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장하는 성도
히브리서 5:11-14
논지 : 성도는 스스로 신앙을 훈련하여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가. 어린아이 같은 성도 (12-13)
1. 어린 아기
1) 옛날 할머니들은 손주들 밥을 먹일 때, 그냥 먹이면 빡빡하니까, 이렇게 씹어서 손주들에게 먹입니다. 그러면 젊은 엄마들은 비위생적이라고 펄쩍 뛰지요. 저희 어릴 때에, 저희 동생에게 할머니가 역시 씹어서 먹이더라구요, 그래서 아 나도 저렇게 먹었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그릇에 담겨 있는 할머니 틀니를 보니까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이빨이 나지 않고 또 소화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이지를 못합니다. 부드러운 것, 순한 것, 그런 것들을 먹이지요. 젖을 먹이고 죽을 먹이고 그렇습니다.
2) 또 어린아이들은 뭘 가르칠 때에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주 쉬운 것부터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뒤집고 기는 것, 일어서고 걷는 것,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연습하지 않습니까? 조금 더 크면 그림책을 갖다 놓고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사물의 이름들을 모양들을 가르칩니다.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꼽아가면서 숫자 공부를 시키기도 합니다.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들한테도 영적인 양식을 먹일 때에 부드러운 것을 먹이고, 신앙을 가르칠 때에 가장 초보적인 것부터 가르칩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고 십계명을 가르치고 사도신경을 가르치고, 그런 것들을 외우도록 권장을 하고, 요한복음 3장 16절같이 가장 기초적인 성구들을 가르칩니다. 그런 여러가지 기독교 진리들을 가르칠 때에 그림이나 예화를 동원해서 아주 알기 쉽게 간단하게 전해줍니다. 마치 할머니가 음식을 다 씹어서 손주들을 먹이는 것 같이 아주 간단하게 아주 쉽게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서 가르쳐 주지요.
3) 어린 아이들은 미숙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도 못하고 배려도 못하고, 자기만 알지요.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과자를 한봉지 사다 주고 그리고 그 사다 준 것 중에 하나 좀 얻어먹으려 해도, 그저 얼르고 갖은 말을 해야 겨우 하거나 베풀지 못한다. 과자를 모두 주고도 한 개 얻어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고집불통이고 탐욕적이고 본능적이다. 먹고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지기 위해서 체면도 없고 경우도 없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 떼를 쓰고 기어이 그것을 가져야만 되는 것이지요. 남의 집에 가서는 남의 것도 자기 거라고 자기가 주머니에 들고 가려고 합니다. 남의 것, 내 것을 구별을 못합니다. 분별력이 없지요. 말썽만 피우고, 양보를 할 줄도 모르고 여러가지 미운 짓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애들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손주 온다 그러면 반가우면서도, 온다 소리 들으면 그 순간부터 깨질 것 부서질 것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치워서 높은 곳에 다 올려놓지요. 그리고도 한번 왔다 가면 완전히 난장판이 되지 않습니까? 그거 치우느라고 정신이 없지요. 애들 특성상 미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미숙하기 때문에 예수 믿기 이전에 죄악된 생활 속에서, 탐욕 속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단인지 우상숭배인지도 잘 모르고 미숙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2. 어린아이가 미숙한 것은 괜찮은데,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는데도 미숙하면 그건 큰 문제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12절 말씀에서 성도들이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장성하고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린 아기 같이 미숙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책망하는 말씀이 12절 말씀입니다. (12a) 신앙생활이 오래 됐으면 그 신앙연조에 걸맞게 성숙한 성도가 되어서, 다른 새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혹은 안 믿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이고 새신자를 가르치고 그래야 마땅한데, 아직도 미숙한 채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탄식을 하는 것이지요.
1) 어른이 되면 이제는 제대로 된 단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음이나 죽을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병든 사람들, 환자들, 그런 사람들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죽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점점 사람이 커지게 되면 쉬운 것 배우다가 점점 어려운 것 배우고, 수준이 높은 것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에는 덧셈, 뺄셈 배우다가, 그 다음에는 구구단을 외워서 곱셈 나누셈을 배우고, 중학교 들어가면 방정식을 배우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미적분 배우고, 점점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가나다라 배우다가 그 다음에는 받아쓰기도 하고, 그 다음에는 산문을 공부하고, 소설, 시를 공부하고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자꾸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지요.
점점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구구단이나 외고 있고, 가나다라만 공부하고 있으면 그건 참 문젯거리고 걱정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용)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자기 스스로 정리도 해 놓지 못하고, 내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도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한다면 아직도 미숙한 신앙생활이거나 병든 신앙생활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을 펼쳐 놓으면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잘 몰라서 ‘히브리서 몇장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서가 어디가 붙었는지 왔다갔다 구약으로 갔다 신약으로 갔다 그러면 참 아직도 미숙한 신앙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훈련이 잘 되지 않아서 기도할 때 되면 그만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그것도 미숙한 신앙이지요. 이렇게 주일예배 같은 경우에는 기도하는 분들이 아예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구역모임이라든지 자그마한 모임 같은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찬송하면서 목사가 이렇게 둘러봅니다. 누구 기도 시킬까 그러면 눈 마주치면 기도시킬까봐 눈 안마주치겠다고 고개 숙이고, 신앙연조 오래된 분을 시키거든요, 그런데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기도하는 것이 겁이나서 조마조마 하면 아직도 미숙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신앙연조가 오래 되면 성숙한 성도로서 하나님의 뜻도 분별할 줄 알고, 진리와 이단을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하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 겸손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이해하고 실천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앙연조가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어린 아이 같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사에 불평불만투성이고, 보채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여섯살, 일곱살 난 아이같이 미운짓하고 말이지요, 십대 아이들 반항하는 것 같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말 미숙한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을 오랜 세월동안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전혀 변화가 없이 미숙한 신앙 그대로 있으니까 너무나 한심스러워서 책망하는 탄식을 하는 것이 12절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점점 성장하는데, 나이를 먹으면 육신도 점점 성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발육이 안되는 자녀들(심신장애)을 보면 그 부모가 얼마나 걱정이 될까요? 점점 아이들이 커지면 인격도 성장해서 철이 들고 그래야 하는데, 철이 들지 못하고 그대로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점점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면 성적이 올라가고 지식이 성장해야 하는데, 지진아로 있으면 부모들에게는 너무나 큰 걱정거리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지요. 열심하 가르치는데 전혀 변화가 없으면 미숙한 신앙으로, 철없는 신앙으로 남아 있으면 너무나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됩니다. 목회자가 제일 힘들 때가 언젠가 하면, 강대상에서 외칩니다. “이웃을 사랑합시다, 형제를 사랑합시다.” 열심히 외쳤는데, 예배 마치고 요 마당에 나가서 보니까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낙심이 되지요. ‘내가 뭘 한건가?’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됩니다.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숙한 신앙상태 가운데 놓여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탄을 하면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성장하는 성도 (11, 14)
1. 왜 이렇게 성장하지 않는가?(11)
여러분, 왜 신앙연조는 오래 됐는데, 신앙이 성장하지 못했을까요? 11절 하반절은 뭐라고 말씀하냐면,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 귀에 들리기는 들리지만, 그러나 영의 귀가 열려 있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고 둔하다는 말씀입니다. 둔하다는 말씀 속에는 게으르다는 뜻이 그 가운데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게을러서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게으른 사람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 먹기에 게으르다면, 육신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기에 게으른 사람은 그 지식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운동하기에 게으른 사람은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운동선수나 훌륭한 음악가나 다 게으른 사람이 없습니다. 다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 방면에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이지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도, 요즘 아이들은 춤을 좋아해서 뭐 뱅뱅 돌고, 거꾸로 뒤집어지고, 뭐 그렇게 춤을 잘 춥디다. 그런데 그 공부하기 싫어해서 공부는 안해도, 춤 추는 것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그 춤 추는데에는 부지런하니까 그렇게 잘 하는 것이지요. 게을러서는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지요. 게으른 사람은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경읽기를 게을리 한 사람은 성경지식이 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훈련하기에 게으른 사람은 기도가 늘 유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을 때에 성경 읽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그냥 쉬운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욕심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격이, 신앙양심이, 영적인 지혜가 자라나지 않고 늘 미숙한 상태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2.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14)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14절 말씀을 보십시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단을 받는다는 말은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훈련할 때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곁에서 하나 하나 가르쳐 주지만, 그러나 점점 커지면서는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헤쳐나갑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아이들 공부시킬 때에 뭐 덧셈 뺄셈도 곁에 앉아서 직접 가르쳐주고, 가나다라도 직접 가르쳐주고, 그렇게 해서 공부를 시킵니다. 조금 큰 다음에도 학업이 뒤떨어지면 과외 선생이 옆에 붙어 앉아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공부하는데 기초지식이 쌓이고,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갑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되어가지고 부모가 옆에 앉아서 가르쳐줍니까? 과외선생님이 같이 앉아서 그것을 가르쳐줍니까? 그정도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스스로 공부를 해서 자기 지식을 연마를 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신앙연조가 길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신앙훈련 해서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는 처음 교회에 오면 새신자반에서 6개월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6개월 지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성경공부반으로, 더 깊게 공부하는 반으로 옮겨가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짦게 하고 옮겨갑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6개월동안만 새신자반에 있어야 하는데, 이 예배는 안 드리고 새신자반에만 들어가서 1년도 있고, 2년도 있고, 3년도 있고, 그 새신자반에만 계속 있는 거예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엄마 품이 좋아가지고 애가 다 컸는데도 떠나가지 않고 엄마 품에만 늘 안겨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맨날 새신자반에 있으면 시간은 지나가도 맨날 새신자이지요. 어떤 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강사를 따라서 이 반도 갔다가, 저 반도 갔다가, 강사 따라 돌아다니는거예요. 어떤 분은 이 교회, 저 기도원으로 집회만 열심히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기 스스로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사람 따라서, 이 사람한테 가서 기도 받고, 저 사람한테 가서 기도 받고, 맨날 그것만 따라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앙연조가 오래 되면 자기 스스로 신앙 훈련하고, 자생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맨날 이 사람 저 사람만 의지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기 위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의지하고, 기도 받기 위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의지하는 것이지요. 다 큰 아이가 할머니가 씹어서 넘겨 주는 것 받아 먹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신앙연조가 깊어지면 스스로 신앙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훈련을 할 때엔, 먼저 스스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반에서 강의를 받고 그랬으면, 그 다음에는 집에 가서 혼자 공부를 하는 겁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성경 번역본을 펼쳐 놓고, 또 관주 성경을 펼쳐 놓고, 성경을 차근차근, 오늘 읽은 성경을 하나 하나 공부하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어요. 물론 거기다 욕심을 내서 더 덧붙인다면 성경사전이나 성경핸드북이나 성경주석이나 더 갖출 수 있지만, 그러나 몇가지 성경번역본과 관주성경만 가지면 충분히 성경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내 스스로 성경을 공부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지혜와 분별력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와 분별력을 얻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대로 실천하며 삶을 살아갈 때에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훈련을 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스스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서 기도제목이 생기면 금식을 하던, 철야를 하던, 내가 시간을 작정해 놓고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 붙들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내 속에 있는 탐욕과 아집과 편견을 버리게 하시고,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면 확신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아침마다 기도하는 것이지요.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는, 이 사람을 만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나에게 향한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기도함으로써 내가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해요. 집회 잘하면 그 은혜가 석달 간다는 말을 해요. 그것이 무슨 말씀인고 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은혜를 받게 되면 내가 깊이 변화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애를 써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중에 은혜를 받게 되면, 정말 깊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을 훈련해서 은혜를 받고 확신을 얻게 되면 너무나 강렬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은 일생동안 잊어 버릴 수가 없고, 내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숙한 성도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여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의 위치에 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훈련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가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그것은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침시간이 됐건, 저녁시간이 됐건, 하루 시간 중에 20분이건 30문이건 한시간이건 내 시간에 맞도록, 내 생활에 내 스케쥴에 맞도록 시간을 정하는거예요. 시간을 정하면 매일 그 시간에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을 하고 노트를 펼쳐 놓고 묵상하고 은혜 받은 것을 거기에 짤막하게 적고, 그리고는 그 은혜 받은 말씀을 놓고, 혹은 오늘 하루의 기도제목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혼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기 힘들면 경건의 시간에 도움이 되는 교재들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부에서 교재를 늘 만들어 내고 있구요, 시중에도 도움되는 교재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교재들의 도움을 받아서 경건의 시간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건의 시간을 더해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구역이든지 혹은 공부반 같은 곳에서 나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 이렇게 열명 안팎으로 소그룸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같은 본문을 놓고, 각각 다 묵상을 하고 그리고는 다 같이 모여서, 일주일에 한번이건 이주일에 한번이건 같이 모여서 그 묵상한 말씀, 은혜받은 말씀을 서로 나누면 굉장히 은혜가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스스로 신앙을 훈련할 때에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이지요.
다. 결
여러분, 신앙생활의 길이가 오래되면, 신앙연조가 깊어지게 되면, 길어지게 되면, 그러면 그 기간에 따라서 신앙도 성숙해야 합니다. 매일 미숙한 성도로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버리고 스스로 신앙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만 맨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신앙을 훈련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고,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신앙을 훈련해서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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