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Άλλα σε προετοιμασία

나아만을 변화시킨 여종 / 열왕기하 5:1-14

by 【고동엽】 2021. 12. 13.

나아만을 변화시킨 여종

열왕기하 5:1-14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을 치료하여 낫게 한 일도 보람된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최상의 보람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다고 한다면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살려주는 일입니다.

 

나아만 이야기

 

오늘은 성경 가운데서 이름없는 한 포로민 소녀가 한 가문과 나라의 정치를 바꾸어 놓은 엄청난 사건을 통하여 교훈과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장군인 나아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쌓은 공적 때문에 왕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문둥병에 걸려서 남 모르게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 온 한 소녀가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 마님이 나아만 장군의 일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소녀는 주인 마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인께서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라고 하는 하나님의 종을 만나면 이 문둥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그대로 고합니다. “왕이시여, 저희 집에 있는 계집종의 말을 들으니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종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할 때 왕은 친서를 써서 은 열 달란트, 금 6천개, 의복 10벌을 하사품으로 주어서 나아만을 이스라엘로 보냅니다.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친서를 받고 깜짝 놀랍니다. ‘아, 이 나라의 누가 사람을 죽이고 살릴 능력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죽은 자 같은 문둥병자를 고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옷을 찢으면서 ‘이것은 분명히 이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구실이다’라고 하면서 탄식을 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엘리사가 하인을 보내서 “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소서. 그 나아만 장군을 내게로 보내소서.” 라고 말합니다. 이에 나아만 장군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사마리아 엘리사의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전혀 문밖에 나오지도 않고 하인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이 화를 내면서 “내가 일국의 군대 사령관인데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만족치 못할 것이거늘 어떻게 나에게 저 요단강에 가서 옷을 벗고 물에 잠그라 하느냐 우리 다메섹에도 아바나와 바르발이라는 큰 강이 있으니 거기에 가서 내 몸을 잠그리라” 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 종들이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그보다 더 한 일도 하라면 할 것 아니옵니까 하물며 요단강에 가서 몸을 잠그라고 하는 것이 뭐가 못할 일입니까”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글 때 살이 어린 아이의 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계집 아이의 역할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치는 내용을 중요시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계집 아이 하나-어린 소녀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작은 계집 아이 하나에게 신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친배후에는 이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 하나가 이렇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아만 장군의 병이 낫는 것보다 작은 소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내용으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인을 감동시킨 하나님의 여종

어린 소녀는 아람 군대가 쳐들어와서 자기를 종으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녀는 부모 형제를 떠나 낯선 이방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천대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속에는 조금도 원수를 원수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종 삼은 주인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지극한 정성을 다 했습니다.

여기 ‘수종들었다’라는 말은 지극한 존경을 하되 숭배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해서 존경하되 숭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포로로 잡아다가 종을 삼은 원수같은 사람들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요?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계집종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소녀가 수종 들고 있는 여주인은 바로 아람의 유명한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부인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여주인의 얼굴에서 깊은 우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우수의 원인이 바로 그 남편인 나아만 장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는 영화를 누릴지라도 영광의 옷자락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썩게 만드는 문둥병 앞에서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수의 나라에 내린 심판이라고 내심 고소해할 수 있음에도 소녀는 주인을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포로로 잡아다가 종을 삼고 있는 원수같은 주인에게 그런 친절과 자비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주인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저렇게도 착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저는 하늘이 보낸 천사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린 소녀는 주인을 섬기되 하나님을 섬기듯 했습니다. 눈가림만 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2-23)는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이방인일지라도 그는 이 상전을 하나님 섬기듯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가든지 자기 존재를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비록 하녀일지라도, 계집종일지라도, 어린 소녀일지라도 그가 주인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다고 한다면 그 주인이 ‘이는 분명히 사람이 아니고 천사다.’라고 하면서 비록 그가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그를 하늘이 보낸 천사로 보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어느 자매가 결혼을 해서 시댁에 들어갔는데 시어머니가 보살님인 것입니다. 이 시어머니는 한달에 한번씩 꼭 수유리에 있는 화계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얘야, 내가 불공을 드리러 화계사에 가야 되겠는데 같이 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며느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며느리는 예수 믿는 처녀로 결혼을 했는데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자고 하니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때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자동차로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갑니다. 가면서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는 가겠지만 저에게 불공을 드리도록 강요하지는 마세요. 제가 감동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시어머니는 불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에게 절하고 며느리는 마당에 서서 시어머니가 끝날 때까지 “주여, 이 여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는 도저히 불당에 들어가서 절할 수 없는 주님을 모신 몸이오니 이 종의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보살님이지만 보살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모시듯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버이날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 부처 믿는 것도 좋고 예수 믿는 것도 좋고 모든 종교는 다 좋은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 모시고 늘 불당에 갔으니까 오늘은 저와 같이 교회에 가시죠.” 그때 시어머니가 “그러자,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교회에 한번 가보자.” 하고는 며느리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부모님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라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하늘나라에 잘 간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불당에 오래 다녀봤지만 절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며느리에게 “목사님이 항상 저렇게 말씀하시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이보다 더 좋은 말씀도 하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어머니가 “예수가 부처보다 좋다. 나 오늘부터 불당 안갈란다.” 하고는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포로로 잡혀 온 종들은 주인의 학대와 고통 속에서 침승처럼 천대받았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의 “종들아 상전에게 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전날에 눈 흘기고 증오에 찬 눈으로 보던 모든 종들이 주인을 향해서 주님을 본 듯 온갖 친절과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섬겼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성실한 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들 속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저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주인이 종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드디어 종들의 복음을 통해서 로마 사회가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소녀는 이방 땅에서 자기 신앙을 더욱 든든히 지켰습니다. 이 소녀는 불우한 운명으로 고달픈 종의 생활에서 얼마든지 현실을 원망하고 자포자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알곡 신자였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바람이 불면 압니다. 알곡은 무게가 있으므로 든든합니다. 바람에 날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흔들립니다. 날아갑니다.

결국 어린 소녀는 주인에게 절대 신뢰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아온 한 소녀의 말을 듣고 군대장관이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저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가 그러든가” “우리 집에 포로로 잡혀 온 계집종이 그랬습니다.” “계집종의 말을 듣고 갈 수 있나. 거기에서 왕의 전갈이 왔나” “아닙니다. 계집종 아이의 말입니다.” “자네가 계집종 말을 믿고 갈 수 있나 장군이 갔다가 잡히면 죽는데 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집에 있는 계집종의 말은 하늘의 말과 같습니다. 비록 우리 집에 잡혀 온 포로지만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계집종의 말 한마디에 일개 군대 사령관이 국경을 넘어 갑니다.

이 소녀가 얼마나 주인에게 신뢰를 얻었으면 이렇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한 소녀가 나라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군이 흔들립니다. 왕이 움직입니다. 국경을 넘어갑니다. 이것은 그의 수단이나 술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둘째,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하는 천사

소녀가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소개한 것은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같은 것입니다. 소녀가 한 일은 자기 조국에 있는 선지자를 소개한 것 뿐입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소녀가 가게 한 것은 아닙니다. 소녀는 소개만 했을 뿐입니다. 엘리사의 능력이 끌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내 말 듣고 가는 것 아닙니다. 예수의 능력이 그 사람을 끌어가는 것입니다. 단 한가지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신뢰를 얻을 뿐입니다.

한 집사님이 파출부로 나가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일하는 주인집은 어머어마하게 큰 빌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부요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심령은 썩어서 부부가 날마다 술 취하고 방탕해서 만나면 싸우고 가정은 완전히 황폐해졌습니다. 어느날 곤드레 만드레 하게 취한 주인에게 한마디 합니다. “주인 마님이시여, 예수를 믿으시지요.”

그는 비록 남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찬송을 부르면서 기쁘게 일하고 얼굴은 천사같이 빛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루는 주인이 하루는 묻습니다. “아주머니는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나는 이렇게 부자집에 살면서도 마음에 평안이 없는데 아주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도 얼굴에 기쁨이 넘치네요.” “나는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를 믿으니 세상에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생기를 얻으며 삽니다. 내 인생 이대로 살다가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 주인은 이 파출부 집사님에게서 새로운 삶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그는 파출부 집사님을 통해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원수의 나라에 들어간 계집종 그는 주인에게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좋겠나이다. 저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주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순간 이 소녀는 계집종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천사입니다. 국경 너머 파송한 이스라엘의 선교사, 더 높은 차원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파송한 천사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순간은 자기 신분이 바꾸어집니다. 하늘이 보낸 천사가 됩니다. 또 다른말로 말하면 이 소녀는 자기의 주인을 죽음에서 구해 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복음을 전한 사람은 생명의 은인입니다. 저는 지금도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면서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분이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비록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을지라도, 청소부로 일할지라도 내가 전도하는 순간은 신분이 하늘이 파송한 천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전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전도하는 일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두 가지 면에서 큰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천국에서 파송된 신분의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가장 좋은 일, 선한 일, 가치있는 일을 하는 보람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셋째, 나아만을 변화시킨 사람

이 계집종 아이가 나아만을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나아만을 엘리사에게 소개한 것 뿐인데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14절)

나아만의 육체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건강해졌습니다. ‘어린 아이의 살 같이 되었다’는 말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이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계집 종 하나 때문에 운명이 바꾸어졌습니다. 팔자가 바꾸어졌습니다. 국가의 운명도 바꾸어졌습니다. 우리의 복음의 능력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다 벗깁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15절)

나아만이 육체만 고친 것이 아니라 심령의 고침을 받습니다. 가다가 다시 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합니다.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나아만의 군대가 왔습니다. 그들을 세워놓고 대표로 얘기합니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섬긴 것은 잘못된 우상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믿는다는 고백을 합니다. 자기의 육체만 고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7절)

나아만은 이스라엘 땅의 흙을 가져갈 수 있게 허락을 받습니다. 흙 가져가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주의 종에게 부탁을 합니다. 전날에는 아람 나라의 왕이 자기의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엘리사, 하나님의 종을 최고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제 흙을 가져다가 흙을 깔고 그 위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제사입니다. 몸은 아람나라에 있으나 마음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18절)

나아만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결심하면서도 그에게는 아람국의 장군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에 그는 왕을 모시고 신당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용서를 빌었습니다. 나아만은 이방신을 섬기지 않으려고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기도하고 결단하게 했습니다.

나아만에게는 자기가 믿어오던 이방 림몬신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신으로 고백하는 신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옛 신앙 우상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참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나아만은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나아만의 변화가 누구 때문입니까? 한 계집종 아이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아만

 

이 역사 속에는 나아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아만은 우리 집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영화는 누리고 있지만 육체가 후패하여 가는 고달픔, 심령이 낡아지는 허무함, 영혼이 병들어 죽음으로 끌려가는 나아만이 있습니다. 나아만에게 전해야 할 소식은 “당신의 병을 치료할 이는 예수님 밖에 없소 가서 예수를 믿으시오. 당신의 병은 예수 믿어야 나을 병이오.” 이것입니다.

나아만은 나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잘 살고 나만 위하고 나만 영화롭게 하려는 본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이 사회의 모든 문제는 나아만의 고민입니다. 나아만 정치가가 있습니다. 나아만 기업가가 있습니다.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은 존귀하나 속은 문둥병이 들어 있습니다. 나아만을 고쳐야 민족이 살고, 국가가 살고, 사회가 삽니다.

무엇으로 고칠 수 있습니까? 오직 복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나아만을 고치듯이 인간의 썩고 병든 심령도, 정신도, 마음도, 육체도 복음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진 작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자기를 작은 자로 여길지라도 복음을 가진 자는 큰 자가 됩니다.

이 소녀는 이름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작은 계집 아이라고 말하고 잇습니다. 나아만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어린 소녀가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지닌 위력 때문입니다.

이 소녀는 결국 이스라엘의 최대 애국자가 된 것입니다. 이방 포로민으로 끌려가 자기를 노옐 삼은 적대국을 결국 복음으로 점령한 것입니다. 비록 신분은 비천한 어린 소녀였지만 이스라엘의 어떤 정치가나 왕족들보다 월등하게 자기 조국을 사랑하고 빛내 준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아만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주어서 저들을 살려놓는 생명의 은인, 하늘이 파송한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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