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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가 바울에게로 옮겨진 사연

by 【고동엽】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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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가 바울에게로 옮겨진 사연 행8:14~25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지상명령의 수행을

적어도 초대교회가 태동할 그 당시에는(행1~10장)

12사도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시게 되는 사연과 그 교훈!

 

 

▲복음을 받은 사마리아 성

스데반의 순교로 촉발된 유대교의 대 박해를 피해서

많은 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각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흩어진 크리스천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들 가운데,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찾아가서, 그 이방 도시에 복음을 전했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사마리아 성에는, 생명의 역사가 충만했고, 온 성 안에 기쁨이 샘솟았다.

 

 

▲두 사도가 안수할 때, 사마리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다

유대인이 짐승처럼 간주하는 사마리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는 놀라운 소문은

바로 그 시간까지도 예루살렘을 고수하고 있던 사도들에게도 전해졌다.

 

사도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사마리아 성 현장에 급파했다. 행8:14

두 사도는, 모든 소문이 사실임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도 성령님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래서 두 사도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드렸고,

그와 동시에 성령님께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령님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강림하셨다. 註1)

 

 

▲두 사도가 기도할 때, 하필 표적이 나타난 이유는?

왜 성령님의 특별하신 역사가, 당시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임했는가?

당시에 흩어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성령님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유독 사마리아 성에만 성령님이 임하신 이유,

즉, 유독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안수한 곳에만 성령님이 임하신 이유는,

바로 <두 사도에게 어떤 표적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굳이 사도들이 사마리아에서 안수 기도 안 해도,

빌립 집사가 전도했으니까, 빌립이 기도할 때도 성령님이 임하실 수도 있었다...

 

 

▲깨닫지 못하는 사도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행1:8

그 지상명령을 망각한 채,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만 꿋꿋이 사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행1:4

너무 과도하게 지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까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도,

또 다른 ‘제2탄’ 같은 것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녹색은 편집자 주)

 

 

주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촉발된 큰 박해로 통해

사도들을 예루살렘 너머로 강제로라도 흩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성도들은 다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지만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사수하는 것만이 참된 믿음의 증거인양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행8:1

 

마침내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성을 복음화 시키신 후에

그곳으로 두 사도를 보내어, 그들이 안수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가시(可視)적 표적이 이루어지도록 특별히 역사하셨다.

*‘가시적’의 근거 → 행8:18의 “보고”

 

그 표적을 통해 두 사도들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에게도 성령님께서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그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에서 그 특별한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도들은

사마리아의 경험을 발판삼아

자신들의 사역의 방향을 이방세계로 돌려야 했었다.

 

하지만 행8:25에 보면

두 사도는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한 사마리아의 마을들에서

복음을 전한 것뿐이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8:25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의 체험을 접촉점으로 해서

행1:8절 말씀에 순종해서 이방세계로 계속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은

신기하게도 없었다. 오직 예루살렘밖에 몰랐다.

 

그런데 주님이 굳이 사도들을, 먼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마리아로 부르시고,

그들이 안수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표적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신 것은,

그 접촉점을 경험삼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특별한 ‘성령의 인도’로 보인다.

하지만 사도들은 주님께서 주신 기회인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선택의 불가피성 (이 설교문의 주제 ★)

 

그래서 우리는, 그런 안타까운 사도행전 8장에 바로 이어서는 9장에서

주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사도들에게 계속 몇 차례 ‘기회’를 더 주셨다.

*예를 들면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사건, 행10장.

 

그렇지만 사도들은 끝내 그 ‘기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였을까?

*관련글 :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http://blog.daum.net/ygbhygbh/8808502

 

그래서 사도행전 후반부부터는 사도행전의 초점이

‘히브리파 유대인’인 12사도들을 떠나

아예 ‘헬라파 유대인’인 바울에게만 집중된다.

 

만약에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사마리아 성의 ‘기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더라면,

그래서 땅끝까지 나아가는 ‘지상명령’에 순종했더라면

사도행전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촛대는 옮겨질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직계 제자들이었던 12사도들에게

‘이방선교의 촛대’를 맡겨 주셨지만,

그러나 그 이방 선교의 촛대는

12사도들보다 훨씬 뒤에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계2:4~5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주님의 질책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4~5

 

주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섭리와 목적을 위해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당신의 촛대를 맡기신다.

 

그러나 촛대를 맡은 자가, 주님의 촛대를 맡은 것을 자랑만 할뿐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을 때는

주님은, 그 촛대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신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 시대의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위해

하나님은 개인을 부르시고, 교회도 부르신다.

그러나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유기, 방치할 때

하나님은 그 촛대를 다른 이에게 옮기신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결국은 구원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쓰임 받는 도구(촛대)들은... 바꿔지고, 옮겨질 수 있다.

 

오늘날 '십자가의 복음'을 똑바로 전하지 않고

정반대 개념인 '성공의 복음, 번영의 복음'을 계속 전하다가는

하나님께서 참고 참으시다가는, 결국에는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4:14

 

 

註1)

시몬이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행8:18

 

→이 기록은, 눈에 안 보이는 마음속으로 성령 받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가시적인) 역사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오순절파는 이것을 ‘방언’으로 본다.

 

왜냐하면 행2장, 행10:45~46의 고넬료의 집, 행19:6의 에베소에도

성령이 임할 때 방언이 반드시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8:17에 사마리아 성에서도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데,

방언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성경에 없으나,

마술사 시몬이 뭘 ‘보았다’고 했으니, 행8:18

아마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한 것을 보았다고 본다.(편집자 주)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2192292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박지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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