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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준 교훈! (요 12:24-25)

by 【고동엽】 2021. 12. 7.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추천 0조회 3807.12.15 11:0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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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준 교훈


요 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전하리라.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월드컵이 열리는 지난 한달 동안 우리는 참 행복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팀이 승승장구 올라가는 그 기쁨이 참 대단했습니다. 참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우리 팀이 이렇게 상승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남다른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아마 역사상 월드컵이 이번 같은 감동을 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I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아마 이번처럼 태극기를 몸에 감고 길거리에 나선 때도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목소리 높여 부른 때도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누가 시킨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목이 쉬도록 여한 없이 외쳤습니다. 이것은 전에 없든 현상입니다.
그동안 이 나라가 싫다고 이민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월드컵을 통해서 오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참 좋다고 외쳐댔습니다. 참 상당한 수확을 우리는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물질로 환산할 그런 성질의 수확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철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번 기회는 모두가 이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번 월드컵이 우리나라에 준 선물이고 교훈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얻은 것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젊은이들에게 고민만 안겨주는 나라였습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빼앗아버리는 나라였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심어주고 희망을 주기에는 너무나 염치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모처럼 이 땅의 고민 많은 젊은이들에게 나라의 소중함도 일깨워 주었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준 계기가 되었고 또한 꿈과 희망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희망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거리로 내몰았고 그렇게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현재 우리의 사회가 그들에게 심어주는 꿈이 없었기에 그토록 굶주렸던 심정으로 뛰어나온 것입니다.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또 “자신감”도 심어주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본중의 자본은 자신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자신감이 없으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과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 선수는 선수대로, 우리국민은 국민대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수확입니다. 선진국도, 강국도 우리는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우리선수들은 그동안 강한 팀과 싸울 때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용기를 상실한 채 상대해서 싸웠습니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경기다운 경기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누구와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큰 소득입니까. 자신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달라지게 만듭니다.
해외에 살고있는 교포들은 남의 나라에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의기소침하기 쉽습니다. 고국에서 문제가 터질 때는 더 주눅들어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도 아주 큰 자신감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이제는 잘살게 되었다고 뻐기며 세계여행을 다니지만 사실 남들은 우리를 그렇게 알아주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헝가리에 살고 있는 교포는 헝가리 사람들이 한국을 베트남 수준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인정을 하려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깨를 피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자신감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국민은 무엇보다도 이 자신감을 얻은 것이 수확입니다.
그리고 “한민족의 저력”도 유감 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한국민이 보여준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친절함과 질서 있는 거리문화와 뜨거운 응원전은 전 세계가 놀라기에 충분했습니다. 거리에 700만 응원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리로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사람은 또 얼마입니까. 어느 나라가 이것을 흉내낼 수 있습니까. 그것도 열광적인 한마음으로 말입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정작 더 놀란 것은 우리자신들입니다. 우리도 놀랐습니다. 도대체 우리들 속에 이런 용기와 정열 그리고 한마음 됨의 그 열기가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입니까. 우리자신들도 자신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없었고 또 미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많은 것 알고 느끼게 해 주는 계기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민족은 장점이 참 많은 민족입니다.


II
그 장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민족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일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우리민족은 아주 조용하고 순진하게 보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 할 때 그 점을 약점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민족은 밟고 누르면 아무 저항도 없고 소리 없이 그냥 주저앉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오해였습니다. 우리민족은 조용히 보이는 그 순진함 속에 뜨거운 열정도, 솟구치는 욕구도,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도, 기회만 되면 분출하는 잠재력도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IMF를 2,3년 만에 원상으로 회복시켜 놓은 나라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가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IMF를 맞았을 때 세계는 “그것 봐라” 했습니다. 이 나라에 대해서 시샘하던 나라일수록 더 고소해 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가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아란 듯이 이 나라를 다시 이렇게 새워놓았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국민입니까. 우리나라는 6,25때 전국이 황폐한 폐허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폐허 위에 50년 만에 오늘을 건설해 놓지 않았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런 일을 해 놓았습니까. 우리민족은 이렇게 잠재력이 충만한 민족입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민족입니다.
히딩크 감독도 우리 선수들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그 잠재력이 충분히 들어있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적당히 터주니까 잠재되어 있던 실력이 급상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수준 40위에서 일약 상위로 상승했고 전 세계 5대양 6대주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32개 팀 중에서 16강에 오르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었는데 4위로 뛰어오르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면 모두가 놀랄 만한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이런 장점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수많은 시행착오만 일으켰고 실패만 거듭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원인이 원칙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편법, 학연, 지연, 인정, 지방색, 적당히 라는 덫에 걸려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로 하여금 병들게 만들었고 발목을 잡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학연, 지연, 인정, 지방색 적당히 라는 의식 모두를 제거하고 원칙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원칙을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법대로 경기하는 자가 상 받는 줄 모르느냐”고 말합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너무 편법, 부정, 빽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실력 가진 사람들이 낙오되고 실패하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어디서 꿈을 찾고 희망을 가져봅니까. 참 불행한 사회입니다.
정치계를 보십시오. 보면 모두가 반칙뿐입니다. 돈 써서 당선되고 당선되면 본전 뽑으려고 뇌물을 받고 그 다음엔 구속되는 악순환을 우리는 지금까지 되풀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우리사회의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회가 발전하겠습니까. 그 좋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사회는 원칙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입니다. 모두 편법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보다도 잠재력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디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이점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원칙을 지키고 편법이 사라져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고 편법을 없애려면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자기자리에 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수고와 인내를 각오해야 합니다. 수고 없이 횡재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합니다. 남을 속이고 편법을 써서 살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는 수고가 따르고 인내가 따르고 자기자리를 지키는 사명도 뒤따릅니다. 질서 있는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가 있어야 하고 땀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희생도 따라야 합니다.
6,25때 있었던 숨은 이야기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서 6,25전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경에서 비행기로 한국에 날아왔습니다. 와 보니까 이미 한강인도교는 파괴되어 끊어졌습니다. 인민군이 이미 서울에까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피난 가느라 혼란 중이었습니다. 그때 끊어진 인도교 끝에서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한 사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사에게 맥아더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 있느냐”. 사병이 대답하기를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작정이냐”고 물으니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을 때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지휘계통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극심한 혼란중이고 모두가 살겠다고 피난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맥아더가 또 말했습니다 “혼자 그렇게 서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도 그렇게 서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맥아더가 그 병사의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맥아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에 이런 병사가 있다니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 이 나라는 반드시 회복시켜야 한다” 하고 참전의지를 새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일화입니까. 단 한사람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도 받고 실망도 받게 됩니다. 한사람을 통해서 받게 되는 감동은 순간 감동으로 끝나지 않고 큰 일을 이루게 하는 계기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한사람을 중요시합니다. 나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내가 바로 서면 전체가 바로 서게 됩니다. 내가 변하면 전체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감동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 즉 한 알의 밀알 정신입니다.


III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나옵니다. 이런 삶에는 누군가의 역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역할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경제도 안정되고 사회도 안정되고 시민정신도 그 어느 때보다도 성숙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누구 때문입니까. 모두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희생하고 모두 살겠다고 피난 가는 그 와중 속에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 명령을 따라 서 있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 있다가 모두 죽어서 지금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그 사람들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얻느니라“.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땅에는 평화가 있고 안정이 있고 부강이 주어졌고 이런 잠재력을 가진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사람이 물을 흐려놓기는 아주 쉽습니다. 일을 그르치기도 쉽습니다. 한사람이 경제부정을 저지르면 온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한 알의 밀알 정신을 자꾸만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기독교의 부흥을 놓고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왜 이렇게 부흥했습니까. 그것은 한 알의 밀알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갔습니까. 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말없이 죽어갔지만 사실은 일당백이 되어 준 것입니다. 한사람이 죽으니까 수백 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수백 명이 죽으니까 또 수만 명이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늘 기독교가 이렇게 왕성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사람을 중시합니다. 성경은 용기 있게 죽고 썩고 희생할 수 있는 한사람을 중시합니다. 그 한사람은 희생해서 죽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었으나 살아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스데반 한사람은 희생되어 죽었지만 그는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 가슴속에 그냥 살아있지 않습니까. 세례요한, 사도 바울, 마틴 루터, 이순신,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었으나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서 숨쉬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삶을 한 알의 밀알이라고 했습니다. 간디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 보리밭을 보라, 보리가 싹을 트이기 위해서는 그 씨가 죽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을 보면 한 알의 밀알이 되려하는 것이 아니고 저마다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덩달아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이 터졌다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줄줄이 걸려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런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토록 보전하리라”.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있으나 죽은목숨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느 시대나 이 같은 사명의식이 없으면 무의미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특히 그리스도인은 내 나라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라하는 삶에 책임을 지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얼마나 소중한 나라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생각할 일은 이제는 이 나라를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나가는데 새로운 의지를 가져보는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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