을 허락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비열한 인간의 말 때문에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실족하면 우스운 사람이 되고 보복하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처럼 어떤 비참한 저주를 들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고 여기십시오. 옆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하고 부추겨도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냥 두세요!” 하고 오히려 말리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상황도 허락하셨다고 믿으면 됩니다.
살다보면 가족이나 친구 중에도 시므이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한 그런 말을 듣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려는 음성이 있다고 여기고 아무리 비참한 저주의 말을 들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더 나아가 그런 말을 듣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흥이 깨지는 얘기지만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 해결책도 생깁니다. 일이 잘될 때만 믿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일이 잘못될 때도 잘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좋은 사람을 보시면 마치 광부가 금맥을 발견한 것처럼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신비한 섭리와 사랑으로 고난의 땅으로 인도하셨다면 그 땅에서 무엇인가 좋은 열매를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복된 존재로 빚어 가십니다. 그 과정에서 아프게는 하셔도 상하게는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고난 중에는 내일의 축복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나가면 고난의 눈물은 조만간 축복의 무지개로 변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면 그 고난은 하나님이 지워주신 가장 고상한 멍에가 되면서 조만간 놀라운 부활의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유력한 멘토나 후원자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도 그런 배경이 있는 목회자가 큰일을 합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 자연히 부러운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러워하면 이미 패배한 삶입니다. 사람에게 패배자의 냄새가 나면 멘토와 후원자는 더 생기지 않습니다. 반면에 감사하면 이미 승리한 삶입니다. 사람에게 승리자의 냄새가 나면 멘토와 후원자는 더 생깁니다. 오늘부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굳게 다짐하고 힘써 실천해보십시오. 그러면 승리자의 향기가 나면서 다윗처럼 복된 인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복 받는 비결 4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처럼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책임적인 성도가 되고, 무엇보다 자기를 먼저 고치려고 하며, 고난을 기도로 극복하고, 고난 중에도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다윗처럼 아름다운 시편도 빚어내고 하나님의 마음도 감동시킴으로 결국 승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주일설교(140216)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족하지 않는 삶의 비결 (베드로후서 1장 4-11절) (0) | 2022.01.01 |
---|---|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잠언 21장 7-15절) (0) | 2022.01.01 |
건강한 사람들/구 절 : 잠 4:20-23 (0) | 2022.01.01 |
나의 삶 속에 평화를/구 절 : 시 27:1-6 (0) | 2022.01.01 |
마음을 정한 사람들/구 절 : 시 108:1-4 (0) | 2022.0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