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해결된다
누가복음 11:9-11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일관되게 기도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막 6:46)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예수님은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친히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고 또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눅 11:2)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해서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는 것은 마음으로 소원을 갖는 것이고, 찾는 것은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주님 면전에서 마주하고 결단하고 주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한다는 것은 무엇이 모자라는 상태이며, 찾는 것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닫혀있기 때문에 최후로 그 면전에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이 많이 있지만 거듭 거듭해서 강조하신 말씀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구원받은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아버지의 자녀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언어가 아버지를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확증이며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지극히 영화롭게 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곧 신앙고백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저씨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 뭘 구합니다. 그러나 아저씨에게는 구하지 않습니다. 달라고 해도 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아저씨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 아버지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어린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최고입니다. 아버지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아버지, 이것 사주세요.” 그럽니다. 아버지 주머니가 빈털터리 인줄도 모르고 사달라고 조릅니다. 그만큼 자기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크면 자기 아버지가 돈이 없는 줄 아니까 아예 입을 열지 않습니다. 달라고 해도 줄 것이 없으니까요.
예수 믿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단순하게 믿으면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자기가 교만에 빠지면 아저씨로 생각하면서 믿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을 쉴 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밥을 먹고 삽니다. 밥은 땅을 채우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은 밥이요, 물이기 때문에 땅을 채우는 것입니다. 또한 공기를 마시고 삽니다. 공기는 우리의 가슴을 채웁니다. 그런데 숨쉬는 것은 하늘을 마시기 때문에 하늘을 채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노력하고, 돈 벌고, 출세하고, 발버둥쳐서 배를 채우나 이것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늘을 채워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너무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학교에 도시락을 못 싸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 되면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배는 물로 채웠으나 가슴은 하늘로 채워다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배는 물로 채웠으나 가슴은 하늘로 채워다오’ 하면서 나중에 신비한 비밀을 알았습니다. 쉴 때마다 하늘을 마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가난해서 배는 물로 채웠지만 나는 하늘을 채우는 사람이다.’ 마치 길을 걸어가도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나는 하늘을 품었지 그래서 넓은 마음을 가져야지 그리고 하나님의 효자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숨쉰다는 것은 예수를 늘 모시고 성령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을 품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들 마음속에 하늘을 품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도는 문제의 해답
‘문을 두드리라’는 말은 기도에 대한 단순한 얘기가 아니고 천국에 대한 약속입니다. 천국문을 두드리는 신비한 의미를 약속하기 때문에 천국문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천당문을 여는 것이 아니고 기도함으로 천국문을 여는 것입니다.
유명한 요한 웨슬레는 “하늘나라는 무릎으로 올라간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해서 능력이나 기적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기도없는 설교는 교인들에게 찬밥을 먹이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로 하늘의 열기를 받아서 영양가 있는 밥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먹도록 하는 것이 곧 목회자의 설교다. 목회자는 요리사와 같은 것이다.’
다른말로 말하면 교인들이 늦게 와서 기도없이 설교 듣고 가는 것은 찬밥 먹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와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기도로서 준비한 예배는 따뜻한 밥을 대접받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는 곧 기도요, 기도가 곧 찬양이며, 찬양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되겠습니까? 우리의 생의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에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새로운 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성경고등학교를 나와서 무릎으로 목회를 해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대학 교수가 한 분 있는데 너무 학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목사님은 무식하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니까 그 목사님이 너무 너무 상심이 되어서 교회를 사임하고 변두리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 하자 마자 교회는 잘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떠나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님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목사님이 계실 때는 교인들이 ‘아멘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으니까 찬양과 예배가 살아있었는데 그 목사님이 떠나고 새로 오신 목사님은 미국에서 학위까지 받았고 설교도 신학적, 철학적으로 하는데 교인들이 전혀 은혜를 못받으니까 찬양과 예배가 죽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목사님 마음이 심히 무거워졌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밖에 나갔다 오니까 사찰이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 내가 옛날 목사님과 뭐가 다른 것이 있나요?” “목사님은 참 훌륭하시죠. 인물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교양으로 보나 옛날 목사님과는 대조가 안됩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목사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찰 집사가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한가지가 옛날 목사님과 다릅니다. 옛날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많이 했는데 목사님은 기도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날 밤부터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 기도하는 중에 환상이 나타났는데 교인들이 가득 찬 예배당 안에서 자기가 설교를 하더랍니다. 강대상 위에서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나가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하는데도 소리가 하나도 안나고, 교인들이 찬양을 하는데도 소리가 전혀 안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저 뒤에서 찬양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보니까 권사님 한 분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교회에서 늘 기도하는 권사님이었습니다. 그 권사님의 찬양만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천군 천사가 화답했습니다.
그때 목사의 마음속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기도없는 설교는 말은 되지만 말씀이 아니구나! 기도없는 찬양은 화음 맞춘 노래는 될지 모르나 하늘로 올라가는 찬양이 안되는구나! 교인들도 미리 기도하지 않고 찬양하는 것은 가수의 노래에 불과한 것이구나!’ 깊이 회개하고 그날 밤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서 기도중에 말씀을 받아가지고 다음날 말씀을 전하니까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전부 삐삐를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얼마전에 TV를 보는데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잘못해서 자동차가 언덕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핸드폰으로 119로 연락하니까 구호차가 금방 와가지고 실어가는 것입니다.
핸드폰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무선 연락이라면 기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무선 연락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무선으로 연락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을 요즘 용어로 'Heaven Phone'이라고 그럽니다. Heaven은 하늘이라는 뜻인데 하늘에 통하는 전화입니다.
우리가 위급할 때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애인보다도 더 좋은 우리 주님, 이 세상의 아버지 보다 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더 능력있는 전능하신 아버지 앞에 우리가 Heaven Phone 기도를 통해서 간구할 때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기도는 기적을 낳는다.
한신대 교수님 중에 오영석 교수님이 있습니다. 원래 그 분이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는데 너무 너무 가난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중학교에 가는데 자기는 중학교도 못가고 날마다 풀이나 베러 다니고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니다가 나무하러 갔다 오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를 올려라.”
이 분이 감동을 받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 라고 쓰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체부가 우편물 분리를 하는데 주소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라고 써 있는 편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다가 ‘하나님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목사밖에 없으니까 목사한테 갖다 주자’ 해서 그때 당시에 해남읍 교회에 계시던 이준묵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 목사님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가지고 그 소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불러다가 목사님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같이 지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 분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한신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해서 한신대학을 졸업하고 나중에는 유학을 가려고 유학 준비를 하는데 유학 비자가 안나오는 것입니다. 유신 정권 때 유신 반대 데모를 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찍혔기 때문에 아무리 비자 신청을 해도 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막막해서 유학가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경기도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에 가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 근처에 있는 골프장에 경찰 제2국장이 골프를 치러 왔습니다. 그래서 경찰 국장과 친분이 있는 그 교회 장로님이 경찰 국장에게 “우리 전도사가 외국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비자가 안나와서 유학을 못가고 있으니 비자 좀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경찰 국장이 장로님의 부탁을 받고 비자를 받게 해주려고 알아봤더니 요주의 인물로 붉은 줄이 쳐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장로님에게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예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느날 오영석 교수님이 눈이 하얗게 쌓인 수유리 언덕을 넘어오는데 동쪽에서 빛이 비취는데 너무 찬란하게 비취고 또 때마침 성령의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눈 위에 엎드려 손을 들고 “오 주님, 내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이 밝은 햇살같이 내 앞길도 밝아지게 하옵소서.” 하고 눈물 뿌려 기도했습니다. 그 날 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지프차를 타고 와서는 문을 열고 “영석군 나와” 하더니 지프차를 타고 중앙정보부로 들어가더랍니다. 들어가면서 철커덩 하고 문이 닫히는데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진짜로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영석씨입니까?” “예, 그런데요?” “빨리 와서 비자 받으시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문이 열리기 바랍니다. 기도로 모든 문제가 해결받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이루십니다. 한신교회가 이렇게 부흥한 것도 기도의 응답입니다. 무명의 종이 기도해서 이런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학력이 있느냐 없느냐, 재산이 있느냐 없느냐, 인물이 좋으냐, 가문이 좋으냐를 묻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보다 더 좋은 가문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권세가 없습니다. 그 능력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간디는 “나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전에 미쳤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넷째, 기도는 최고의 능력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0-13절)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며,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기도하는 자가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무릎 꿇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고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느냐” 하고 물으니까 한 사람이 와서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아비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니까 귀신이 나왔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 그것은 바로 성령을 받는 일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가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데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은혜는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자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받는 것도 있고 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기도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한 사람은 물질의 축복을 받고 많은 것을 받습니다. 그러나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것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이 나가야 되고, 질병이 나가야 되고, 우울증이 나가야 되고, 우리는 괴롭히는 모든 것이 나가야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기도 외에는 나갈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면 나가느냐? 굴 속에 있는 여우를 나오게 하려면 굴에 불을 지르면 여우가 나옵니다. 우리 심령속에 도사리고 있는 추하고 악한 것들을 무엇으로 내보냅니까? 성령의 불이 들어와야 됩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불이 들어와 이것을 내보냅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불을 받아 성령의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는 근심과, 걱정과,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하는 모든 악한 것들이 우리 가정에서, 자녀에게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 민족에게서 일곱 길로 도망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해결됩니다. 기도로 승리하고, 기도로 하늘문을 열고,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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