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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삶(마 15:21-28)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기도하는 삶

마태복음 15:21-28

 

 

 

우리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주로 유대 땅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방지역에 가셔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사역하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북쪽지방, 드로와 시돈지방(이방지역)에 가서 이방 여인을 만나서 그에게 사역하시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에 갔을 때, 불쌍한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이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애를 썻겠습니까?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병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귀신들려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말할 수 없이 불쌍한 상태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딸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강할까요? 그래서 딸을 고쳐보기 위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 가까이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방 사람 남자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먼발치에서 예수님께 큰소리를 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관습과 체면을 따라야 겠기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딸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를 받는 자녀가 잘못되는 일은 없다는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자녀를 위해서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할 때에 삐뚤게 나갔던 자녀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에 연약하던 자녀들이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눈물로,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소리 질렀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소리지르면서 기도하는 그 기도의 내용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아주 짤막한 한마디입니다. 이 말 가운데에는 ‘내가 여러 가지 일들을 다 해보았지만, 능력이 없어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 놓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과 자비에만 의지하오니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라고 기도드리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 앞에 나 자신은 아무 능력이 없다고 내 놓으면서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님 중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나 중심으로 기도 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나 중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도 기도할 때 ‘주님, 저도 목사인데, 잘못하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겠습니까,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주님 영광을 가리면 안되니깐 주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체면 때문에 내 생각을 앞세우고 나를 위한, 나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자기가 아무 능력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무능력합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만 기다립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주님께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동방교회(동유럽, 러시아, 그리스)는 예수 기도를 드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예수 기도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는 짧은 기도를 반복하면서 나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인 것을 주님 앞에 내 맡기고 주님의 자비만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불쌍한 딸을 둔 이 어머니가 간절한 심정으로 주님께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나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라며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간구를 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아무 말도 응답 안 하시는 겁니다. 평상시 우리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연약한 자를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냥 두고 지나가지 못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딸을 둔 어머니가 부르짖어 외치건만 예수님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응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딸을 고쳐준다든지, 그 어머니를 위로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부답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응답을 안 해주시고 아무 대답도 안 하신다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진심과 진실을 알기 위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지금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그 부르짖음이 단순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진심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 여인이 기도할 때에 자기의 자아와 자존심을 다 내놓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안하시니까 옆에 있던 제자들이 오히려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여인에 대해 조처해 주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는 아이 떡 주면 울지 않고, 잠잠해 지지 않습니까? 그런 식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도 매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사역의 범위는 유대인들에게 있는 것이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주의에 선민사상에 사로잡히신 것 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저 이방여인이 간절히 소리 지르고 있으나 그러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분명한 의사 표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즉시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넘치지요.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도할 때마다 즉시 응답받습니까? 기도하고 응답받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응답을 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전혀 응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때에, 즉시 응답, 혹은 나중에 응답, 또 어떤 때에는 무응답이라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구요, 성경에도 보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너무 안타까워서, ‘주님, 나도 요단강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내 눈으로 보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도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끝내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하는데 몸에 병이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주님, 내가 몸의 병 때문에 사역하는데 너무나 어려움이 많고 불편하니 내 몸의 가시를 제거해 주십시요’ 라고 간구를 드렸지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너는 몸의 가시를 가지고 연약한 데서 주의 사역을 하는 것이 더 강하다. 그러니까 너는 질병을 몸에 지니고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 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해 주십시요’ 라고 기도했지만 마지막엔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응답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온전히 서기 위해서 응답하지 않는 기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응답받기를 거절 당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이 가나안 여인, 이 불쌍한 어머니는 예수님께로부터 기도 응답을 거절 당했는데, 거기로부터 좌절하거나 낙심 받지 않고 더욱 간절히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멀리 서서 소리치다가 이제는 주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매정하게 거절했는데, 거기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더 가까이 나아와 더욱 간절히 매달리고, 더욱 주님께 달라붙었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는 간단한 한마디로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여러 가지의 수사를 붙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정말 다급하고 어려울 때는 여러 가지 수사를 넣지 못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한마디로 반복해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이 가나안 여인, 불쌍한 어머니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는 간단한 말로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예전에 제가 알던 권사님은 저녁마다 교회에 나와서 늘 기도했는데, 그 분의 기도내용은 늘 단순합니다. “아버지, 아시지요?”를 늘 반복하십니다. 저는 이쪽 앞에서 기도하고, 그 분은 저 뒤쪽에서 기도하시는데, 다른 소리는 안 들리고 “아버지, 아시지요?”만 계속해서 들려요. 저는 처음에 무슨 기도를 매일 저렇게 하시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다양한 기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한 가지 문장으로 요약해서 하나님 앞에 집중으로 기도할 때 기도에 집중이 됩니다. 기도할 때 제일 방해되는 것은 조금 기도하려고 엎드리면 이 생각 저 생각, 오만 가지 잡념들이 생겨서 그것이 기도의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한 가지 말로 반복해서 계속해서 기도할 때, 기도에 집중이 생깁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도우소서’, 얼마나 짤막한 말입니까? 그 짤막한 말로 기도할 때에, ‘나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만을 간구합니다.’ 라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매몰차게 거절을 하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매몰찬, 욕에 가까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자녀들에게 줄 음식을 개한테 집어 던져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해 주셔서 제가 선교부 임원들, 여전도회 임원들과 함께 선교지를 잘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헌당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집회를 하기도 하고,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인도 지진 피해 구호금을 우리 교회에서 가지고 가서 주수상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선교사님들이 놀랍게 사역을 참 잘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을 보고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대표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다녀보니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와는 영 딴판입니다. 너무나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점심때가 되어서 시골의 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음식을 시키고 나니까 먼저 넙적한 바나나 잎이 나오고, 그 다음엔 컵에 물이 담겨 나옵니다. 그러면 바나나 잎 위에 물을 부어 손으로 쓱 닦고서 그 위에 밥과 반찬을 놓고 손가락으로 비벼서 집어 먹는 거예요. 그렇게 바나나 잎에 손가락으로 먹으니까 설거지를 할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자연적으로 먹는데도 격식이 있습니다. 바나나 잎이 넓은 쪽은 오른 쪽에, 좁은 쪽은 왼쪽에 놓습니다. 왜냐하면, 오른 쪽으로 밥을 먹으니깐 넓은 쪽으로 몰아서 먹는 것입니다. 다 먹고 나면 바나나 잎을 내 앞쪽을 향해 접어 놓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대쪽으로 접어 놓으면 잘 못 먹었다는 표시이고, 앞쪽으로 접어 놓아야 잘 먹었다는 표시가 된다고 합니다. 다 먹은 음식물 찌꺼기는 바나나 잎 통째로 밖에다가 내버리면 소나 말이 그것을 먹습니다. 자연적으로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사람 사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 사는 공간과 짐승이 사는 공간의 구별이 따로 없이 한 방에서 같이 어우러져 사는 데 참 자연스럽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니까 다행이지요. 먹다가 나머지 음식은 바로 밑에 앉아있는 개한테 줬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먹을 것을 미리 개한테 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에게 줄 떡을 개한테 줄 수 없다며, 간절히 부르짖는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합니다.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지요. 완전히 차별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그 어머니가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기도 응답을 안 해주면 그만이지 왜 욕까지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이제는 단념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기도 응답 받기를 거절 당했지만, 허탈해 하거나, 분노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실망하고, 실족하여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가나안 여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욕을 들었는데도 오히려 지혜롭게, 끈기있게 대답하며 간구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기 스스로가 그만 ‘나는 개와 같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나 체면,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겸손한 자세가 되어서 그러면, 부스러기라도 먹어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온전한 음식을 먹지 못하면, 부스러기라도 떨어진 것을 먹어야겠다고, 절박하게 끈질기게 간구했습니다. 자기 체면을 다 내버리고 완전히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주님께 간구를 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예수님 아니면 내 딸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이 분만이 능력이 있고, 이 분만이 권능이 있기 때문에 이 분 외에는 다른 기도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수님께만 의지하고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낮아지더래도 나는 완전히 짖밟히더라도 나는 예수님 밖에 없다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만 매달리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이나 체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겸손하게 주님께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겸손해서 예수님께만 의지하고 예수님께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니까 예수님께서 그때서야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28절에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믿음이 크다는 것이 뭡니까?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중심이 되는 것은 아직도 믿음이 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내버리고 자기의 자아와 자존심을 다 내버리고, 체면도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주의 긍휼과 은혜만 바라보고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것을 믿음이 크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자유의지 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주님의 맘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우리가 주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해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큰 것을 보시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딸이 낳았고 주의 능력이 즉시로 실현되었습니다. 불쌍한 딸을 둔 이 어머니, 참으로 기도의 용사입니다. 거절 당함에도 결코 개의치 않고 관습도 뛰어 넘고 모든 체면과 자존심을 다 내버리고 결코 굴하지 않고 강인하고 끈질기게 계속해서 간구하는 기도의 용사, 이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끝내는 응답을 얻게 된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그저 잠깐 기도하다가 ‘에이 안되구나’하며 금방 포기해 버리지 않습니까? 생각날 때 가끔 한번씩 기도하다가 응답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습니까?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서 자기 생각대로 기도하다가 제 진에 그냥 낙심해 가지고 넘어지고 포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응답받는 기도는 분명합니다.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서 자기의 자아와 자기의 체면과, 자존심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만 집중하고, 우리 주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중도에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기도할 때에 주님 앞에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만 집중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중도에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함으로 인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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