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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1-9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8.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고린도전서 3:1~9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기는 하지만 육신 적이고 인간적인 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사람이니까 육신적인면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육신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성, 악이 일할 기회를 주며 죄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을 책망하는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 되어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관 가치관이 그리고 행동의 모든 것이 악이 지배하는 대로 내 맡기고 있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분쟁과 분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사람과 이웃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옳은 말씀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화합하며 사랑과 일치의 저신으로 사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불행하게도 이 교회에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파당이 생겼습니다. 어떤 이는 바울파, 어떤 이는 아볼로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면서 당파심을 버리고 주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이런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5절 이하를 보세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좀 도와서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심방하고 돌보는 것은 물론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이 인간의 심령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농사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되고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농사짓는 것만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만사가 가만히 보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편 127편을 오늘 예배 시작때 읽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서양 속담에도 '싸움은 사람이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 내려오는 말에도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했습니다. 성령 잠언 16장 1절에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에만 성공할 수 있고 승리를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영역과 차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농사도 하나님과 함께 지어야 성공합니다. 국토를 지키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해야 바로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해야합니다. 판사가 재판을 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도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정치도 그렇습니다. 정치는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귀중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 민족 국가의 운명이 정치를 바로 하고 못하는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계에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고상한 인격을 소유하고, 덕과 신의와 의리와 도덕적 성품을 가지고 사리사욕이 없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옛날 사울 왕은 젊어서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는 정치를 잘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교만해지고 시기하는 마음이 그의 총명을 가리게 되었을 때 그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젊었을 때는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역할 때 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실수를 범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위대한 정치가는 하나님과 동역 했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글래드스톤이나 미국의 에이브라함 링컨같은 정치가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 동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을 알고 하나님과 동역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축복 받는 민족이 되려고 할 것이면 이와 같은 정치인들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실 때에는 적군을 능히 물리 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실 때 비참하게 패한 예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을 지나서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게 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더니 철철 흘러 넘치는 요단강이 갈라져 건너가는 감격스러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공불락의 도성 여리고성을 손 하나 대지 않고 매일 하루에 한바퀴씩 엿새동안 돌고 일곱째 되는 날 일곱바퀴 돌고 소리치니 그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약해요. 무엇이 좀 되는 것 같으니까 자기가 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글세 우리가 철철 흘러 넘치는 요단강 물에 발을 대니까 물이 쫙 갈라서지 않아, 우리가 이런 일을 했다구 그것 뿐이야 그렇게 높고 견고한 여리고성, 사실 누구도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그 성 주위를 돌고 소리를 지르니까 아 그 큰 성이 와르르 무너지잖아 굉장했지 우리가 큰 일을 한거야"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셔서 요단강을 건너고, 어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생각도 안하고 자기들의 힘으로 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도움이 필요할때는 주님을 찾지만 그 일이 성취되면 주님은 다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해서 된줄로 압니다.

 

그래서 그 다음 성 아이성에서도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수아가 사람을 보내서 한번보고 오라고 해서 가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고하는 말이 '거기에 가 보았더니 여리고성 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은 성입니다. 그러니 우리 이스라엘이 다가서 고생할 필요는 없고 그저 넉넉하게 이삼천 명만 보내면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말 가운데는 "아, 우리가 그 난공불락의 도성 여리고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점령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아이성쯤이야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보고를 듣고 삼천명의 군사를 아이성으로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으로 올라갔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성 사람들아 다 일어나 반격하는 바람에 쫓겨 내려오게 되었는데 후퇴하면서 서른 여섯명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혼이 났던지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의 마음이 물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왜 아이성 사람들에게 완패했습니까? 여리고 성을 점령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맥없이 졌습니까? 원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슬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간 이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면 승리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니까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싸움은 사람이 합니다. 그런데 승부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잠언 16장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37편 5절에 보아도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교회 일이나 사회 일이나, 개인이나 단체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인이 무슨 사업을 경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계획하고 시작합니다. 물론 사람이 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그 사업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 말은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면서 기도도 간절히 해야 하나님이 도우셔서 공부를 잘 할 수가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할 때도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녀를 갖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키우는 것도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기대와 너무 어긋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욥기 1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욥이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어거스틴이 인간적으로는 다재다능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리며 살았는데 종교적으로 마니교에 속해 있으면서 육신의 향락을 일삼는 일을 하므로 그 심령이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얼마나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 아들의 심령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어거스틴의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서 절망 섞인 음성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감독님, 우리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 버리신가봐요"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이 안타까운 호소를 듣고 있는 암브로스 감독이 모니카에게 한 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매님, 눈물의 어머니를 가진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모니카는 계속 기도하므로 어머니가 세상 떠나시기 얼마 전에 어거스틴이 하나님께 돌아와 중생 했고 기독교 역사상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계획은 100년 살 것같이 하고, 사는 것은 하루 살고 마는 것처럼 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크게 계획해야 되지만, 하루하루 우리의 삶은 오늘 끝나는 것처럼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선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수 맺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품고 그대로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와는 화목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나를 데려가신다면 나는 오늘까지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잠언 19장 21절을 보세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계획 저런 도모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나 개인이나 우리 공동체로 이루어 진다해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우주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0장 24절에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고 말씀했습니다.

 

잠언 21장 30~31절에 보면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가 있다고 한들, 아무리 사람이 명철하다고 한들, 아무리 우리의 계획이 굉장하다고 한들 하나님을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도대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We are only god's co-worker"라고 했습니다. 동역자는

 

 

 

1.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책임은 사람이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은 씨뿌릴 때 씨를 뿌리고, 추수해야 할 때 추수해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심어주고 길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 몸안에 맹장염이 생겼으면 맹장을 수술해서 잘라내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먼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때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합니다.

 

내 법대로, 내 고집대로 할 것이 아니라 자연계를 지으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따뜻한 지대에서 결실 하는 과일 나무를 추운 지방에 심어놓고 열매 맺게 하려면 그 나무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에 대한 법칙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법칙대로 지켜야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대인관계에도 하나님께서 도덕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법칙대로 사랑과 공의, 진실과 신뢰, 청결과 겸허, 인내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과 동역 하는 일입니다. 나라에서 법을 정하는 것도 하나님의 법에 맞도록 정해야 합니다. 내 당에 유리하도록 정하는 것은 악법 내지 불법입니다. 나중에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에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 하면 문자 그대로 푸른 하늘의 뭇별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우리의 하는 일에 협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산천초목, 금수들까지도 우리에게 대항합니다. 옛글에도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조 500년의 역사를 보세요. 일시적인 권모술수로 큰 권력을 잡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로 말미암아 결국 자기 자신을 망치고 일족이 멸망한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역사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던지 이 일에 하나님이 동역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서 하나님이 동역 하실 수 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역천의 길이요, 반란의 길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에서 무슨 일이나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입니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과 동역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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