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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편◑/정통 교리사

19.김회권 교수의 기독교교리사

by 【고동엽】 2021. 11. 29.

기독교 교리사(3/2 목요일)-강의(김회권 교수)

 

초대교회사-신약성경과 사도행전의 역사

I. 서론: 누가복음의 속편(續篇)인 사도행전은 일어난 일들(facts)을 질서정연하게 기술하여 데오빌로가 배운 바 복음의 기초신앙을 확실하게 다져주려는 목적으로 저술되는 책이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해 받으신 후 승천하신 이후부터 로마제국의 심장부까지 진출하는 복음의 세계적 확장사이자 성령충만한 신자들의 영적 분투의 기록이다(1:1-14).

 

II.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인 성령에 대한 약속이 상기되고 이 성령강림 약속을 중심으로 제자들은 한 공동체를 이룬다.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대망하며 전혀 기도에 힘쓴다. 그들은 마침내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의미를 각성하고 예수를 죽인 사람들 한 복판에서 부활과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다(1:15-2:47).

 

III. 성령충만한 12제자 사도공동체-성령에 의하여 지탱되는 아주 담대한 부활공동체, 증거공동체, 부활증인 공동체의 탄생(3:1-6:7).

 

IV. 유대인의 반역과 저항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기수를 돌리기 시작한다.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로잡히다(6:8-9:30).

 

V. 반역하는 이스라엘은 실족의 길로 가고 하나님은 이방선교의 기초를 놓으시다. 바울을 부르시는 하나님(9:32-12:24).

 

VI. 비록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계속적으로 복음 메시지를 배척할지라도 이방인의 선교사 바울은 만민(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매진하다. 소아시아 일대를 복음으로 답파하다(12:25-16:5).

 

VII. 사도 바울을 통한 교회의 사명은 이방 만민들을 위한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의 경륜임이 드러나다. 유럽과 소아시아를 복음화하다(16:6- 19:20)

 

VIII. 사도 바울의 복음 증거사역은 로마제국까지 확장된다(19:21-28:31).

 

결론: 사도행전의 중심교리(유대교/이방종교들와 기독교를 구별짓는 믿음 체계. 행동화된 믿음체계. 이것이 도그마의 의미. 긍정적인 의미)

(1) 이방인들도 믿음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2) 이방인들(사마리아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성령받았다.

(3) 믿음으로 말미암은 이 바울의 복음은 초대교회의 가장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교리(dogma). 바울이 교회사에서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세운 사람이다.

(4) 수리아 안디옥(Antioch) 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 전까지는 “도(道)의 백성들”(the people of the Way=the People of Exodus)로 불렸다. 안디옥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은 회당/성전예배 대신에 독자적인 회중을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5) 마 5:14-16(너희는 세상의 소금, 빛이다)이 기독교인의 독특한 구별성을 강조한다.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인의 구별되는 믿음체계, 삶의 체계를 가리킨다. 기독교인과 세상의 구별이 애매모호해 질 때, 기독교 도그마의 옹호와 주창이 필요하다.

 

결론 중 결론: 나사렛 예수와 유대인 당국 사이에 걸려있던 논쟁점은 교리논쟁이었다. 예수, 스데반, 바울, 오거스틴 등 교회사의 가장 결정적인 지도자들은 교리를 둘러싼 논쟁의 주도자였다. 올바른 믿음체계를 수호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예수가 도그마의 주시다.

교리의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발전

교리(dogma)의 어원: dokein(그리이스어)에서 유래. 이 동사는 “생각하다,” “상상하다,” “의견을 주장하다”를 의미. 기독교가 시작되기 이전의 그리스 철학파들은 각 자의 기본 전제와 학설들을 펼침으로써 자신들의 집단이 다른 집단과 구별됨을 드러내었다. 플라톤 학파(아카데미아)는 기하학에 대한 상당한 교양과 식견을 요구하였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금욕적인 수행을 요구하였다.

1) 이처럼 기독교의 교리도 교회를 다른 이방 철학의 학파들과 자신을 구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유대교와 로마제국 내에 유행하던 다른 동방종교들(대모신 신앙, 미트라이즘, 동방 밀의종교)과 기독교회를 완연하게 구별시켰던 도그마의 중심은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에게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나사렛의 방랑 전도사 예수가 바로 주(主=kyrios=kirche=church)”요 “구세주”(savior=soter)가 됨을 고백하는 것이다(고전 1:18-23). 이 때 도그마는 신앙고백을 의미하였는데 그 도그마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생업과 사회적 지위 심지어 목숨까지로 희생시키는 긴장감 넘치는 현실이었다. 요약컨대 도그마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 의미를 갖고 있다.

1) 기독교와 일반적인 유신론 그리고 유대교와 가장 급진적으로 구별짓는 도그마는 십자가에 못박힌 나사렛 예수가 주요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고백이다(요 1:12; 20:31; 롬 10:4-10; 고전 12:3). 앞서 말했듯이 이 고백은 유대교와 로마제국 내의 많은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를 확연하게 구별짓는 특징적인 도그마다. 특히 로마제국내의 황제숭배(황제를 신으로 숭배) 움직임에 대한 대항마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도그마는 초대 기독교인들을 순교의 제단으로 몰아간 교리였다(곤잘레스, 사상사 1권, 18쪽).

2) 좁은 의미의 도그마는 교회내에서 생겨난 이설과 이단잡설 혹은 오류로 가득찬 교리들과 다른 주장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기 위한 바른 가르침을 지칭한다. 사도신경은 4세기경에 생겨난 사도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신조요 도그마다(325년 니케아 신조; 5세기 중반 콘스탄틴 회의 및 칼케돈 회의 선언). 사도신경 제 1항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니...”는 마니교와 같은 이원론(악신과 선신의 대등한 갈등구조로서의 우주론)과의 치열한 갈등의 소산이다. 사도신경의 창조주 신앙고백은 물질세계마저도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 및 통치영역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의 세계는 신적 본질에 가까운 세계로 선하고 육체와 물질의 세계는 악하고 열등하다고 보는 그리스 철학과는 정반대의 주장인 셈이다. 사도신경은 그리스철학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어적 도그마다. “교의/교리란 이론적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실체를 지키려는 관심에서 생겨났다”(마틴 루터). 이런 기독교의 실체를 지키기 위한 이상 2)항에서 다루는 창조신앙 도그마에서 이단사설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더욱 정치하고 자세한 철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기독교 도그마를 제련할 수밖에 없었다. 삼위일체론이니 동일본질(아타나시우스) 혹은 유사본질(아리우스파)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3) 도그마가 교회에 의하여 교회헌법(canon law)으로 각질화된 경우에 아주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이단 재판은 도그마의 부정적인 사용의 예다. 그래서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사람들은 도그마에 대하여 공공연히 저항을 드러내었다.

 

요약 및 결론: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을 대변하는 믿음의 궁극적 묶음이다. 그것은 교회의 현실적이고 뜻깊은 표현이다. 그것은 교회의 삶과 헌신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성경 이외의 모든 시대의 기독교적인 신학들의 역사가 교리다(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Nashville:Abingdon, 1975). 신조사, 신앙고백사, 교회들의 공의회 결정들, 주요 신학자들의 신학사상 등이 연구대상이다. 모든 신조들, 신앙고백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는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교리사 혹은 사상사는 교회가 행한 성경해석들의 역사요 각 시대의 역사적 사상적 도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응답이다. “오직 성경으로만”이라는 구호만 갖고는 불충분하다(곤잘레스, 사상사 1권, 이형기, 차종순 역자 서문, 14쪽). 과거에 형성된 잘못된 교리나 신학적 주장들도 오늘의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는 점에서 기독교교리사(사상사) 공부의 의의가 적지 않다. 교리사를 공부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신앙 및 교회의 신앙실천에 대한 냉정한 자기비판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적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이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각 시대의 양식은 다양하고 가변하기 때문에 교회와 기독교인은 늘 자기비판에 열려있어야 한다. “교리들은 어느 시대의 신앙의 중심을 공격해 오거나 정치적 음모의 결과로 나타나는 잘못된 교리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영성의 맥락에서 생기게 되는데 특히 기성 예배들에서 나온 오랜 시간에 걸친 신학적 반성의 소산이다”(곤잘레스, 사상사 1권, 35쪽).

 

기독교 탄생을 위한 역사적 철학적 예비 환경

(틸리히, 23-51쪽 주요 참조; 곤잘레스 39-77쪽 참조).

 

1. 기독교가 탄생하기에 적절한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 그리스-로마의 정신세계

크로노스는 시간의 양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시간의 질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세계적인 선교운동으로 만개할 수 있는 외부적 환경 안에서 배태된 하나님의 생명운동이다. 예수가 탄생하고 기독교가 역사의 지평선에 출현하였을 때는 로마제국이 이미 세계를 물리적으로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놓은 시점이었다. 500년 이상 그리스-로마세계를 지배하여 온 그리스 철학이 더 이상 역사와 인생의 의미를 해명하지 못하여 영향력을 급격하게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스의 고전철학(이오니아 학파와 밀레토스 학파,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이 의도하였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세계해석 시도가 무너진 그 자리에 회의주의가 싹트고 진정으로 보편적인 세계해석 및 인생 해명의 종교에 대한 갈증이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시리아 일대에서 유입된 동방 밀의종교(靈交[spiritual intercourse]/靈知[spiritual knowledge]를 준다고 선전-일종의 고대세계의 뉴에이지 종교운동)가 로마 제국의 정신세계를 잠식하고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스토아 철학이나 금욕적인 희열을 추구하는 에피쿠러스 학파(정신적 쾌락), 회의주의, 신플라톤 학파 등이 로마제국의 정신세계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었다. 세계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구원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편적 계시에 대한 기갈이 극에 달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세계에 침투하기 전에 회의주의적 세계관이나 종교들이 삶의 여러 요소에 파고들었다. 에피쿠러스 학파는 세상사의 번잡한 복합성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soter)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신플라톤 학파는 영의 순수한 세계와 육의 더러운 세계를 구별하여 육의 세계로부터의 이탈을 구원이라고 보았다. 한편 신플라톤 사상에는 섭리사상이 있어서 인생살이 동안에 겪는 부정적인 경험들을 이겨내는 것을 돕고자 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세계를 운용하는 보편이성인 로고스의 이론을 설파하였다. 로고스는 우주의 원리임과 동시에 역사 운행의 원리다. 스토아학파는 하나의 보편적인 개념을 가지고 세계의 역사와 인생의 의미를 해명해 보려고 하였다.

 

2. 헬레니즘 시대(BC 330-30)의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

천사론, 악마론, 종말론과 부활사상의 발전시기였다. 신구약 중간시기의 악마-하나님 갈등은 존재론적인 이원론(마니교 수준)으로 발전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강조아래 일어난 갈등으로 이해되었다. 악마의 제한적 활동은 성도의 신앙양심을 검증하고 정련하는 시험의 시기다. 전반적으로 묵시문학(천지개벽 문학), 즉 옛 세계는 해체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는 사상이 융성하기 시작하였다(롬 12:1-2; 고전 7:25-29). 또한 종교적 황홀경(ecstasy=신인 합일 추구)을 추구하는 밀의종교(esoteric religion)가 시리아 일대의 동방지역(the Orontes River floods Rome)에서 유입되어 유포되기 시작하였다(헬레니즘은 동서문화의 혼융기=the intermingling period).

 

3. 신약시대의 도래(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 서신(AD 50-70):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 증거. 예수는 복음서에서는 선포자(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이지만 바울서신에서는 선포되는 자. 바울의 주요 메시지는 예수의 십자가에 달려죽으심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사건이자 죄인을 위한 용서사건(화해사건)이다. 믿으라, 즉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의 메시지다. “주”라는 말을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다(주 예수). 예수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한 반면 바울은 주(그리스도)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동일한 메시지이다. 복음서의 예수는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왕권과 대리통치(버금왕=second king, regent=Christ, the anointed=기름부은자, 이사야 11장)를 강조한다. 예수가 주와 부왕(그리스도=messiah)임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관복음서(마테, 마가, 누가)(AD 70-80):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 구현자(체현자, 몸으로 보여주는 자). 그 자신이 걸어다니는 하나님 나라, 즉 몸소 하나님 나라(autobasileia=오리겐이 한 말=a walking Kingdom of God). 예수의 주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믿으라,” “돌이키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적 긴급성을 갖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우선순위를 대전향하라”였다.

 

요한복음(AD 90):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가 로고스 사상으로 이미 정돈된 헬라지역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가 각 개인에게 어떤 실존적 파급효과를 남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도행전(AD 60-70): 누가복음의 속편으로 마태복음 후에 요한복음 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복음이 소아시아와 로마세계에 전파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12사도(1-11장)와 바울/바나나(13-28장)의 활동을 균형적으로 기록한다.

 

4. 사도 교부(續사도교부)시대

사도교부는 사도들의 직계제자들을 가리킨다(요한-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이레니우스; 폴리캅; 베드로-로마의 클레멘트[3대 후계자, AD 92-101]; <헤르마스의 목자>의 저자 헤르마스). 이 시대의 교리적 태도는 수용과 변용이다. 성경적 개념들을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피선교지 토착문화에 적응하도록 기도하였다. 메시야, 인자, 하나님의 아들, 말씀, 주 등의 개념이 토착문화의 개념들로 번역되고 치환됨(신학적 성육신=토착화). 이들은 사도시대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계승하는 보수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들의 주요쟁점: 이원론의 극복이 주 쟁점이었다. 창조주는 물질계를 창조하셨고 그 물질계는 선하다(사도신경). 그리이스의 영지주의 혹은 이원론에서는 물질계를 가장 열등한 신인 데미우르고스의 창조물이라고 본다.

*이방세계의 사상들과 철학들을 이용하여 기독교신학의 알짬을 표현하려는 시도들.

.긍정: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들의 은금보화를 취하여 성막을 제조한 일.

알레산더의 필로(Philo)-구약성경에 대한 플라톤적 우의적(allegorical) 해석.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플라톤 사상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며 육체와 물질계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을 배격하였다(사상사 1권, 18-20쪽).

.부정: 터툴리안(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기독교 사상사의 학문적 연구성과들

가) Migne 편집 382권의 기독교 사상사(12세기 이후 다루지 않음)

나) 하르낙과 니그렌(Harnck과 Nygren)(1869-190): 기념비적 저서. 리츨(두 저자에 의하여 “가장 마지막 교부”라고 명명)은 철학이 종교에 간여하는 것을(형이상학적 관점) 막으려고 분투한 학자임. 리츨은 종교는 철두철미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도덕적 가치야말로 인간을 현세적 절망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니그렌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저술한다. 철학적 입장에서 기독교 사상사에 접근한다.

 

다) 곤잘레스의 입장: 신학적 입장 출발. 진리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에서 출발, 즉 성육신의 교리에서 출발. 진리발견에 대한 허무주의(절대 영원한 진리는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것 속에서 구할 수 없다)와 상대주의(모든 진리는 상대적이고 파편적이다-에비온주의. 예수의 실제적 인간성은 인정하나 로고스 되심을 부인) 극복 시도. 기독교진리관에 의하면 “진리란 구체적이고 역사적이며 동시에 개별적인 사건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숨겨져 있으나 또한 동시에 모든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서 그 진정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35쪽).

 

 

기독교 교리사(3/6, 9일, 2nd week)-김회권 교수

 

초대교회의 교리 논쟁 1

I. 기독교의 교리사 발전을 위한 철학적 종교적 거푸집(matrix)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본성에 대한 신기하고 영원한 교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 세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으로 임재하시믈 말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성육신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존재한다”(곤잘레스 1권, 39). 기독교는 구체적으로 2000년 전에 유대교인의 세계를 거쳐 그리스-로마의 세계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현존의 궤적을 따라 탄생된다.

 

유대인의 세계(곤잘레스 1, 40-6쪽)

폐르샤 체제하의 팔레스틴-알렉산더 제국하에 셀류키드 왕국으로 귀속-마침내 BC 63년 로마제국의 폼페이에 의하여 정복, 로마의 식민지가 된다.

 

종파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사해사본, 묵시사상파) 등이 활동. 이들의 공통점은 윤리적 유일신 사상.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 유대교는 활기를 띤 종교였다. 유대인들의 희망의 축대는 “인자”(묵시문학적 천지개벽 개시자.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 심판 주관자.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올 지도자) 혹은 “메시야”(다윗왕국의 회복자, 지상적인 왕의 면모). 예수 당시에 이 두 종말론 사상이 절충을 이룬다. 메시야 왕국은 지상역사의 마지막이요 인자가 개시할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의 새 시대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51쪽). 이 외에도 당시 유대교에는 지혜사상이 융성하였다. 유대교는 팔레스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유대인 거주자가 있는 이방지역에서도 융성하였다(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로마, 이집트 등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목격자들의 다양한 출신지를 보라). 개종한 이방인들도 유대교 의식에 참여하여 유대교는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있던 종교였다. 유대인이 사는 곳에는 회당이 있고 바울은 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방선교 발진하다.

 

팔레스틴 유대교와 디아스포라 유대교: 상이점 존재(언어, 문화 등).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중심인 70인역(<아리스테아스의 편지>)(구약성경의 코이네 역본)의 역할 중대하였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로 사용한 구약성경이 바로 이 코이네 헬라어 역본 70인역이었다. 70인역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심리 반영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로마세계에 유대교의 고상함과 오래된 전통을 강조하고 자랑한다(모세가 알파벳 발명-페니키아가 유럽 전달 주장; 희랍 사상 중 모든 가치있는 사상은 이미 구약성경에 다 있다는 주장을 편다[아리스토불루스의 <모세의 율법에 대한 주석>]). 알렉산더의 필로는 유대인의 성경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사상과 일치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플라톤이 모세의 사상을 차용하였거나 전수받았다고 주장한다(57쪽). 이 과정에서 그는 우의적 해석을 이용한다(예. 창 3장의 가시는 정욕을 의미).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1세기 유대교는 당시 미드라쉬(생활율적 구약성서해석) 원(原)영지주의 요소(보좌신비주의, throne-mysticism: 묵시적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61쪽). 초기 유대교 영지주의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엘카이(Elxai, 혹은 엘케사이)(주후 2세기)인에 곤잘레스에 의하면 이 사람은 기독교의 보좌 계시(부활 예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환상)에 역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로마의 철학 및 종교 세계(곤잘레스, 62-77쪽)

플라톤: 초기 기독교 사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그리스 철학자다. 그의 사상은 현실-이데아를 나누는 이원론이다: 영혼불멸, 영혼의 선재(先在)와 윤회, 회상에 의한 지식획득, 선의 이데아. 그러나 플라톤의 물질세계에 대한 견해가 성경의 창조교리와 충돌한다. 그는 감각은 참된 지식을 획득하느 수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회상 혹은 기억을 통해서만 이데아 세계에 대한 참 지식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영혼 선재론 요청). 기독교인들은 영혼선재설을 용납하지 않았으나 감각적 인식에 대한 플라톤적 불신은 오랫 동안 계승한다(오거스틴 이래 서구 신학). 기독교의 선의 이데아 사상은 기독교의 하나님 사상에 괄목할만한 영향을 끼친다(티아미우스편. 플라톤의 대화록의 하나로 구약의 창세기와 맞상대가 되는 책). 세계는 신적 예술가인 데미우르구스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와 이 데미우르구스를 구별하다. 기독교의 신은 선의 이데아와 비견된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서구신학의 하나님은 “무감각적이며 무한하며 헤아릴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스토아 철학: 플라톤 다음으로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리스 철학이다(로고스 이론, 고상한 도덕률, 자연법 이론).

*로고스: 우주적 이성 로고스가 우주를 지배하고 운행한다. 인간 이성은 우주적 이성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금욕적이고 내핍적인 생활 때문에 로마대중으로부터 비웃음을 샀는데 스토아의 자연법적 사상(윤리적 기초)와 기독교의 고상한 윤리를 결합시켜 자신들을 변호하였다. 대신 기독교의 고유한 메시지가 희석화되는 댓가를 지불하였다.

 

신플라톤주의: 주후 2세기(틸리히 저서 참조).

에피큐리안주의와 회의주의, 아리스토렐레스: 기독교 등장 이전에 이미 영향력 상실하고 있었다(바울이 행전 17장에서 스토아 철학자[스도이고], 에피쿠루스 철학자들과 논쟁한다). 회의주의도 거의 마찬가지 몰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논리학과 부동자의 동자[the unmoving Mover] 사상[운동의 원인 설명하려는 밀레토스 학파의 문제의식])도 중기 플라톤 사상에 눌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절충학파: 전체적으로 보면 절충적인 경향이 당시의 철학 및 사상운동의 공통적 요소였다. 상호 영향 및 상호 침투현상이 빈번하여 영향력의 방향을 분간하기 쉽지 않다. 절충이 지나쳐 혼합주의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철학자들의 사상의 연구가 심오하지 못한 까닭에 나온 경향이 절충학파의 경향이다.

 

그리스-로마세계의 종교들(인간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관념 및 제의들)

올림픽 종교와 제의(12신들의 신화): 호머의 문학세계에서 묘사

신비종교: 엘류시스 신비제의는 쇠퇴하는 민족종교 대체하는 종교다. 민족종교는 국가와 신의 친밀한 관계를 규정하는 국가종교다. 개별 국가가 알렉산더에 의하여 멸망당하자 민족국가 종교도 소멸한다. 고대 이집트의 국가종교도 마찬가지 운명을 당한다. 민족종교 대신에 개인주의 종교가 득세한다.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범세계주의적인 시대에 집합적이고 국가적인 종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신비주의 종교는 고대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서 기원한다: 디오니소스신 축제(부활, 죽음 제의), 고대 이집트 나일강 기원 다산 제의(계절의 변화를 신의 죽음과 부활로 제의화, 이시스와 오시리스 제의, 부르기아에서 나온 아티스와 시벨레 제의, 기독교의 경쟁종교였던 미트라 신비종교). 모든 자연 및 인간의 신들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여 더 나아가서 개인들이 신들의 죽음과 새로운 삶에 참여한다고 줒장한다. 신비주의 핵심은 다산제의 외에 개인주의인 셈이다. 신비주의 종교의 특징은 신의 권능을 덧입기 위한 절차로서 제의에 참여하는 입문식을 진지하게 치른다는 것이다. 이런 신비종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의식적 식사(ceremonoial meal)이다. 드라게에서 기원한 한 신비종교는 사냥에 참여하여 피가 떨어지는 동물의 살을 뜯어먹는 의식적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희랍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효시? 아마 드라게 출신일 것?).

빌헬름 부세트(Whilhelm Bousset, Kyrios Christos[1965]) 등은 기독교를 기독교는 신비종교로부터 신의 수난, 죽음과 부활의 개념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세례, 성례전의 일부인 식사, 입문자 진급과정 등 모두 신비주의 제의 종교의 요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1세기를 풍미하던 공통적인 신비신학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오늘날 이 주장은 지지받지 못한다. 신비주의 종교가 2-3세기에 더욱 완성점에 이르며 발전하는데 오히려 기독교가 신비종교의 발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신비주의 제의가 기독교 영향가설도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12월 25일 성탄절은 미트라 신비종교의 축일.

 

황제숭배: 동방종교가 로마에 들어와서 생긴 파생적인 제의다(애굽의 파라오 숭배제의의 영향; 페르샤의 군주 숭배 전통; 희랍인 영웅숭배). 시저, 안토니, 옥타비아누스 등은 애굽인들에 의하여 신으로 숭배되었다. 황제숭배는 숭배자의 삶에 어떤 활력소를 불어넣지 못하였다. 이 황제숭배와 유아기-성장기를 거치는 기독교회와의 예각적 충돌을 야기한다.

 

혼합주의적 종교: 다신교 분위기가 혼합주의 촉진시켰다(이시스=아프로디테=데메테르; 제우스=세라피스). 절학적 절충주의와 병행한 현상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보존 노력의 엄숙성과 진지성을 가늠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라는 맥락: 구조적 통일성, 통신 및 도로, 언어, 법치주의(법), 행정조직 등은 기독교의 세계적 전파에 기여한 점들이다. 로마 제국은 “실제적이고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관심”을 기독교 신학에 부각시키는 기여를 한다(고백론). 이처럼 기독교는 역사적 진공상태가 아니라 세상 한 복판에서 태어난다(성육신).

 

II. 사도적 교부의 신학(틸리히 52-140쪽, cf. 곤잘레스 79-192쪽)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시작은 속(續)사도교부(사도들의 직계제자, 2-3세기)들에 의하여 가능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에 관한 이유(기독교 박해자들의 종교심문과 취조 앞에서든지 아니면 일상생활의 전도맥락에서든지)(벧전 3:15)를 물을 때 답변(아폴로기아, apologia=answer)을 마련하여야 했다. 아폴로기아는 고소를 당하였을 때 법정에서 재판관에서 한 피고의 답변, 자신의 삶과 행동과 신념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답변을 가리켰다. 기독교회가 자신을 변호해야 했던 두 가지 고발은 첫째 로마제국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며, 둘째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내의 지성인들(수에니토스, 타키투스)의 지적 논박과 로마제국 대중들의 문화적 공격이 그것들이다(기독교는 하나의 저급한 미신이다)(고전 1:18 기독교 복음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유대인들에게는 꺼리는 것, 하나의 추문, 스캔달이었다). 기독교는 철학적인 단편들이 뒤섞여 있는 미신이라는 것이다(켈시우스의 공격을 보라).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무신론자이며 불경건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의 만신전[판테온]에서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데 비하여 기독교인들은 형상없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인류의 혐오자와 문화의 적이라고 공격당하였다. 대표적으로 켈시우스의 공격을 살펴보자. 그는 기독교를 환상적인 미신과 단편적인 철학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한다.

1) 예수 부활에 대한 가열찬 공격. 여인들의 입에서 번져나간 미신이다. 예수의 신격화는 다른 종교들의 신격화와 다르지 않다.

2) 신의 성육신은 신의 불가변성과 모순된다.

3) 유대교와 기독교의 메시야 출현과 관련된 갈등과 싸움은 그것들이 둘 다 거짓의 집합체임을 스스로 폭로한다.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런 그리스도는 전혀 오지 않았다.

4)바울이 이미 정복되었다고 주장한 악마적인 세력은 전혀 정복되지 않고 아직도 세상 곳곳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 세상은 조금도 변화되지(좋아지지) 않았다. 악마적인 힘이 현실세계의 지배자들이다. 로마제국이 오히려 이 악마적인 세력의 준동을 억제하고 있다. 로마제국은 자연질서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로마제국의 안전과 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세력이다.

이런 교양있는 지성인들의 비판에 대한 변증가들의 응대는 주로 철학적이었다. 가) 이교도 비판자들과 기독교간의 공통적인 인식론적인 기반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자(행전 17:30). 나) 이교도 사상안에 있는 약점을 지적해 낸다. 적대자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은 변증의 두 번째 단계다. 다) 기독교는 이교도들에게 밖으로부터 강요된 어떤 교리가 아니라 그들의 자체의 내부에 있는 기대와 욕구를 성취시켜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행전 17:23, 27; 틸리히의 방법=철학이 제기한 질문의 답은 신학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론).

이런 변증법적 방법의 위험성: 자유주의-공통점 강조하다가 기독교의 독특성 희생; 보수주의: 차이점을 극대화하여 외부로부터 강요하듯이 기독교 설파 시도.

 

기독교 철학자들-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들

유스티누스: <아폴로기아 I, II>의 저자. 그의 주장은 “기독교야말로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찾아온 가장 고상한 영혼의 철학(로고스)다”라는 것이다. 그가 사용한 철학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마술적, 미신적 풍조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정신적 사고의 방식”이다. 고대 말기에 그리스 사람들에게 철학은 단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실천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였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자체 종교제의를 실행하는 철학파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학파의 분위기(삶의 방식)에 전적으로 참여함을 전제한다. 그리스도교 철학이란 보편적인 것이며 삶의 의미에 관한 포괄적인 진리를 갖는다. 변증가들은(유스티아누스 같은) 그들의 종교는 옳고 다른 모든 종교는 그르다고 한 것이 아니라(그리스도교를 종교라고 간주하지 않음) 이방사람들의 종교들의 기초가 되는 로고스가 출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의 부정과 극복이다. 기독교 안에 원리적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진리란 정의상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변증가들은 그리이스 철학적 진리나 동방의 신비주의에서 기독교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여러 가지 사상들을 거리낌없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든 철학과 구별되면 그것들보다 우월하다. 기독교안에는 로고스가 직접 출현하였기 때문이다(사진과 입체물, 피사물의 차이).

변증가들이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하여 사용한 또 하나의 논거는 도덕적 우월성에 입각한 논증이다. 도덕적인 감화력과 행동은 기독교의 진리됨을 입증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위협이 아니며 세계가 혼돈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로마제국 이상으로 세계질서를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는 기독교인들의 기도에 의하여 살고 있으며 기독교가 국가의 법률에 복종함으로써 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세계를 보존한다. 반면에 신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세계를 보존한다.”

 

신과 로고스-창조주 신앙의 발견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존재의 성질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유스티아누스는 신에게 귀속시킨다. 그는 신을 전능한 창조자라고 정의한다. 초인격적인 신을 인격적인 신으로 규정한다. 초인격적 차원과 인격적 차원 둘 다를 강조한다. 천사나 그 밖의 여러 힘들은 신과 인간의 참다운 매개자가 될 수 없다. 로고스만이 진정한 매개자다. 로고스는 세계질서의 궁극적인 인격이자 원리다. 단 한번 그리스도에게 로고스가 나타나서 구원의 근원이 되었다. 변증가들은 구원의 경험에서 먼저 시작하여 예수를 로고스라고 이해하는 데 도달하였다. 로고스는 신의 말임과 동시에 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임과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로고스가 하나님에게서 나갔다고(출산, only begotten son, 독생 자) 해서 신 자신의 신성이 축소되지 않는다. 신 안에는 내재적인 로고스가 있고 창조시 밖으로 걸어나가는 로고스가 있다(유스티아누스의 구분). 여기서 로고스 기독론(선재하는 로고스의 성육신)과 양자 기독론의 차이가 발생한다. 변증가들은 양자 그리스도론(adoption Christology)보다는 변화 그리스도론(성육신론)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린다.

 

영지주의의 위험성과 반영지주의 교부들에 의한 극복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로마황제에게서 온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은 영지주의의 위험이었다. 그노시스(gnosis)는 과학적 인식보다는 참여에 의한 인식을 의미한다. 과학적 지식과 대조를 이룬 실존적 인식, 곧 하나됨의 경험이며 구원의 경험이다. 인간의 인식적 기능을 신적인 것에의 참여로 이해한 종교적 입장이 영지주의(靈知主義)다. 이것은 고대 헬라, 근동의 여러 사상들이나 종파들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된 생각의 흐름이었다. 이 종교적 혼합물인 영지주의의 중요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가) 모든 민족종교는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의 정복으로 인하여 무너진다. 나) 이것은 신화에 대한 철학적 비유적 해석이다. 합리화된 신화론이다. 다) 고대 신비주의 전통인 밀의(密儀)종교의 부흥판이다. 라) 동방의 종교운동에서 볼 수 있었던 심령적, 마술적 요소의 재등장이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알려진 비교(비밀스러운 신적 교통)가 있다고 주장(골로새서의 일부 변증적 언급). 영지주의의 이원론적이고 금욕적인 입장은 구약성서의 여러 부분과 모순을 일으켜 구약 거부. 어느 부분만을 정화하려고 시도(마르시온-바울서신과 누가복음만 성경이다!)

AD 144년에 로마에서 교단을 세운 마르시온(Marcion)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1)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대립된다. 구약의 신은 율법의 신으로 신약의 신에 비하여 열등하다. 극단적 바울주의라고 불릴 만하다. 하르낙과 말기 바르트의 입장도 일종의 마르시온이즘(Marcionism=depreciating and degrading OT)이라고 본다(틸리히의 입장, 64쪽). 왜냐하면 바르트는 계시의 신과 자연법의 신을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에게 피조세계란 악한 것이다. 구원은 이 피조세계로부터의 이탈이자 탈출을 의미한다. 구원은 금욕을 통하여 달성된다. 종말론이 없다. 영지주의자의 구원자는 에온(aeon) 혹은 영원자의 하나로 설정된다. 이 구원자는 사람의 육신과 비슷한 육신을 입고 지상에 내려온다(가현설). 수난을 당하는 그런 육신과는 다른 육신을 입는다. 이 점이 기독교 변증가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거부되고 배척당하였다. 구원자는 악마적인 세력들의 영역으로 내려와(정사와 권사와 보좌와 주관-골로새서와 에베소서 일부를 보라. 엡 1:21; 6:12; 골 2:15; 참조 고전 15:24-25; 요일 3:8). 이 신적 구원자는 악마적인 세력들이 숨기고 있는 무기를 폭로하고 그들의 이름과 성격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의 세력의 인장(도장)을 파괴한다. 악마적인 힘이 지니는 비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힘을 이긴 사람이 되고 그 힘을 무너뜨리게 된다(65-66쪽 인용부분을 읽을 것). 악마적이고 유성적(별들의 힘)인 힘에 사로잡힌 영혼을 이 영지주의적 구원자는 지식을 가지고 구원한다는 것이다(롬 8장에서 바울은 이 악마적이고 유성적인 세력을 언급한다).

영지주의는 사변적이고 성례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공동체적이고 금욕적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간 구원자를 따라 다시 올라간다(와치만 니의 사상들 일부가 영지주의자-The Release of the spirit, <자아가 죽을 때>라고 번역됨). 하늘로부터 내려왔던 구원자는 자기 지식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플레로마(충만-영적 세력과 결합을 가능케 하는 충만)(바울의 에베소서 참조)에 이르기 위하여 악마적인 세력들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노시스에 의하여 구원받은 혼들은 악마적인 세력들의 이름을 언급하면 이 악마적인 세력들의 위력은 사라지게 된다. 영지주의는 악마적인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종교적 흐름이다. 인간은 이 열등한 물질세계를 만든 조물주 데미우르고스보다 더 선한 존재이며 이 데미우르고스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인간은 영적 인간, 혼적 인간, 육적 인간으로 나눠지는데 육적 인간은 멸망된다. 혼적 인간(psychikoi)이 충만에 이르기 위하여 세례와 정결의식에 참여하여야 한다. 외경의 하나인 <안드레 행전>에 묘사된 당시의 이원론적 세계를 보라(67쪽 인용문 읽을 것). 기독교 변증가들은 이런 영지주의의 유혹을 잘 극복하고 정통 기독교 진리를 잘 옹호하였다.

 

반영지주의 교부들과 초기 가톨릭주의의 발돋움

로고스론을 중심으로 변증가들과 영지주의자들과 싸운 변증가들이 초기 가톨릭주의의 기초를 닦은 셈이었다.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아누스는 로고스론을 잘 이어받았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바울 사상의 핵심은 이신칭의가 아니라 영의 교설이었다. 성령론. 바울의 인의론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터툴리아누스는 신앙의 역설적 차원을 잘 이해하였고 기독교의 엄밀성과 명석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히폴리투스(170-235/6)는 이레니우스의 제자였으며 성서석의와 교회사에 관한 저술로 반영지주의적 활동을 계속 하였다.

영지주의에 대하여 교회가 직면한 문제는 권위에 관한 물음이었다.

성서인가 아니면 영지주의의 비의인가?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부활 수 40일 동안에 예수가 영지를 직접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변증가들은 성경의 권위를 내세운다. 이런 영지주의자들과의 갈등과 대립의 와중에서 교회는 정경을 결집하였으며 사도시대를 표준을오 삼아 정경(canon, 잣대)을 확립한다. 성경 외에 전통이 또 하나의 보조적인 진리의 규범으로 등장한다(사도전승의 형성 배경).

 

몬타니즘(Montanism)의 반동

기독교를 규칙과 같은 것에 고정화시킨 데 대한 영의 반동이 몬타니즘 운동이다. 교리의 경직화에 대한 반동이다. 두 가지 주요 사상은 첫째 성령에 대한 사상이며 둘째 종말에 대한 사상이다. 몬타니즘은 제도교회에 억압당한 영의 자유로운 역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제도교회가 사상(捨象)시켜버린 종말론적 기대를 다시 재점화시키려고 하였다. 몬타니스트들은 아버지인 신과 아들인 신의 뒤를 이어줄 도움의 주인 성령의 시대가 나타났다고 믿었다(퀘이커 교도, 조지 폭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흐름 발견). 그런 성령에 의하여 받았다고 하는 메시지를 보면 성서메시지에 비하여 아주 빈약하다. 이런 경우 2세대에 이르면 황홀경은 사라지고 합리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 요소만 남겨된다. 몬타니스트들은 예언자직의 계승을 주장한다(참조 신 18:15-18). 교회는 몬타니즘을 거부하지만 네 가지 손실을 입었다.

가) 교회의 정경은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을 차단(좋은 점이면서도 폐쇄성을 옹호하기 쉬운 점이 있다).

나) 예언자의 입장에 대항하여 전통에 입각한 성직위계질서가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감독과 주교들은 이교도를 박멸하는 전사로 자리매김되었다. 앞으로 교회는 예언자적인 영의 운동을 정통 교회로 흡수하지 않고 종파운동으로 배제할 태세를 갖춘 셈이다(왈도파, 카타리나 등).

다) 정통교회에서 종말론이 쇠퇴되었다.

라) 몬타니스트들의 엄격한 윤리가 사라지고 교회윤리가 느슨해지기 시작하였다.

 

반영지주의 교부(anti-gnostic fathers)들의 새로운 교설

1. 신의 관념

영지주의자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대립시켰고 창조주 신의 열등성을 강조하였으나 이레니우스는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임을 강조하였다(요한복음 5장, 17장 등; 이레니우스가 요한복음 중심의 교설을 펼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율법과 복음, 창조와 구원은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앎은 하나님에게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처럼 밖에서 관찰할 수 없다(J. I. Packer,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서론을 참조할 것). 신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어떤 창조자나 데미우르고스 같은 조물주를 곁에 두지 않는다. 신 자신이 창조주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주 하나님은 하나다. 이 하나인 신은 삼위의 신이다. 터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개념을 처음으로 전개한다. 삼위일체는 생명의 창조적 바탕에 관한 서술이다. 신성은 통합 속에서 영원히 세워 올려진다(경륜=세워 올려진다). 이레니우스는 삼위론에 대한 다신교적 해석을 배격하였다. 하나의 실체로서 세 가지 위격은 터툴리아누스의 개념이다(una substantia tres personae). 아담은 타락 이후 불사성(신과의 유사성, similitudo)은 상실하였으나,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의 형상(Imago)은 유지한다(이레니우스)(창 1:26).

 

2. 구원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역사다. 1)창조계약(자연법) 2) 율법의 새로운 확립(모세의 율법) 3)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율법 4) 도움의 주, 종말에 새로운 법을 주실 성령과의 계약(터툴리아누스가 몬타니스트가 되었을 때 이 넷째 계약을 덧붙인다).

이레니우스는 구원을 anakephalaiosis또는 recapitulation라고 규정한다. 에베소서 1:10: “만물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고 하나가 된다.” 아담의 죄악으로 상실한 similitudo, 신적 불사성을 회복한다(이레니우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가 창조된다. 이러한 성취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아담의 옛 본성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마땅히 성숙해서 도달해야 할 바로 그 이상적 인간 원형이다(틸리히는 이것을 초월적 휴머니즘이라고 규정).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담이 가지도록 예정된 불사성에 도달한다.

 

3. 삼위일체론

터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을 위한 기본 공식을 고안한다(78쪽 인용부분 읽을 것). 삼위 trinitas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다. 그는 일성을 강조하고 삼신론적인 경향을 부정한다. 삼일성은 본질상의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상의 것이며 실체상의 것이 아니라 형식상의 것이다. 그는 경륜 economy라는 말을 사용한다. 신의 경륜이란 신의 가정[집으로서의 세계를 다스림], 즉 신의 모든 계시 속에 나타난 계획, 역사의 각 시대에서 단계적으로 또한 살아있는 방식으로 삼위일체가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적인 것은 세 가지 얼굴, 세 가지 태도, 세 가지 표현형식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낸다. 이것이 페르소나(마스크)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적 유일신론의 고전적 정식이다: 창조의 순간에 둘째 위격이 생겨나고 이어서 셋째 인격이 생겨난다(요한복음 14-17장을 참조; 행전 2:31-28을 참조).

터툴리아누스의 기독론을 살펴보자: “우리는 신이면서 인간 예수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에서 혼합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는 이중의 본질을 본다.” 이레니우스의 기독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아들의 불가시성이 아버지이며 아버지의 가시성이 아들이다”(요 14장). 반영지주의 교부들은 초기 변증가들보다 더 기독교의 유일신론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요한으로부터 이그나티우스 그리고 이레니우스로 이르는 사상의 계보에 있어서 로고스는 낮은 차원의 위격, 곧 신에 있어서 존재의 힘의 낮은 차원의 형식이 아니다. 로고스는 신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한에 있어 신 자신이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구원의 힘이란 교회 안에 머무르면서 교회의 구성원을 새롭게 하고 이들 속에 있는 낡은 것을 새롭게 하는 신적 영이다. 이레니우스는 초기 카톨리시즘의 최고 수준을 대표한다. 그는 구원 사건을 불사성을 가져오는 신비적인 새 삶으로 규정한다.

이와는 달리 터눌리아누스는 기독교적 삶의 내용이란 율법에 의한 구원을 가져오는 교육을 의미하며 율법에 대한 순종에 대한 보답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법을 사랑하는 로마의 법률가적 정신과 몬타니스트가 된 경건한 금욕주의자가 결합되어 있다. 이레니우스가 신비적 참여를 강조한데 비하여 터툴리아누스는 울법에의 복종을 강조한다. 옛 가톨릭 교회는 신비주의적 요소와 율법주의적 요소를 겸비하였다.

 

4. 세례와 성례전

세례의 세 가지 요소들: 안수와 도유(塗油), 피세례자의 서약(악마의 나라를 버릴 것, 악마의 수하인 악한 천사들을 버릴 것), 죄의 용서와 거듭남의 통일. 세례를 받은 사람은 텔레이오이(teleioi), 완전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인간의 삶의 내적인 목적인 동시에 우주의 내적인 목적인 그 목적에 도달하였다(telos). 세례에 대한 터툴리아누스의 유물론적 이해가 가톨릭 교회의 화체설(化體說, substantiation theory)에 영향을 미쳤다. 세례의 물은 물질적으로 죄를 소멸한다. 성령도 물질적으로 부어진다. 유아세례를 정당화하려면 물 자체에 죄사함의 힘을 물에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레니우스는 성만찬을 불사성의 물질적 매체라고 이해하였다. 300년경에는 초기 가톨릭 교회 기초 완성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

1. 신플라톤주의-플루티노스

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3. 오리게네스

가. 성경의 우의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

나. 신과 로고스 교설

다. 타락의 교설

라. 기독론

마. 종말론

 

로고스-기독론에 대한 반동

1. 뒤나미스적 모나르키아주의(군주신론)

2. 양태론적 군주신론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논쟁

1. 오리게네스 이후의 삼위일체론 전개

2. 아리우스 주의

3. 니케아 종교회의

4. 아타나시우스와 마르켈루스

5. 니케아 이후의 발전과 갑바도기아의 신학자들

 

기독론 논쟁

1. 아폴리나리우스

2. 안디옥 학파

3. 네스토리우스와 퀴리로스

4. 칼케돈 공의회로부터 콘스탄틴노폴리스의 6회 공의회까지

 

아레오바고의 위-디오니시우스

기독교 신비주의의 고전적 인물인(cf. 행전 17:34) 그의 저작이 840년경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에 의하여 라틴어로 번역된다. 그는 그리스적 신학의 비잔틴 형태의 대표자이며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자의 주요 매개자다.

 

 

 

 

 

 

 

사도적 교부(Apostolic Fathers)의 신학(곤잘레스, 79-92쪽)

사도들을 직접 알고 지냈다고 추정되는 교부들(17세기 명명)의 저작들로는 현재 8 작품들이 남아있다: Clement of Rome의 Didache, Ignatius of Antioch, Polycarp of Smyma, Papias of Hierapolis, the Epistle of Barnabas, the Shepherd of Hermas, the Epistle to Diognetus(교회 분열, 박해, 유대교와 이교도 사에서 겪는 갈등 등 취급)

 

클레멘트: 1세기 말 로마의 감독(cf. 빌 4:3)

(가)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신(AD 96).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악덕 지적하고 책망하며 교회의 통일을 공고히 할 것을 권면. 구약성경과 스토아 철학에서 연유한 우주의 조화이론에 입각하여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도록 권면(9-19장은 히 11장을 상기). 삼위일체적 신관 견지한 교부. 그리스도 선재 옹호. 시편을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하나님의 고난으로 이해한다. 고리도인들에게 보내는 제 2서신도 저술(가장 오래된 저작)(설교집, AD 150: 살아있을 때 회개할 것을 권면. 헤르마스의 목자의 주제와 유사. 아마도 2세기 주제는 회개였을 것임. 헤르마스의 참회이론과 유사). 여기서 육체의 중요성(육체 부활), 육체에 대한 영적 중요성을 강조한다(육체는 영의 복사판). 교회의 선재설 주장(해, 달 이전에 있었던 영적인 최초의 교회 언급)

 

(나) 디다케(12사도의 가르침)(1875년 이스탄불에서 발견)(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 시리아나 팔레스틴의 작은 공동체에서 저작되었을 것이다. 16장으로 구성된다. 1-6장 2절까지는 “두 길” 문서라고 부른다(바나바 서신에도 포함. 상호 참조 및 수정 작업의 개연성 크다). 7-10장은 예배 가르침이다(물 부족시 침례 외에 세례 언급). 9, 10장 배부를 때까지 먹는 성스런 식사(유카리스트) 언급. 14장은 희생 만찬 언급(주일). 11-15장은 훈련지침이다. 카리스마적 권위(디다케에서는 선지자가 최고 대우) 대신에 계층적 교권적 위계질서가 자리잡는 과도기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도덕주의적 문서다.

 

Ignatius of Antioch: 2세기 초엽의 시리아 소아시아 교회의 삶을 1-2일간 비쳐주는 서신들. 안디옥의 감독이자 순교자. 로마제국으로 끌려가면서(사형장) 쓴 글들이다. 마그네시아, 트랄라스, 에베소(감독 오네시모가 영접), 로마(서머나에서 저작). 남겨 두고가는 교회와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들이다. 구명 운동하는 로마교인들에게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고난을 닮아가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트로아에서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 그리고 필라델피아 교회에 편지한다. 전체적으로 거짓 가르침과 거짓 지도자에 의하여 교회 분열될 것을 가장 염려하였다(편지들 모두). 교회 연합의 핵심점으로써 감독의 권위 강화하려는 목적을 드러낸다. 두 종류의 거짓 가르침 배격한다: 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체적 삶을 부인하면서 성찬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무리(가현설자); 나) 그리스도를 유대교회 틀 안에서 보고 단지 선생으로 격하시키는 것을 경계한다(엣세네파 유대주의자). 그리스도 인간성에 대한 강조는 인상적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함에 있어서 바울보다는 요한에 근접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침묵) 계시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알리려 오셨다. 죄라는 단어 단 한번 사용한다. 최초로 카톨릭 교회라는 용어 사용한다. 군주적 감독제도의 존속을 맨 처음 증언한 인물이다(교회는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사도로 이어지는 계층구조다). “감독에게 속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Polycarp of Smyma: 빌립보인들에게 보내는 성 폴리캅의 편지(이그나티우스의 순교와 유관한 편지). 이그타니우스의 서신과 요한복음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좀 더 실천적인 면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구원교리의 중심에 놓되 그리스도의 인간적 실재 강조한다. 폴리캅의 순교(사도교부들의 문서 중 가장 오래된 문서)는 폴리캅 순교 후 서머나 교회가 다른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

 

Papias of Hierapolis: 사도 요한의 제자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이 된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전 5권)이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온다. 그의 천년설은 유세비우스의 비판을 이레니우스의 지지를 초래한다. 첫 두 권의 복음서 저작자를 보증하고 초대 교회의 두 명의 유명한 요한(사도 요한 및 장로 요한)의 실재성을 입증한다고 본다.

 

the Epistle of Barnabas(주후 135년 경 알렉산드리아): 1-17장은 교리편(구약에 대한 우의적 해석-신구약 성경의 일치성과 연속성 확보 위해. 유대교와의 논쟁 맥락에서 이뤄진 해석), 18-21장은 실천편이다. 우의적 해석으로 유명한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이 서신을 높이 평가한다. 실천편은 디다케처럼 두 길에 대한 교훈 반복한다.

 

the Shepherd of Hermas: 가장 방대한 사도적 교부의 저작이다. 헤르마스는 1세기 말과 2세기 초에 자신이 로마 교회의 선지자로 살고 있던 때에 수집한 책이다. 주된 관심은 어떤 형제들의 신앙과 정열이 식어가는 데 있었다. 세례 후 죄 짓는 문제, 박해 때문에 배교자자 되는 문제, 다시 진정으로 회개하는 문제 등을 다룬다. 이들은 다시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들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5개의 환상(회심 촉구 권면과 박해시 신앙 견지를 돕는 권면. 자신이 노예였을 때 여주인 로다를 탐욕스럽게 생각한 것 회개. 3rd 환상 “탑의 환상”은 죄짓고 회개한 사람들에 관한 것), 12개의 명령(기독교인의 의무를 다룬다. 수세 후 두 번 죄짓고는 용서받을 수 없다)과 10개의 비유(실천적 면-다시 아홉 째 비유에서 탑의 비유 등장)를 수집한다. 헤르마스에게 기독교는 꼭 지켜야 할 교훈이었다. 그는 엄격주의자, 교회개혁자, 그리고 종말론적인 사상가였다(고해 성사 제도 배아상태 언급, 하나님의 계명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의 영광 언급). 교회는 선재하고 세상은 교회를 위하여 창조된다고 주장한다.

 

the Epistle to Diognetus:

 

같은 시기에 쓰여진 기타 문서들

이사야의 승천(점진적 승천과정을 거쳐 7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난다), 12족장 증언(1세기 말경 안디옥 중심의 엣세네파 계열의 기독교인이 편집), 제 2에녹서(앞의 두 책과 비슷)(이 세 책은 사도적 저작이라고 추정되는 구약 위경들) 등이 있다. 행간 삽입)(기독교인의 삽입)이 이뤄진 유대교적 저작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벨레의 신탁(Sibylline Oracles)이다(2세기 중엽 이집트).

 

일반적 고찰

소아시아-시리아-안디옥 지역의 사도교부들의 사상: 기독교를 도덕적 가르침으로 보지 않고 구세주와의 연합으로 간주한다. 성만찬의 강조(이그나티우스)와 교회간의 연합에 대한 강조가 이뤄진다. 이 지역에 영향을 끼친 외부 세력으로는 신비주의(연합 강조), 영지주의(계시 이론), 엣세네파 유대교(기독론과 우주론-이사야 승천) 등이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지역 사도 교부들의 사상: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기독교가 자란다(클레멘트가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첫 째 편지나 헤르마스의 목자[복잡한 참회제도]).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하나님의 보상이다. 예수는 새로운 율법의 선생이시다. 스토아 학파와 로마인의 실제적 기질에서 연유된 생각이다. 바나바 서신은 알렉산드리아 지역 신학의 첫 문서다. 중기 및 신 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구약에 대한 우의적 해석 주도한다. 윤리적 관심과 사유적 접근 방법의 조화를 시도하며 구약성경의 역사적 측면에 덜 관심을 가진다. 예수의 육신적 삶에 대한 강조가 적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가장 특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시벨레의 신탁이다

희랍 변증신학자(곤잘레스 1, 123-192쪽)

2세기 중반 기독교 변증가들은 기독교에 대한 로마 대중 및 당국자(지성인)들의 오해를 풀고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저술 작업 몰입한다. 기독교인에 대한 고소는 두 가지다:(가) 로마 대중이 퍼뜨리는 기독교에 대한 악의적 소문(근친상간, 유아 살해, 십자가에 달린 당나귀 숭배, 피에 도취=식인종주의); (나) 기독교 신앙과 의식에 대한 교묘한 모략 분쇄(미누키우스 펠릭스가 쓴 옥타비우스 오리겐의 Conta Celsum). 반기독교적인 로마지성인들은 기독교 교사들의 무지와 무능을 폭로하려고 광분하였다. 기독교의 신은 하챦은 인간의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볼품없는 신이라고 공격한다(부활사상을 조롱-윤회사상과 영혼불멸사상의 조야한 아류).

 

1) Aristides(주후 138년 이전): 하나님은 이 세계의 최초의 동자(mover)이며 인간을 위해 만물 창조. 인간을 네 범주(야만인, 희랍인, 유태인, 그리스도인)로 구분. 기독교인만이 이성에 부합하는 종교인이다. 세상은 예수를 통하여 닥칠 심판으로 망해야 하지만 기독교인들 때문에 지탱된다. 어린이 무죄.

2)순교자 저스틴(이스라엘 세겜 출신): 개종과정은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자세히 밝힌다. 제 1변증은 기독교인의 참 정체와 본질을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제 2변증은 기독교와 이교 철학 관계 취급한다.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는 구약성경을 놓고 트리포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저스틴이 기독교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두 가지 문제는 첫째, 기독교와 고전적 문화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신앙과 구약성경과의 관계다(구약사건들은 신약사건들을 지향하고[유형들, 상징들: 유형론적 해석의 맹아. 유월절 어린 양의 피],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된다]). 첫 쟁점에 대하여는 로고스 이론 동원한다(필로의 입장과 유사-헬라화된 개념인 로고스). 인간의 모든 지식은 로고스의 산물이다. 요한복음 이용하여 로고스는 바로 선재하는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모든 지식은 그리스도의 산물이다. “합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하더라도 그들은 다 그리스도인이다”(Apologia I, 46. 3-4[ANF, 1:178]). 로고스의 씨앗은 씨앗 로고스의 직접적인 활동의 결과다(대조. 희랍철학의 구분: seminal Logos[=우주적 이성]와 seeds of the Logos[=도덕적 종교적 사실들] 구별). 철학은 부분적 진리만 보유하고 로고스가 철학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기준점이다. 저스틴은 중기 플라톤 학자로서 스토아 철학에다 플라톤적 철학을 가미하면서도 성육신한 말씀에만 온전히 진리가 나타난다. 저스틴은 기독교 사상과 헬라철학 사상의 건널 수 없는 차이를 인정한다(몸의 부활과 성육신, 그리스도의 재림 및 천년 왕국사상)

3)타티안(Tatian): 시리아 출신. 저스틴을 통하여 기독교 입문 및 개종, 후에 이단으로 몰림. 주후 165년경 자신의 교육기관 세운다(저스틴 순교 이후). 희랍인에게 보내는 연설에서 야만족의 종교인 기독교가 희랍 종교와 문화보다 우수함을 주장. 하나님과 그의 말씀 로고스가 그의 신학 중심이다. 자유의지의 그릇된 사용으로 죄를 짓는다. 영혼불멸대신에 부활사상 옹호한다.

4)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타티안 동시대인. 기독교인을 위한 청원(A Plea for the Christians)과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서가 남아있다. 기독교인을 위한 청원에서 기독교에 대한 악의적 3대 반박에 대하여 재반박한다(무신론[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어찌 무신론자라고 부르는가?], 티에스티안 잔치[아들을 식사 때 바쳤다는 희랍신화에서 한 말]; 근친상간[순결한 삶이 기독교인의 특징])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서은 죽은 자의 부활이 영혼불멸과 배치않는다고 주장. 영혼불멸은 육체의 부활을 요구한다.

5)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아우톨리쿠스(Autolycus)에게 보내는 세 권의 책(180년 경). 친구 아우톨리쿠스에게 기독교 진리의 참됨을 옹호하는 글. 삼위일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 삼위의 제 2위를 로고스라고 주장(저스틴, 타티안, 아테나고라스 등과 함께).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항상 계시는 말씀(즉 하나님 심성안에 늘 계시는 내재적 말씀=하나님 아버지)과 표출된 말씀(성자)의 관계다(이 구별은 필로의 구별).

 

6)헤르미아스: 이교도 철학자들에게 쓴 조소(the Mockery of the pagan philosophers)는 고대 현자들의 사상 속에 있는 모순 발견. 유머감각 탁월.

 

7)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저자 연대 미상. 기독교 신앙의 고상한 변론. 이교도 종교와 유대교의 어리석음 공격. 기독교 신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로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추종자들의 삶을 통해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기독교인은 나그네답게 산다; 시민처럼 참여하면서 살고 외국인처럼 초탈적 거리 유지한다; 공동식사하나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 법률의 금지사항을 준수하나 율법의 요구를 능가한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는다; 그들은 선행을 하면서도 악행자라고 처벌을 받는다) .

 

8)사르디스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이스라엘 역사 강조. 출애굽과 유월절 강조. 구약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월절이시고...아벨 안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이삭 안에서 묶이셨고... 야곱 안에서 이국 땅에 거하셨고 요셉 안에서 팔리셨으며, 모세 안에서 쫓겨났으며,,어린 양으로 희생되셨으며..다윗 안에서 쫓김을 당하셔고 선지자 안에서 창피를 당하셨다...). 덜 철학적이다. 그리스도의 선재 강조나머지 성부와 성자의 차별을 부각시키지 못한다.

 

일반적 고찰-다양한 입장

(1)이교도 철학 안에서 진리의 희미한 불빛을 볼 수 있다는 입장.

(2) 헬레니즘과 기독교는 마치 치열한 전쟁 당사자와 같다.

(3) 기독교를 이방인이 알아듣게 제시하려고 분투하는 입장-희랍교부들은 변증신학자로서 최초의 조직신학자. 로고스 이론 정립을 통하여 기독교(그리스도)와 이방철학의 접촉점을 형성하려고 노력한 사람들.

논쟁점 유발: 말씀(성자)은 또 다른 하나님이냐?(저스틴) 아니면 아버지와 동일?(멜리토) 중간에 데오필루스 내재적 말씀과 표출된 말씀 구분

변증신학자들은 기독교를 도덕 혹은 철학으로 소개한다.

 

기독교교리사(3/13, 16일, 3rd week)-김회권 교수

 

알렉산드리아 학파: 클레멘트와 오리겐

(틸리히 83-118쪽; cf. 곤잘레스 1권 229-273쪽)

 

2 세기 말과 3 세기 초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와 사상의 제련작업이 일어나는 용광로였다. 헬라화된 유대교와 영지주의 외에 특히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 영향력이 다대하였다. 신플라톤주의 사상의 핵심은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초월적 일자(ineffable One)으로부터 다자(多者)가 유출되어 나온 결과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사상은 존재의 위계질서를 강조하다(일자[一者]-누스(nous=지성)-영(spirit)-물질의 순서로 유출된다. 여기서 구원은 일자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알렉산드리학파의 두 태두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바로 이 신플라톤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1. 신플라톤주의-플로티누스

고대가 끝날 무렵 종교는 신비주의적 철학과 동일시되었다. 기독교는 이런 의미의 종교화된 철학과 경쟁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적 철학과 스토아적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상의 융합이었다. 신플라톤주의 형성 배경에는 두 가지 현상이 전제되어 있다: 가) 모든 특수/개별 종교의 소멸; 나) 자율적 이성의 붕괴-이성에 대한 불신 가중. 신비주의로 경사되는 분위가 형성(기독교인이었다가 신플라톤주의자로 배교한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신플라톤주의자와 싸운 두 기독교학자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인데 이 두 사람은 기독교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이용한다(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신플라톤주의자의 대표인 플로티누스의 사상은 신을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는 일자(一者)>라고 보는 것이다. 모든 특수한 것의 밑바닥에 있는 심연이며(초월적 무) 그것은 부동이며 불변이며 영원하다. 플로티누스의 전 사상체계는 세계와 세계의 모든 형태가 존재의 궁극적 근거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생겨나는가를 기술한다: 초월적 일자--->누스(nous)(정신/영: 둘째 원리)(영원자의 자기직관)(이데아의 원천)(위대한 화가는 이데아를 먼저 보고 개별존재를 그린다)--->혼(psyche=삶의 원리. 누스와 물질계의 중간존재. 물질을 지배하는 세계창조의 힘. 혼의 특징은 양의성. 한편으로 정신[누스]을 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을 향한다. 인간적 삶의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의 근거)--->물질계.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섭리의 원리에 의해서 이끌려가는 하나의 조화의 세계다. 섭리와 조화의 결합이다. 플로티누스는 별들(유성)들이 갖는 악마적 힘들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섭리라는 형태로 세계를 질서지우는 원리가 바로 로고스다. 혼이 정신, 곧 누스의 영역을 떠나서 물질적 영역으로 향하는 것이 악의 근원이다. 악은 적극적 힘이 아니고 누스(nous)의 부정이다. 악은 비존재다. 악이란 신체적인 실존에 이러한 비존재(악)가 현존한다는 것이다. “악이란 선의 힘의 결여일 뿐이다.” 악의 존재론적 실체를 부정한다. 죄를 치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죄는 하나님에 대한 고의적 반역이다).

혼이 자신의 존재근거가 되고 원천이 되는 일자(一者)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몇 단계의 길이 있다: 덕의 훈련, 금욕에 의한 순화. 그러나 신과의 합일은 단지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모든 다른 그리스 철학들처럼 인간 존재의 내적 목적을 물었다. 플라톤의 대답: 될 수 있는 대로 신을 닮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혼이 일자에의 참여는 모든 밀의종교(esoteric religion)의 목표다.

 

2. 클레멘스

기독교의 진리와 희랍 철학 사이에 상관성이 있다고 주장. 저스틴과 아테나고라스의 입장을 이어받고 타티안과 터툴리안의 입장을 배격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통하여 희랍인들에게는 철학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를 계시하신다. 그는 로고스론을 변증가들보다 더욱 더 발전시킨다. 로고스는 인간정신 속에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유대인=율법; 그리스인=철학). 그에게 “철학한다”는 것은 완전한 삶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즉 로고스에 따라 사는 것, 뜻있는 이성적인 삶, 곧 의미에 찬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믿음으로 이런 삶을 시작한다. 신앙은 새로운 존재에의 참여다. 로고스를 따라 사는 것은 신앙과 사랑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복종과 동의를 통하여 자신을 넘어 그노시스, 인식을 지향해 간다.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영지를 가진 자들로서 소위 다른 영지주의자들을 거부한다. 신에 대한 인식을 학문적 인식이 아니라 신에의 참여다. 기독교는 과거의 모든 가치를 통합하고 있던 신플라톤주의자의 여러 가지 사상을 흡수하면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카테케시스 학교.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사상을 통합).

 

3. 오리게네스(오리겐, Origen)

가. 성서의 알레고리적(우의적) 해석

성서는 세 가지 형태로 해석된다: 신체적=문자적 해석; 혼적=도덕적 해석; 영적 해석=신비적, 정신적 해석. 완전한 사람만이 도달한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발견하기 위하여 우의적 해석 시도한다.

 

나. 신과 로고스에 관한 교설

신은 존재 그 자체다. 불가변적이며 수난성을 초월한다. 신은 자신 안에 로고스 내적 말을 가지고 있다. 이 신적 로고스는 영원으로부터 탈출하여 신적 심연에서 영원히 발출한다(광채가 빛의 근원에서 방사되듯이). 그러나 로고스는 또한 아버지와 같은 신적 실체를 가진다. 그러나 그의 영원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보다 낮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자존의 신이다. 그는 로고스의 신성도 옹호하고 위격적인 하위성도(성부에 비하여) 주장한다. 그는 유출설에 근거하여 신적인 것으로부터의 유출에는 최고의 단계로부터 최저단계에 이르는 계층이 있다고 말한다.

 

다. 타락의 교설

타락은 초월적 사건이며 천상적 사건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우리의 실존에 선행(앞서 일어난)한 사건이다. 죄는 초월적 타락에 근거한다. 그것은 신과의 합일에서 신으로부터 분리에로 옮아가는 영원한 이행이라고 본다. 초월적 타락이 역사 안에서 역사내재적인 타락으로 현실화된다. 죄 자체는 정신적이지만 그것은 육체적 사회적 실존을 통하여 강화된다. 그에게도 악은 선의 결핍이다. 자유에 의하여 타락은 일어났지만 이 자유 때문에 타락으로부터 돌이킬 수도 있고 또 타락할 수도 있다(그리이스적 순환론).

 

라. 기독론

신의 로고스와 인간의 육체를 매개한 것은 혼이다. 로고스는 자신의 혼을 사탄에게 대상물(속량물)로 주어 인간들을 구원한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혼의 신비적 사랑의 기술이다. 인간 혼은 로고스의 신부이다.

 

마. 종말론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간의 혼에 들어오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강림으로 해석한다. 구름타고 오는 재림을 부정한다. 종말의 완성을 정신적 영적 체험에서 찾는다. 종말론의 정신화가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는 최대의 신학자이면서 이단자로 몰린다(그리스적 순환론 견지). 오리게네스에 대한 반론들: 가) 그리이스적 이원론에 반대하고 육체적 실존을 강조하는 유다교적 실재론; 나) 지상생활에서 부유하게 산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오리게네스의 정신화된 종말론을 가지고는 그들을 위협할 수 없었다.

 

기독교교리사 3주차 강의안 보충자료-김회권 교수

 

라틴 교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곤잘레스 1권 193쪽-273쪽)

 

2세기 전반에 등장한 이단들에 대한 변증가들의 저서들(대부분 상실):

*저스틴: <모든 이단에 반대하여>, <마르시온에 반대하여>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마르시온에 반대하여>, <헤르모게네스에 반대하여>(유세비우스의 <교회사>는 그 외에 다른 여러 저서 언급하나 다 상실)

*리용의 감독 이레니우스(135년 소아시아 서머나 탄생. 늙은 폴리캅 시절. 220년 순교): 현존 최고의 반이단문서. 이단으로부터 교회 보호 및 기독교신앙 강화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영적 지도자.

(가) <영지주의에 대한 고발과 논박>(통상 <이단논박>). 희랍어 원본 상실, 라틴어본 보존(5권짜리). 마지막 두 권은 아르메니아판 보존.

-1권: 영지주의자 이론 해석. 영지주의자 지도자 발렌티누스의 제자 프톨레마이오싀 제자들에 대하여 자세히 해설. 그들의 가르침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

-2권: 영지주의를 상식으로 논박

-3-5권: 성경적 입장에서 논박. 3권은 구약해석시 저스틴의 예언과 유형의 관점에서 해석. 그는 구약성경을 배격하는 입장이나 우의적으로 해석하는 입장 둘다를 배척한다.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의 연속성 주장한다. 이것이 유형론적 해석의 관심사였다.

(나)<사도적 가르침의 논증>(통상 Epideixis): 요리문답적 책. 변증적인 작품.이미 신앙을 가진 자들의 신앙 강화용 저작물. 기독교 신앙을 조직적으로 역사적으로 옹호. 그는 창조에 큰 관심을 보인다. 영지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을 옹호. 영지주의자는 지고의 신적 존재와 이 세상을 유출한 오류 사이에 기다란 에온들을 연속적으로 열거한다. 마르시온은 특히 창조주와 신약의 예수의 하나님은 다르다고 주장. 이레니우스는 동일성 주장. 마귀는 창조질서를 잠시 교란할 수 있으나 이 세상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다스린다. 하나님은 두 손, 아들과 성령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다. 그는 말씀과 하나님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창 1:26)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성장과 성숙의 최고 목표다(엡 4:13). 아담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에까지 자라가야 할 존재였다. 아담은 자유로운 존재였는데 (자신의 결단으로) 계속 하나님의 아들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아담의 자유는 하나님의 전능성의 결과다. 그렇지만 창조는 사단과 인간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천사는 성장해야 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장성한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따라서 생물학적 출생과정을 거치지 않고 교육의 과정이 없다) 성장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사단은 질투심에 빠져 인간을 유혹하기에 이르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 주력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마귀와 하나님의 갈등과 적대는 허구적인 것이 아니며 마귀는 참으로 말 그대로 대적자이다(사단은 대적자). 마귀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하나님은 심지어 마귀가 이용하는 도구 그 자체까지도 지배하는 주가 되신다. 마귀는 최후 완성단계에서 멸망된다. 그날이 오기까지 투쟁은 계속되며(창 3:15) 승리가 약속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전투는 실감난다.

이레니우스는 인간의 타락을 인간 성장의 장애로 보는 후기 서구신학에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해를 보인다. 타락은 인간 성장의 저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간 사랑은 취소되거나 철회되지 않는다. 계약들을 연속적으로 맺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다: (1) 아담의 계약으로 노아 홍수까지 존속: (2) 노아계약(모세까지); (3)모세 계약(그리스도 강림까지); (4) 그리스도 계약(마지막까지 지속).

이레니우스는 3, 4 계약에 대한 입장 피력한다. 율법은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사랑의 일부분으로 주어진다. 율법 순종이 인간의 최종목표가 아니다. 율법은 예속적인 기질을 자아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율법은 폐기되지 않는다. 구약 율법 중 도덕법과 십계명은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 백성들의 복종을 요구한다. 제의적인 율법은 그리스도의 강림과 더불어 폐기된다(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의 차이). 제의적인 율법의 핵심은 그리스도 구주의 오심을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레니우스는 신구약의 통일성(신구약 하나님의 일치성과 하나됨), 계속성과 구약의 완성됨(신약 안에서)을 주장하고 옹호한다. 이레니우스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그는 창조와 구속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근거다. 이단들은 이점을 부인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과 원형인 그리스도는 인간들 가운데 거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이 사역을 총괄갱신이라고 부른다(recapitulation)(직역: 다시 첫 머리로 되돌아감: 다시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세계 및 인간창조를 새롭게 함으로 총괄갱신을 지도)(롬 5:12).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로운 인간상의 총화로써 표현하는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처음부터 작용하였지만 그리스도가 성육신함으로써 만물을 총괄적으로 갱신하는 데 가장 최종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총괄갱신은 새로운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지난 사건들과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성육신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나 창조에 거역하지 않고 차라리 창조의 계속이며 완성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아담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스도의 총괄갱신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양상은 마귀에 대한 그의 승리다. 이레니우스는 구원사를 전체적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의 투쟁으로 이해하였는 데 결국은 하나님의 승리로 종료된다. 그리스도의 최종승리는 부활이 아니고 성육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에서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결합되어 마귀를 전복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악에 대한 승리의 시작이다.

 

 

기독교교리사(3월 20, 23일-4th week, 김회권 교수)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론>에서 교회의 위치(곤잘레스 1권 205쪽)

아담이 인간의 우두머리이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듯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는 사탄을 정복한다. 이 가능성이 교회(그리스도의 몸)에 주어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총괄갱신사역을 진행시키시고 세례와 성찬은 인간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연합시킨다. 그는 세례보다는 성만찬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성만찬론을 통하여 이단(물질경멸)을 논박하려는 데 주력하였다. 전체적으로 이레니우스의 신학은 성경과 교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신학적 갱신을 도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총괄갱신 교리에 다른 폭넓은 우주적 견해로 인하여 이레니우스야말로 역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가한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7. 터툴리안(아프리카의 3대 거두 교부: 터툴리안, 키프리안, 어거스틴)

40세 정도 개종하고 150년 경 고향 카르타고로 귀향한다. 주후 207년 경 몬타누스 운동에 가담한다. 계층적 교직제도인 제도교회가 회개한 죄인들을 다루는 방식의 불철저성에 실망하였다. 항상 도덕적 엄정성을 강조하는 신령적 분위기의 몬타니즘에 매력을 느꼈다.

*<변명>(197년경)-개종한 이후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글이다.

*<이방인에게>, <영혼의 증언>, <순교자들에게>, <이단을 논박하는 취득시효,prescription>), <프락세아스의 논박>, 다섯 권으로 된 <마르시온 논박>

* 그 외에도 헤르모게네스, 발렌티누스 영지주의자들, 가현설을 공박하는 글을 썼다.

*<참회에 관하여>, <인내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아내에게>

 

몬타니즘 가담 이후의 글들

* <일부일처에 관하여>, <금식에 관해서>, <겸손에 관해서>, <정절에 대한 권고> 등은 터툴리안의 도덕적 엄격성을 반영. 당시의 도덕적 삶과 예배실천에 대한 좋은 자료다.

터툴리안 신학의 근거는 기독교전통, 법률 교육과 철학적 배경이다. 그에게 복음은 새로운 율법이다. 기독교를 옹호하는 그의 논증은 법률적 논증방식이다. 그는 또한 어떤 철학도 신앙의 고유성을 침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세네카 등의 스토아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사상가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책은 <취득시효>다. 취득시효란 법정용어인데 회부된 재판의 내용을 문제삼지 않고 재판의 진행자체를 문제시할 때 쓰는 용어다. 취득시효란 상대방이 재판절차를 벗어나서 말함으로써 더 이상 재판할 필요가 없다는 반대의견을 지칭한다. 이 작품의 앞 일곱장은 이단을 일반적 입장에서 다룬다. 이단은 항상 철학자들의 오래된 오류를 신앙의 차원에다 인식시키려 하는 데서 발생한다. 철학과 계시를 혼돈시키면 불신앙이 발생한다(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나? 아카데미아와 교회와 무슨 일치가 있는가? 이단들과 기독교인 사이에 무슨 일치가 있는가?)(<그리스도의 육체에 관하여>에서 인용). 그는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받았다. ...이 사실은 모순되기 때문에 더욱 더 믿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묻히시고 다시 일어나셨다. 이 사실은 모순되기에 더욱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반지성파라는 낙인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반지성파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에 가장 큰 신뢰를 두는 편이다(프락세아스의 주장[아버지 하나님은 전능하기에 아들도 될 수 있다]을 반박할 때 그는 맹목적 지성의 위험성을 고발한다).

이 책의 남은 일곱 장은 기독교진리의 완결무결성과 자기충족성을 논의한다. 책의 핵심은 15장인데 여기서 그는 이단들과 성경을 근거로 해 진리를 논하는 것은 순서 자체가 틀렸다고 선언한다. 이단들은 성경을 근거로 가르칠 수도 없고 진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다른 저서 <장기간의 취득시효>라는 책에서 그는 성경을 장기간 소유하여 온 교회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경은 교회의 진리 옹호를 위한 자산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의 저서 <프락세아스 논박>은 군주신론자인 프락세아스를 공박하는 책이다.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교교리 형성에 이바지한 책이다. 프락세아스는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의 군주국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프락세아스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그는 삼위일체론을 제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본질(substance)과 인격(person)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3위 1체 설명을 시도한다. 여기서 본질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법률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 개인이 사용권을 갖고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을 의미한다. 인격도 마찬가지로 재산을 소유한 법률적 인격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군주국(하나님 나라)이라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법률적 인격들이다. 3개체는 하나이면서 나눌 수 없는 본질(재산)을 소유하면서도 서로 방해받지 않고 세 개체로 존재한다.

 

“셋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정도면에서, 본질에서가 아니라 형식에서, 능력에서가 아니라 양상에서 나뉜다. 그렇지만 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들과 형상들과 외양들로 생각되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하나의 본질이여 하나의 조건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는 통일되나 이차적으로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으며 혹은 세 개체가 다 신성을 갖기 때문에 통일체로서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곤잘레스에 의하면 그는 <프락세아스 논박>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희생해가면서 삼위일체내의 각 개체들의 구별을 강조하려 했음을 밝히 알 수 있다. 그는 <헤르모게네스 논박>에서 아들이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종속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교리의 또 다른 중요한 면모는 신적 경륜(divine economy) 사상이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우리가 경륜(oeconomia)이라고 부르는 섭리 아래 계신다.” 신적 경륜 사상은 하나님 나라(군주국)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그는 유기적 유일신론자다). “군주국에서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 계시기 때문이다.”

그의 기독론은 <프락세아스 논박>에서 보여지듯이 반가현설적 기독론이다. 그리스도인의 육체성(인간성)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하려는 가능성을 일축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인격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 중 중요한 것은 영의 유전과 원죄의 유전설이다. 그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으로 영을 물질적 존재로 이해한다. 인간의 영은 부모의 영의 상속이다. 따라서 죄의 상속이 이뤄진다.

 

8. 알렉산드리아 학파: 클레멘트와 오리겐(곤잘레스 1권, 229쪽-)

2-3세기 알렉산드리아: 온갖 사상과 철학의 용광로: 바실리데스의 영지주의, 암모니우스 삭카스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 필로의 헬라화된 유대교, 클레멘트와 오리겐의 밀교적(esoteric)이면서도 플라톤적인 기독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선임자인 판타이누스가 죽자 18세의 나이로 세례희망자들을 받아서 교육을 시킨 책임자(요리문답학교의 책임자)가 된다(200년경, 211-216년 경 죽음). 다섯 권의 저서.

*<이교도에게 보내는 권면>(통상 <권면자>): 말씀의 세 가지 기능(교훈, 인도, 가르침). 말씀은 이교도에게 이교를 버리고 구원의 길을 따르라고 권면. 12장에 걸쳐 이교도의 오류를 지적하고 독자들에게 기독교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 헬라화된 가치를 숭상. 진리는 고대의 철학자들과 시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

*<선행>, <잡문집>, <부자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 <테오도투스 초록>

 

클레멘트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그가 기독교의 진리와 희랍 철학의 진리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저스틴 아테나고라스의 전통에 서 있고 타티안과 터툴리안의 입장과 반대.

 

“그러므로 ‘계약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은 희랍인에게 희랍철학을 주신 자이시며 이에 따라서 전능하신 자가 희랍인들(호머, 피타고라스, 플라톤) 사이에서도 영광을 받으셨다”(곤잘레스 1권, 236쪽).

 

그는 철학은 진리로 이도하느 시녀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진리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제 1원리인 하나님은 철학으로 알 수 없고 오로지 신앙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식은 신앙에 의하여 확장된다. 그리고 신앙은 신적인 것과 상호교류를 통해서 지식에 확정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학자 필로와 <바나바의 서신> 등에 나타난 주석전통에 충실하였던 클레멘트는 우의적 성경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이 해석학의 주된 도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문자적 성경해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성경이 다양한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최소하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 그의 우의적 해석은 문자적 일차적 의미를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문이 신의 품성이나 품위를 손상시킬 때에는 이 원칙의 예외로 간주한다. 창 22장은 역사적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우의적 해석이 가능한 본문이다.

그의 두 번 째 성경해석의 원칙은 어떤 본문이든지 나머지 성경의 의미와 일치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탐색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차원높은 성경지식을 터득하고 높은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그의 사상은 귀족적이면서 비의적이다(밀교적).

클레멘트의 신관은 신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부정적이다. The Undefinable One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적 신비 속에 계신다. 그의 기독론은 가현설주의자들을 공격하면서 그 자신도 가현설에 잇닿아있음을 보여준다(곤잘레스 245쪽, 인용부분 읽을 것). 그는 분명한 성령론을 전개하지 않고 다마 조명자, 영감자라고 불렀다.

클레멘트의 인간론은 이레니우스의 인간론에 접근: 인간은 성장함으로 창조목적을 달성한다. 타락은 인간이 예정하기도 전에 성적 능력을 사용함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아담은 맨처음 인간이라기보다느 모든 개인의 상징이라고 본다. 기독교신앙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죄에 의하여 중단된 성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신격화(divinization)의 과정이다(신을 닮과 연합된다). 그의 밀의종교적 관심에 따라 그는 “신앙이란 두려움과 희망을 수반하여서 사랑을 추구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참된 지식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역설.

클레멘트의 구원론에서 교회의 역할이 크다. 개인주의적 구원관 경계.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이고 이 교회를 통해서 참된 지식을 얻도록 기독교인의 삶을 인도해주는 조명과 신화의 과정이 이뤄진다.

그의 신학이 말씀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말씀론은 이교도 철학과 성경을 연관시키는 다리역할을 한다. 말씀론은 역사를 전체적으로 통일시키는 원리이며 특히 신구약을 통일시키는 원리다. 말씀의 조명과 참여는 참된 지식을 가진 자들의 고귀한 삶의 근거가 된다.

한편 말씀론을 통해서 기독교와 헬라화된 전통사이에 얽힌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 이론 안에서 플라톤적인 요소와 성경에서 따온 요소들이 긴장관계를 이루며 병립하고 있다. 인간적 사색과 신적 계시가 놀랍게 접합되어 있는 좋은 증인이다.

 

오리겐(곤잘레스, 249쪽-)

클레멘트의 제자로 스승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집대성한다. 그의 제자는 헤라클레스다. 그는 금욕적일 정도로 말씀의 엄밀한 적용을 시도하여 고자가 되었다. 216경 팔레스틴을 방문하여 성직자들에게 성경을 강의하여 그는 파문당한다. 데메트리우스의 주도하에 심판을 당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어 그의 파문당한 상태를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이샤라에서 20년을 머물며 저술에 몰두한다. 70세 경 두로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는다.

*<헥사플라>(아퀼라판, 심마쿠스, 70인역, 70인 그리스음역본, 테오도션, 등)

*<스콜리아>: 행간 주석들, 논평들,

<설교집>

*<마태복음 주석>, <요한복음 주석>, <로마서 주석>, <아가서 주석>

*변증서 -켈수스는 <참된 말씀>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를 반대하는 글을 쓴다(기독교 교리, 성경, 기독교인의 행습 공격). 그의 글을 반박하는 글이다.

*<제일 원리>: 조직신학적 저술이다.

그의 성경해석은 삼중적 해석이다(문자적/육체적 의미, 도덕적/혼적 의미, 지적/영적 의미). 오리겐은 성경의 영적 의미를 통하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색적 비약을 하는데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특징이다. 그의 영적 주석은 우의적 해석이라기보다는 유형론적 주석이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대한 상징으로, 신약은 교회에 대하여, 교회는 종말론의 상징으로, 즉 구원사의 각 단계에 나타난 동일한 목적들의 유비로 해석하는 방법을 따랐다(곤잘레스 1권, 259쪽). 그도 종종 문자적 의미를 버리고 자신의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우의적 해석을 즐기곤 하였다.

그의 신학은 삼위일체적 신학인데 그는 한 세기 뒤에 교회를 뒤흔들어 놓은 삼위일체 논쟁의 주요 원인이 된다. 그 안에는 두 가지 흐름의 하나님 아들에 대한 이해가 들어있다(262쪽).

(1) 첫째 입장: 아들의 신성과 영원성을 중시하여 아버지와 동등(co-eternal)으로 삼는 입장이다(아타나시우스). 아들이 한 때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로[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음을 입었고 그로부터의 그의 존재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의 구분대로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시작도 없으셨고 또한 위의 마음이 홀로 그 자체적으로 명상할 수 있는 혹은 바라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우리의 순수한 인식력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시작도 없었다”(262쪽).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참여에서가 아니라 본질에 따라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유출설을 거부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2)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강조하는 경향이다(아리우스주의). 아버지는 절대적인 통일이나 아들에게는 다중이 있으므로 이 세상과 인간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초월한 하나님으로 아들 그리스도는 피조물과 관계를 가지면서 대화하시는 제한적 초월성을 띤 인격적 하나님으로부터 구별하려는데 있다. 아들의 신성을 축소시키는 경향이다. 말씀 즉 규정할 수 없는 일자이신 하나님과 세계의 다양성 안에 있는 중간자로 규정하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다(종속론=양태론적 군주신론과 유사).

그의 기독론은 속성교류설이다(269쪽). 신성과 인성이 너무나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아들이 성육신하신 목적은 마귀의 권세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성육신과 부활은 마귀에 대한 승리의 절정이다.

클레멘트가 말씀론 중심인데 비하여 오리겐은 신중심적이다.

 

 

V. 로고스 기독론(Logos-Christology)에 대한 반동

-군주신론(monarchianist)(틸리히 100-118쪽, cf. 곤잘레스 295-455쪽)

군주신론(monarchianism)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과 그의 제자들이 내세우는 요한복음 중심의 로고스 기독론에 대한 반대 교설이다. 로고스 기독론은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가르침이었다. 아들 하나님 로고스의 신성에 대하여 거의 강조하지 않거나 부정하며(로고스 기독론을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을 병립시키는 이신론적 혹은 아버지-아들-성령을 병립시키는 삼신론이라고 본다) 하나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전적 신적 대권(지배=monarchia=mono+archia. 즉 한 군주의 지배를 의미)만을 강조한다. 이신론적 혹은 삼신론적 위험성에 대한 유일신론적 반동이다. 역동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adoption theory=양자설)과 양태론적 군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으로 나눠진다.

 

1. 역동적 군주신론: 로마의 데오도투스(Theodotus of Rome).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신의 영이 내려와서 메시야적 힘을 갖게 된다. 예수는 신의 영의 강림으로 메시야적 힘을 위탁받아 파견된 인간이라는 것이다(공관복음서 치중, 요한복음 거부). 알레고리칼(우의적, allegorical) 해석을 거부하고 문자적 해석 옹호한다. 그에 따라면 로고스는 인간 예수를 양자로 입양한 것이다. 예수는 로고스 혹은 영에 충만하였지만 신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동방교회의 Paul of Samosata, 안디옥 주교 [AD 260-268]). 사모사타의 바울에 의하면 성령과 로고스는 신의 성질이기 하지만 신의 위격(person)은 아니다. 신의 영원한 힘 혹은 잠재성이지만 독립된 위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이들의 힘에 의하여 영기(spiritual energy, 靈氣)를 받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신과 예수의 통일은 의지와 사랑에서의 통일이지 본성과 실체에서의 통일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신과의 영원한 통일을 달성하고 세계의 심판자가 되며 신적 존엄에로 높여지게 된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드디어 신이 된다. 예수의 신적 지위는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획득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구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 구원을 인간 예수의 의지에 의존시켜서 사모사타의 바울은 이단자로 정죄된다. 양자론은 일종의 영적 진화론(예수)이다.

 

2. 양태론적 군주신론(성부수난설=Patripassionism): 사벨리우스(Sabellius), 프락세아스

로고스 기독론에 대하여 더욱 더 위협적인 교설이다. 신이 여러 가지 모두스(modus, 양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양태론적 군주신론자들은 한편으로는 이신론과 삼신론과 대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 신 자신의 현현인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싸웠다.

양태론적 기독론의 대표자인 프락세아스(터툴리안의 적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인 신 자신이 처녀 마리아에게서 낳음을 받았으며, 그 아버지인 신 자신이 오직 그 신만이 땅위에서 수난당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프락세아스와 그의 제자들은, 이신론(말씀과 하나님 아버지), 삼신론에 대항하였으며 또 한편 한 하나님의 지배만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고 옹호한다. 예수는 바로 성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적 신관념(오리겐적 신관념)과는 충돌한다. 그것은 신의 불가변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태론적 군주신론의 대표자인 사벨리우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이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하다. 세 가지 명칭이지만 그 명칭이 가리키는 실재는 하나이다." 세 가지 명칭(얼굴)은 동시에 나타나지 않고 계기적(시간적 순서, 즉 구원사의 각 단계에 따라)으로 나타난다. 천상적 삼위일체는 존재하지 않고 경륜적(역사적) 삼위일체만이 존재한다(신의 계획/경륜에 따라 아버지-아들-영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창조자, 율법수여자 즉 아버지의 얼굴), 아들(성육신에서 승천에 이르는 아들의 얼굴), 영(생명을 주는 영)은 동일본질(homo-ousios)을 가지고 있다(유사본질, homoiousios이 아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가지 존재들이 아니고 세 가지 얼굴/모습으로 나타나는 존재의 힘이다. 이 학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오거스틴의 신학 속에 남아 서방교회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로고스 기독론(오리겐주의)는 인간과 신 사이에 신적 계층(로고스)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철저하게 유일신론을 관철시킬 것인가의 차이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플라톤이나 플로티누스나 오리게네스에 따라서 신과 인간 사이의 계층을 받아들였다. 이에 비하여 서방 사람들에게는 이런 위계질서 개념이 생소하게 들렸다.

 

VI.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논쟁(104쪽-118쪽; 곤잘레스 1권, 311-418쪽)

1. 오리게네스 이후의 삼위일체론의 전개

오리게네스의 사상은 일신론주의와 양태론적 사상을 이기며 극복하였다. 하지만 오리게네스의 사상 전반(유출설[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영향을 받은 오리겐의 유출설에 따르면 로고스는 Ineffable One보다 낮은 힘을 가진다], 영적 존재의 근원성과 선재성, 초월적인 타락 관념, 신체없는 단순한 영적 부활, 종말론의 정신주의적 해석)에 대한 반론이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좌우파로 양분. 우파의 대표는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고스다(Gregory of Thaumaturgos): "삼위 가운데 어떤 위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도 다른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삼위안에 있지 않았던 것이 덧붙여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성령은 아들보다 열등하지 않다. 모두 동등하다"(이것을 소위 고등기독론[higher Christology]이라고 부르는데 이 견해가 정통[orthodoxy] 카톨릭 및 개신교의 입장이다).

좌파의 대표인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다: "아들은 본질상 아버지와 이질적이다...아들은 낳아진 것이기 때문에 그가 낳음을 입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고스 기독론에 대한 위계적인 이해다(모든 것을 초월한 아버지 신--->둘째 자리인 로고스---> 셋째 자리인 성령). 이 두 파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교회는 거의 붕괴된다. 삼위일체적 논쟁은 교회정치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끼쳤다. 로마 교황 디오니시우스의 절충시도가 등장한다: 신의 삼위성과 군주신론적 가르침을 조화시키려고 시도한다(80년에 걸친 논쟁-교회정치: 아들[국가]과 아버지[국가]의 동등성이냐 차등성이냐의 논쟁이 바로 교회정치에 대한 영향의 일단이다). 교황은 교회의 통일성 유지를 위하여 절충주의를 선호하였다. 로마제국에게도 교회의 분열은 제국의 분열을 의미할 수도 있었기에 교회의 통일성을 옹호하였다.

 

2. 아리우스주의(Ariusianism)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논쟁의 한 복판에 구원론이 들어있다. 아타나시우스는 "구원이란 우리가 신이 되기 위해서는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 한 가지 교설(조건)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처음을 갖지 않았다)이라고 믿어야 즉 예수 안에 있는 로고스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할 때(co-eternal)만이 우리를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신적 불멸성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구원관은 신과의 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이 결합이 바로 구원이다." 이처럼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의 논쟁은 구원론의 문제였다.

오리겐주의 우파인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다. 이 교설(dogma)이 알렉산드리아를 넘어 서방 및 동방 어디든지 폭넓게 지지를 받았다. 이에 비하여 알렉산드의 장로였으며 오리겐 좌파를 대표한 아리우스는 "로고스는 곧 선재한 아들은 신에 의하여 무로부터 피조된 피조물이다"라는 주장을 편다.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로고스가 신이 된다는 것은-성인의 신격화와 유사-그의 인간성의 한 속성인 자유(자유의지=free will)를 통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로고스의 자유는 신으로부터 돌아서는 자유인데 예수 안에 있는 로고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그는 반신적(半神的) 인간이다. 반신적 힘으로서의 로고스가 예수 안에서 고뇌하고 괴로워한다. 예수는 자연적 혼을 가진 완전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다. 반인반신적 존재다. 아리우스는 기독론을 고대 세계의 영웅숭배제의로 격하시킨다. 고대세계에는 스스로 천상(올림푸스산)에 있으면서 정식으로 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반신(半神)들로 가득차 있다. 아리우스에게 예수는 일종의 반신이었지 신 자체는 아니었다.

 

3. 니케아 회의(AD 325년)(곤잘레스 1권, 311-344쪽).

4세기는 기독교가 박해받는 종교에서 관용받는 종교로 탈바꿈하는 시기였다. 아타나시우스,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들, 제롬, 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 가이샤라의 유세비우스를 배출하는 시기였다. 관용받는 종교가 되면서 기독교회는 대량개종으로 인한 도덕적 수준의 저하를 초래하였고 그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던 교리논쟁이 황실의 후원과 보호를 받으며 활성화되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바로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곤잘레스, 312).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요 오리겐좌파 지도자인 루키안(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의 제자인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알렉산더와 충돌한다.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입장에서 사모사타의 바울(말씀/아들의 독립적 존재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축소하는 학자)을 비판한다. 아리우스는 말씀(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절대적 유일신 사상에서 출발하여 아들은 아버지의 유출이 될 수 없고 아버지의 본질의 일부분도 될 수 없으며 혹은 아버지와 유사한 또 다른 존재도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가능성-아리우스에 따르면-은 하나님의 비물질적 속성과 통일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만일 아들이 시작이 없었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형제간이거나 아예 아들이 아니기에 아들이 시작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시작이 있었고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에 창조 혹은 조성되었다. 따라서 창조되기 전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버지는 영원전부터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곤잘레스 1권, 314). 요약하면 "구세주는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다"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역사적 전례가 없는 극단적 종속론이다(이전의 종속론의 예: 말씀을 플라톤적 의미의 데미우르고스로 해석하여 불변적인 신성과 다변적인 다[多]의 중간자로 파악한 흐름; 저스틴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말씀을 비슷한 의미의 중간자정도로 파악한 전통에 소속)(아타나시우스가 이해한 아리우스의 주장은 곤잘레스 1권 314-135쪽에 인용된 인용문을 참조).

이 논쟁과 갈등의 와중에 아타나시우스가 반(反)아리우스적인 입장의 대표적 주창자가되고 니케아 회의에서는 그가 주창한 반아리우스적 신앙고백이 채택된다: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유일한 하느님,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창조자를 믿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낳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본질에서 낳은 외아들,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 낮아지고 만들어지지 않은, 아버지와 동일하신(homoousios) 분을 믿습니다."(1986년판, 틸리히 사상사, 108쪽 인용문 읽을 것:"우리는 전능한 아버지, 유일하신 하나님,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창조자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본질에서 낳은 외아들,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 낮아지고 만들어지지 않은 아버지와 동질[하나인 실체=homoousios]인 분을 믿습니다......그리고 주께서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거나 또 주께서 만들어지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는 무로부터 만들어졌다거나 다른 실체나 사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하며 신의 아들은 피조물이며, 변화되고 변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은 성스러운 사도의 교회[카톨릭교회]에 의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거의 사도신경과 동일).

 

다음은 영문 니케아 신조다. 다시 한번 정확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The Nicene Creed goes like this: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became incarnate from the Virgin Mary,

and was mad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With the Father and the Son he is worshiped and glorified.

He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This creed or statement of beliefs was made at the Council of Nicaea in AD 325 to fight against Arianism. Arianism is long dead, but the creed is still said today during mass in the Catholic Church. The Anglican, Eastern Orthodox and the main Protestant churches also accept the Nicene Creed. The Mormons, Jehovah's Witnesses and Bishop Spong, on the other hand, do not.

 

What is to be noted here is what were the two phrases which caused the most fights wer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 said of Christ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 said of the Holy Spirit. The Arians disputed the first since they do not believe that Jesus is God. The Eastern Orthodox dispute the second and do not say "and the Son" (and even Catholics of the Byzantine rite leave it out) -- that was added centuries later by the Catholic Church and has been one of the things that has stopped the two churches from coming back together (they split up in the eleventh century).

 

 

이 니케아 신조는 모든 정통기독교회가 이어받은 신앙고백이다. 이 신조의 핵심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은 동일본질(homousion to patri)이라는 주장이다. 니케아 회의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1)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단이 극복되었다.

2) 니케아 신조는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 관념 대신 위계적 계층적 개념을 갖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동방교회 전통보다는 서방교회 전통에 더 잘 부합하였다. 그후 동서방교회간에 60년 논쟁 지속되고 381년에 비로소 동방교회도 만족하는 공식적 신조가 채택된다.

3) 니케아의 결정적 명제는 "아버지와 동질인 아들"이라는 표현에 있다. 이 명제는 유출설의 도식을 거부하고 일신론적 군주신론과 부합한다. 그래서 니케아 회의의 옹호자 아타나시우스나 마르켈루스는 사벨리우스주의자로 비난받는다.

4) 이 니케아 결정은 소극적 표현방식으로 선포된다: 그리스도의 피조성이 부정되지만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와 아버지 신이 동일본질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적극적인 해명이 없다. 다만 그것은 "그리스도인 예수는 육화된 반신(half-god)이 아니며 최고의 피조물도 아니고 그는 신이다"라고 선언한다.

5) 니케아 신조는 성서의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개념에 의하여 표현되었다(신비적 종교철학 개념의 수용).

6) 니케아 회의는 주교들이 교리를 결정하는 전통을 확정짓는데 초석을 놓은 것이다. 이것을 대표적 성직자들의 회의에 의하여 교리적 권위를 가지는 교설들이 결정되곤 하였다(이것을 공회의주의 conciliarism라고 부른다).

7)교회는 국가교회의 형태를 띠게 된다. 로마황제가 로마제국의 정치적 통일성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그마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선례를 남겼다(콘스탄틴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의의 결정을 좌우할 정도).

 

4. 아타나시우스(295-373)와 마르켈루스

니케아 신조를 구하였지만 동방교회(위계적 질서의 관념에서 성부와 성자를 이해하는 오리겐적 경향)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아타나시우스는 오리게네스적인 경향으로 해석하는 타협을 감수하여야 했다. 그에 따르면 신의 무한성과 거룩성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인데 이 구원은 참신인 예수가 줄 수 있다. 참 신인 예수의 죽음만이 구원의 효력을 가져온다. 신적인 존재와 힘으로만 불사성(divine immortality)을 줄 수 있다. 반신이나 영웅들은 이런 구원을 가져다 주루 수 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영의 신적 본질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예수의 영이 아니라 예수 안에 머물고 있는 신 자체)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반(半)아리우스주의자와 다시 쟁투하였다. 그는 우리가 영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영 또한 신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니케아회의에서는 자세히 논의되지 않던 도식을 이 논쟁에서 완성한다. 그리하여 아타나시우스의 신봉자인 마르켈루스(그는 아타나시우스의 벗이었으나 그의 일신론적 경향은 오리겐주의자에게 배척당함)는 일신론적 개념을 삼위일체론에 도입함으로써 오리게네스주의자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창조 이전의 신은 분할없는 통일이다. 말씀, 로고스는 창조이전에는 잠재적인 창조의 힘으로 있었지만 창조와 더불어 신의 행동적 에너지가 되었다. 창조시 신의 모나스(monas=Oneness)는 이원성(dyas=Doubleness)이 되었다. 이 마르켈루스의 입장은 거부되고 사벨리우스주의자라고 비난을 받는다(역동적 군주신론).

 

보설(補說, Excursus): 아타나시우스의 신학(곤잘레스 1권, 345-358쪽)

아타나시우스는 4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은 4세기 신학은 그의 생애를 연구하면 윤곽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에 관하여>(아리우스 논쟁 이전의 글로 이교도들의 다신론 논박. 하나님은 영혼과 자연을 통해서 유추하여 알 수 있음을 논증): 자연에 깃든 질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고스)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준다. 이 하나님의 로고스는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자연의 질서이며 자연 속에 깃든 비인격적 원리)와는 다르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 자신이신 말씀이다. 이 말씀(로고스)은 인간이 쓰는 단어들 같이 단순히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불변적인 형상이다. 이 말씀은 무에 피조된 모든 창조물을 손에 쥐고서 다스리는데 만일 말씀이 이 피조물을 항상 돌보아주시지 않는다면 모두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말씀의 우주의 위대한 보전자이며 질서의 근원이시다. 말씀은 세계 내에서 조성된 반대원리를(추움-더움; 공기와 물 등) 조정하시고 다스려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케 하시며 서로 파괴되지 않도록 보전하신다. “말씀의 이치에 따라서 물이 구름에까지 미쳐서 비가 되어 땅에 내리고 이것을 바다가 폭넓게 간직하여 땅을 풀을 산출하여 식물과 더불어 온 지면을 온통 옷입혀 준다”(곤잘레스 1권, 349-350쪽). 이처럼 아타나시우스는 그 이전의 소위 주류 정통신학자들의 말씀론과 사뭇 다르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절대적 하나님으로 말씀(로고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종속적 신성의 보유자로 자리매김함(클레멘트까지도)으로써 종속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아타나시우스가 보기에는 이런 종속론은 기독교유일신앙과 충돌하는 입장이었다.

*<성육신에 관하여>: 하나님 한 분만 구원하실 수 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논박하는 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성육신에 관해서>,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변증>,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역사>, <세파리온에게 보내는 네 개의 서신>, <성안토니의 생애>. 그는 조직적인 사색적인 사상가라기보다는 목회자요 실천가였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지만-그래서 오리겐과 유사한 점이 있으나-그의 관심사는 사색적이고 학문적인 면보다는 실제적이고 신앙적이었다. 그의 신학방법론은 알렉산드리아 중심의 신학자들의 방법과 달랐다.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파를 극히 싫어하는 이유는 아리우스주의가 다신론에 접근하고 있으며 둘째, 구원이 피조세계를 통해서 온다는 주장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곤잘레스에 의하면 그의 삼위일체 신학의 약점은 삼위일체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확정된 용어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355쪽).

 

결론: 현대 기독교회의 정통교리는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이다. 그는 하나님을 초월적인 존재로 보았으나 그렇다고 그 초월성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 피조세계와 관련을 맺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하나님으로 이 세계와 동떨어져 있지만 창조행위를 통하여 이 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그리고 피조세계의 유지를 위하여 부단하게 피조세계와 접촉을 유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 세상과 무관한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향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5. 니케아 회의 이후의 발전과 갑바도기아의 신학자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본질교설을 반대하는 오리게네스주의자들은 아타나시우스와 마르켈루스를 이단으로 선고할 정도로 완고하게 대항하였다. 그들은 삼위일체 안에서 세가지 실체라는 교설을 강하게 제기한다(위계질서도입: 아버지 하나님이 제일 높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영원하며 무조건적이며 무제약적이며 홀로 모든 것의 존재다. 이것은 민중들에게 훨씬 알아듣기 쉬운 교설로서 동방교회=알렉산드리아 중심의 지원을 받는다). 니케아회의에 대한 두 갈래의 방향은 아리우스주의로 복귀하는 것(안호모이오이, anhomoioi=아들은 모든 점에서 아버지와 같지 않다)과 니케아 회의와 동방교회의 입장을 절충하려는 입장(호모이우시아=유사본질. 아들은 본질상 아버지와 모든 점에서 닮은 호모이오스[=homoios]이지만 아버지와 같은 실체는 아니다)이다. 이 절충안은 니케아에서 확정된 동일본질(호모우시우시오스)을 실상은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 개념으로 이해하자는 절충안이다. 이것은 아들은 동일본질이 아니라 유사본질이라는 것이다. 다시 불붙은 이 논쟁의 와중에 아타나시우스와 서방교회는 이 호모이우시오스 입장을 받아들인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에서 유포된 아들의 “영원한 탄생”(오리게네스사상) 사상도 받아들인다. 동방교회는 이 유사본질 개념을 성령에게도 적용한다. 381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에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가 동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동일본질은 유사본질로 이해된다.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가 바로 이 화해와 타협의 산파역을 감당하였다.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 Basil the Great 329-379년; 그의 형제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치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113-118쪽; 곤잘레스 1권, 359-383쪽).

바실(300?-379): 누나 마크리나의 금욕적 수도사의 길에 깊은 감명. 가이사랴의 감독, 교회규율과 수도원제도의 개혁자. 강직하고 용감한 인물. 설교자, 윤리학자. 모든 종류의 半/新아리우스파(그리스도를 半神/半人이라고 주장하는 교리)와 성령훼방론자들과 싸운다. <유노미스를 반대하여>은 상이본질(아들과 아버지가 상이한 본질, 즉 아들은 피조물임을 주장)을 주장하는 아리우스파의 유미노스를 반박. 유미노스는 아버지의 절대성과 아들의 상대성을 비교하여 아들은 신이 아님을 논증하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의 본성은 태어나지 않음에 있는데 아들은 태어난 자이므로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실은 하나님의 출생개념은 피조물의 출생개념과 다름을 인정하고 아들의 출생은 “무감각적이며 분리되지 않고 구분되지 않고 그리고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출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태어난 자인 아들이 영원한 자라는 주장이 모순되지 않음을 논증한다. 초기 니케아 신조의 옹호자들과 같은 주장이다(곤잘레스 1권, 362-362). 여기서 이제 삼위일체론은 “한 본질 세 실체”라는 확고부동한 형식으로 정리되는 단계에 이른다(one ousia three hypostasis=mia ousia treis hypostaseis)(본체와 본질의 구분은 유[類]와 종[種]의 구분과 같다). 바실의 또 하나의 신학적 기여는 성령에 대한 강조다. 그의 저서 <성령에 관하여>은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본질공동체임(consubstantiality)을 밝혔다. 여기서 그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신성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이렇게 성령을 강조함으로써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성령훼방론자들을 대항하였다.

 

니싸의 그레고리: 니싸의 감독. 바실의 동생. 오리게네스적 전통과 학문적 방법 계승자. 심오한 신비주의의 해설가. 조직신학적 활동가.

 

나치안주스의 그레고리(329?-389?): 바실의 친한 벗. 친구 바실과 다른 성품의 소유자. 예민하고 유약한 그러나 위대한 웅변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곤잘레스에 의하면 이 세 교부 중 제일 중요한 사람. 니케아 종교회의 결정의 최종적 승리를 확증지은 사람. 삼위일체의 도그마를 최종적으로 공식화. 삼위일체론에 등장된 모든 개념들을 엄밀하게 구별한다. 하나의 신성(mia theotes), 하나의 본성과 본질 개념과 세 실체(three hypostasis), 세 특성(three physis), 세 위격(prosopon) 개념을 결합한다. 여기서 신성(mia theotes)은 존재의 힘을 의미하는데 세 가지 형식을 가지며 세 가지 독립된 실재성에서 자기를 표현한다.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아버지의 심연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이 셋은 모두 같은 의지, 같은 우시아(본질), 같은 피지스(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셋은 각각 고유한 특성(idion)을 갖는다. 아버지는 피조적인 아닌 특성(agenesia=非피조성). 그러나 아버지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한다. 아들은 낳은 바 된 존재(genesia)라는 특성을 갖는다. 성령은 <내보내어진 존재> 혹은 <발출된 존재(ekporeusis)>라는 특성을 가진다. 삼위격의 구분은 신적 본질에서의 구분이 아니라 특성상의 구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추상적인 정의지만 이 정식화는 교회의 통일을 이루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주장의 요점은 아버지, 아들, 성령을 관계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면, 아들도 있지 않은 때도 있었다. 만일 아들이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면 성령도 있지 않은 때가 있다. 그러나 한 분이라도 시작부터 계신다면 세분은 마찬가지로 똑같이 계셨다”(곤잘레스 1권, 371쪽). 372-373쪽의 인용문을 읽으라. 일부 인용하자:

“본질-신격에 있어서는-에 있어서는 하나이다...초과됨이나 결핌됨이 없이 이 연합은 혼돈됨도 없고 나뉘었다고 해서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사벨리우스의 혼합성이나 아리우스의 나눔으로부터 똑같이 보호받을 수 있다.........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 그로부터(of whom) 만물이 기원한 바 아버지가 계신다. 그리고 한 분 주, 그에 의하여(by whom) 만물이 존재케 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고 한 분 그 안에(in whom) 만물이 존재하는 성령이 계신다......아버지는 아버지로서 기원이 없으신 분으로 다른 누구를 통하지 않고 홀로 계신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기원한다. 그러나 기원을 만일 시간적 의미로 사용한다면 아들 또한 시작이 없다. 왜냐하면 아들도 시간의 조성자이며 시간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오시는데 아들과 다른 방법으로 오신다. 왜냐하면 성령의 오심은 출생(generation)에 의하지 않고 발출(procession)에 의하기 때문이다.

 

381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

이 공의회는 성령에 대한 신조를 추가하고 니케아의 저주구문을 삭제한다. 왜냐하면 호모우시아와 호모이우시아 논쟁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성령에 대한 말이 포함되었다(“그리고 주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아버지로부터 나왔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를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실 성령님을 믿습니다”). 콘스탄틴노플 공의회는 삼위일체론을 논쟁 종식시키고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 둘 다 배척하였다. 그러나 틸리히에 의하면 이 공의회의 결정은 네 가지 미해결의 난제를 야기한다.

1)아버지이신 신은 신성의 근거이지만 또한 다른 특정한 페르소나(위격)를 갖는다. 신적 근거(신적 실체=Godhead), 그것의 개시인 아버지, 아들, 성령은 삼위일체가 아닌 사위일체가 되는 것 아닌가?

2)초월적 삼위일체설은 설명하기 곤란하다. 낳았다, 발출했다, 만들어지지 않은 말들은 공허하다. 초월적 삼위일체설은 신과 예수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3)성령은 아직도 추상적으로 처리된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성령에 대한 이해가 빈곤하다. 성령은 마리아에게 예배받는 자리를 빼앗긴다.

4) 세 가지 위격은 삼신론으로 갈 경향성을 내포한다. 삼위격에 대한 강조는 보편적 실재가 개체보다 존재론적 우위를 갖는다고 믿는 플라톤 철학의 사조 안에서는 문제가 안 되나 아리스털레스처럼 개체의 존재론적 우위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사조 안에서는 삼신론을 주장하는 가르침처럼 들린다.

다마스커스의 요한(8세기 중엽의 예루살렘 안식일 수도원의 수도사로서 <인식의 샘>이라는 저서를 남김)은 이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적 요점은 로고스론의 도움을 받아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었는데 아리우스주의 영향 때문에 로고스론은 위험한 교설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 신학은 로고스론을 기피하게 되고 삼위일체론은 신비한 영역에 머물게 되어 버렸다.

 

 

 

기독교교리사 4-5주차 강의안 보충자료-김회권 교수

9장 3세기의 서방신학과 오리겐 이후의 동방신학(곤잘레스1, 275-310쪽)

 

9장 3세기의 서방신학

서방(라틴) 기독교 알렉산드리아(동방기독교)

*실천적 *사색적

*스토아적 영향력 *플라톤적 영향력

*율법적 경향 *우의적 경향(allegorical)

*<바나바 서신>(율법적) * <클레멘트의 서신>

 

실천적인 관심에 몰두한 3세기 서방교회의 대표인 로마교회는 죄의 용서와 교회의 본질 문제에 골몰하였다. 로마와 북아프리카가 서방신학의 본거지였다. 로마교회가 배출한 유명한 신학자는 Hippolytus와 Novatian이었다(둘 다 반교황파). 북아프리카는 터툴리안 전통을 계승한 Minicius Felix, Arnobius, Cyprian(4세기 사람), Lactantius 등이다.

 

로마의 히폴리투스

삼위일체 교리와 죄의 용서 문제를 놓고 칼리스투스와 히폴리투스는 심각하게 갈등. 로마교회안에는 이 두명이 감독직을 차지하며 갈등하다가 히폴리투스가 황제 막시미누스의 박해로 사르디아로 추방된다. 나중에는 순교자로 추앙되어 시신은 로마로 복귀한다. 그의 신학은 이레니우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구약성경의 유형론적 해석 계승; 총괄갱신론 계승; 이레니우스처럼 천년설적 종말론을 보유).

히폴리투스의 신학 중 도덕적 엄격주의(참회제도)와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하다. <헤르마스의 목자>는 회개를 거친 후 세례를 받은 경우 어느 정도 다시 죄를 짓더라도 회개한 후 다시 입교가 가능한 것으로 인정한다. 로마교회에는 작고 사소한 죄는 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으나 간음, 살인 등 큰 죄는 출교당한 후 얼마 후에 다시 입교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칼리스투스는 간음죄를 범한 사람에게 회개와 회복의 은총(알곡이와 쭉정이 비유, 노아 방주 안의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 공히 구출)을 베풀려고 하였으나 히폴리투스는 이런 방침이 교회의 도덕적 방종을 초래한다고 반대한다.

두 사람은 삼위일체를 놓고 다시금 논쟁한다.

터툴리안은 로마의 프락세아스의 형태론적인 군주신론에 반대하여 삼위일체를 주장하듯이, 히폴리투스는 서머나의 노에투스(Noetus of Symyrna)(나중에 사벨리우스도 동일 주장. 사벨리우스주의라고 지칭)의 양태론에 대항하여 삼위일체론을 발전시킨다. 히폴리투스에 의하면 노에투스는 “그리스도를 아벚지 자신으로 보고 아버지가 친히 고난당하고 죽은 것처럼 말한다.” 히폴리투스에 의하면 그의 논적인 칼리스투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로고스 자신은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또한 아버지 자신이라고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명칭으로 일컬어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아버지는 나뉠 수 없는 영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며 동일한 존재다.” 히폴리투스는 그의 선배인 터툴리안을 인용하여(<프락세아스 논박> 활용) 양태론을 공격한다. 그러나 히폴리투스도 터툴리안처럼 삼위의 구별을 강조한 나머니 일체성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종속론적 경향을 보인다. “말씀(그리스도)의 산출이 아버지의 의지에 달려있으며 심지어는 세계창조의 창조목적에 의존한다.” 그는 삼위 하나님의 신격은 관계적으로는 하나이지만, “경륜에 있어서는 3중적이다”라는 사상(실은 터툴리안)을 크게 반영한다.

기독론에 있어서 히폴리투스는 터툴리안의 길을 따른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두 본성의 “연합”이며 그 안에서 각 본성은 고유한 속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바티안

3세기 서방 기독교회가 타락한 자의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배교한 자들을 다시 입교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감독 코넬리우스(배교자에게 관용입장)와 대립한다. 회개, 참회, 그리고 사면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벌인 논쟁이다. 그의 저서 <삼위일체에 관하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구별됨을 증명하려고 분투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본질의 교류(communion of substance). 그는 양태론을 반대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지나치게 구별하다가 아리우스적인 종속론의 선구자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그의 종속론적인 경향은 “아버지를 불변적이고 무감각적인 하나님으로 보는 데 출발하여 아들은 인간과 세상 사이의 사건들과 관계를 맺고 접촉할 수 있는자로 보았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예. 창 11장 바벨탑 사건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이라고 주장; 창 18장의 천사; 28장의 야곱의 천사도 아들 하나님). 그에 의하면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로부터 산출(by generation)에 의하여 발출된다. 피조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는 아들보다 앞선다. 터툴리안이 프락세아스를 논박하듯이, 노바티안은 사벨리우스주의를 논박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너무나 강조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저급한” 혹은 “아버지로보다 더 적은” 어떤 존재를 떨어뜨렸다. 아울러 성령을 아들보다 더 저급한 존재로 만들었다(곤잘레스 1, 285).

 

카르타고의 키프리안

40세 이후 개종. 세례 후 엄격한 금욕생활. 전공인 수사학을 버리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영적 지도자로 살았다. 248년 경 카르타고의 감독으로 선출되어 9년간 봉직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3세기 중반에 로마제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는 증명서를 휴대하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은 많은 배교자를 양산하였다. 이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복귀시키는 절차로 논쟁이 야기되었다. 정당한 훈련과 교육을 거쳐 그들을 재입교시키는 것이 키프리안의 입장이었다. <교회의 일치에 관하여>, <타락한 자들에 관하여>라는 그의 두 논문은 배교자들의 회복문제에 대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1) 참회를 거부한 자들은 용서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임종시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 (2)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증명서를 구입한 사람들은 즉각 재입교가 허락되지만 일생 동안 참회하며 자신이 참으로 회개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또 다른 박해가 있을 적에); (3) 타락한 성직자는 즉각 퇴출되어야 한다.

키프리안의 또 다른 명작들은 세례와 역병(250년 발생)에 관한 것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역병이 발생하자 데메트리아누스라는 이교도가 이 전염병은 기독교인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신들의 이름으로 기독교인들을 처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데메트리아누스에게>는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숙명적인 죽음에 관하여>는 죽음을 고귀하게 맞아들일 것을 권면한다(<행위와 자선에 관하여>). 세례에 대한 논쟁들은 이단들이 베푸는 세례의 유효성을 둘러싼 논쟁이다. 로마교회의 감독들과 달리 그는 이단 출신의 개종자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아프리카 감독들의 지지를 얻음). 로마감독 스테판은 이단교회에게 받은 세례도 유효하니까 세례를 다시 베풀지 말라고 명령하여 충돌이 야기되었다.

키프리안은 이런 논쟁들을 통하여 자신의 교회론을 확립한다. 그에게 교회는 구원에 필수적인 방주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선언할 때 그의 교회는 진리로 통일된 통일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 진리와 통일성이 있는 교회다. 즉 통일성이 없으면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교회의 통일성은 감독권(episcopate)에 있다. 감독은 사도들과 사도들의 권한을 계승한 자들이며 이러한 계승에서 얻은 권한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직접 수여하신 것과 동일하다. “감독은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감독안에 있으면 감독이 없으면 교회도 없다.” “감독권은 하나이다. 이것은 모든 감독들은 감독들의 감독이신 한 분에게 예속되어 계층질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니고 개개의 감독은 감독권을 총체적으로 대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291-292). 그는 어떤 감독도 다른 감독에게 우월적 지위나 수위권을 갖지 못한다. 일종의 연방제적인 견해로서 로마감독의 교황적 지위에 대한 온건한 경계인 셈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우선권과 로마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로마교회는 제사장의 통일성성의 출처가 되는 교회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우선권은 다른 교회들을 다스릴 권한을 뜻하지는 않았다.

 

10장 오리겐 이후의 동방신학(곤잘레스 1권, 295-310쪽)

오리겐 이후 그의 신학은 알렉산드리아의 판타이누스, 클레멘트, 헤라클레스, 대(great, 大)디오니시우스, 테오그노스투스, 피에리우스 등에 의하여 계승된다(알렉산드리아와 가이샤라 등에서; 가이샤라의 오리겐 제자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유명; 네오가이샤라의 그레고리와 안디옥의 루키안 등도 오리겐의 제자들).

 

오리겐주의를 반대한 두 사람: 사모사타의 바울과 올림푸스의 메토디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260경 안디옥의 감독으로 선출. 그는 군주신론과 양자설을 혼합시켜 역동적 군주신론을 제창한다. 그의 주관심사는 기독교가 유일신신앙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을 희생시켜가면서 통일성을 강조.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세 가지 형태라고 보는 형태론을 따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지혜도 아니다. 아들은 성육신 이후로 즉 성령에 의하여 마리아의 태속에 그리스도가 잉태된 이후에 존재할 뿐이다(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주장-“말씀은 성육신 이전에 존재하였고 아들은 성육신한 말씀이었다고 보는-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을 실재적으로 보지 않고 즉 영원하신 아들/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목적" 혹은 "예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예수와 말씀의 연합은 단순한 도덕적 연합으로 말씀이 예수안에 있는 것은 마치 말씀이 “성전 안에 있는 것처럼” 거주할 뿐이라는 것이다(예언자들안에 말씀이 존재하는 것과 질적 차이 없고 양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말씀/지혜는 하나님의 제 2인자로 결코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의 힘(dynamis)으로만 존재한다고 본다. 이것을 역동적 군주신론이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양태론적 군주신론은 말씀과 아들은 동일하며 아들의 수난 속에서 아버지의 수난을 본다는 주장이다(성부수난설이라고도 불린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이것에 반대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거주하다고 주장한다.

 

올림푸스의 메토디우스: 올림푸스의 감독. 금욕적 독신생활자. <향연> 저자.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오리겐 비판내용이었다. 오리겐의 저자 유세비우스는 그를 <교회사>에서 다루지도 않았다. 그는 멜리토, 파피아스, 이레니우스 등의 사상에 입각하여 오리겐을 네가지 면에서 비판한다: 이 세계의 영원성(오리겐은 하나님이 영원하시기에 세계도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메투디오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세계가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진리라는 주장을 편다면 오리겐이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레니우스처럼 총괄갱신론으로 세계를 파악), 영혼의 선재, 영적인 종말론(메토디우스는 천년설적 종말론을 선호), 우의적 해석(메토디우스는 구약성경의 유형론적 해석 선호. 그러나 곤잘레스에 따르면 그도 우의적 해석을 따른다).

 

오리겐 사후의 오리겐 신학

3세기 오리겐주의 신학의 쟁점은 삼위일체론인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오리겐 사후 가장 뛰어난 세 제자의 학문을 살펴보자.

네오가이샤라의 그레고리(Gregory of Neocaesarea): 가이샤라에서 오리겐에게 배운 후 고향 소아시아 본도(Pontus)의 감독으로 복귀. 기적을 행한 의 감독. 그가 감독으로 부임할 때 본도에는 17명의 기독교만이 있었는데 그가 죽을 때는 17명의 이교도만 남아 있었다. 그의 <오리겐 찬가>는 신조를 담고 있는데 “한분 하나님은 살아계신 말씀의 아버지시며 스스로 존재하는 지혜이시며 능력이시며 영원한 형상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서 어느 것도 피조되거나 예속되지 않았으며 어느 것도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가 새롭게 병발적으로 존재케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중에는 다른 것에 삽입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복제한 것도 아니며 영도

또한 아들에게 있어서 마찬가지다. 변동이나 변화도 없이 삼위일체는 영원히 동일하게 계신다.”). 이 신조는 아들의 영원성과 아버지에게 종속됨을 동시에 주장하였는데 그레고리는 영원성 교리를 받아들이고 종속론을 버린다. 이것이 우파 오리겐주의다.

이에 비하여 좌파 오리겐주의는 종속론적인 경향을 보이는 제자들인데 삼위간의 위격을 무시해버린 사벨리우스주의를 막아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좌파 오리겐주의 제자들인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와 안디옥의 루키안은 나중에 아리우스주의의 입장이 될 좌파 오리겐주의 즉 종속론을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과격한 사벨리우스주의자들을 막기 위하여 설교도중에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강조하는 예화나 문구들을 사용하였다(요 15장 포도나무 비유). 안디옥의 루키안은 아리우스의 스승으로 알렉산드리아학파와 갈등을 빚는다. 알렉산드리아의 우의적 구약해석에 대항하여 문법적-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가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강조하였는데 아들의 신성을 어떤 의미에서 이해하였는지 분명치 않다.

 

기독교 교리사(3월 27, 30일-5th week)-김회권 교수

 

VII. 기독론 논쟁(Christological Disputations)

(폴 틸리히, 118-140쪽; 곤잘레스 1권, 397-455쪽)

삼위일체론 논쟁은 구원론에 대한 응답일 뿐만 아니라 기독론에 대한 대답이다. 니케아 신조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임과 동시에 사람이라는 교리를 확정지었는데 이 니케아 신조는 여전히 또 다시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는 신-인이 되었는가를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니케아 신조(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한계없는 신적 본성이 동시에 하나의 실재적인 인간이 될 수 있었겠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였다. 이 물음에 답하려고 하는 기독론 논쟁이 3 세기 이상 계속되고 결국 교회는 분열된다. 기독론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가) 신은(아버지로서) 인간 예수를 사용하여 그에게 영감을 부어 그의 아들로 입양하였다(양자론=adoption theory); 나) 신적 본질이 변화(변형=transformation)의 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되었다([오리게네스주의: “영원한 로고스는 예수의 혼과 결합하여 역사적 예수가 된다]). 니케아 신조는 유사본질론[호모우시오스론]으로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인정하였는데 이것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적 군주신론으로, 혹은 아리우스적 의미로, 혹은 옛 니케아적으로(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아타나시우스의 원래 입장), 혹은 새 니케아적(유사본질.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본질이 아니라 유사본질이다)으로 이해될 수 여지가 있었다. 결국 기독론은 양자론(養子論)으로 혹은 변화론(성육신론=Incarnation) 중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1. 아폴리나리우스(Apollonarius, 310-390년)의 해결(알렉산드리아학파)

그는 성육신을 아타나시우스처럼 비의적으로 다루지 않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취급하려고 하려다가 참 신과 참 인간의 결합으로서의 성육신을 부정하게 된다. 예수의 인성을 부정한다. 그는 아타나시우스처럼 신 자신이 사람이 되었고 죽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모사타의 바울이 가르치는 군주신론이나 양자론을 거부한다. 예수 안에는 두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신적 로고스라고 하는 하나의 본성만이 존재한다. 예수의 영적 삶, 그의 자유, 그의 사상은 로고스-신의 그것들로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의 육체인 것이다. 인간 예수는 구원의 주체도 될 수 없고(죄인에 참여한 인간성을 가지고는) 예배대상이 될 수 없다. 예수가 구세주라면 그는 인간일 수 없다. 그래서 참다운 예수의 인간성이 부정된다. 그러나 예수가 우리 인간을 구원하려면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정통 교리에 의하여 그는 이단으로 선고받는다(아타나시우스, 나치안주스의 그레고리와 유사한 생각). 이 사상은 나중에 예수 안에는 하나의 본성만이 존재한다는 단성론으로 귀결된다. 즉 인간의 본성을 흡수한 신적 본성만이 예수 안에 있다는 주장이다.

 

2. 안디옥 학파 (Theodoros of Mopsuestia[AD 350-428])

서방교회와 안디옥 학파는 아폴리나리우스가 대표한 알렉산드리아학파 사상을 반대한다. 안디옥 학파는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고 예수의 인성을 옹호한다: 가) 역사적 예수 중시. 문헌학적, 역사적 관심을 가졌으며 현대 역사비평의 선구자들; 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명석성/합리성 추구(자유주의 신학); 다)이 학파는 동방에 의하여 대표되는 신비적-존재론적 요소가 아니라 윤리적-인격주의적 관심을 대표한다(알렉산드리아는 신비적 초자연주의 경향).

안디옥 학파는 로마(서방교회)와 연합하여 예수의 인간성을 구하는 데 기여한다. 모프수에스티아의 주교 데오도로스는 “그리스도 안에는 인간의 완전한 본성과 신의 완전한 본성이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언자들과 예수를 유비적으로(analogically) 이해하였다. 그러나 예언자들에게 활동하던 영은 제약을 받지만 예수 안에 있는 영은 무제약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격에 있어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의 통일은 마리아의 태내에서 시작되었다. 로고스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인간과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오도로스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theotokos)라고 규정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 때문에-로고스가 인간으로 변화되어서가 아니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의 본성이 예배를 받아야 한다고 승인하였고, 또 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승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방교회의 신학자 힐라리우스는 두 가지 본성의 통일은 부활에 의하여 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사상은 암브로시우스에게 계승되는데 그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역사적 인격으로서의 살(肉)만이고 신적 본성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3.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퀴리로스(Cyril of Alexandria)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는 네스토리우스는 429년에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는 교설에 반론을 편다. 마리아는 Christo-tokos지 theotokos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은 인격적 통일체 안에서 그들의 질을 보존하고 있다. 이것들은 인간 예수 안에서 결합되어 있지만 혼합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예수 안에 있는 한 쪽의 본성을, 신/로고스라는 개념은 다른 쪽의 본성을 나타낸다. 폴 틸리히는 네스토리우스를 비잔티움과 알렉산드리아의 정치적 갈등의 희생자(죄없는?)라고 이해한다. 민중적 종교감정(마리아 숭배와 성육신 기독론에 대한 집착)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견해를 더 선호하는 바람에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이라고 비난받았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퀴릴(Cyril of Alexandria, AD 376-444)은 아폴리나리우스에 접근하였으나 자신은 동일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예수가 인간적 육체와 인간적 혼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인간적 본성에는 실체가 결여되어 있으며 그것은 인격성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신의 옷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퀴리로스는 네스토리우스와는 달리 theotokos 교설을 수용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왕이 된 것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형태를 입고 나타난 신 자신이다. 만일 네스토리우스가 옳다면 우리를 위하여 죽었던 것은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로고스일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고 주의 만찬에서 인간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민중들은 신적인 것의 물리적 현존을 더 바란다-틸리히의 해석).

 

4. 칼케돈 공의회로부터 콘스탄틴노플의 여섯 번째 공의회까지

교황 레오 1세의 교서가 칼케돈 공의회의 기초가 된다(127쪽 인용문 읽을 것). “두 가지 본성 및 실체의 조성은 완전히 보존된 채 그것들은 하나의 인격에서 결합했다. 영광이 비천을 받아들이고 덕이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영원성이 가사성(mortality)을 받아들이고....참 신이 완전하게 완벽한 참 인간성에서 탄생하였다...이리하여 신의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에서 떨어짐없이 하늘의 왕좌에서 내랴와서 이 낮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가지 본성의 인격적 통일로 하여 우리는 사람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왔다고 말할 수 있고, 또한 거꾸로 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고 땅에 묻혔다고 말할 수가 있다.”

칼케돈 신조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외울 것).

 

i)하나이신 [동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며 인간성에 있어서도 [꼭같이] 완전한 그 분을 고백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동의한다.

ii) 주는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이성적인 혼과 인간적인 몸을 가진 참 사람이다.

iii) 신성에 따르면 아버지와 실체를 같이 하는 분이며, 인간성에 따르면 우리들과 실체를 같이 하는 분이며, 죄를 떠나서는 모든 것이 우리와 같은 분이다.

iv) 신성에 따르면 모든 세대에 앞서 아버지에게 낳음을 받고, 인간성에 따르면 신의 어머니인 처녀 마리아에게서 낳음을 받았다.

v) 그리스도는 두 가지 본성에서 알려지지만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며 분할되지 않으며 분리되지 않는 분이다.

vi) 두 가지 본성의 구별은 통일에 의하여 결코 무너지지 않으며 도리어 두 가지 본성의 특성은 각각 보존되고 결합되어서 하나의 인격, 하나의 실체를 이루며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되지 않으며 분할되지 않고 한 아들 다만 독생자로 낳은 바 된 분이며 신의 말씀인 주 예수 그리스도다.

이 결정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분리되는 기초를 갖게 되었으며 동방교회는 이슬람교의 퓨리탄적인 반동의 희생물이 되었다. 에집트나 그 주변의 교회는 단성론적 교회가 지배하였다. 심지어 동방교회는 칼케돈 신조를 단성론적인 방향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428년과 519년 사이에 동서교회 분열 심화되었다.

553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 “두 가지 본성은 이론에 있어서만 구별될 수 있는 것이지 현실에 있어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로고스의 인격성이 인간 예수의 인격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분이 참 하나님이며 하늘의 주시며 삼위 첫 위격이시다.” 이리하여 예수가 영원한 로고스와 동일화한 것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점에 도달한 셈이다. 681년 콘스탄틴노플의 여섯 번째 공의회은 양의지론(두 의지론)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다.

동서방교회의 분열을 촉진시킨 또 하나의 쟁점은 화상(icon) 숭배 논쟁이었다. 그리이스 교회의 신학자 다마스케누스가 화상숭배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이것은 이슬람에 의한 화상파괴라는 반동을 불러일으킨다. 785년 두 번째 니케아 종교회의는 화상숭배를 지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VIII. 거짓 디오니스우스 아레오바기타(6세기 초 익명의 동방교회신학자)

기독교적 신비주의의 고전적 인물이다(참조. 행전 17:34).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자의 매개자다(그의 두 중요한 저작: <신의 이름에 관하여>(긍정신학과 부정신학)와 <위계질서에 관하여[인식과 힘의 단계에 관한 거룩한 체계에 관하여](플라톤주의 철학에 기인)>). 그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프로클로스(AD 410-485)의 사상을 기독교 신학에 접목시킨다. <신의 이름에 관하여>는 신의 절대적 초월성과 초절성을 강조한다. 삼위성과 일체성도 초월하는 것이 신이다. 초실체적인 신은 수를 초월한다. 모든 존재자의 원천이며 본질인 심연의 일자(하나)로부터 빛이 유출한다. 빛은 모든 사물 안에 있는 선이다. 빛은 인식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존재의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틸리히의 해석). 하나로부터 세계의 다양성에로 내려오는 창조적 발전 곧 유출과 통일에로 돌아가는 구원적 발전이 있다고 주장한다. 상승적 발전의 세 단계는 첫

째 정화(윤리, 금욕주의), 둘째 조명(신비적 관조), 셋째 합일 혹은 완성(신에게로 복귀)이다. 이 마지막 상태가 신비적 무지상태다(mystical ignorance)다.

궁극적 존재는 단계적으로(계층구조의 체계 안에서-히에라르키아) 자기를 개시한다. 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전개되는 유출의 과정에서 또는 구원 곧 <하나>에로 돌아가는 이 과정에서 히에르라키아는 최대한 신과의 유사성과 통일성을 가져오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사상의 배후에는 인간 존재의 목적을 신을 닮는 것이라고 보았던 플라톤 사상이 있다.

 

 

기독교 교리사(4월 3, 6일-6th week)-김회권 교수

 

 

초대교회의 교리논쟁; 2- 3장-서방교회의 기독교적 사상의 발전

(틸리히 141-147쪽, 곤잘레스 1권 275-292쪽))

 

1. 터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안

터툴리아누스는 기독교의 역설을 잘 표명한 사람이다. credo quia absurdum est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신의 아들이 죽었다. 이것은 바보스러운 일(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에-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반드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의 행동이 인간에게 역설처럼 보인다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는 원죄의 성격이 성적인 것과 관련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서방교회가 성적인 것을 억합하는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죄의 보편성을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한다. 그는 또한 은총이 인간의 혼에 주입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 카톨릭교회의 비인격저 성례전 교설의 발판을 마련한다(사효론, 事效論). 영적 유물론의 기초를 쌓은 셈이다.

교회론은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에 의하여 크게 발전된다(AD 200/10-285). 주교란 사도의 후계자로서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교회에 속할지 안 속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성직자는 사제서품의 성례전에 의하여 은총을 소유하게 되었고 영을 소유한 사람이 된다고 본다. 성례전은 누가 집전하였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바르게 집전되었는가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격은 문제가 아니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아니고 <구원의 제도>다. 교회인 어머니를 가지지 않으면 아버지인 신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extra ecclesiam nulla salu)(<편지> 73의 21, 전집 795). 교회는 주교직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주교와 함께 있지 않는 자는 교히 안에 있지 않은 자와 같다는 것이다. 주교는 성만찬을 집전하는 사제를 가리킨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차이점들

1) 서방교회는 사변적이라기보다는 행동적이고 실천적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법적으로 다뤄졌다. 세계에 대한 윤리적 관심(자신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이 강하다. 종말론적 관심이 있다. 신비적 비전적 색채가 결여된다. 신에 대한 참여사상은 결여된다.

2) 원죄 관념이 발전되었다. 동방교회의 관심은 죽음과 죽지 않음의 문제요 진리와 오류의 문제였는데 서방교회의 주요 관심은 구원 문제였다.

3)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간성, 그의 겸허한 자세가 강조된다. 그리스도의 영광된 모습이 강조되지 않는다. 고통당하는 그리스도 상이 주목된다(5세기경 성 사비나 성당의 목판양각으로 새겨진 십자가상). 우주의 주, 세계의 심판자 또는 부활자로 영광 가운데 천사나, 인간, 동물이나 식물등과 같이 그의 숭고성에 참여하는 모든 피조물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상을 그린 동방교회와 크게 다르다. 비잔티움(동방교회-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측면이 그의 신적 측면에 흡수되어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을 대표하고 성 사비나 성당의 십자가상은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수난을 강조하는 안디옥의 서방교회적 기독론을 구현한다.

4) 서방교회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조직을 모방하였으며 훨씬 더 중요한 기관이었다.

 

II.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틸리히, 147-181쪽, 곤잘레스 2권 25-75쪽)

1. 그의 사상 배경에 깔린 여러 요소들

1) 그를 기독교 전통과 연결시켜 준 사람은 경건한 어머니의 영향이다. 기독교로 대표되는 새로운 고대(플라톤이 대표하던 옛 고대는 몰락)를 대표하게 된다.

2) 타가스테에서 출생하여 17세에 카르타고로 유학. 방탕한 생활. 아들을 얻는다(아데우다투스). 그러던 중 키케로의 저서 <호르텐시우스 Hortensius>를 연구함으로써 내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자극을 받았다. 자신에게 알맞는 철학을 탐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이 책은 나의 애정의 대상을 바꾸어 놓았으며 나의 기도를 주님께 향하게 하였다...믿을 수 없는 뜨거운 마음으로 나는 영원 불멸한 지혜를 애타게 그리게 하였으며 주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게 하였다.”). 그는 키케로로부터 절충적/실용적 시점을 배운다.

3) 그는 마니교(페르샤의 이원론적 종교[조로아스터의 원리]+플라톤적 영지주의 형태의 경합)의 사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10년 동안). 마니교의 이원론이 죄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악의 원리에다 선과 같은 존재론적인 의미를 부여할 경우, 마니교적 것이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천문학적 질서정연함이 마니교의 이원론을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세계가 악마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교설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리스적 원리(우주=조화)가 동방의 이원론을 극복하게 한 것이다(마니는 216년 바벨론에서 출생. 자신을 선의 원리를 계시받은 여러 선지자들-부다, 조로아스터, 그리고 예수- 중 최후의 계승자라고 자임. 마니 자신으 최고의 계시인 빛과 어둠의 투쟁원리를 터득하였다고 주장. 마니교는 청문자--->완전자의 단계를 거쳐 도의 경지에 이름. 철저한 극기윤리[육체학대] 가르침. 청문자는 다음 생애서 완전한 신자로 환생. 어거스틴은 9년간 청문자의 수준에 머문다. 마니교의 장점은 합리적이고 학문적이나 거기서 약속한 내용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어거스틴은 깨닫는다. 그는 마니교의 가르침과 자신의 연구를 묶어 점성술적 사색으로 발전시켰으나 점성술 자체가 분명한 허위임을 깨닫고 회의주의에 빠진다. 마니교의 최고 지도자 밀레비스의 파우스투스를 만나 토론하다가 큰 실망에 빠짐).

4) 마니교를 떠난 후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에 빠졌다(곤잘레스 2권 31쪽 인용: “아카데미아 철학자들은 인간은 어떤 진리도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가르쳤는데 나는 이들의 가르침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개연주의가 지배한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부정적 종말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 회의주의(이성에 대한 불신과 환멸)에서 계시로 가는 길이 열린다. 객관적인 세계인식 시도가 좌절된 이후에 내면성, 주체성에 대한 주목이 이뤄진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가장 확실한 존재기반과 인식기반을 획득하는 길을 열어준다(데까르트적 경험). 그는 진리인식의 확실성에 이르기 위하여 교회의 권위를 활용하였다.

5)회의주의를 철학적으로는 신플라톤주의의 도움을 통하여 극복하였다. 신플라톤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새로운 확실성, 곧 혼의 내부에 있는 신의 직접적 확실성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신플라톤철학은 소극적 도피의 철학이었다. 신적인 것으로 복귀하는 혼의 상승적 고투를 강조하는 신플라톤철학에 반하여 혼에 신적인 것의 현재적 현존을 강조한다.

6) 회의주의를 교회의 힘을 빌어 극복하였다. 암브로시우스의 도움으로 그는 회의주의의 파산 후에 더 높은 계시의 권위에 굴복하게 된다. 교회는 회의주의에 대한 답변이었기에 교회는 권위를 의미한다(로마의 자기 학생들이 수업료를 내지 않고 잔꾀를 부리는 바람에 그는 밀란의 학생들에게 수사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밀란으로 간다. 거기서 신플라톤학자들과 만난다. 플라톤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플로티누스, Porphyry 등의 저서를 읽으면서 회의주의 극복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용납할 수 없게 만드는 두 개의 장애물을 만난다: 하나님의 비(非)물질적 속성과 악의 문제. 마니교는 하나님에 대한 물질적 해석과 이원론에 입각한 악의 문제 접근.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비(非)물질적 견해와 신플라톤적 방식으로 악의 문제 접근). 그는 두 사람의 전기(마리우스 빅토리누스[신플라톤학자들의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학자-대중 앞에서 기독교 신앙고백]와 안토니의 생애)를 읽고 결정적인 회심 결단에 이른다(밀란의 정원에서 들었던 말: Tole lege tole lege-일어나 읽으라는 아이들의 놀이에 추동되어 로마서 13장의 마지막 단락을 읽는다).

7) 기독교적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8) 아스토텔레스의 영향이 결여되어 있다.

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원론이 아니라 양자를 조정하는 조정의 체계 전개한다.

나. 개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조. 교회 공동체를 강조.

다. 중용의 길-금욕과 성적 환희 둘 다 거부.

라. 수평적 관계에 있는 여러 사물들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강조. 중요한 것은 자연적 사물인식이 아니라 신과 혼의 인식을 강조다.

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학의 결여. 직관주의와 주의주의가 지배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마. 귀납적 경험적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요소 결여.

보설(補說): 어거스틴(아우구스티노스)의 회심은 언제?

밀란의 정원 회심설- 고백록에 의하면 이 지점이 회심지점. 그러나 밀란의 회심 사건 이후의 저술한 책들은 기독교적 저술이 아니라 신플라톤적 입장의 저작들이다(곤잘레스 2권 33-38쪽 읽을 것).

 

2. 아우구스티노스의 신학 사상 II-인식론(틸리히 156-181쪽)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식의 목표와 방법은 “나는 신과 혼을 알고 싶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다(deum et animam scire cupio. nihilne? nihil monino”라는 말속에 집약된다(). 신은 선험적(a priori=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그 존엄성, 실재성, 논리적 진실성에 있어서 인간을 앞지른 존재다. 그는 혼 안에 있는 주-객관이 분열되기 이전의 신의 현존을 추구한다. 아우그수티누적 종교철학은 혼 안에 있는 직접적인 신의 현존(무조건자, 무제약자, 궁극자)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직접 경험을 확실성의 문제와 결부시킨다. 그는 논리적 형식의 명증성이나 지각적 인상의 명증성도 진리인식의 확실성을 구축해 주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는 실재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눈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데까르트적 전향의 선배격). 이 “안”이 혼의 영역이다. 여기서 말하는 혼은 모든 현상의 총체로서 세계를 그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혼만이 유일하고 실재적이 된다. 그에 따르면 혼의 내부에는 그 자신을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즉 변하지 않는 것, 곧 신적인 바탕이 있다. 신에 대한 인식이란 신에 대한 참여적 결합이며 사랑이다. “진리란 인간 혼의 내면에서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외적 물질적 세계의 인식에 의해서는 궁극적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참여와 사랑은 높은 단계의 인식에 이르는 길에 방해를 받는다(플라톤적). 자연과학이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이 자연 속에서 신적 근거를 즉 삼위일체의 근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중세 자연과학의 미발달의 한 원인). 중세의 미술은 자연과학적 정확성을 묘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흔적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즉 자연 안에 있는 신적 바탕을 보여주려고 한다.

 

3. 신론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플라톤 철학과 신플라톤 철학이 다른 어느 철학보다도 기독교에 가까우나 거기에는 성육신의 교리가 없다는 것이 흠으로 지적된다. 기독교는 보편적인 우주적 로고스가 역사적인 형태를 입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성육신론). 인격으로서의 신을 삼위일체적 유비로 설명한다. 그는 인간의 자의식을 기억, 지성, 그리고 의지로 구분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요 아들 하나님은 사랑받는 자요 성령은 사랑하는 힘이다. 그는 위격과 인격의 구별에 있어서 그는 통일성을 강조한다. 신은 존재를 뒷받침하는 힘이며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로 성육신에서 구체화되었고 이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에로스적 사랑이다. 에로스는 온 피조물이 신을 동경하고 그 신과 하나되어서 신적 충만을 영구히 관조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우려고 하는 최고선에의 갈망/사랑 안에 있다. 신의 대표적인 사랑은 아가페다. 그는 무로부터의 세계 창조를 단호하게 주장하였으므로 세계 자체의 신적 지위를 부정한다. 창조이전에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은 모든 존재하는 유한한 것은 그침없이 허무의 위험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틸리히의 존재의 심연; 싸르트르의 무). 세계란 매순간 신의 의지에 의하여 창조되는데 여기서 신의 의지란 사랑의 의지다. 그에게 종교개혁자들의 경우에서처럼 창조와 보존은 동일한 활동이다(하나님의 활동). 세계는 단 한 순간도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과 세계를 두 실체로 고정시키는 이신론적 세계관은 여기서 용납되지 않는다. 신은 세계를 계속적으로 지탱하는 바탕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신은 시공간 등 일체의 범주를 초월하는 지고의 존재다(위디오니시우스의 부정신학이 여기에도 있다). 신은 순수본질이며 지복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면 우리는 신적 존재근거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면 그것은 오도된 사랑이며 신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사랑이다(성애탐닉, 돈 탐닉, 미적 추구의 오도).

 

4. 시간론(고백론 11권)

시간은 사물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창조되었다(기억과 미래 기대 속). 시간은 세계의 형식이며 공간과 마찬가지로 유한성의 형식이다. 시간은 다른 사물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와 시공간은 가능태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의지 안에 있는 한에서만 영원성을 갖는다. 그것들은 가능태로서 신의 삶 속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신이 창조이전에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다(against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스토아주의). 공간과는 달리 시간의 무한성(순환성)을 주장하는 그리이스 사상을 거부한다.

 

5. 인간론

인간 혼은 세 가지 기능, 즉 기억, 지성, 그리고 의지를 가진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의지인데 이 의지는 다른 두 가지 기능 안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의 고유한 속성은 재결합의 욕구다.

 

6. 역사철학

역사적 이원론을 주장한다. 한편으로는 신의 나라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땅의 나라(악마의 나라)가 있다고 하는 이원론이다. 신의 나라란 사랑의 현실화다. 교회는 영적으로 신의 나라에 속하여 있지만 또한 세속의 일부로 존재한다. 성직자가 신의 나라와 세상 사이를 중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 및 세상 통치를 매개한다. 여기서 교회 스스로를 신의 나라로 주장하는 중세의 맹목적 신학이 배태되고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스는 신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긴장관계를 무시하지 않는다. 땅의 나라도 교회처럼 양의서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힘과 폭력과 전제와 강도의 나라임과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인간들 안에 활동하는 악마적인 힘들을 제압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역사에는 세 시기가 있다고 믿는다: 율법 이전, 율법 아래, 율법 이후의 시기. 그는 율법 이후의 시대를 대체하는 다른 세대가 온다고 주장하는 종파들의 입장을 이단으로 본다.

 

7. 펠라기우스(AD 360-420) 논쟁

펠라기우스는 그리이스적 합리주의적 신념을 대표한 스토아주의 교양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 본성의 본질적 요소란 자유다. 펠라기우스의 사상의 주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가) 죽음은 죄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 사건이다. 죽음은 인간 유한성의 표시일 뿐이다. 이그나티우스나 이레니우스도 유사한 사상 전개한다. 그들은 죽음은 자연적 운명이었는데 생명나무를 따먹고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 아담의 죄는 한 사람의 죄일뿐 원죄가 아니다. 죄란 인간에게 비극적 보편성을 띠게 되며 죄는 인간 역사의 운명임을 간과한다; 다) 어린이는 범죄 이전의 아담처럼 순진무구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이 펠라기우스 이론은 현대생물학의 유전이론과 배치된다; 라) 그리이스도 이전에도 죄없는 인간이 존재하였다; 마)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세례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게 한다. 그리고 죄없는 삶을 모범으로 제시하여 금욕적 수행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세례를 통한 죄사함만이 은총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펠라기우스는 선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만 의존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를 하나의 도덕론으로 격하시킨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공격을 받으면서 펠라기우스의 이론은 반(半)펠라기우스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유포된다. 그것은 은총의 불가항력성을 부정하고 인간은 은총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예정론에 대한 부정인 셈이다.

 

8. 아우구스티누스의 죄론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 자유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는 아담의 경우에도 신의 은총 없이는 신을 향하여 그의 뜻을 행할 힘을 갖지 못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타락 이전에도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하였다고 주장한다. 아담이 절대적인 자기고양을 원하다가 이 은총의 도움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한다.

아담의 죄는 유전된다. 모든 인간은 잠재적으로 아담의 생식력 안에 있었고 그의 죄를 짓는 결단에 참여하였고 결과적으로 죄인이 되었다.

9. 은총론

그는 예정론을 주장하지만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결정론자라고 할 수 없다. 그의 경우 하나님의 예정은 심리학적 의지의 활동을 제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신에게로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결과다.

 

10. 교회론

키프리아누스는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를 구원의 기관(제도)로서의 교회라는 개념으로 바꾼다. 교회의 거룩함이란 원래 그 구성원의 거룩한 품격과 그 구성원들간의 교제의 거룩함과 동일시되었는데 키프리아누스는 그것을 성례전의 힘과 동일시 한다. 개별 인간이 개체적 인격으로서 거룩한 것이 아니고 성례전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고 본다. 성례전의 객관적인 거룩성이 인격적 거룩성(주관적 요소)을 대신한다. 이런 입장은 4세기 초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사제 도나투스의 논쟁으로 촉발된 쟁점에 대한 대답이다. 배교한 성직자가 집전하는 성례전이 효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신사참배한 목사가 한 성만찬의 은총 효력 논쟁과 비슷)이었다. 도나투스(AD 313년 죽다)는 교회의 거룩함이란 성례전의 거룩함이 아니라 성직자의 인격과 삶의 거룩함에 의하여 담보된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그스티누스는 이 도나투스 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아주 보수적인 입장(키푸리아누스적 입장)을 견지하였다(고해의 규율; 이단자에 의하여 수행된 세례의 효력; 배교자의 사제 서품의 적법성 유무). 아우그스티누스는 성직자의 내적 인격적 거룩성을 판단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그는 교회의 객관적 거룩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는 교회의 본질적 요소로서 성례전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성례전은 교회 밖에서도 집행될 수 있지만 사랑은 교회 안에서만 있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교인들로 하여금 사제들의 인간적 가치에 의존하는 일을 막아주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품성에 의존하지 않는 구원의 계층체제적 기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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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리사(4월 10, 13일-7th week)-김회권 교수

 

중세교회의 교리 논쟁과 주요 기독교 사상가(틸리히 4장 중세교회)

 

I. 신학의 기본 자세: 중세를 이상화하지도 말고 멸시도 말아야 한다. 중세는 복잡한 시대였다. 중세는 네 시기로 구분된다.

1)이행기(600-1000년). 600년에는 그레고리 1세 교황의 시대로서 옛 것 보존의 시대였고 새 것 수용의 시대였다. 새로운 민족이 기독교문화로 편입되던 편입의 시대였다. 9-10세기는 암흑시대라고 불린다.

2)중세 초기(1000-1200년)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대였고 고대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시기다.

3)중세융성기(1200-1300년)는 중세의 기본주제가 발생되는 시대였다.

4)중세말기(1300-1450)는 중세 문화 해체기다. 문예부흥이나 종교개혁의 기초가 되는 시기다.

이 네 시기 모두다 세 가지 신학적 기본자세에 의하여 지배된다.

가. 스콜라주의: 삶의 모든 영역을 신학의 대상으로 삼는 자세로서 예배, 예전, 교회의 종교예술, 교회건축, 음악 등 모든 요소에 중세신학은 스며든다. 이 모든 분야들은 스콜라신학이 대중들에게 도덕적 영향을 끼치게 하려고 분투한 영역이었다. 중세의 모든 창조활동(교회예술, 건축)은 누미노제적인 감정(성스러운 것과의 접촉경험)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나. 신비주의: 스콜라신학의 이상은 신적인 것과의 합일이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개인이 신적인 것의 심연에서 사라지게 되는 절대적 동방적 신비주의나 플라톤적 신비주의와 구별된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현존하는 하나님과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성서주의: 중세 말기의 특징. 성서를 기독교 실천의 터전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은 스콜라주의에 반대하는 반동운동으로서 종교개혁을 준비시키는 운동기반이 된다. 이 성서주의 때문에 중세말기에 평신도로 하여금 성서를 읽도록 하였다. 성서주의는 스콜라주의와 신비주의와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또 한편 놀랍게도 공존하기도 하였다.

요약: 스콜라주의와 신비주의는 교회에 봉사하였으며 성서주의는 이 둘에게 성서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숭실대 기독교교리사 5월 17일 강의 보충자료(김회권-5월 24일)

 

II. 스콜라주의(틸리히 옛 책 188쪽= 새 책 220쪽)

1. 권위(교회의 전통)와 이성

이성은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상충하는 교회 전통들과 교리들과 공의회 결정들-그것들은 때로 상충되고 모순되어 보이기도 하였다는 점이 전제-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조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다양한 결정들과 신조들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예>와 <아니오>방법(변증법)이 사용되었다. 중세시대에는 이것을 변증법이라고 한다. 중세에 있어서 이성은 이 변증법적 활동을 수행하는 도구요 기관이었다. 이런 변증법적 작업을 잘 수행한 사람은 피터 롬바르드(1100-1160)()였다.

이성의 다음 기능은 이런 명제집에 담긴 교리들을 다시 해석하는 일이었다. 신앙의 전통 안에 담겨져 있는 전통의 의미를 탐구하고 해석해 내는 일이었다. 아퀴나스가 이런 기능을 잘 감당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통(계시)의 의미를 인식하기 위하여 이성을 손상시킬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전통의 내용은 합리적 개념(이성)에 의하여 파악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성과 계시(종교적 권위)의 통합은 중세말기에 가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둔스 스코투스나 윌리암 옵 오캄 등과 같은 유명론자들에 의하여 “이성은 권위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성에 의하여 수납되고 수긍되지 않은 권위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복종해야 하는 명령적 권위로 둔갑된다. 이성에 의하여 파악되거나 납득되지 않는 권위(전통)는 이전에 피터 롬바르드나 아퀴나스가 이해한 전통(권위)과는 다른 전통이 되며 이성적인 인간에게 강요된 권위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2. 스콜라주의 내부에 있는 여러 가지 상반된 경향

가. 변증법과 전통(변증법의 최초의 의미: 협의나 대화를 의미. 한 쪽은 긍정, 다른 쪽은 부정을 기능하며 진행되는 대화)

전통에 대한 창조적 의심은 변증법적 사고-교회의 전통을 일부 부정하고 나머지는 발전적으로 긍정하는 방식-에 의하여 심화된다. 그러나 기존 전통을 옹호한 사람들은 <예와 아니오>로 구성되는 이 변증법적 방식을 거부한다. 현대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변증법을 위험시한다. 경건한 전통주의자들은 신학적 변증가들을 위험시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버나드 클레르보 against 피터 아벨라르).

 

나. 아우구스티누스주의(신비주의적 입장)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합리주의적 입장)(13세기 극심한 논쟁): 신비주의적 입장은 플라톤(이데아 실재세계 인정)-아우구스티누스-보나벤투라-프란체스코 종단이 대표하고 합리주의적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도미니크 교단이 대표한다.

다. 토마스주의(Thomism, 도미니크 교단)와 둔스 스코투스주의(프란체스코교단)(브란 브란샤드 대 앙리 베르그송)

“지성과 의지 중 어느 것이 더 궁극적(혹은 구극적인)인 원리인가?”하는 논쟁이다. 전자는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주장하고 후자는 의지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주장한다. 신은 제 일 원리인가 제 일 의지인가? 주의주의자들에 의하면 “세계는 본래 의지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때문에 그것은 비합리적이며 그래서 세계는 다만 경험적으로만 탐구된다.”

 

라. 유명론과 실재론(관념론)(=신비적 리얼리즘=이상론)

실재론자들은 보편적인 것이 실재성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유명론자들은 개체적인 사물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유명론자들은 실념론에 반대하여 낱낱의 사물이나 개인만이 존재하며, 보편적인 것은 여러 모양의 사물의 집단에 붙여준 공통의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틸리히는 극단적인 실재론을 부정하는 그 자신이 온건한 실재론자임을 인정한다(틸리히 자신이 존재의 힘을 신봉하기에). 하지만 실제상황에서는 유명론을 옹호해야 할 필요를 시인한다.

중세에 있어서 유명론의 직접적 위험은 보편적인 것(가족, 국가, 조합 등)을 해체하는 데 있다. 한편 실념론의 위험성은 개인의 가능성(잠재성)을 발전시키기 못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실념론에 대한 유명론의 반동은 인격(개별)의 존중 및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다.

 

마. 범신론과 교회의 구체적 현실

범신론은 극단적인 실념론의 발전의 한 양상으로 개인/개체의 완전한 소멸을 지향하는 신비주의 형태로 나타났다(Averroism). 아베로이스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적 활동은 능동적 이성에 참여하는 수동적 이성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것은 독립적 인격적 기능이 아니고 비인격적 혹은 초인격적 기능이다. 범신론적 경향을 띤 또 하나의 사상은 엑크하르트형 독일 신비주의다. 아베로이스와 마이스터 엑크 하르트의 신비주의에게서 나타나는 범신론은 공식 교회에 의하여 거부된다.

 

 

중세교회의 기독교 사상-중세종교의 여러 가지 힘

 

중세기독교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여러 가지 힘들 중 일곱 가지 힘들이 주목할 필요한 있는 힘들이다: (1) 위계질서(hierarchy)로서 지탱되는 성직자 집단(거룩의 위계질서- 신적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는 신적 질서)은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종교적인 힘이다. 그것은 성례전적인 실재를 대표하는 것으로 국가, 교회, 문화 전체가 성례전(일곱 가지)을 통하여 지탱되고 있다. 출생, 세례, 입교-견진, 서품(성직임명), 고해성사, 직업종사, 혼배성사, 성만찬, 종부성사(장례식) 등 인생은 일곱가지 성례전에 의하여 유지되고 진전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을 매개하는 위계질서의 대표자인 성직자집단이 국가권력에 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세속권력과 교권과의 갈등이 초래되었다. 교회가 세속적인 기능을 스스로 부과함으로써 교회는 세속화의 위험에 항구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2) 이 세속화의 위험에 대항하는 다른 중세교회의 힘은 수도원제도였다. 수도원 제도는 세계변혁을 지향하는 세계부정의 힘이었다. 노동, 학문, 문화, 예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서방교회의 수도원은 신비주의나 금욕주의로 빠져들지 않고 세계변혁적 참여의 길을 걷는다(베네딕트 수도회, 프란체스코 종단, 도미니크 교단의 영향력은 걸출). 아프리카 지방의 수도사들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관개시설 건설, 습지대 개간사업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현실의 구체적 필요를 채우는 봉사단체였다. 틸리히는 현대 공산주의는 중세 수도원 이상을 세속화시킨 하나의 변종이라고 본다; (3) 종파운동(소종파운동)은 신학적이거나 교의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 차원의 힘이었다. 종파운동은 교회의 주장과 그 실재(현실모습) 사이의 분열을 향한 비판적 각성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신부나 사제의 서품(성직임명)이나 성화의 이상을 그들의 소집단에서 실현하려고 분투하였다. 그들은 수도원적인 급진주의를 삶의 많은 영역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4) 이 종파운동과 연결된 것이 평신도 운동이었다. 수녀와 수도사를 위한 수도단체가 아닌 평신도를 위한 수도단체가 결성되었다. 종교개혁의 길을 닦는 역할을 감당; (5) 교회사의 위대한 개인적 인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힘이었다. 성인전설의 대표자들로서 중세교회의 성인적 삶에 대한 열망을 분출시킨 사람들이다; (6) 민중의 경건과 그것이 빚어낸 미신적 형태가 여섯 번째 중세기독교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미신적이라는 말은 유한한 대상을 신적인 것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동일시의 현상은 거룩한 유물 및 성물의 숭배나 기적신앙 속에 나타나 있는데 여기서는 유한한 사물이 신적인 그 자체로 보았다; (7) 중세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또 하나의 종교적 힘은 마성적인 것의 경험이었다. 마성적인 힘은 교회가 극복하여야 할 하나의 영적 실재였다. 마녀 사냥, 축사(exorcism)는 교회의 중요한 하나의 일과였다. 성수를 온 몸에 뿌리는 것은 악령추방 사역이다. 교회는 그것의 안팎에서 활동한다고 믿어진 마성적인 힘의 현존에 대해 끊임없는 불안 속에 살았다(마녀재판이 시작된다).

 

중세시대의 교회의 위치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삶 전체의 터전이었기에 특별한 교회에 관한 교설이 발전되지 않았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살펴보면 중세교회론의 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는 아니며 하나님 나라와 땅의 나라의 혼합물이다. 교회 안에 있는 은총을 매개하는 성례전이 있다는 점에서 교회=하나님 동일시 가능하다. 성례전을 집행하는 사람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인 거룩의 힘이 바로 성례전이었다. 그러나 성례전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불완전하기에 교회는 비판자들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비동일시되기도 한다. 국가는 폭력의 소산물이지만 또한 악마적인 혼돈을 억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교회가 국가기관을 접수하고 나서부터는 교회는 더 이상 사탄의 나라가 아니다. 기독교 영향권에 들어오기 전에 게르만 족은 국가권력임과 동시에 종교권력이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영적으로 국가를 옛 세력으로부터 무장해제를 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봉건적 주교 및 그들과 제휴한 영방군주에 대한 저항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 하급 성직자, 교황 그레고리 7세(“교회는 영혼 국가는 육체”), 그리고 반봉건적 대중, 북이탈리아의 대중들. 봉건질서의 대표자인 왕 자신도 기독교의 대표자이자 수호자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성직임명권이 누구에게 귀속?). 그레고리 7세와 하인리히 4세와의 갈등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대적 의미의 국가와 교회의 갈등이 아니다. 그레고리 7세는 <두 자루의 검[종교와 정치의 검들]> 사상에 의하여 정치권력도 교권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체가 영혼에 복종하듯이. 이런 사상의 집대성 문서가 1302년 보니파키우스 8세의 에 잘 표현.

얼마 후에는 이런 교황권과 황제(신성로마황제)권 둘 다로부터 독립하려는 세력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국가세력이다. 불란서의 필립대왕의 아비뇽 유수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영국 역시). 민족국가와 더불어 교황과 대립각을 세운 집단은 민족국가의 주교들이다. 교황주의에 대항하여 주교의 협의체를 대안으로 세우는 공의회주의(니케아공의회가 원조 공의회주의)를 주창한다. 그러나 민족국가의 등장은 유럽의 통합을 깨는 데 일조하였으므로 다시 하나의 강력한 교황적 군주지배주의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런 민족국가내의 반교황적인 주교세력 외에는 종파운동이나 평신도 운동도 반교황주의를 전개한다. 윌리암 옵 오캄은 독일민족교회의 편에 서서 교황의 보편적 군주지배와 싸웠다. 존 위클리프의 영향력이 최대였다(성서에 입각한 율법에 근거하고 영국왕의 지원을 받아 대항). 교황의 보편적 군주지배는 종교개혁에서 종식된다. 교황 및 성직자의 거룩위계질서가 붕괴되어 국가의 대표자가 교회의 대표자가 되었다(독일 민족국가는 국가원수가 대표). 프로테스탄트 교는 다시 국가권력의 힘 아래 놓여지게 된다(독일, 네들란드. 영국의 경우).

 

중세의 성례전

중세 가톨릭교회는 세계사에서 가장 큰 성례전적 제도였다. 이것은 교회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의 초월적 실재(하나님의 거룩한 구원)가 문화와 사회를 규정짓는다는 말을 의미한다. 성례전은 성스러운 것 하나님의 초월적인 실재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행위와 물체를 통하여 매개된다는 믿음 안에서 효력을 가진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총의 선물이 위계질서를 구축한 성직자들 집단에 위탁되어 있다. 교회는 구원의 창고다. 성례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상시적으로 육신이 되어 인간에게 제공된다. 물, 빵, 포도주, 안수 등은 초월적인 힘과 구원의 매개물이다. 죄로 인한 모든 해와 상처를 치유하는 수단이 성례전이다. 성례전은 치유의 수단으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제공된 가시적 감각적 표시들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불가시적인 은총이 가시적인 사물의 덮개에 싸여 작용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일곱 가지 성례전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세례와 성만찬이었다. 12세기까지는 훨씬 많은 성례전이 있었으나 후에는 7성사로 축소되었다(개신교 2, 영국은 3). 가톨릭의 7 성사는 개인경건의 핵인 고해성사, 세례와 성만찬, 서품성사, 견신례, 혼배성사, 종부성사다. 성례전이 효력을 가지려면 그것은 자료, 형상(집행에 따르는 언어), 의도를 가져야 한다. 성례전은 혼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화의 도구이며 이 성례전을 이용하여 하나님은 신자의 혼 안에 궁극적인 변화를 촉진시키고 창조한다. 성례전은 지성을 신앙에로, 의지를 희망에로, 그리고 존재 전체를 사랑에로 이끈다. 성례전은 집행자의 인격이나 도덕에 근거하지 않는 객관적인 효력을 가진다. 유사마술적인 힘을 가진다. 삶 전체가 성례전의 영향 아래 놓인다: 세례에 의하여 원죄 소멸, 성찬-가벼운 죄 소멸, 고해성사-죽어 마땅한 죄 소멸, 종부-남은 죄 소멸, 견신례-교회의 전사로 만든다, 서품-성직자로 만든다, 혼배-가정을 하나님께 귀속시킨다. 미사의 성례전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반복이다.

 

 

 

기독교교리사(4월 17, 20일-8th week)-김회권 교수

 

11-12세기 중세신학의 주요 대표자들(옛 책 207쪽, 새 책 246쪽)

 

1. 칸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제 1장). 그에게 신앙은 한 개인의 특수한 신앙행위를 의미하지 않고 살아있는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전통이야말로 신학의 터전이다. 안셀무스에 의하면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기독교 메시지에 복종시킴으로써 영원한 진리의 내용과 진리의 여러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복종 가운데 신적인 은총이 우리에게 진리의 경험을 얻게 한다. 즉 신에 대한 인간의 우선적인 복종이 신적인 은총에 대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성서 안에서 증거된 경험이다. 성서적 주장에 대한 동의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신학자는 진리의 경험(성서적 주장에 동의하고 복종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이 이해에 의존하지 않고 이해가 신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하나의 전체체계를 지향하는 데 그것은 중세적 사상의 특징이다. 모든 사상을 연관성있게 서술하려면 조직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안셀무스는 삼위일체론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오거스틴적 입장으로 변증법적 유일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삼위 일체 하나님 안에 작용하는 운동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신이란 살아있는 신이기에 그 자체 안에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신은 자기자신과의 죽은 동일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아있는 분리인 동시에 자기자신과의 재결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삼위일체의 오묘한 신비는 변증법적 사고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다. 이 묘의는 이성 자체 안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지 이성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틸리히는 이런 안셀무스의 입장을 신율적(theonomism)이라고 부른다(그것은 자연과학적 이성의 자율성을 지지하지도 않고 거의 마술적으로 작용하는 전통에다 맹종시키는 타율주의적 입장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신비로움을 받아들인다. 이성 자체가 신비적인 영역이라고 본다). 신율주의는 로고스에다 깊이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이성과 신비는 마치 실체와 형태처럼 한 데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율적 태도는 그의 신존재 증명에서 잘 드러난다. 안셀무스는 두 가지 신존재 증명에 착수한다: 우주론적 증명(현실은 유한성에 의하여 무한한 것을 가리킨다[211쪽 첫 단락의 일부 인용할 것]. 우주론적 존재증명의 한계 의식)과 존재론적 증명(더 이상 상정할 수 없는 큰 것이 모든 존재 안에 있다. 지성 안에는 존재보다도 더 높은 존재형식이 있다[213쪽 단락 중간]. 지성 밖의 현실에 있는 존재다. 무제약자다). 그의 속죄론은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었나?>(Cur Deus homo?)라는 책에서 논의된다. 그리스도 고난의 해명시도다(216-217쪽 읽을 것). 법률적 계량적 속죄론이다. 형벌대속론의 집대성이다(만족설). 한국기독교 보수적인 입장은 이런 형벌대속론에 과도하게 경사되어 있다.

 

2. 피터 아벨라르(12세기 사람): 안셀무스에 비하여 그의 속죄론은 도덕감화설이다. 중세적 사고에 있어서 주관(주관주의)의 극을 대표한다(객관의 극은 안셀름).

가) 변증법적 사고의 사람이었다. 예 속에서 아니오를 본다. 신앙의 신비성과 명료한 이해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예와 아니오의 신학>). 그는 먼저 물음을 제기하고 다음으로 서로 반대되는 대답을 내놓고 토의하고 마지막으로 확실한 대답을 제시한다. 모든 중세 스콜라주의자들은 그의 예와 아니와의 방법을 계승한다(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도그마의 상위성과 모순성을 해결하려고 한다. 나)전통 속에 담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전통 옹호. 다) 강한 내성과 내면성찰의 사람(<나의 불행의 역사>)-신앙을 가진 동시에 신앙을 가진 자신을 분석한다.

라) 예와 아니오 방법의 각론

*첫째 단계는 교부나 교부회의의 교령이나 성경 본문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이 참된 것인가 아닌가를 확정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방식으로 실제로 모순처럼 보였던 것을 모순이 아닌 것임을 밝힌다.

* 문헌학적 단계의 연구다. 말의 엄밀한 연구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모든 이론이나 교설은 성경의 권위를 그것의 궁극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다.

아벨라르의 주관주의는 윤리학에서도 발휘된다. 칸트의 원조격이다. 선의지만이 선하다는 것이다. 그의 기독론은 예수의 인간성에 치중한다(적도의 성자라고 불린 독일 자유주의신학자 알버트 슈바이처의 입장).

 

3.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1-1153)

피터 아벨라르의 가장 격렬한 적대자(틸리히 옛 책 225쪽 이하 읽을 것). 그러난 그 자신도 신비주의적 형식의 주관주의를 표방한다. 아벨라르와 마찬가지로 신앙을 의지에 의한 선취라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주의주의다. 신앙이란 모험이며 자유다. 베르나르의 신배주의는 두 가지 내용을 갖고 있다. 첫째, 성경이 알려주는 예수상인데 예수상은 신적인 것을 투시할 수 있게 해 주는 상이다. 또한 신비주의란 예수의 비천과 겸손에 참여하는 것이다. 앗시시의 프란체스꼬나 아켐피스의 신비주의의 선구자다. 신비주의는 삼 단계를 거친다: 숙고-지성소 입성(관상), 탈자(자기 밖에 있는 것).

 

4. 성 빅톨 위고(1096-1141)(227쪽)

파리 어거스틴 수도원의 원장 출신. (<그리스도교 신앙의 성례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성례전의 조직신학적 체계 완성한 사람이다. 그는 “성례전은 물질적인 성물로써 유사성에 의해서 불가시적이고 영적인 은총을 표현하고 성찬 제정의 말씀에 의해서 이것을 상징하고 성화에 의해서 이 불가시적인 영적 은총을 내포한다’라고 했고, 그를 통해 성례전의 수를 일곱으로 규정짓게 되는 한 단계가 마련되어 피터 롬바르드에가서 최종 완결된다. 세계를 신적인 것의 성례전적 표현이라고 분다. 모든 것은 불가시적인 신적 근거의 가시적 구현이다. 하나님의 일은 일곱가지 성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조건의 일(Opera conditionis)과 보상의 일(opera reparationins)이다. 그는 감각적 사물만을 성례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신의 행위도 성례전이라고 부름으로써 세계를 신적인 것의 성례전적 표헌이라고 부른다. 범신론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는 성찬에 임재하는 그리스도를 실재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다. 또 그는 위-디오니시우스의 신플라톤적인 신비주의를 끌어들여서 상향적인 단계를 밟아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5. 플로라의 요아킴(1145-1202)

역사에 대한 성례전적 해석을 시도한 사람이다. 종파적 혁명적 역사해석의 창시자다. 그는 세대주의적 연대구분으로 유명하다. 1000년 왕국 개념이다. 아버지 시대(아담-세례요한-예수), 아들 시대(웃시야 왕-1260년대까지), 3시대는 베네딕트 시대(수도원 창설의 원조)부터-당대, 영의 시대다(229쪽). 각 시대는 서로 겹쳐 있다.

중세신학의 정점-13세기(틸리히 233-284쪽)

 

1. 여러 가지 전제

11-2세기의 위대한 기독교사상가들: 안셀무스(객관적 사변적 사상가. 이 때 사변적이라는 말은 실재의 기본구조의 탐구태도를 가리킴), 아벨라르(주관적 사변적 사상가), 베르나르(신비적 사상가), 성 빅톨 위고(성례전적 교회적 사상가), 요아킴(고고한 종파적 혁명적 사상가), 그리고 13세기에 영향을 끼친 피터 롬바르드(조직적 변증법적 사상가. 독창성은 결여).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Sententia>는 중세의 조직신학의 교과서다. 교부들의 신앙명제들을 체계적으로(차이점 논의 및 해석) 정리한 글이다.

대표적인 13세기 신학자: 보나벤투라(오거스틴, 앗시시의 프란체스코 정신 계승), 아퀴나스(가톨릭 고전적 사상가-교황에 의해 공인), 둔스 스코두스. 이들은 13세기 안에서 또 구분되는 세 시기를 대표한다. 13세기 신학의 형성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상사적 역사적 전제들이 있다.

가) 십자군이다(234쪽): 다른 문화와의 만남과 접촉의 시기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만남이 이뤄진 계기가 된다. 이 외에 제 3의 문화가 있는데 그것은 아라비아 문화에 의하여 소개된 그리이스 고전문화다. 13세기 이 세 문화의 혼융과 융합에 의하여 단련된다. 기독교회의 새로운 자기 이해를 초래하였다(자기 반성과 성찰).

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 전집의 발견이다. 아우구스티누스적 방법론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 철학적 대안이 발견된 것이다.

다)새로운 형태의 (탁발) 수도원 탄생. 종교적 실체가 일반 민중세계로 침투하게 된다. 이 수도원이 13세기에 신학적 발전을 걸머진 담지가가 되었다.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용하였다.

라)프란치스꼬:

베르나르와 마찬가지로 개인경험 강조.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행동적인 사랑의 삶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창조. 그는 모든 자연과 형제적인 결합의 감정을 발견. 인간의 계층질서뿐만 아니라 해, 달, 동물도 신의 사랑을 나타난다. 즉 자연의 새로운 발견. 르네상스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평신도 기혼자들을 중심으로 평신도 모임(셋째 모임)을 만들어 거룩한 것에 참여하도록 개방하였다. 그는 이 모임을 교황의 권위 아래 두었다(Giotto의 그림: 교황 이노겐티우스 3세와 프란체스코와의 만남). 이 평신도 운동은 나중에 프란체스코와 요아킴(혁명적 사상가)의 결합을 강조하는 급진적 제자들에 의하여 로마교회로 볼 때 위험한 운동으로 발전한다. 또한 프란체스코의 자연 포용과 자연중시 사상은 로마 교회의 초자연주의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프란체스코에 비하면 도미니크는 덜 독창적이다. 그는 설교자요 전통적 신앙의 옹호자다. 그런데 신앙옹호는 회심이나 협박에 의하여 즉 변증학이나 선교활동이나 그리고 종교재판(나중에 프란체스코 교단이 계승) 등에 의하여 이뤄진다. 이 교단의 조정적인 변증 신학이 아퀴나스에 의하여 집대성된다.

도미니크회는 아리스토텔레서-지성을 중시하고 프란체스코회는 오거스틴-의지를 강조한다. 이 프란체스코회의 주의주의가 도미니크회의 주의주의를 무너뜨려서 둔스 스코투스나 윌리암 옵 오캄 같은 유명론자가 배출되었다.

 

2. 신학적 발전의 추진력

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자연과학, 정치학, 윤리학 등 모든 영역에 걸친 하나의 체계임을 발견하게 된다.그 당시 로마 교회의 기준으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은 삶의 전 영역을 다루는 세속적인 종합사상이었다.

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이론, 인간론과 신론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구조의 존재론적 분석의 바탕 위에 구축된다. 신에 대한 내적 경험으로 시작된 오거스틴적 사상과는 구별.

다) 그의 새로운 인식론-감각적 경험(자연관찰 등 개별경험의 우위성)의 우위성 확보. 오거스틴 추종자들은 직접적 직관에서 출발한다. 오거스틴은 자기를 신의 중심으로 보며 여기에서 세계관찰을 착수한다(신은 인간 인식의 맨 처음이라고 주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세계를 관찰하고 여기서부터 추론하여 신적인 것에 도달하려고 한다(신은 인간 인식의 맨 나중이라고 주장)(옛 책 238쪽, 새 책 284쪽: 오거스틴주의자 및 보나벤투라의 세계인식의 첫 순서로서의 신인식[혹은 신적 빛=보편적 범주]에 대한 인용문 필독). 오거스틴적 세계인식에 의하면 자립적인 세계인식이 불가능하다. 모든 인식은 신비적이다. 이미 피조물이 아닌 신적 빛이 인간의 혼에 이미 와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간이 그 빛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신적 빛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인식이라는 것이다(이것이 <내적 빛> 이론.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즉 데까르트나 라이쁘니쯔 등의 견해에 재출현). 틸리히는 이런 입장을 신율적인 입장이라고 정리한다. 모든 추론에 앞선 제 일 원리를 인정하는 것이 신율적인 입장이다.

아퀴나스는 인식행위에 있어서 신의 직접성을 배제한다. 그는 인간인식이 신의 역사인 세계에 대한 인식을 거쳐서 신의 인식에로 이른다고 주장한다. 오거스틴주의자들이 말하는 혼 안에 활동하는 빛은 신의 일부가 아니라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이런 아퀴나스의 길이 과학적 지식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지혜 곧 구극적 원리의 인식, 즉 신인식을 파괴하게 될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한편 아퀴나스는 감각적 체험에서 이끌어낸 모든 귀결들은 비록 논리적으로 옳다할지라도 신에 대한 참된 확신을 낳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 누가 이 자율적 신인식의 참됨을 보증하는가? 그는 교회라고 답한다. 그는 신율적 신인식보다는 교회의 권위에 보증되는 자율적 신인식을 옹호한다.

둔스 스코투스는 조정적 아퀴나스와는 달리 유한한 것의 인식을 통하여 무한한 것의 인식으로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양자 사이에 무한한 틈이 있음을 인지한다. 그는 프란체스코회가 주장하는 "구극적 원리"들(transcendentalia)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리하여 스코투스는 두 가지 실증주의를 제시한다: 교회적 실증주의(교회가 제시하는 신인식의 길을 받아들이는 방법)와 경험적/귀납적 실증주의.

스코투스가 발견한 유한과 무한의 틈은 유명론의 아버지격인 윌리암 옵 옥캄에 의하여 확대되었다. 그에 의하면 신에 이르는 길은 교회와 성서의 권위에 복종하는 길이다. 그런데 그것은 신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활동할 때만 작동할 수 있는 길이다. 그가 보기에는 신이 제 1원리라고 보는 신율적 인식은 과학적 자율과 교회적인 타율(강제 회심 및 신조 강요)에 의하여 붕괴되었다. 결국 이 논쟁은 이성과 계시 사이에 있는 논쟁이다.

 

보나벤투라: 이성은 그 자체 안에 계시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성이 그 안에 진리의 여러 가지 원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성은 계시를 파악할 수 있는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

(토마스의 스승격인 알베루투스[혹은 대 알버트]의 학설을 잠간 살펴보자: 그는 신학과 철학을 구별하는 입장을 취하는 데 철학 분야에 있어서 알버트는 모든 학설은 이성과 관찰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합리주의자였으나, 신학 분야에 있어서는 이성의 한계성을 주장하였다.)

 

스코투스: 이성은 계시에 있어서 부적합하다.

 

옥캄: 계시는 이성과 아무런 접촉점도 없이 병립해 있다. 중세말기는 이미 신율적인 시대가 아니라(교회의 권위가 이성과 충돌없이 행사되는 것이 신율적인 시대-이성이 스스로 신적 권위에 굴복) 자율적인 시대, 혹은 교회의 권위를 폭력적 장치로 강제하는 타율적 시대로 치닫고 있었고 종교개혁은 이 간격을 새롭게 통합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신율적인 사고의 복귀운동이다.

 

3. 중세의 신론(옛 틸리히 책 243-284쪽; 새 책 289-339쪽)

 

중세 신 관념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가) 제 1존재(prium esse) 혹은 제 1 원인(prima causa): 모든 존재하는

피조물의 창조적 근거를 의미.

나) 실체(substance): 신은 지적으로 이해가능한 존재로서 Intellect라는 주장 이다. 이 때 인틸렉트(주관과 객관의 일치를 이룬 자)가 바로 실체다. 신은 앎 (인틸렉트)이라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적 그리스적 전통). 토마스 아퀴나스적

전통에서는 앎만이 인간의 주요 특징이자 신의 첫째 가는 특성이다. 앎에 의하 여 의지는 자의(arbitrary will, 姿意)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앎이란 보편적으로 참된 것과 보편적으로 선한 것에 대한 통찰력이다.

다) 의지(오거스틴적 전통): 신은 초합리적 의지다. 모든 존재의 바탕이 되는 창조 적 능력을 가리킨다. 의지로서의 신은 사랑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지성에 대하 여 의지의 우위성을 강조. 세계는 지금 이런 세계로 반드시 존재할 필요가 없 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를 이렇게 지탱시키는 질서의 힘보다 더 강력하고 초합 리적인 절대적 힘이 있는데 그것은 신의 의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연역해서 신에게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코투스의 입장 은 안셀름의 화해론(속죄론)과 대립된다. 안셀무스는 속죄의 길을 신과 그리스 도와 인간과의 필연적 관계로 서술한다. 신이 <의지>로서 파악되는 순간, 세계 는 계산 불가능한 것이 되며, 불확실한 것이 되며, 불안정한 것이 된다.

 

4. 아퀴나스(1225-1274)의 주요한 이론

<신학대전>, 롬바르드의<명제집>에 관한 주석의 집필자.

가)은총과 자연의 이중 질서(프랜시스 쉐퍼, <이성으로부터의 도피>를 참조하라): <은총(초자연)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오거스틴을 마니교식으로 곡해하는 자들(그들은 은총이 자연을 지양하고 억제하고 부정한다고 주장)에게 대항하는 명제다. 아담은 창조될 때 자연적 은총과 초자연적 은총을 동시에 받았는데 그가 죄를 지을 때 잃어버린 것은 초자연적 은총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점이 개신교와 다르다. 개신교는 타락할 때 모든 은총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지성과 의지의 전적 타락을 강조한다. 이에 비하여 아퀴나스는 지성은 손상되지 않고 의지만 타락하였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토마스는 이성이 계시를 파괴하지 않고 완성시킨다고 본다. 틸리히도 동일한 입장이다. 계시받은 이성은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자신을 초월한다. 그런데 토마스가 대표하는 카톨릭에서는 세속세계(자연세계, 이성)는 초자연 세계(성례전, 성직자의 위계질서구조)에 의하여 매개되고 중보되어야 한다(구원의 경지로 견인되어야 한다). 수도사의 일(초자연)은 가정부의 일(자연)을 은혜와 구원의 세계로 매개해 주고 끌어올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루터는 둘 다 동일한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신존재 증명의 노작: 이상의 토마스의 인식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노작을 낳는다.

*존재론적 증명을 거부하는 토마스: 토마스 이전에(안셀무스) 존재론적인 신증명이 있었는데 아퀴나스는 그것을 거부한다. 존재론적인 신증명은 인간 정신의 중심에는 신적인 것의 선험적(a priori)인 현존-무제약적으로 참되고 선한 것-을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의식(신의식)은 모든 인식에 선행하며 신인식이야말로 제 1 인식이요 유일 절대의 확신한 인식이라는 것이다(플라톤-어거스틴-안셀무스-프란체스코 수도회적 입장). 토마스는 이것을 거부한다(스코투스도 마찬가지로 거부). 대신 그는 세계인식에서 신인식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우주론적 신존재 증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주론적 신존재 증명 착수하는 토마스: 세계는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서 최고 존재를 상정하는 데로 이끌려 간다는 주장이다. (가) 운동-제 1 동자, 부동의 동자(the unmoving Mover)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피조물을 움직이는 동자다. (나) 결과: 모든 결과의 원인이 되는 원인이 바로 신이다. (다) 우연: 모든 존재하는 우연적 존재들을 지탱하는 것은 궁극적 필연성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연을 붙들고 있는 궁극적 필연성이다. (라) 목적: 자연과 인간 속에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 (마) 신은 가장 완전한 존재라는 플라톤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가치판단의 궁극적인 근거인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가치론적 증명(도덕적 증명)이다.

 

보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의 주제(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ed. F. L. Cross and E. A. Livingstone, 1974, p. 1322)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사상의 결정체로서 논문, 신조들의 해설, 질문제기 등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Prima) 그 자신 안에서 고려되는 하나님과 창조의 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을 다룬다. 2부의 전반부는 인간의 목적지로서의 하나님을 다루고 2부의 후반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간의 귀환을 다룬다. 3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인 그리스도를 다룬다. 1-2부는 1265-1271년 사이에 저작되었고 3부는 1271년 이후로 계속적으로 저작되었다. 3부의 결론부는 성례전과 종말론적인 정황들을 다룬다.

 

5. 윌리암 옵 오캄(Ockham)(1300-1350)-유명론의 아버지. 루터의 원조격 학자. 교황청에 의하여 파문당한 학자(1328). 나무의 예. 나무라는 보편적 실념은 존재하지 않고 개별적인 나무들만이 존재한다. 오캄의 실념론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 철학적 함의 이상을 의미하였다. 개별적인 것을 부정하고 보편적인 것에 우선성을 두었던 중세 후기 사고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었다. 중세의 집단주의가 실념론에 기반하고 중세의 개인주의는 유명론에 기반하였다. 중세적 집단주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이라고 보았던 신비적 집단주의다. 옥캄은 신을 <단일 존재>라고 부른다. 이런 유명론의 결과는 게마인샤프트 대신 게젤사프트(이익 자발적 계약공동체)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근대사회의 시작-개별적 인간들의 자발적인 의사가 중요). 보편적 언어나 개념에 의하여 개별자들(개별인간)은 게젤샤프트를 형성한다. 이것이 중세적 보편공동체를 대체한다. 이제 신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란 없다. 옥캄은 독일 황제의 편에 서서 교황과 맞싸웠다. 자율성을 요구하는 국가와 경제의 요구를 옹호하였다. 중세 해체를 촉진시킨 운동력이 유명론에서 나왔다.

 

6. 독일신비주의-에크하르트(257쪽)

중세 해체를 가속화시킨 또 하나의 강력한 힘은 도미니크회 중심의 신비주의다. 에크하르트(1250-1327)가 대표자다. 도미니크회 신비주의자들은 토마스의 신학을 실제로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신을 존재로 파악하고 그 존재를 끊임없이 교류하는 흐름으로 파악한다(옛 책 258-259쪽 인용문 읽을 것). 신은 인간이 먼저 향상되기를 요청하지 않고 소외상태에 있는 인간에게로 다가온다. 이 신적 실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적 정숙, 평정심이 요구된다(루터에게 영향을 끼친 부분). 신에게 도달하는 것은 우리의 활동(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활동은 오로지 신과 인간의 합일의 결과로 일어난다. 그의 사상은 정숙주의와 활동주의의 절묘한 결합. 이런 신비주의는 개인을 서로 떼어놓는 유명론적 고립화에 대하여 균형을 잡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신비주의와 유명론은 둘 다 중세를 해체시키는 데 기여하고 종교개혁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7. 종교개혁의 전야(옛 책, 260-265쪽)

존 위클리프(1330-1374): 평신도 종교원리와 성서주의의 주창자. 오거스틴과 펠라기우스주의를 비판한 브래드위딘에 의존한다. 교회는 선택받고 예정된 사람들의 공동체이지 중세적 계층구조 체제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회는 섞여진 교회(성속혼합교회), 중세교회와 대립하고 있다.” 로마교회는 신의 은총의 절대성과 예정을 강조하는 오거스틴의 영향을 반(半)펠라기우스주의(인간의 선행을 강조하는 입장)에 의하여 추방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위클리프와 브래드위딘이 다시 어거스틴주의적 입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영적 권위는 직책에서 연유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추종하고 모방하는 삶과 인격에 있다고 주장한다(95개조 면죄부 비판의 선구자적인 언급을 한다). 그는 현실의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이것은 교황에 대한 인격적 공격이 아니라 교리적 공격이었다. 그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성만찬, 빵이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피로 실제로 변한다고 믿는다)을 공격한다.

*후스(체코):

*사보나롤라(이태리 플로렌스):

 

5장 트리엔트회의로부터 현재까지의 로마 가톨리시즘의 발전(옛 책, 267-284쪽)

 

I. 트리엔트 종교회의(1545-63년에 걸쳐 단속적으로 열림):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반동 종교개혁을 확정짓는 퇴행적 종교회의다. 이 회의 이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여러 가지 발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역동적인 교회(용암상태)였으나 이 회의 후에 로마교회는 나쁜 방향으로 굳어지고 협애화되어 버렸다. 로마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으면서 서로 긴장과 대화(유명론 대 실념론; 어거스틴주의 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프란체스코회 대 도미니크회)를 계속하던 전통이 한 방향으로만 전개되기 시작한다.

 

1. 권위에 관한 교설: 1)구약 외경(율법적 공로를 강조하는 외경들)을 정경적 권위를 가진 책으로 확정. 루터와 캘빈과 완전 결별. 2) 교회 전통(공의회 결정,교황칙령등)은 성경과 동일 권위를 가진다고 결정. 4)에라스무스의 비평적 번역판 대신 제롬의 벌게이트역본만이 공인번역본으로 인정. 4) 사제단, 개인 등이 아니라 로마카톨릭교회(어미 교회=나중에는 교황)만이 성서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

2. 죄에 대한 교설.

개신교(루터, 캘빈) 등의 인간의 전적 타락설 대신에 부분 타락설을 견지한다. 타락은 인간의 초자연적 은총을 상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않은 손상당하지 않은 자연은총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있다고 본다. 타락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보다 악한 상태로 변화시킨다.” 자유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약화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가톨릭은 인간의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보는데 비하여 개혁자들은 욕망 자체가 바로 죄라고 본다. 종교개혁자들의 경우, 하나님과의 분리 상태가 죄라고 보는 반면에 가톨릭은 죄란 신의 율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3. 인의(認義)(justification)에 대한 교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그리스도의 속죄은총의 공로의지)으로(sola fide) 의롭다하심을 덧입는 가르침을 강조하는데 비하여 가톨릭은 칭의라는 신적 선물을 받을 준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칭의(인의)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예비적으로 활동하는 은총(gratia praeveniens)을 허락하는데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이 은총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톨릭에 의하면 인간의 지지와 협력이 크면 클수록 인간에게 주어진 인의의 신적 은총도 점점 완전한 것이 되어간다.

 

4. 성례전에 관한 교설

가톨릭 교회의 입장: “성례전에 의하여 일체의 참된 의가 시작되고 또한 시작된 의는 증가되고 또한 잃어버린 의는 되돌아온다.” “성례전은 그 자체의 고유한 힘으로로부터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에게 효력을 미치게 한다.” 종교개혁자들의 경우 성례전에도 참여하는 사람의 주관적 개인적 믿음이 중요하다. 트리엔트는 7가지 성례전을 고집하고 개신교는 세례와 성만찬만을 인정한다. 트리엔트는 화체설을 묵수한다. 성체숭배도 강조한다. 개신교에서는 빵은 성례전이 집행되고 있을 때만이 그리스도의 몸인데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빵과 포도주는 그것이 성별되든 안 되든 그리스도의 몸이며 피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의 희생제사이며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의 효력을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는 경향을 보인다.

 

II. 트리엔트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발전.

1. 교황무오설: 트리엔트회의부터 1870년 1차 바티칸 공의회 사이에 일어난 교리적 발전의 대표적인 것이 교황무오설이다. 교황의 자리에 있을 때 교황이 내린 결정은 무오하다(현재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몇 년 전 회개 선언). 교황주의는 공의회주의를 물리치고 경직된 교리로 상승된다. 교황의 자리에서 로마교황이 내린 첫 교리가 성마리아 승천교리다(1870년 이래)(1950년에 결정). 이전까지는 이것은 경건한 의견이었으나 이제 신앙고백의 일부로 승격된 것이다. 교황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자가 된다.

 

2. 얀센니즘: 로마교회 내에 만연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대신에 오거스틴적 경향으로 돌아가려는 복고운동(이프레스의 주교인 코르넬리우스의 얀센이 주도. 블레즈 파스칼이 이 운동의 주동자). 오거스틴적 신의 절대은총론을 부흥시킨 것이다. 당시의 예수회의 “신의 은총은 인간의 의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교설에 대항하여 얀센니즘이 일어난다.

 

3. 개연주의(蓋然主義=Probabilism)

윤리적 쟁점들에 관한 예수회의 입장을 공식화한 것으로 개연주의는 사제의 윤리적 판단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데 기여한다: “어떤 견해가 개연성(그럴듯함성=plausibility)을 갖는다면 거기에 대립되는 견해가 그 자체로서 더욱 큰 개연성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앞의 견해를 따라도 별 지장이 없다.” 가톨릭교회내의 윤리적 상대주의와 방종을 막아보려는 입장이다(聽罪師[고해를 받는 신부]의 권고를 받아들일 것을 강조).

 

4. 현대가톨리시즘

1950년의 교황회칙 는 실존주의 철학을 공박하여 실존주의 철학자 앙리 드 루박이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도록 강압하였다. 틸리히에 의하면 가톨릭교회는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욱

 

 

기독교 교리사(4월 24, 27일-9th week)-김회권 교수

 

6장 종교개혁자들의 신학(틸리히 옛 책, 285-368쪽)

 

I. 마르틴 루터(1483-1546):

종교개혁을 성취한 그의 수도사적 경험(죄사함-고해성사의 무용성 자각경험-복음경험)이 우리의 연구초점이 되어야 한다. 가톨릭교회(가톨릭 기독교)의 구조는 “객관적인 것이지 인격적인 것이 아니고 양적인 것이지 질적이 아니며 상대적인 것이고 조건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에 의하여 대표되고 매개된(구현된) 신적이며 인간적인 한 관리체계다.” 가톨릭 기독교의 목표와 체계 중 첫째는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매개하고 인간을 영원한 단죄(형벌)에서 구해내는 데 있다.” 천상의 영원한 기쁨이냐 지옥의 영벌과 고통의 선택이 있는데 영원한 천상의 기쁨을 매개하는 것이 성례전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매개물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죄악의 질에 따라 형량이 다르고 수도사와 평교인 사이에 도달해야 할 영적 진보의 목표도 다르다. 상대적이고 위계질서적이다. 객관적, 양적, 상대적 신 관계가 중세말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었다. 누구도 구원에 이를 만큼 충분한 은총을 누릴 수도 없고 누구도 구원을 얻을 만큼 선한 행위와 공로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위협하고 벌하고 멸망시키려는 신에 대하여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자비로운 신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살았다. 이 불안이 종교개혁의 출발점이다. 루터는 상대적 객관적 신뢰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관적 인격적 신뢰를 갈망하고 있었다. 루터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불렀다. 믿음이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 이것은 양적 관계가 아니라 질적 관계다(자신의 공적이나 선행도 보지 말고 자신의 죄악의 참상도 보지말자).

 

2. 회개의 성례전(면죄부 등)에 대한 공격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속죄의 확신이 신부에게 바치는 고해성사보다 훨씬 본질적이다. 루터의 하나님만이 오직 사죄권이 있으며 구원의 권능을 베풀 수 있다는 확신은 1302년 인노센트 3세 교황의 우남 상탐(Unam Sanctam)의 명제에 대항하는 것이었다(“우리는 선언하고 언명하고 규정한다. 구원을 위해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은 모든 인간의 존재가 로마의 사교[교황]에 복종하는 것이다.”).

 

3. 교회에 대한 공격

교황의 오류가능성과 공의회의 오류가능성을 공격하였다. 교황은 거의 적그리스도적 존재라고 비난한다. 교황은 혼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교황은 혼을 지배하는 신에게만이 속한 권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4. 수도원제도와 로마 가톨릭의 윤리에 대한 공격

수도사에게 주어진 높은 복음적 명령(<복음적 권고>)은 일반 신자에게 요구된 삶의 기준과는 달랐다(이중적). 이것은 주교 및 신부들의 구원매개를 위한 중보권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 루터는 이 이중적 기준을 공격한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비단 수도사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구원이 윤리에 앞선다. 윤리(수도사적 완덕이나 공덕)가 구원을 향도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구원이 윤리를 견인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혔다. 하지만 틸리히는 개신교의 모토 중 하나인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이 “오직 믿음의 선행(공로)으로만”으로 오해받았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우리는 동의한다- 이 모토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이 받아들여지는 은총에 의해서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5. 가톨릭의 성례전에 대한 공격

가톨릭 교회의 성례전(신적인 것이 사물이나 물질 안에 보여진다고 믿는다)은 성례전의 힘을 마술적인 방식으로 중개하는 계층구조체제에 의해서만이 집행된다(객관적으로 구원이 분여되고 배분된다). 루터는 인격적 중심을 가지고(믿음) 참여하지 않으면 성례전은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지적하고 성례전의 객관주의적 구원매개 교설을 근절시켜 버렸다. 로마교회의 화체설에 대한 대항인 셈이다. 사제에게 주어진 “사라지지 않는 각인”(은혜와 구원을 매개할 수 있는 권능)이 미신임을 주장한다. 사제를 그만두면 즉시 은혜와 구원을 매개할 수 있는 성품은 사라진다.

 

6. 기독교적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1466-1536)와의 논쟁

에라스무스의 비실존적(비단독자적, 비결단적) 태도, 그의 종교적 열정의 결여, 학자적 태도 등을 비판한다. 에라스무스는 예언자적 루터의 눈에 회의주의적 인텔리겐챠(지식인, 인문교양인)였다. 에라스무스의 정치적 순응주의(변혁의지 결여)를 비판한다. 에라스무스가 믿음의 결단을 통한 영적 인격적 성숙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인간성 개선에 치중한 것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에라스무스의 로마교회에 대한 비판이 학자적 비판이상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루터는 비판한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에 대하여 루터는 노예의지론을 주창하였다. 에라스무스의 경우 의지의 자유란 신에 이르는 인간의지의 힘이자, 신과 협력하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는 힘이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만 구원을 얻는데는 노예의지와 같음을 지적한다(자유의지만이 노예화의 마성적 힘에 노출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

 

7. 열광주의자들(evangelical radicals=성령주의자들)과의 논쟁

열광주의자들은 성서의 메시지를 넘어서 계속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성령의 자유에 대하여 강조한다. 토마스 뮌쳐(1490-1525)는 이 열광주의의 지도자로 루터가 달콤한 그리스도(죄를 용서만 해주는)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엄한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스스로 십자가를 질 것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도 강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강조한 <성령의 내적 현존>(성령 소유 주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례전이나 구원을 매개하는 위계질서적 성직자 집단이 불필요해 진다. 이들은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할 때 칼이라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열광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열광주의자들은 내적인 하나님 말씀(성령의 음성)을 강조하고 개혁자들은 보다 외적이고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더욱 강조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격리의 감정에 지배를 받는다; (2) 십자가 이해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인다. 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객관성을 곧 사람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강조한다. 한편 열광주의자들은 십자가를 신자 스스로 짊어져야 할 것을 강조한다; (3)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객관적 계시다(성서에 증거된대로). 하지만 열광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인간의 상황에 하나님의 계시가 가능하다고 본다; (4) 개혁자들은 유아세례를 선행(先行) 은총으로 인정한다. 즉 받는 자(유아)의 주관적 상태에 의존하지 않는 은총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열광주의자들은 유아세례를 부인한다; (5) 열광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자라고 주장하며 외부 세계에 대하여 적대적 종파적 태도를 유지하였다. 개혁자들은 이런 종파주의적 폐쇄성이 없다; (6) 종말론이 달랐다. 개혁자들의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향하고 있었고 따라서 수직적 차원이었고 열광주의자들은 수평적 차원의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내재적 발전을 타고 도래한다는 것이다(틸리히 미국은 종파운동의 정신-현실세계 변혁-에 지배당하고 유럽은 개혁자들의 종말론에 지배당한다고 본다).

 

8. 루터의 교설

가. 성서의 권위

성서의 사도적 진리성, 그리고 성서의 모든 책이 지니는 가치를 판정하는 기준은 “성서가 그리스도와 그의 일을 다루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요한복음, 바울서신, 베드로전서가 가장 그리스도 중심적 책이라고 주장; 야고보서의 복음적 가치 부정).

 

나. 죄와 신앙의 개념

루터에게 죄란 불신앙이다. 신앙만이 의(의로움)다. 삶은 전적으로 타락되어 있다. 전혀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모든 기관과 부분이 죄로(불신앙)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터에게 죄는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강제력을 가지는 세력이다. 은혜의 구조로만 죄의 문제가 결말지어질 수가 있다. 그에게 신앙은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는 바 그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나님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믿음의 수용적 성격). 신앙은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 신론

루터의 신론은 “숨어계시는 신”(deus absconditus)에서 잘 드러난다. “신 앞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은 세계 앞에서는 나타나 있으며, 신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은 세계 앞에서는 감춰져 있다.” “십자가의 약함 속에는 신의 힘이 감춰져 있다.” 모든 피조물은 신의 가면이자 가장(假裝)이다. 자연적 질서, 역사적 사건, 그리고 온갖 제도 등은 신의 현존으로 채워져있다. 한니발이나 알렉산더 대왕은 전쟁과 파괴를 위하여 신에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닌다. 이 세상 영웅호걸도 하나님이 정한 때(카이로스) 영웅이 되어 세상을 진동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다 가면 그들은 신에 대한 저항자가 된다. 역사는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으로 본다.

 

라. 그리스도론

루터의 기독론은 현실적인 상관의 방법이라고 불린다(틸리히에 의해). “인간이 신에 대하여 의롭다면 신은 인간에 대하여 그러하고 인간이 신에 대하여 불의하다면 신도 인간에게 불의한 신으로 남게 될 것이다. 루터의 기독론의 핵심론은 성육신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이 육신이 된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은 네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하나님의 내적 말씀이다(인간에게 숨겨져 있는 말이다). 둘째, 수육된 말, 가시적인 말씀, 예수 그리스도다. 셋째, 예수님이나 사도들에 의하여 언표된 말씀이다. 성서적인 말씀이다. 넷째로, 설교다.

 

마. 교회론

루터의 교설 중 약점 중 하나. 그는 열광주의자들(복음적 진보주의자)의 종파적 교회도 비판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적 교회도 비판.

루터는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와 불가시적 교회(invisible church)를 구별하나 그것은 두 개의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의 두 측면을 가리킨다. 불가시적 교회는 가시적 교회의 종교적 혹은 영적 측면으로서 그것은 가시적 교회안에 있으며 따라서 그 밖의 어떤 <초월적 교회>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회란 신앙의 대상이다. 그것은 <영 안에 감춰져 있다>. 현실적 구체적 교회 안에 또는 그의 사제, 그 건물, 그 회중, 그 행정체제, 그 예배 가운데 다시 말해서 모든 결합을 가진 가시적 교회 안에 불가시적 교회가 감추어져 있다. 보통 교회의 회중의 삶 속에 영적인 교회가 현존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모든 신자는 사제다. 사제직이 일반 평신도직장보다 더 완전하거나 거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약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바. 국가론

루터는 국가는 섭리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국가의 통치자는 섭리에 의하여 세워지기 때문에 그에게 반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심지어 나쁜 통치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혁명적 무질서상황보다는 나쁜 정부를 선호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만일 역사적 운명이 네로나 히틀러같은 폭군을 통치자로 세운다하더라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시민혁명(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 네들란드 혁명-프란시스 쉐퍼에 의하면 하나님의 신적 승인을 받은 혁명. 하나님 나라의 활동과정이라고 본다)의 성과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롬 13장과 계 13장 비교). 루터는 역사적 패배주의나 비관주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틸리히에 의하면 루터 신학 중 국가론이 히틀러 폭정을 발아시킨 죄책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

 

II. 훌드라이히 쯔빙글리(Huldreich Zwingli, 1484-1531)

1. 신앙, 신, 복음에 관한 쯔빙글리의 교설과 루터 교설과의 차이

루터만큼 독창적이거나 예언자적 사상가가 아니다. 둘 다 <성서의 권위>에 호소하였으나 쯔빙글리는 <원천으로 돌아가라, Ad Fontes>는 르네상쓰적 모토에 근거하고 있다. 그에게 성서란 신의 의지의 계시며 따라서 그는 신 자신이 성서에 대하여 교사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할 수 있다. 루터나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비하여 그는 성령에 대한 보다 충분한 교설을 펼쳤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자신뿐만 모든 사람에게 직접적인 진리를 준다(안 믿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비크리스챤에게도 진리를 준다(소크라테스나 그리스 철학자에게 진리를 준다). 쯔빙글리가 주도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종교개혁과 휴머니즘의 결합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보편적인 동적인 존재의 힘이라고 정의한다. 틸리히는 이런 점에서 그에게 접근한다. 루터와는 달리 쯔빙글리에게 율법은 반항심을 불러일으켜켜서 우리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죄를 알게만 한다. 그에게 복음은 새로운 율법이다. 이 새로운 율법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주도하는 법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복음적 율법이 국가의 법률적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 스위스 종교개혁의 영향 아래서 캘빈은 제네바시를 신정국가적 실험대상으로 삼아 종교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성만찬 논쟁

루터의 공재설(consubtantiation theory: 물과 포도주가 성례집행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가설)을 반대하고 기념설을 주창한다. 믿음으로 성례전을 행할 때만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성만찬은 회상과 고백의 표적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필요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III. 존 칼빈(1509-1564)

1. 신론

캘빈 교설의 중심에 신론이 있다. 그에게 기독교의 중심교리는 신의 존엄성에 관한 교설이다. 여기서 예정교리 도출. 그의 하나님인식은 실존적인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비참한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신의 존엄이 인식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의 비참을 신의 존엄성의 빛 아래서 바로 볼 수 있다. 칼빈은 신대의 절대적 초월성을 주장하였기에 그의 최대의 적은 우상숭배였다. 칼빈주의는 일종의 우상파괴운동이다. “인간의 재능은 말하자면 우상의 항구적 제조공장이다.” 인간은 자신에 대하여 거짓된 가면을 쓰고 있다. 캘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런 예정론이 이중예정론(지옥 갈자도 예정; 천국갈 자도 예정)으로 경화되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예정론은 섭리사상과 같이 이해하여야 한다.

 

2. 섭리와 예정

캘빈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창조자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세 가지 답을 내놓는다. 첫째, 인간의 육체적 고난은 죄의 귀결이다. 둘째, 인간의 육체적 고난은 선택받은 자를 신에게로 이끄는 수단이다. 셋째로, 그 고난은 신이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정해진 자를 벌하고 선택받은 자를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과정은 인간구원에 봉사하지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봉사한다. 인간의 악한 행동(악한 인물의 행동)도 하나님의 결의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다. 신은 악의 기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여기서). 선악을 통틀어 세계사는 신의 영광을 위한 무대다. 그는 여기서 한 가지 제한을 추가한다. 악도 신의 의지를 따르지만 본래 신의 명령이나 의지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원인적 의지(Gottes verursachende Wille)와 계명적 의지(Gottes gebietende Dekret)를 구분한다. 악은 하나님의 원인적 의지를 따를 뿐이다. 악인은 신의 의지를 따름으로써 신의 명령에 반항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든다. 캘빈은 이런 방법으로 섭리사상의 결정론적인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캘빈은 이 섭리 교설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교설의 실천적 함의를 설파한다: “섭리에 대한 무지는 비참 가운데 가장 큰 비참이다. 최고의 행복도 섭리에 대한 인식이다. 섭리에 대한 신앙은 불안, 두려움, 그리고 염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기 때문이다.” 캘빈의 예정설은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대한 섭리사상이라고 보면 된다. 예정은 섭리의 논리적 귀결 및 궁극적 성취에 지나지 않는다. 예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를 도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인간의 도덕여하에 따라 구원받는 여부를 따지는 체계). 틸리히는 예정을 부정하면 적어도 이사야, 예수, 바울, 오거스틴 등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위대성을 부인하는 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정설의 배후에 있는 질문은 “왜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의 수용이나 거부의 가능성이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가?”이다(네들란드 개혁장로교회는 예정설을 과도하게 믿어 아예 선교하거나 전도하는 것을 꺼린다.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불신앙에 대한 어떤 도덕적 추궁도 없지 않는가?). 캘빈은 이것은 영원한 신의 섭리라고 믿는다(로마서 9-11장을 읽어보라). 캘빈과 같은 예정설 신봉자는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평등의 원리가 아니라 선택의 원리라는 것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다. 평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없는 삶의 현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캘빈은 안다. 그는 평등을 강조하고 선택과 예정을 약화시키려는 것은 거짓 겸손일 뿐 현실직시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신의 자유로운 자비의 샘에서 흘러나온 것이지만 우리는 신의 영원한 <선택>을 이해하기까지 결코 이것을 명확하게 확신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 선택은 신이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구원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했던 것을 어떤 사람에게 주었다고 하는 이 비교를 통하여 신의 은혜를 명백하게 하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III, 21, 1)”(TULIP 중 Limited Salva-

tion=제한속죄론).

예정설의 또 다른 실천적 측면은 그것이 구원의 확실성을 보증한다는 데 있다. 성도의 견인 교리를 지탱한다(TULIP의 P는 Perseverance of saints=성도의 견인). 구원을 믿는 인간-구원받았다고 믿는 인간-의 혼의 동요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요구(롬 8:26-39을 보라)가 예정설의 밑바닥에 깔린 또 다른 실천적 요구다(목회적). 하나님의 “은혜”(값없는 근거없는 호의)의 구체적 특징은 특별히 나를 선택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버렸다는 신의 일방적이고 초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캘빈의 이중예정이다(야곱과 에서의 경우; 파라오와 모세의 경우: 롬 9-11장 분석요망). 그에 의하면 예정은 하나님의 거룩한 결정이다. 인간은 어차피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으며 일부의 사람에게는 영생을, 일부의 사람에게는 영벌을 예정해 놓았다는 것이다(III, 21, 5). 선택의 원인과 근거는 영원한 절대적 신비다. 하나님의 밑없는 의지다. 즉 하나님의 근거없는 초합리적인 비합리적인 의지(der grundlos Wille Gottes)다. 하나님의 비합리적인 의지가 선택과 단죄의 원인이라는 주장인 셈이다(옥캄주의적이고 스코투스주의적인 사상의 극단적 형태). 캘빈은 아담의 범죄와 그 이후에 전개된 모든 비극적 파란의 역사도 하나님의 무서운 결정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III, 23, 7). 아담의 타락이 아무런 구제책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형국으로 전개된 것은 신의 의지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말년에 캘빈은 다음과 같은 도덕주의적 수정을 가한다: “그들의 파멸은 신의 예정에 달려있지만, 그 원인과 재료는 그들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하게끔 되어 있다”(III, 23, 8)(사 6:9-11 예정). 말년의 이 입장은 신적 원인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모순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틸리히는 신적 원인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는 근원적 모순이 없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순은 같은 차원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신의 행위는 신비다. 하지만 틸리히 또한 예정설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신의 행위에 관해서 말할 때 우리가 인과성(causality=원인과 결과 논리)의 범주를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만일 이런 범주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신에게서 이끌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것이 기계론적 결정론과는 구별된다고 주장하나 다소 이해하기가 난삽한 개념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인과성은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설정이 예정설에 탑재된 신비(초합리적인 신의 의지)의 무게를 어느 정도 경감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캘빈의 경우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표지가 식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표지가 선택받은 표지다. 첫째, 신앙의 행위에 나타난 신과의 내적 관계다. 현재 믿는 행위가 예정의 산물이다. 둘째, 하나님의 현세적 축복이다. 셋째, 인간의 높은 도덕성이다(둘째, 셋째 주장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를 산출시킨 계기-도르트문트시의 고등학생 부모의 종교와 직업 조사. 예정설을 믿어 자신이 신의 선택과 축복을 받은 자임을 증명하려는 부르조와 기독교인들이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회학적 통계조사). 칼빈은 루터에 비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별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신의 영광을 말하는 몰입한다. 신의 사랑에 대한 그의 언급은 선택된 자에 대한 신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보편성이 부정되거나 약화된다. 이중예정설로 세계의 반은 영원한 단죄에 이른다. 여기서 모든 존재를 보존하는 힘으로서의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교설과 충돌한다.

보설(補說):

미국연합장로교회(웨스트민스터 신앙요리문답의 현대적 증보판) 중 섭리부분

*하나님의 사랑이 측량할 수 없는 능력임에도, 왜 이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악이 존재하는 것입니까?(미국 PCUSA와 다른 부분; 김회권 교수의 보충부분)

악의 기원은 자신을 높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강탈하려고 한 오만한 반역적 천사장입니다(창 3장; 유다서). 이 사단(Satan=대적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정해 주는 한계 안에서 제한적으로 악한 활동을 하도록 허용받고 있습니다. 악의 창궐에는 두 가지 진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로봇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한히 창조적으로 활동합니다. 이 자유의지와 악마가 결합될 때 엄청난 악의 파도가 일어납니다(나찌즘과 스탈린). 둘째, 하나님께서 악을 즉각 응징하시지 않고 시차를 두고 응징하기 때문에 악이 정의의 둑을 넘어 홍수처럼 범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전 8:11). 그러나 악은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한가를 변증법적으로 증명하는 소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악의 범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providere=미리 조정하다)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보호하실 뿐 아니라 또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귀 기울이십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돌보심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통치하십니다. 심지어 악의 한 복판에서도 선을 창조하실 만큼 초월적으로 미리 조정하십니다. 선으로 굴복시키지 못할 어떤 악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창50:20).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당신은 어떤 위로를 받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버지께서 나의 삶 속에서 매일 나를 지켜보시고, 축복하시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신실할 때(믿음이 충만할 때) 나를 강하게 하시고, 용기를 잃고 슬퍼할 때 위로하시고, 실패한다면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위탁한다면 우리는 역경가운데 참고 인내하며, 축복가운데 감사하고 불의에 대항하는 용기를 은혜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당신이 고통과 절망가운데 몸부림칠 때 어떻게 지탱해 줍니까?

환난과 역경으로 고통받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나를 고통과 절망에 대항해서 붙잡아 주십니다. 그것은 나에게 희망이 사라졌을 때 내 슬픔과 고통은 내가 곧 분별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큰 목적과 더 높은 힘에 의해 억제되어진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심지어 내가 슬픔과 수치 그리고 상실 가운데 여전히 슬퍼하며 하나님께 울부짖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나를 치료하시고 위로하심으로 기다리십니다.

 

3. 그리스도교적 삶에 대한 견해

루터와 다르다.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안에서 구원받고 누리는 새로운 삶이란 신과의 즐거운 재결합이지만 캘빈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의 법을 성취하려는 노력이다. 캘빈은 구약 율법에 대하여 긍정적 기능을 인정한다(1기능: 인도와 질서 조직화의 기능. 시민 및 도덕 생활 지도; 2기능: 정죄 및 단죄기능.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가는 기능; 셋째 기능=율법의 3사용: 신자의 성화촉진용 지침. 십계명은 성화촉진용). 캘빈의 경우 기독교적 삶이란 자기부정이지 사랑이 아니다. “아, 자신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자기 이성으로부터 주권과 이성을 떼내어 신에게 그것을 넘겨준 사람은 얼마나 앞서간 사람인가?” 그에게 기독교적 삶이란 상승과 하강, 또는 황홀경과 절망의 양극단을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루터의 경우), 방법적으로 스스로 향상해 가는 발전으로 보았다.

캘빈에게 있어서 세계는 인간이 추방당한 장소이며 육체는 혼의 감옥이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보다 플라톤에 더 가까운 주장을 편다. 그는 수도원적인 금욕이 아니라 세속적 금욕-세계내적 금욕-을 강조한다. 하나는 깨끗함의 추구요, 둘째는 노동의 성과에 의한 물질적 이익추구였다(베버는 이것을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본다. 캘빈은 부를 사회적 투자와 기부금 등으로 쓸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자본주의적 부의 과시자들과는 다른 부의 사용을 역설했다고 주장한다. 틸리히는 베버의 캘빈 해석을 인정한다. 20세기 이전의 동독에 해당되는 지역 중 프로테스탄트 도시들은 부유하고 가톨릭 도시는 가난하였다는 것이다. 루터주의나 가톨릭 영향을 받고 있는 도시보다 캘빈주의 영향을 받고 있는 도시가 더 잘 산다고 주장한다.).

 

4. 교회와 국가에 대한 교설

루터와 비슷하지만 더욱 철저하게 경험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더욱 철저하게 구별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불가시적인 교회는 교회의 질(質)에 해당되나 캘빈에게 있어서 불가시적 교회는 교회사의 모든 시대에 등장한 선택받은 자의 회중이다. 불가시적 교회는 기독교메시지에 의존하지 않고 영에 의존한다. 가시적 교회는 인간의 약함에 대한 인간의 적응이다. 필요에 쫓긴 채 고안해 낸 긴박한 임시방편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고백은 불가시적인 교회가 있다는 고백을 넘어 오로지 하나의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있다고 믿는 고백이다. 루터는 성만찬과 세례를 가시적 교회의 주요 은혜 매개장치라고 보지만 캘빈은 치리를 추가한다. 규율은 교회의 힘줄이라는 것이다. 성만찬 교리에서 있어서 그는 쯔빙글리의 입장과 루터의 입장을 조정하려고 분투한다. 그의 입장은 하나님의 역동적 임재를 믿는 역동적 임재설이다. 성만찬은 단지 회상의 표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믿음으로 받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루터보다 캘빈은 국가에 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국가는 선한 시민의 활동을 적극 돕고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휴머니즘 국가론). 그는 국가가 신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은 종파주의적 맹신을 부정하고(이것을 유대인의 어리석은 신정주의적 시도라고 주장) 쯔빙글리와 마찬가지로 복음적 율법을 가지고 국가정책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의 중요서을 강조하고 실행한다. 간접적인 신정통치의 이상실현을 기도한 것이다. 그가 신정정치의 실험을 하던 제네바시 행정관들에게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이단자를 처벌해 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한다. 국가의 재판관이 불신앙자를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제네바의 신정통치는 사제정치가 아니라 일반 평신도가 다스린다). 그는 국법의 기초가 신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터처럼 그도 모든 혁명을 신의 법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보았지만 자연법이 저항을 받는 경우에는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5. 성서의 권위에 대한 교설

그에게 성서는 진리의 법이다. 성서는 절대적 권위와 율법으로서 타당성을 갖는다. 이것은 매우 유명론적이며 율법주의적이다. 성서의 권위는 성령의 증거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신만이 그가 말한 그 말에 대해서 알맞게 증언할 수 있는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 말도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봉인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에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캘빈은 성서의 권위의 기초가 성서가 성령의 구술로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이런 점에서 휴머니즘적 성서이해를 초월한다. 이것이 축자영감설을 낳는 원천주장이다. 개인적 저자의 차이는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서적 진리가 성령의 구술에 의존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 의존성이다. 캘빈에게 있어서 성서의 진리는 우리의 종교적 경험(루터의 경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이 일방적으로 성령의 직분이라는 사실에만 의존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차이점 관련 보충강의안 자료 1

 

오늘에 있어서의 개신교와 로마카톨릭 교회와의 논쟁점

로마가톨릭 1869-1870년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와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현대 현대적 면모를 갖추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특히 이방종교와 개신교회에 대하여 유화적이고 화해적인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개신교도들의 가톨릭에 대한 입장도 동시에 많이 누그러뜨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이점들은 남아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차이점들은 무엇인가? 23년간 로마교황청 교리성장관을 역임한 독일계 요셉 라찡거 추기경이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교리상의 특이성은 더욱 주목의 대상이 되어 온다. 몇 가지 쟁점별로 논의해 보자.1.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교황 수위권(이 문제에 관한 깊은 논의를 보려면 카알 하임, <개신교의 본질>[정선희역]을 참조하라[출간 임박])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모든 사들들 중의 으뜸 사도이다. 그리스도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베드로는 그의 권한을 로마에 있는 교황에게 양도했다(실베스터 문서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문서에 의존). 따라서 로마 교황은 베드로의 지상 후계자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다. 가톨릭에 따르면 이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각 지역의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가 진정한 사도적인 교회이다. 이 사도적인 교회 속에 진정한 천국열쇠가 존재한다고 본다(기억하라: 교회의 네 가지 본질-사도성, 거룩성, 단일성, 보편성).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인 아놀드 크로닌이 쓴 소설 <천국의 열쇠>를 보면 사도적 권위에게 위탁된 천국열쇠가 관료적인 주교좌에게 있지 않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프랜치스 치셤 신부에게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가톨릭 교회가 교황권이 그리스도의 지상왕권을 대신한다고 보는 것은 심각한 신학적 오류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다스릭고 계시다는 사실을 문자적으로 믿지 못한다. 로마 교황과 주교들의 위계질서에게 그리스도의 우편 보좌 통치행위가 위탁되고 그들에 의하여 지상의 역사 속에 매개된다고 보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 유명한 사도권의 계승이론은 가톨릭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다. 가톨릭은 로마의 교황을 우두머리로 하는 상명하복적인 구조를 교회의 중추로 생각하고 있고 이 사고방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가톨릭 교회 1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계 가톨릭교회의 단일체(정치적 영적 교리적)를 성취하는 데 진력하였다. 교황의 교도권이 크게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위 <아래로부터의 교회> 개념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다. 지역적 특색을 겸비한 가톨릭 교회의 탄생은 불가능하였으며 심지어 이런 가톨릭 교회 전통은 1967년에 끝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현대화에 의해서도 개정되거가 개선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의 브라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 Boff) 신부에 대한 교황청의 심문(이 심문의 재판관이 현 교황 베네딕트 16세, 즉 요셉 라찡거 추기경이다)은 그의 해방신학이 가톨릭의 교황청과 갈등을 빚은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긴 했지만 사실상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의 유명한 교회론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이 주창하는 <아래로부터의 교회론>을 교황청이 결코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프 신부는 교회의 본질은 교황-주교-평신도로 구축되는 거룩의 위계질서(이것은 플라톤 철학의 반영이다. 신과 가까운 것 인간의 영혼보다 신과 가장 거리가 인간의 육체/물질계를 거룩의 위계질서로 구분짓는 플라톤의 철학이다)가 아니라 성령의 카리스, 은혜와 그 카리스에 의하여 카리스마를 갖게 된 아래로부터 창조된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라고 보았다.

그러면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 교황 수위권 및 사도권의 계승이론은 정당한 이론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베드로가 역사적 예수의 계승자라는 신학적 성서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런 데도 가톨릭에서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디에 그 근거가 있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마 16:16-19이 바로 그것을 위한 성서적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위의 본문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 틀림없고 또한 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긴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예수께서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답은 달랐다. 루터(M.Luther)는 반석을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해석했고 칼빈(J.Calvin)은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해석했다. 루터의 입장도 전적으로 그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캘빈의 해석을 따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베드로적인 신앙고백과 그 고백자들을 통칭하여 “반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석은 어떤 인격적인 대상을 가리키지 추상명사를 가리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칼빈의 해석이 갖고 있었던 결함은 20C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극복되었다. 오스카 쿨만(O.Cullmann)이나 죠지 레드(G.E.Ladd)같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의 <너>를 <고백자 베드로>로 해석했고 이 해석은 이 본문에 대한 매우 탁월한 해석이었다. <고백자 베드로>라는 말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로서의 베드로라는 말이다. 즉,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신 것이고, 따라서 그 말씀은 그 순간은 베드로라는 개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의 대표일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마 16:16-19에 대한 해석으로 칼빈에 의해 훌륭하게 해석되고 20C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다듬어진 <고백자 베드로>라는 해석이 이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백자 베드로이지 생물학적 실체인 특정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신앙고백자의 대표로서의 베드로인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이 본문을 역사적으로 특정한 지역의 특정 베드로 즉 수제자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이 점을 조금도 재고하지 않는다. 엄밀하게 언급하면 이 본문은 가톨릭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완전히 막혀있는 본문이 아니다. 이 본문 한 귀절만으로 생각하면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교회의 상황과 성서전체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과는 달리 초대 원시교회에서 베드로의 수위권이 다툴 수 없는 진리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초기 문서인 바울 서신에 의하면 베드로는 오히려 주의 형제 야고보보다 서열상 아래인 것처럼 읽히는 본문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일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본문이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틀림없고 또한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가 틀림없다면 예수의 부활,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초대교회의 최고의 지도자는 당연히 베드로이어야 한다. 그러면 베드로는 정말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초대교회의 수장이었는가?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이에 대한 답은 상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의 대체적인 결론은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등장하는 최초의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의 수장은 베드로가 아닌 예수의 동생 야고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정은 갈 2:9에서 바울이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기는 3명의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야고보, 게바, 요한> 의 순으로 언급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 야고보라는 이름이 베드로라는 이름보다 먼저 언급되어 있을까? 이것은 우연일 수 있다. 무스너(F.Mussner)와 같은 갈라디아서를 주석한 가톨릭의 대표적 신학자는 이 문제가 갖는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이것은 결코 서열 순서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본문 하나만으로는 이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서열을 암시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 낼 수 없다. 양쪽의 가능성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 15:6-21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장면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이 사도회의의 장면은 야고보가 이 회의의 의장이었다는 것을 상당 부분까지 암시하고 있다. 이 회의에 베드로도 참석하고 있지만 베드로의 발언은 참고 발언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이고 이 회의를 주재하고 결론짓고 결정사항을 공포하는 이가 야고보이다. 이 사도회의의 장면은 100%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야고보가 초대교회의 중심적인 지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당히 깊은 곳까지 암시하고 있다.

갈 2:12 이하의 본문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해 나오는 비겁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베드로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을 두려워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 야고보가 보낸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 베드로의 비겁한 행동을 보고 바울이 베드로를 꾸짖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만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면 바울이 어떻게 베드로를 꾸짖을 수 있었을까? 바울은 단 한번도 베드로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사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바울은 언제나 베드로를 자신의 동역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의 모든 증거들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가톨릭의 주장의 허구를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마 16:16-19의 본문은 <고백자 베드로>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성서와 초대교회의 역사에 상응하는 해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중심적 지도권을 일시적으로 베드로가 아닌 야고보가 행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은 베드로 수위권을 위한 반론을 위한 것이지 야고보 수위권이나 이와 유사한 계층적 질서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모두 민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공동체 속에서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수의 동생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일시적으로 교회의 중심적 위치에서 일했지 않았겠는가라고 추정할 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행 15:6-21의 사도회의를 오늘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주교단회의의 모체로 생각하고 교황은 베드로의 권한을 이어받고 주교들은 다른 사도들을 계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모체가 되는 행 15:6-21의 사도들의 의장이 야고보였다면 이 주교단회의의 의장이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성서적으로 그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라는 사실이라고 해도 로마의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것은 더더욱 그 근거가 희박한 허구이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후에 초대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그 누구도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권한을 이어받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문서가 지금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은 철저히 허구이다. 그러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가?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구원의 기관으로서의 지상교회는 사도단의 단장인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화에 의해 사복되며,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도 베드로가 사복하다 로마에서 순교했기 때문에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사복을 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 때문인 것이다." [이기정 편저, 중요 교리, 전례 용어해설 (서울; 가톨릭 출판사, 1992), p115]. 베드로는 과연 로마에서 순교했는가? 그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가능성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클레멘스 편지에 의하면 베드로와 바울이 네로시대에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한 것과 로마교황 수위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만일 죽은 장소가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예수께서는 죽으셨는데 그러면 예루살렘의 주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행 해야 하지 않겠는가? 베드로가 죽을 때에 자신의 권한을 로마의 주교에게 양도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철저히 허구이다(실베스터 황제의 유언?).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자이고, 로마의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로마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된 주교만이 사도권을 계승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허구이다. 그러면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계승한 분은 누구인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계승한 분은 죄 많고 허약한 인간이 아니고 성령(더 정확하게는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시다(요한복음 14:26; 15:26; 16:7; 사도행전 2:31-34).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오늘날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은 성령이시지 그 밖의 어떤 존재도 아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바로 이 보혜사인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진정한 사도로 만드신 분은 바로 이 성령이시다. 그리고 진정한 성직자도 바로 이 성령에 의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진정한 성직자인 것이다(교회는 영민주주의적인 공동체/은사민주주의적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위계질서가 공존하는 공동체다). 그러면 교회의 사도성은 어떻게 되는가? 가톨릭에 의하면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주교가 다스리는 교회가 사도적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들의 통치하는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이다. 그런데 마지막 사도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사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죽었지만 사도들의 신약성경은 남아있다. 오늘날 교회가 사도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사도들이 남긴 말씀과 그들의 교훈과 복음에 복종하는 것은 사도들이 남긴 말씀과 그들의 교훈과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도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즉 교회가 그분들의 말씀과 교훈과 복음에 복종할 때, 사도들의 권위는 살아있는 것이고, 이렇게 되었을 때 사도들의 통치는 교회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적 교회는 정신이 살아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동시에 사도적 교회는 사도들의 삶에 동참하는 교회를 의미하는데 곧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당했던 사도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가 진정한 사도적 교회인 것이다(그러나 개신교회는 말씀에 복종한다는 명분으로 가톨릭교회를 뛰쳐나와 교회를 핵분열시킨 과오를 범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이 점을 의심한다).

2. 마리아론 현재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마리아론의 핵심적인 정신을 요약하면 다음의 5개 항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 2) 마리아는 원죄가 없었고 죄없는 삶을 살았다. 3) 마이라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다. 4)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이다. 5) 구원사역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중재성(포르투갈 산골 동네에서 일어난 파티마 비밀[성모발현- 인류를 위한 세 가지 계시. 공산주의의 종말, 1차세계대전의 종말, 제 3의 비밀은 교황청이 봉인 중이라고 추정됨]처럼 마리아에 관한 숱한 신비체험들이 가톨릭교회를 신학적 미로 속으로 몰아넣어가고 있다). 첫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는가? 물론 아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 아들과 딸들이 있었다."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요셉,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이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냐"(마13:55) 이상의 마태의 증언에 의하면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 최소한 아들이 4명 있고 딸도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먼저 우리 주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영화로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생각하며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2항) 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명백한 오류이고 성서에 위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신학자들은 위의 마태의 본문에서 형제라는 개념을 사촌형제와 그와 유사한 관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녀 이론을 정당하다는 지극히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참고 J.Binzler,Die Buuder und Schwestem Jesu,1967). 마 13:55의 내용은 요셉과 마리아가 언급되고 그리고 아들들의 이름과 딸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이 마리아의 아들,딸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마리아를 위해 성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마리아의 평생동정녀이론은 수녀원 제도의 존속을 위해서는 유효할지는 모르다 역사적 진실은 아니다 사도신조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출생시킬 때 동정녀였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성서의 증언과 일치한다(이사야 7:14의 과도한 인용?). 둘째, 마이라는 원죄가 없었고 죄 없는 삶을 살았는가? 1854년 12월 8일 교황 피우스(Pius)9세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는 교리를 선포했다. 소위 마리아는 무염시대의 교리는 19C 중엽에 비로소 공적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종교 개혁시대의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논쟁점이 아니고 오늘의 신학적 논쟁점이 되고 있다. 13C 가톨릭의 신학의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von Aquin,1225-1274)는 마리아의 무염시대의 교리를 부정했다. 1439년에 바젤(Basel) 공의회는 무염시대의 교리를 신앙조항으로 선언했지만 이 공의회는 당시 교황과 유대관계를 맺지 않아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트렌트공의회는 (1545-1563)에서도 이 문제는 반대자들의 입장 때문에 하나의 동일된 견해를 얻어낼 수 없었던 교리였다. 그런데 이 교리가 유감스럽게도 교황 피우스 9세에 의해 선포되었고,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마침내 티없이 깨끗한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9항)라고 피우스 9세의 교의가 추인되고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천주의 성모는 마치 성신께 형성된 새로운 조물같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아무런 죄에도 물들지 않으셨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6항)라고도 선언했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죄없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셨다. 셋째, 마리아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는가? 마리아는 몽소 승천의 교리는 20C 중엽에 로마 가톨릭에 의해 선포된 교리이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피우스(Pius)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두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신앙의진리이다"라고 선포했다. 이 해괴망측한 이상한 교리는 오늘의 가톨릭 정신을 대변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 받으셨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제59항)라고 선언함으로서 연속적으로 추인 하고 있다. 그런데 마리아의 무염시대 및 몽소승천의 교리는 마리아를 예수님에게 버금가는 천상천하의 모후로 추대하려는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신심의 발로로서 성성에 근거가 없는 크게 우려할만한 교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마리아를 예수님과 버금가는 존재로 만들려는 가톨릭 교회의 의도는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형론을 하와와 마리아 사이의 유형론으로 발전시킨 교리 속에서도 잘 찾아 볼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주장하면서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형론을 하와와 마리아 사이의 유형론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성서에 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제2의 그리스도로 승격시킬 위험이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넷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인가?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4C 초부터 언급되기 시작하다 431년 에베소(Ephesus)공의회에서 신조로 공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오늘의 가톨릭이 언급하는 하나님의 어머니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마리아가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참된 어머니였다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교리인 동시에 이 마리아에게 출생하신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셨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일치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교리였다. 그런데 이 교리를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형태로 이 교리의 그 핵심을 변경시키면서 원래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뭡게 추가시킨 채로 이 교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엄밀하고 정확하게 언급하면 마리아는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어머니셨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예수님의 어머니 되심을 영원화시키면서, 마리아는 천상에서도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영원히 옛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영원히 하나님의 어머니이시고 또한 그 역할을 하도록 규정되신 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천상천하의 모후"이시고 마이라의 모성은 "천상에서도 계속된다"라고 고전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 천상에서도 계속되는 마리아의 모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에 언급될 마리아의 중보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마리아를 통한 기도의 유효성과 본질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그가 낳은 아들이 그 형제들인 많은 신도들의 맏이시므로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고 이 교회를 모성애로 돌보시는 교회의 참된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효심을 가지고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해야 한다. 그런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나 교회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성서적인 표현이 아니다.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라는 개념은 성서에 도무지 존재하지 않고,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는 것은 에베소 공의회의 원래적 의미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면 오해의 소지가 많으므로 마리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셨다는 표현으로 만족하는 것이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혼란을 피할 수 있는 훨씬 좋은 것으로 보인다. 성서 속에서 마리아의 영원한 하나님의 어머니 되심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는 오히려 예수님이 마리아를 낳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신 분으로 파악하는 것이 성서의 정신에 가깝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시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영원한 모성에 대한 가톨릭의 주장은 성서의 정신을 상당부분 뒤집는 것이다. 다섯째, 마리아가 인류 구원 사역에 있어서의 중재자일 수 있는가? 교황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마리아가 고난당하고 죽은 그의 아들과 함께 고난을 겪었으며 예수와 함께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상을 발표했고 이러한 선언은 교황 피우스(Pius) 11세에 의해 재가되었다. 즉, 마리아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에서 예수님과 협력했던 분이므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함께 이룩하신 분이고 지금도 마리아는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있는 구원의 중재자라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트 15센나 1917년 "모든 은총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큰 고통을 받는 성모님의 자녀들이 생생한 신념을 가지고 위대하신 천주의 모친께 간절히 호소의 기도를 올리기를 바랍니다"(이기정 편저, 중요교리, 전례용어해설, P291)라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이 선언 속에서 우리는 로마 교황청이 마리아에 대한 기도를 장려하고 있고 또한 마리아가 은총의 결정적인 통로임을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 의하면 마리아는 우리의 "변호자"이고 구원의 "보조자,협조자, 중재자" 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과한 교의헌장,제62항).마리아는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리아의 청을 가능한 한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마리아와 "깊이 결합되도록"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권고하고 있다(교회에 과한 교의헌장.제62항).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도 바오르의 말씀대로 우리의 중재자는 한분 뿐이시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60항)라고 선언하고 있다. 가톨릭의 공적인 교리는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로"라는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즉,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를 갖는 중재자라는 뜻은 아니다. 마리아를 통해 전달되는 은총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전달된 은총일 뿐이다.이런 의미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은총의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길은 두 길이 아닌가? 그리스도께 직접 기도해서 은총을 받는 하나의 길이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혹시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이 더 유효한 은총을 받는 길이 아닌가라는 간과될 수 없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것은 특히 가톨릭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리구리(Alfons von Libuori,1787년경 사망)의 [마리아의 영광]이라는 책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심각한 의혹이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100판 이상 인쇄가된 이 유명한 책에서 리구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다"라는 언급과 "아들이 그 모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가?"등의 언급을 한바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혹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두 길 중에 실재적으로 사용되는 길은 마리아를 통하는 길 뿐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 가톨릭의 [중요교리,전래용어 해설]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 알퐁스 리구리께서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공로에 의해 우리에게 은총과 구원을 얻어 주실 수 있는 중재자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신다. 비록 성모님은 예수님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또한 그리스도이 이름을 빌어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어내실 수 없지만, 실재에 있어서는 우리가 청하는 모든 손을 거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어린 아이가 아닌 왕으로, 힘세고 권력을 장수로서 오실 수 있었고, 또한 오심에 성모 마리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나누어 주심에 성모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한님은 성모님을 통해서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다"(이기정,중요 교리, 전례용어 해설 , p291-292). 이상의 언급에서 매우 중요한 중재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이 성서의 본질적인 정신이고, 그리스도 밖에 하늘의 여왕이 또 한분 계셔서 은총을 중재한다는 것은 성서와 심각하게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교리이다. 3. 성사제도와 성직자의 사죄권 개신교회가 2가지 성례만(세례,성찬) 인정하는데 반해 가톨릭 교회는 7가지 성사 (세례,성찬,신품,고백,견진,혼인,종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외형상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회에 비해 성사제도가 5가지 더 많다는 차이 보다도 성사제도에 대한 두 교회의 내적인 인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 차이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성직자들에게 죄를 사하는 사지권이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주장이다.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우리들의 죄는 가톨릭의 사제들에 의해 사죄된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원죄가 사죄되고 고백성사를 통해 우리들의 자범죄가 사죄된다. 또한 종부성사 때 우리의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에 기름을 바르고 신부가 기도가 있으면 이 땅에서 지은 죄가 사죄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 성직자들의 사죄권은 마16:19과 요20:21-23)에 근거되어 있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주장이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 열쇠 속에는 사죄권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의 예수님의 말씀은 죄를 용서하거나 죄를 보류하거는 권세가 포함된 것으로 가톨릭 교회는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권세는 교황과 주교를 통해 사제들에게 전달되어 있는 권세이다. 그러면 우리의 죄는 오직 사제들을 통해서만 용서 받을 수 있는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가? 오늘의 가톨릭 교리서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죄의 사람은 고백성사로만이 아니라 전례의 기도와 (특히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나) 신심기도로써도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단, 여기에는 반드시 통회가 따라야 하며 큰 죄는 고백을 꼭 해야 한다[가톨릭 교리서해설(서울: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1984),P398]. 위의 가톨릭 교리서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신심기도로써 직접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큰 죄는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는 마지막 부분에 붙어 있는 중요한 언급이다. 가톨릭 교회는 대죄와 소죄를 구별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대죄는 우리의 구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큰 죄이다.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탐욕, 교만, 호색,분냄, 시기, 게으름, 미사에 불참하는 것 등은 대체로 대죄에 속한다. 그러나 대죄와 소죄의 구분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대체로 보아서 살인, 강도,,교만, 성적범죄 등 큰 죄로 여겨지는 것은 대죄이고 그렇지 않는 것이 소죄이다. 그런데 구원의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대죄도 반드시 고백해서 고백성사를 통해 사제를 통해 사죄를 받아야 된다는 이 중요한 단서는 결국 사제를 통하지 않고는 큰 죄의 용서는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가톨릭 교회의 주장은 작은 죄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지만 큰 죄는 반드시 사죄를 통해서 용서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결론은 지극히 위험하고 우려할 만한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큰 죄는 사제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용서하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가톨릭 교리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여 용서 받는다는 말이 의미하는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하고 있다는 비판이 부분적으로는 지나치다 해도 상당 부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의 사건이다(눅 18:9-14).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사제들의 세레를 통해 비로소 원죄가 사해진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을 때 그 죄가 사해 지는 것이다. 즉, 죄의 용서와 칭의는 일차적으로 말씀의 사건인 동시에 믿음의 사건이다."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다"(눅 24:47) "저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는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가톨릭의 사제의 세례가 없이는 원죄의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가톨릭의 교리는 죄의 용서와 칭의가 말씀의 사건이요 믿음의 사건이라고 가르치는 성서의 정신과 충돌된다(행 13:38,39). 죄의 용서와 칭의는 제도적인 가톨릭 교회 속에 폐쇄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전파를 통해 나타나는 말씀과 성령의 사건이다. 이 말씀과 성령을 가톨릭이라는 제도적인 교회 속에 유폐시키면 안 된다. 사제가 핵심이 아니라 복음선포가 핵심이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사제=복음선포자라는 등식을 갖고 있기에 이런 개신교의 비판을 일축한다. 개신교 목사도 세례시 하나님의 아들됨을 선포할 때 사죄선언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역비판할 여지가 있다. 한편 성사제도에 나타나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직접적으로 대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스도께로 직접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사제도와 안수를 통해 죄가 직접적으로 용서되고 성령이 직접적으로 주입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다. 이 잘못된 신념은 신품성사와 견진성사에도 나타나는데 신품성사와 견진성사 때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직접 주입된다고 가톨릭 교회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품성사 때의 주교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신도들에게 주입되는 것이다(개신교 목사도 자신의 안수시, 목사안수식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성령이 결국 교회의 제도 속에 유폐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바로 이와같은 성사제도의 문제점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화체설과 더불어 가톨릭 성사제도의 심각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4. 교황과 교회의 무오성 1870년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 무오성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우리는 신적으로 계시도니 교리인 교항에 대하여 가르쳐 확실하게 하고자 하나니, 교항이 그의 지고한 사도적 권위를 인하여,모든 그리스도인을 부양하고 치료하는 직무를 수행하기 이하여, 그의 자리에서 말 할 때는, 신적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향하여 믿음과 도덕에 관계되는 교리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부여하신 무오성을 소유하게 된 축복받은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신적인 지원에 의해, 온 세계 교회가 지켜야 할 신앙과 도덕에 관계된 교리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 자신이 언급한 이러한 정의들은 - 교회의 동의가 있더라도 - 변경시킬 수 없다(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2000년 교회사 반성 및 사죄문 발표의 의미는?). 교황 피우스(Pius) 9세에 의해 주장되기 시작하고 제1차 바티칸 공의희에서 확정된 교화 무오성의 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65)에서도 계속적으로 추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의 으뜸이신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과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결정은 교회가 동의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개정될 수 없는 것이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베드로 안에서 이미 교황에게 약속된 성신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므로 이 결정은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치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도 있을 수 없다. 그럴 때에는 로마 교황이 개인 자격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회 자체의 무류의 은사 (카리스마)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가톨릭 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것이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제25항)라고 선언했다. 결국 오늘의 가톨릭 교회는 종교개혁 시대에도 공헌되고 있지 않았던 교황무오의 교리를 놀라웁게도 이 개명한 시대에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무오성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 다. 그 첫째는 교황의 무오성이고 둘째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주교단의 무오성이다. 이 무오성은 내용적으로 교황이 주재한 공의희의 무오성을 의미한다. 셋째의 무오성은 전체교회의 무오성이다. 이 3 가지 무오성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이 3가지 무오성은 내용상으로 살펴보면 결국은 교황의 무오성으로 집약된다. 왜냐하면 전체교회의 무오성을 전체교회를 사실상 대변하는 기관은 전체 주교들의 모임인 공의회 뿐이기 때문에 공의희의 무오로 귀착되고 공의희 역시 교황이 빠지면 그 모든 결정이 무오한 전체교회의 결정으로서의 효력이 없기 때문에,즉, 공의희의 결정은 교황이 인가할 때에 비로소 무오한 결정이기 때문에, 결국 3가지의 무오성은 내용적으로 로마 교황의 무오성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그러면 교황의 결정은 정말 무오한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먼저 그 유명한 갈렐레오 재판을 머리에 떠 올릴 수 있다. 교황 바울 5세(1605-1621)와 교황 우르반 8세 (1623-1644) 는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하나님이 말씀에 위배된다고 선언했고 갈릴레오를 고문하고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가두지 않았던가? 1619년 5월5일에 금서목록총회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로 정하고 지구가 돈다는 이론은 성서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으로 탄핵하지 않았던가? 이와같은 세인들의 질문을 잘 알고 있는 교회는 교황 무오의 이론에 "신앙이나 도덕에 과한 교리를 선포할 때" 무오하다는 단서를 붙였다.즉, 자연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오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대해 무오하다는 설명이다.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기 마리아의 무염시대의 교리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과연 무오한가? 1950년 교황 피우스 12세가 성모승천의 교리를 선포했는데 그것이 과연 무오한가? 동정녀 마리아는 정말 평생 동정녀이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성서와 근본적으로 충돌되는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이미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교황 식스투스 (Sixtus) 5세는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Vulgata)의 옛 번역을 좋아해서 이 옛 번역을 조금이라도 고치는 자는 출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번역문은 이미 수 없이 고쳐진 채로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공개적으로 무오성을 부인했던 교황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이노센트 3세, 클레멘트 4세, 그레고리 11 세.하드리안 6세,바오르 4세 등이다. 무오성은 하나님의 속성이지 인간의 속성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이 지상의 그리스도 대??자라는 잘못된 교리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마침내 교황이 교황의 보좌에서 행하는 일을 무오한 그리스도의 일과 동일시 시킴으로써 교황의 보좌에 앉은 교황을 신격화 시키는 대단히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류는 성서와 신학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를 지극히 제한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탄압받을 심각한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5. 최근의 가톨릭교회의 긍정적 변화들(국제신대 라은성 교수의 저작물들 참조) 지금까지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상의 중요한 문제점들을 살펴 보았다. 그 중에서 마리아론이나 교황과 교회의 무오에 대한 교리 등은 종교개혁의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오늘의 새로운 가톨릭교회와 심각한 문제점들이다. 이와 같은 교리들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 중 일부는 종교개혁 시대 보다 더욱 문제가 있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정적인 발전에 비해 긍정적인 쪽으로 변천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대표적인 것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개신교회에 대한 인식의 변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일치운동에 과한 교령]을 발표하면서 "서구의 갈라진 교회와 교단"이라는 항목에서 개신교회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교령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신교회 성도들에 대해 "갈라진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제20항). 이와같은 표현은 제2 차 바티칸 공의희 이전의 교리서와 비교해 보면 상당한 변천을 느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를 '열교(Haeresis)' 혹은 '이단'이라고 하고 그 신봉자들은 열교인이라고 한다... 바오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단자는 한 두 번 경고해 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그와 관계를 끊으시오. 그대로 알다시피 이런 사람은 옳은 길을 이미 벗어나서 죄를 짓고 있으며 스스로를 단죄하고 있는 것입니다>(디도 3:10). 여기서 이단자란 열교인을 뜻한 다."[윤형중,상해 천주교 요리(상) (서울 :가톨릭출판사,1992), pp 258-259.] 이와 같이 구원이 없는 이단인 열교도인 프로테스탄트 신자를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놀라운 변천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가 성서를 존중하고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찾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기리고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제21항),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초로 사랑과 덕행을 행하고자 하는 것(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제23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긍정성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신교회와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형제적 대화로써 점차로 일치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을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제18항).이오같은 개신교회에 대한 인식의 변천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 평신도의 성서 읽기와 말씀의 전례 루터의 종교개혁이 가져다준 큰 공헌 중의 하나는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해서 평신도들이 성서를 직접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이었다. 이것은 평신도들이 성서에 직접 접근할 수 없었고 성서의 번역도 금지된 당시의 상황 속에서 이룩한 가히 혁명적인 업적이었다. 종교개혁시대에 그토록 억압했던 모국어의 성서의 번역과 평신도들의 성경읽기와 오늘이 가톨릭에서는 모두 허용되고 있다는 것은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개신교정신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가톨릭은 또한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를 허용함으로써 개신교회의 설교와 약간 유사한 말씀의 선포가 공적 미사속에 등장한 것도 매우 긍정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미사중에 <말씀의 전례>가 허용되었다고 해서 그 가치를 너무 크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개신교회의 예배에서 말씀의 선포가 차지하는 중요한 비중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는 성체성사가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가톨릭은 철저히 성사 중심의 교회이고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성서 번역과 읽기가 허용되고 있다고 해서 개신교회에서 처럼 자유로운 번역과 읽기가 허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권한은 철저히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권에 속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제21 항). 즉, 자유스런 성서번역과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톨릭교회의 성서와 교회와의 관계는 개신교회의 관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개신교회에서는 성서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를 지배하는 권위인데 반해 가톨릭은 그 반대로 교회의 권위가 성서의 권위를 보호하는 틀로 작용한다. 이점에 있어서는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적 문제점 이 오늘에 있어서도 가톨릭 교회내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내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교회와 교황의 무오성 을 최근까지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개신교회에서 오랫동안 강조되던 성서의 무오성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교회와 성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교회와 성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어떠한가를 잘 알 수 있다. 3) 사회정의와 이웃 및 세상에 대한 책임의 강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등장하는 가톨릭 정신의 가장 중요한 변천은 사회정의와 이웃 및 세상에 대한 책임성이다. 이점은 오늘의 가톨릭 교회가 칭찬받을 가장 훌륭한 점인데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한 교황 요한 23세의 탁월한 정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인간의 인권의 중요성과 사회정의에 대한 강도높게 강조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제29항), 사회적 책임과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환기 시켰다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31항). 바로 이와 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라틴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메델린(Medelin)의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기본정신으로 발전되었고 이웃과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가톨릭의 모습이 구현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급진적이긴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 형성되게 되었다(구티에레즈, <가난한 자들의 역사적 위력>, 김수복역, 요셉출판사). 과거의 가톨릭 교회는 결코 사회정의를 위한 교회로 지칭하기는 어려운 교회였다. 과거의 가톨릭은 대체로 지배자의 종교였고 지배 권력과 결탁된 특징을 많이 나타내는 교회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가톨릭은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인권과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교회라는 강한 인상을 전세계에 심게 되었다. 바로 이와같은 모습을 통해 가톨릭은 점차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교세는 크게 확장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성이나 마리아론과 같은 잘못된 교리를 추인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톨릭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새롭게 하는 분수령 이었다(이 글은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서북노회 강경호 목사가 http://cafe.daum.net/cgsbong에서 퍼온 글을 김회권 교수가 보완한 강의안이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비교 연구


김명룡 (장신대 조직신학 교수)


가톨릭 교회(천주교)와 개신교회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핵심적인 것 몇 가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서론적으로 여러분이 유념해야 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개신교 국가들이 가톨릭 국가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에서 발전된 나라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 자유가 신장되고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의 열강들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개신교 국가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봐서 가톨릭 국가들은 두세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2류 국가로 전락이 되어 있습니다. 유럽을 살펴봐도, 아메리카 대륙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멕시코를 비롯해서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많은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많은 국가들이 전부 가톨릭 국가인데 한결같이 북쪽에 있는 미국에 비해서 굉장히 뒤쳐져 있습니다.


왜, 가톨릭 국가들이 개신교 국가에 비해서 현격하게 뒤쳐져 있는가? 여기에 대한 연구 논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논문들을 조사해 보면 가톨릭 정신이 개신교 정신에 비해서 상당히 열등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바꿔 말하면 우리 개신교 정신이 가톨릭 정신에 비해서 월등히 우수한 정신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교는 국가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에서 여론 조사를 해보면 가톨릭이 가장 호감을 갖는 종교로 되어 있어요. 반면 우리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나쁩니다. 불교와 개신교가 비슷하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로 많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개선이 아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위대한 종교에서 그렇지 않은 종교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전부 우리 개신교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제 얘기를 계속 들으면 저의 서론적인 얘기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와 가톨릭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가장 핵심적인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톨릭은 7가지 성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례, 성찬, 신품, 고백, 견진, 혼인, 종부 이렇게 7가지죠. 가톨릭교회는 이렇게 성사가 중심이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일단 개신교회에도 있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신품성사라는 것은 신부님이 되는 예식을 얘기하고 혼인성사는 결혼식을 얘기하죠. 그리고 이 신품과 혼인성사는 택일입니다. 고백성사라는 것은 일명 고해성사라고도 하는데 신부님께 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 가톨릭교회에 의하면 세례에 의해서 원죄가 사해집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통해서 또 이런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범죄가 사해집니다. 가톨릭의 교리서를 읽어보면 대죄는 반드시 고해를 해야 된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가톨릭교회는 대죄와 소죄를 구별하는 전통이 있어요. 구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죄를 일컬어서 대죄라고 하고 소죄는 조금 사소한 것을 의미하죠. 예를 들면 살인, 간음, 이간질, 질투, 미사 불참 이런 것들은 대죄에 해당됩니다. 이런 대죄를 행한 사람들은 반드시 신부님께 가서 고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신부님에게 가서 고해하는 성사가 있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이 신부를 비난하는 경우가 개신교에 비해서 월등히 적어요. 왜냐하면 우리 개신교회는 자기 죄를 다 숨겨놓고 목사님을 보고 있기 때문에 한 교회 성도들이 다 목사님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이상하면 그것이 걸려서 목사님들이 대단히 혼이 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죠.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하기 때문에 신부님들이 다 죄를 알죠. 여성들의 경우에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고해하고 나면 한 몇 개월 동안 신부님 얼굴을 뵙기가 어려워서 도망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신부님이 나타나면 숨어버리고 물론, 신부님이 고해한 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해봐요.


그렇기 때문에 신부님이 술을 마시고 혹시 실수를 했다고 해도 "어떻게 신부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하고 대들려고 하다가도 신부님이 딱 눈만 크게 뜨고 보고 있으면 전부다 고개가 수그러들게 되어 있죠. 그런데 대죄는 반드시 고해를 해야 해요. 반드시 신부님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심이 깊을수록 고해성사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용서가 되지 않으면 구원에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가톨릭교회는 사제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죄가 용서된다는 데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례를 통해 사제가 원죄를 사하고, 신부가 원죄를 사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사를 드리며 성찬을 할 때 떡을 받아먹는 순간이 죄가 용서되는 순간이죠.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신부를 통해서 죄의 용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네 죄를 사하노라" 하는 그 순간에 죄가 용서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론적으로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팔아먹을 수가 있어요. 중세 때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아서 심각한 타락상을 보였는데, 물론 지금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팔아먹지는 않죠.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었던 그 신학적인 이론이 변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이론을 갖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면죄부를 팔아먹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대단히 교육적인 방법으로 일을 행합니다. 죄를 크게 지은 사람일 경우는 그냥 용서를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장애인 시설 등에 보내서 그곳에서 1주일, 2주일 정도 봉사하게 한 다음 죄를 용서해 줘요. 제가 볼 때는 상당히 교육적인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건강이 나쁘신 분이, 그러나 재력은 있는 분이 고해를 했고 죄가 대단히 중할 때 "당신은 장애인 시설에서 가서 일할 수가 없으니까 대신 장애인 시설을 만들 돈을 헌금하시오"라고 얘기할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벌써 돈을 받고 죄를 용서하는, 중세에 있었던 면죄부 팔아먹는 것과 아주 가까운 자리에 진입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쁜 마음을 먹으면 지금도 면죄부를 팔아먹을 수 있는 이론적인 기초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신부가 직접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견진성사라는 것은 우리 개신교회의 어느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해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입교문답과 약간 닮은 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유아세례를 받았던 아이들이 장성하게 되면 신부님이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는 의식입니다. 뭐냐하면 지금까지는 부모의 도움으로 자랐지만 이제부터는 성인이 되어서 자기의 힘으로 죄를 극복하고 마귀와 싸우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되는데 그러려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거예요. 이 견진성사는 성령의 능력을 주입하는 것이죠. 신부님께서 기도하는 순간 성령의 능력이 주입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종부성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이것을 종부성사라고 지칭하지 않고 병자성사라고 지칭을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신부님께서 오셔서 눈과 코와 귀와 손과 발에 기름을 부으시고 기도를 해주는 예식인데 이것은 일생토록 눈으로 지은 죄, 귀로 지은 죄, 입으로 지은 죄, 손, 발로 지은 죄를 용서하는 예식이에요. 이렇게 기도하면 그 죄가 사해진다는 거예요.
가톨릭은 그 핵심이 성사제도에 있습니다. 죄의 용서에 있어요. 그리고 죄의 용서가 사제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그런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가톨릭교회 이론에 의하면 사제가 없으면 참된 의미에서의 구원의 확실한 보증이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용서가 사제를 통해 일어납니까? 누가복음18장 9절에서 14절 사이에 보면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긍휼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가 그렇게 기도했어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고 돌아갔다"고 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위해서 사제에게 가라고 가르친 적이 없어요.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의 사건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죄의 용서가 일어납니다.


우리 개신교회가 직접성의 종교라면 가톨릭은 간접성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의 용서를 받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종교임에 비해서, 가톨릭은 철저하게 사제들에 의해서 묶여져 있는 종교예요. 사제가 없으면 죄용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가톨릭은 제사의 종교라는 점입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가톨릭이 제사의 종교라는 뜻은 가톨릭은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 미사란 제사를 의미합니다. 가톨릭은 원래 설교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사를 드린 거예요. 그 제사의 핵심은 뭔가 하면 죄의 용서에 있어요. 그래서 가톨릭의 미사의 가장 핵심적인 순간은 신부님께서 떡을 주시고 그 떡을 받아먹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이 죄의 용서가 일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잘 참석하고 있다가도 그 떡을 받아먹는 순간에 어떻게 하다가 빠졌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드시 미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그 순간입니다. 떡을 받아먹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죄용서가 그 때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미사를 드리는 핵심은 무엇인가 하면 죄의 용서에 있어요.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한 번 생각을 해 봐요. 가톨릭교회 성도들이 우리 개신교 성도들에 비해서 조금 개화가 덜 된 특징들이 있어요. 지나간 450년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우리 개신교 성도들이 대단히 진취적이고 개화된 정신, 앞서 나가는 정신을 갖고 있어요. 왜냐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뭐냐하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한 거예요. 루터는 "모든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모든 평신도들이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마주쳐야 한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경을 직접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번역해서 평신도들에게 주었어요.


가톨릭교회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오랫동안 성경을 번역하는 성서공회를 마귀들의 집단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해서 성도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서공회가 성령의 기관이면 성령의 기관이지 어떻게 마귀들의 집단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마귀들의 집단이라고 했어요.


이렇듯 가톨릭에선 일반 성도들에게 오랫동안 성경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최근에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 성모 마리아 상이 울었다고 해서 순례객이 몰려들고 난리를 쳤어요. 성모 마리아가 울었다고. 그 돌로 된 상이 울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에 울었겠습니까? 안 울었겠습니까? 이것을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은 위험한 분들이에요. 앞으로 사이비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분들이에요. 그 돌이 어떻게 울어요. 그런데 가톨릭교회를 연구해 보면 성모 마리아가 울었다는 전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얼마나 미신이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도 종파별로 차이가 있는데 미신이 많은 종파일수록 조금 수준이 낮은 종파에요. 수준이 올라갈수록 미신이 줄어듭니다. 순례객들이 자꾸 몰려드니까 그 지역의 주교께서 "아무래도 확실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눈물을 수거해서 정식으로 조사를 해보니까 올리브 계통의 야자 기름이라는 게 밝혀졌어요. 누군가 밤에 와서 부어두고 간 거예요. 그것을 "성모 마리아께서 울었다"고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도 이 따위 이상한 미신이 있으면 빨리 척결을 해야 합니다. 이 가톨릭교회의 성도들이 왜 미신에 많이 빠지는가 그리고 왜 일반적으로 개화되지 못하는지 아세요?


그것은 첫째로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1주일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미사를 드리는 순간인데 여러분들 미사에 참석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냥 앉았다 섰다 앉았다 섰다 이거 몇 번 하고 가서 떡 받아먹고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개화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개화가 될 시간이 없어요. 요즘 가톨릭교회에 가보면 강론한다고 해서 설교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한 10분 정도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개신교회가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고 성도들을 깨우치고 하나님과 직접 만나게 하고 그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그 속에서 결단을 하고 굉장한 변화가 일어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개신교에서 배워간 거예요. 원래 가톨릭교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가톨릭교회에 그 시간이 공식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근본적으로 제사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말씀의 종교 아닙니까? 초등학교도 안 나오신 교회 안의 권사님들과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고 계시는 일자 무식의 할머니하고 두 분을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만큼 달라요. 그 시장에 있는 분은 정말 무식한데, 교회 안의 권사님은 절대 안 무식해요.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정말 대학을 서너 개 나온 정도로 똑똑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육을 많이 받은 거예요. 그 긴 세월 동안 목사님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이 교육을 받았는지 몰라요. 교회교육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 낮, 저녁, 수요일, 새벽, 구역예배, 부흥회, 신앙강좌, 하여간 1년 간 교육받는 시간을 따져보면 대학에서 20학점 따는 것만큼 교육을 받습니다. 그것을 평생하셨으니 얼마나 개화가 되었겠어요. 물론 가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 말을 많이 하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머리에 든 게 없으면 말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머리 안에 뭔가 들었기 때문에 자꾸 뭔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그만큼 개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부딪히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부딪힌 그 사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못하고 주일날 미사에 참여해서 앉았다 섰다 하고 온 사람하고 똑같겠어요, 다르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톨릭 국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부딪혔던 개신교 국가하고 얼마나 더 발전을 하겠느냐 그 말이에요. 이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에요.


지난 450년의 역사는 개신교 국가들이 한결같이 세계의 제일 가는 국가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뒤늦게 가톨릭교회가 개신교의 중요한 것들을 배워서 고쳐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되요.


두 번째로 중요한 측면은 마리아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섬기는 것인가? 가톨릭교회에 가보면 많은 성도들이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그래요.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마리아론, 즉 현재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교리서를 통해 직접 가르치고 있는 마리아론의 핵심을 정리하면 5가지 정도가 되요. 첫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 둘째, 마리아는 원죄가 없었고 죄 없는 삶을 살았다. 셋째, 마리아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다. 넷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시고 교회의 어머니시다. 다섯째,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마리아의 중재성입니다.


첫째 주장을 살펴보죠.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였을까요?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기도문에 보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여"로 시작하고 있어요.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3장 5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이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여기에서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의 말씀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을 두고 한 말씀이죠.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난 예수님의 형제들이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남자 형제만 네 분이 있어요. 그리고 그 누이들이, 이렇게 복수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여자 동생이 최소한 두 분 이상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절대로 평생 동정녀가 아니에요. 마리아에게는 자식이 많았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성경의 정신에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출생시키실 때만 동정녀라고 생각을 합니다. 계속 동정녀가 아니에요.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성경에서 이렇게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평생 요셉과는 아무런 성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여기 나오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동생들은 어떻게 되느냐? 사촌이라는 거예요. 이종사촌, 고종사촌.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그렇게 가르쳐요. 그런데 이 본문은 초등학교 3학년이 봐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난 동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는데 가톨릭교회는 그렇게 우기는 거예요.


교황께서 이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셨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하는데 가톨릭교회는 최근에 평신도들이 성경 읽는 것을 허락했어요. 그래서 평신도들이 성경 읽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까지는 긍정적으로 발전을 했지만, 아직도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을 주지 않았어요. 성경해석의 권한은 전적으로 교회에 속합니다. 이것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도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 교회가 가르친 대로 성경을 읽어야 해요. 그래서 이 본문에서 " '이 형제들은' 할 때의 이 형제는 '사촌'이다"라고 교황이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사촌이에요. 영원히 사촌입니다. 바꿀 수가 없습니다. 교황이 그분의 보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하실 때에 절대적으로 무오한 거예요. 제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렇게 선포했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여기에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또 하나 있는데 가톨릭교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경에 오류가 없다,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가톨릭은 "교황께서 하신 말씀은 영원히 오류가 없다. 교황께서 말씀하신 것은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개신교 정신하고 가톨릭 정신하고 근본적인 차이가 여기에, 즉 권위에 대한 문제에 있는 거예요 개신교회는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고 있는 교회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영원토록 이 성경의 말씀에 따라야 된다. 이것이 개신교 정신입니다. 개신교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대해도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면 그 가르침은 그날로 고쳐야 되요. 가톨릭의 정신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황의 말씀, 교회가 가르치는 말씀은 영원토록 오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기초로 해서 교회를 개혁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톨릭은 위로부터의 개혁은 가능해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불가능해요. 그래서 교황이 정말 위대한 정신을 가지셔서 "교회를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개혁하자"고 해서 개혁하는 경?荑〈? 교회의 잘못을 고칠 수가 있는데 신학자들이, 성도들이 아무리 "이것은 고쳐야 되겠습니다" 해도 고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교황의 말씀에 오류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교황의 말씀 가운데 수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어떻게 죄악된 인간의 말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개신교의 신자가 된 것을 참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가톨릭은 교회의 이 권위를 근거로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이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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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원죄가 없었고 죄없는 삶을 살았다. 마리아는 육체를 갖고 승천했다." 고도 말을 합니다. 원죄가 없었던 분, 자범죄가 없었던 분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리고 승천하신 분도 예수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에게 적용되는 중요한 교리들이 마리아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시고 교회의 어머니시다"라고 주장해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마리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에 있어서의 육신의 어머니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잖아요. 이 말의 뜻은 잘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시다." 이게 삼단논법치고는 괴상한 삼단논법입니다. 이게 뭐 같으냐 하면 "빨간 티셔츠를 입은 분을 보고 너는 빨간 티셔츠를 입었구나, 공산주의는 빨갛다. 그러니 너는 공산주의다"라는 것과 비슷한 괴상한 삼단논법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왜 이렇게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을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되심을 영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이 지상 생활에 있어서만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고, 영원토록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거예요. 영원토록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다 하는 것은 마리아에 대한 기도의 유효성, 마리아의 구원의 중보성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마리아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마리아는 영원토록 교회를 보호하시는 어머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는 성모, 어머니가 계세요. 아버지도 계시고, 어머니도 있는 거예요.


그러면 마리아께 기도하는 게 유효할까요? 가톨릭교회에서는 유효한 정도가 아니라 가능한 대로 마리아에게 깊이 결합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의 교리서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마리아에게 기도는 물론 가능한 대로 깊이 결합하란 얘기에요. 우리가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전달이 되고 예수님의 응답은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아주 효성이 지극하셔서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청을 올리면 예수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 가보면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많이 기도를 합니다. 직접 주님 앞에 가서 기도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것도 어머니 마리아에게 부탁을 하면 성모 마리아께서 대신 간구해 줄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예수님이라면 또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적인 기능을 하시는 성모 마리아가 또 존재를 하는 거예요.


마리아에 대한 기도의 유효성과 관련하여 <마리아의 영광>이란 책을 쓴 성 리구리란 분이 있어요. 이 분은 마리아 신학자로 대단히 유명합니다. 가톨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잘 알고 있는 위대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마리아의 영광>이란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환상 중에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봤습니다. 왼쪽 끝에는 예수님이 서 계시고 오른쪽 끝에는 마리아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왼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가다가 위를 보니 위에는 주님이 계시는데 너무나도 무서운 얼굴로 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놀라서 떨어졌죠. 그 때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들려 오기를 '오른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오른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어요. 그런데 그 오른쪽 사다리에는 성모 마리아가 있었는데 이 분이 자애롭게 맞아주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마리아가 이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에게 뭔가를 얘기하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리구리가 본 대단히 유명한 환상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은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들의 가슴 속에 있는 유명한 환상이에요. 이 환상이 얘기하는 핵심적인 정신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 가면 안 되는 것이 마리아에게 가면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리고 이 환상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가 참으로 자애롭다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성도 여러분! 정말 마리아가 예수님보다도 자애롭겠습니까? 저는 참으로 자애로우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자애로우신 분이 없어요.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동자가 자애로우시지 누가 자애롭겠습니까? 어떻게 한 인간이 주님보다 자애로울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가톨릭 교회에서는 왜 이렇게 마리아론을 발전시켜,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래서 이러한 마리아론을 연구하신 어떤 분들은 이 마리아론을 보면 가톨릭은 틀림없이 이단이다! 그러니까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상당히 납득할 만한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톨릭 신자들과 이단이다, 사이비다 싸우기를 원치 않아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도와가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가톨릭교회 안에 마리아관이 발전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원시 종교에 여신 숭배 정신이 있었는데 여신 숭배 정신이 가톨릭교회 안에 여신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 숭배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마리아 숭배는 기원을 찾아 들어가면 원시 종교의 여신 숭배에 기원이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이 잘 안 되요. 왜냐하면 마리아론을 연구해 보면 18, 19, 20세기 들어와서도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지금도 발전하고 있어요. 요즘이 여신을 숭배하는 시대가 아닌데, 왜 지금까지 마리아론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을까? 저는 여신 숭배의 문제도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가톨릭교회가 루터가 발견하신 위대한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루터가 발견한 위대한 복음을 모른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루터의 종교개혁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루터는 독일의 어거스틴파 수도원의 수도승이었어요. 이 수도원은 규율이 엄하기로 너무나도 유명했어요. 보통사람들이 여기서 견뎌내질 못합니다. 그런데 루터는 그 어마어마한 규율을 다 지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나름대로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서 그것을 다 지켰어요. 보통이 아니었죠.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우리 가운데 "성자가 한 분 나타나셨는데 그 분이 마르틴 루터다" 라고 할 정도였어요. 사람들은 루터를 성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니까 성자이기는커녕 회칠한 무덤이란 사실을 잘 알게 되었어요. "내가 회칠한 무덤이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무서워서, 주님이 자신을 심판하실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더 위선자다. 내가 이 정욕과 죄악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있겠는가?" 루터는 두려웠습니다. 주님이 무서웠어요. 중세 시대의 벽화를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벽화가 굉장히 많아요.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지옥으로 보내시는 그 무서운 주님의 모습이 중세 벽화들에 굉장히 많아요. 그 루터의 머리 속에 그 주님의 모습이 담겨 있는 거예요. 이 때 루터에게 가장 심각한 고민이 무엇이었나 하면 "내가 어떻게 하면 자비하신 은총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그 분의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루터가 로마서, 갈라디아서, 시편을 연구하며 마침내 너무나도 유명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오호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도 자애로우시구나.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심으로 죄인인 이 상태 그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용납하고 계시는구나!" 루터는 너무나도 놀라운 하나님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그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을 발견했어요. 그 은총의 신, 지극한 사랑의 신, 그 사랑의 신을 발견하기 시작해요. 우리 개신교회를 일컬어서 복음적인 교회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복음적이라고 하는 핵심은 자비한 신의 발견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개신교회 안에서는 이 자비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비교적 잘 살아 있습니다. "주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다,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내가 비록 죄를 범했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이 상태 그대로 용납하시고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갑니다. 그런데 루터가 발견한 이 위대한 복음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있는 게 아니에요. 가톨릭 신자?湧? 지금도 주님 앞에 가면 두려운 거예요. 루터가 주님 앞에 갔을 때 무서운 주님 앞에서 두려워했던 것처럼 지금도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 앞에 가면 무서운 거예요. 심판하실 것 같다 그 말이에요. 이런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는 자애로운 어떤 존재를 요구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어릴 때 경험을 해보면 어머니가 자애롭잖아요. 자애로운 어머니 상이 마리아에게 투영이 되어서 자애로운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요청하게 된 거예요.


저는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이렇게 필요로 하고 발전시키게 된 그 중심 이유는 루터가 발견한 이 위대한 복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임시변통적으로 자애로운 어머니가 필요하게 된 거예요. 그 분이 없으면 그들은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톨릭교회에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지금도 뭔가 조금 선한 행동을 하고 미사를 열심히 참석하면 그것으로 다 되는 줄을 알아요. 복음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 말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문제가 되는 것들, 핵심적인 것들 3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이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핵심적인 것들을 말씀드렸어요.


가톨릭교회는 교리적으로나, 신앙적, 역사적으로 볼 때 개신교회에 비해 열등한, 문제가 많았던 그런 종교가 틀림없어요.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가톨릭교회가 최근에 와서 왜 발전하고 있는가? 이 점을 간단하게 얘기해보려고 해요.


왜 최근에 와서 발전하고 있을까? 가톨릭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어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있었는데 이후부터 가톨릭의 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가톨릭의 성장이 어떻게 두드러졌을까. 그 이유를 약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신학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아닌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구문제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습니다. 이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한 3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굉장한 차이를 나타내게 되어 있어요. 미국에서도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파가 가톨릭인데 가톨릭교회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산아제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어요. 가톨릭교회 가정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많아요. 부부가 있다고 하면 아이들이 4명 정도 있죠. 개신교 가정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2명이 넘는 집이 거의 없어요. 한 명밖에 없는 집도 있고. 그러니까 처음 아이들을 나았을 때는 별 차이가 없는데 한 세대가 넘으면 두 명밖에 안 낳은 가정은 그냥 두 명밖에 없는데, 네 명을 낳은 가정은 두 명이 네 명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게 30년 사이에 두 배로 바뀌는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출산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회교도들이 빨리 늘어나는 것과도 관련성이 많아요. 그러니까 출산율에 문제가 있어요. 가장 출산을 안 하는 종파가 개신교예요. 어쨌든 첫 번째 중요한 이유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출산율의 문제와 인구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가톨릭의 선교 정책과 관련이 있는데, 가톨릭교회는 포용주의적인 선교정책을 갖고 있어요. 우리 개신교회는 일반적으로 배타적인 선교정책을 갖고 있는데 반해. 가톨릭의 선교정책은 한 30년 동안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래요. 이 포용적인 선교정책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예를 들면 우리의 한국의 가톨릭을 볼 때 바로 나타나는 것인데 제사 문제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제사를 허용해요.


복음의 핵심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문화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을 흡수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술, 담배뿐만 아니라 제사도 허용하잖아요. 그런 문제로 고민이 되는 분들은 개신교회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로 가게 되어 있어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때 태동한 이 선교정책이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전 세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될 선교정책적인 어떤 문제가 걸려 있어요.


마지막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이웃에 대한 책임, 사회 참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안에서 가톨릭교회가 발전한 핵심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가톨릭이 이웃과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가톨릭이 세상에서 책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가톨릭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하고 있다, 가톨릭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상징이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이것으로 상징되는 가톨릭은, 그야말로 한국에 무언의 설교를 하는 어떤 힘을 갖고 있어요. 그 핵심은 무엇인가 하면 이웃사랑, 이웃과 이 세상에 대한 책임과 관련되어 있어요. 제가 볼 때 가톨릭의 거의 모든 것은 우리 개신교에 비해서 열등합니다. 교리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가톨릭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어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이웃과 함께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개신교회도 가톨릭교회를 배워야 할 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래 가톨릭은 이웃과 함께하는 종교가 아니었어요. 가톨릭은 어디든지 가면 지배계층과 결탁했습니다. 왕권과 결탁하든지, 지배계층과 결탁하든지, 가톨릭교회는 원래 지배계층과 결탁하는 종교였지 가난한 백성들에 관심이 있었던 종교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2차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해서 가톨릭교회 정신에 일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저는 이 공의회를 주도했던 교황 요한 23세가 위대한 가톨릭의 교황이었다 생각합니다. 이 분의 정신이 가톨릭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때부터 전 세계의 가톨릭은 사제들과 수녀들과 신부님들이 가난한 백성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과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가톨릭은 사회 속에서 신망을 얻게 되었어요.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위대한 개신교의 전통을 이어받음과 함께 이웃과 함께하는 이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원래 이 이웃과 함께 하는 정신은 가톨릭의 정신이 아니고 우리 개신교의 정신입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한 번 봐요. 우리 나라 일제 시대 때 누가 한국 민족의 아픔을 함께했는가? 우리 개신교 신자들입니다. 우리 개신교 지도자들이었어요. 3. 1 독립선언문의 민족 지도자 33인 가운데 절반이 개신교 지도자들 아닙니까? 가톨릭교회는 우리보다 100년이나 먼저 선교를 했지만 33인의 민족 지도자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단 한 사람이나 있었느냐 그 말이에요.


해방 이후에도 가톨릭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일제 시대의 긴 세월을 흐르면서 해방이 되고 난 우리 대한민국에 사람들은 다 개신교회로 몰려 왔지 가톨릭 교회로 가지 않았어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함께하고 우리 민족을 살리는 종교가 개신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다 그래요. 우리는 원래 그런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어느새 우리가 그 위대한 전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전통을 지금 가톨릭 교회가 가져갔다 그 말이에요. 21세기를 앞둔 한국교회는 우리의 위대한 전통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과 이 역사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개신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줄로 압니다(월간<교회와신앙> 99년 11월호 인용).




제 7장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발전

I. 정통주의 신학

여기서 정통주의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17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이념의 조직화와 강경화(强硬化=각질화=ossification)를 의미한다. 이것은 가톨릭 반종교개혁운동과의 싸움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모든 개신교 신학은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18-19세기 자유주의와 경건주의)과 작용(17세기 청교도운동과 19세기 미국근본주의)의 산물이다. 정통주의 신학은 먼저 사람들의 주관적인 확신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도그마에 근거하고 있다. 둘째, 정통주의 신학은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 후 각 영방군주는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가졌는데 이런 경우 정통주의 신학은 각 영방군주들의 선택을 돕기 위하여 객관적인 신조를 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정통주의 신학은 다시 철학적 체계 위에 구축되었다(루터의 입장이 철학을 사용하는 일에 시간이 갈수록 관대해 짐). 요한 게르하르트(Johann Gerhard, 1582-1637)가 정통주의 신학을 집대성한다(그의 교의학은 에서 전개).

성서의 권위에 관한 정통주의 교설은 세 가지 방식으로 증거된다: 첫째, 외적 기준에 근거한다(연대, 기적, 예언, 순교자 등); 둘째, 내적 기준에 의거한다. 성서의 권위는 문체나 사상의 탁월성이나 도덕적 신성성에 의하여 입증된다; 셋째, 성령의 증거에 의존한다(롬 8:16).

 

II. 경건주의




2006년 봄학기 <기독교 교리사> 학기말 고사 예상 문제들1.교리의 개념을 정의하고 왜 교리가 중요한지 말하시오(4 문장).2. 기독교 신학의 탄생을 위한 역사적 철학적 예비환경을 논하시오(10-20문장).3. 영지주의와 반영지주의 교부들의 극복 노력에 대하여 논하시오(10-20문장).4. 양태론적 군주신론과 역동적 군주신론에 대하여 논하시오(20문장).5.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견해를 개괄적으로 논하시오(10-20문장).6.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사상을 간략하게 서술하시오(5-10문장).7. 니케아 종교회의 결정과 의의를 논하시오(10문장이내).8.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와 그들의 주요 사상을 간략하게 논술하시오(10문장내).9. 키프리안의 교회론에 대하여 논하시오(5-10문장).10.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논하시오(20문장 내-주요줄기).11.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점을 간략하게 논하시오(10문장내).12. 중세 신학의 세 원칙들에 대하여 논하시오(5문장-10문장).13. 중세기독교를 떠받치는 일곱 가지 힘들에 대하여 간략하게 논하시오(10문장).14. 안셀무스와 아벨라르의 사상을 간략하게 비교하시오(10문장).15. 13세기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전제들에 대하여 간결하게 논하시오(5문장).16. 어떤 점에서 윌리암 옵 오캄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준비한 셈이 되었는가를 논하시오(5-10문장).17. 루터의 중심적 신학사상을 논하시오(10문장).18.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루터의 비판을 논하시오(5-10문장).19. 캘빈의 중심적 신학사상을 논하시오(10문장).20. 캘빈의 예정과 섭리사상에 대하여 논하시오(10문장).21.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파의 논쟁의 요지를 논의하시오(10문장).22. 기독교사상사(교리사) 공부의 의의를 논하시오(30문장).

2006년 봄<기독교 교리사> 학기말 고사 이름: 점수: 주소:
다음 14문항 중 12문항에 대하여 답하시오.
1.교리의 개념을 정의하고 왜 교리가 중요한지 말하시오(4 문장).2. 영지주의와 반영지주의 교부들의 극복노력에 대하여 논하시오(10-15문장).3.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론(recapitulation)을 간략하게 논하시오(5-10문장).4. 니케아 종교회의 결정과 의의를 논하시오(10문장이내).5. 키프리안의 교회론을 개괄적으로 논하시오(20문장 내-주요줄기).6.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점을 간략하게 논하시오(10문장내).7. 중세 신학의 세 원칙들에 대하여 논하시오(5-8문장).8. 안셀무스와 아벨라르의 사상을 간략하게 비교하시오(10문장).9. 13세기 신학 이해를 네 가지 전제들에 대하여 간결하게 논하시오(5문장).10. 어떤 점에서 윌리암 옵 오캄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준비한 셈이 되었는가를 논하시오(5-10문장).11.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루터의 비판을 논하시오(5-10문장).12.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파의 차이는?(4문장)13. 캘빈의 예정과 섭리사상에 대하여 논하시오(10문장).14. 교리사 공부가 당신의 기독교이해에 끼친 영향을 15문장 이내로 쓰시오.
Answer 12 questions as briefly as possible out of 14 questions.1. Define the concept of Christian dogma and discuss why it matters to the church and Christians' life(4 lines).2. Discuss gnocistism and the apostolic fathers' response to it.3. Discuss Iraenius' recapitulation theory.4. Discuss the Nicaean council's doctrinal decisions and their significance.5. Discuss the teaching of Cyprian on the Church.6. Discuss the disputation between Augustine and Pelagius.7. Discuss three principles of medieval theologians in their doing theology.8. Compare briefly Anselm with Abellard with attention to their major theological tenets.9. Discuss 4 theological presuppositions necessary for understanding 13th century medieval theology.10. In what sense did both William of Ockham's and Meister Eckhardt's thought contribute to the shaping of Martin Luther's reformatioal thought?11. Discuss Luther's critique on the evangelical radicals(spiritualists).12. Discuss the major differences between Athanasius and Arius.13. Discuss Calvin's doctrine on predestination and providence.14. Discuss what this class(course) meant to you(15 lines)
정통주의 신학이 설정한 구원의 서정(질서)-마지막 단계는 신과의 합일-개념은 경건주의 운동을 태동시키는 통로다. 17세기 정통주의에게 있어서 기독교신앙은 기독교정통신조에 대한 지적 동의를 의미하였고 신앙은 역동성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루터의 신학-인의신학, 즉 신과의 인격적 연합을 강조하는-을 다시금 부활시키는 운동이었다. <독일신학>이라는 신비주의 신학서적에 영향을 받은 루터의 신비주의적 주관주의적 구원경험에 대한 향수가 이 경건주의 운동에서 분출되었다. 정통주의 신학의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이었다. 이 운동의 선구자 필립 야곱 스패너(1635-1705)는 시종일관 젊은 루터를 인용하면서 루터의 경건주의적 성향에 호소한다. 이 경건주의자는 기독교신앙을 사회적 실천과 윤리적 실해으로 표현하였다(고아원). 그에 비하여 정통주의자는 비신자는 복음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경건주의자는 모든 자들은 회심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근대세계선교운동의 창시자들이 된다(진젠도르프 백작, 모라비안 교도들의 인디언 전도-웨슬레에게 영향을 끼친다). 요약하면 경건주의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 개혁을 성취한다: 신학(진정한 신학의 기초로서의 신앙의 강조, 주석적 훈련의 강조, 조직신학을 대체하는 성서주석), 교회(평신도의 역할 강조, 만인사제설 도입), 윤리(30년 전쟁의 폐허에 대한 응답, 개인성화의 강조. 아디아포라 논쟁-세속적인 삶에 대한 극단적 경계표출하는 경건주의, 프랑케나 할레의 경건주의자들).
경건주의자는 정통주의와의 논쟁에서 승리하여 18세기 계몽주의, 개인자율주의를 맞이하는 신학적 준비운동을 미리 하고 있었다.


III 합리주의와 경건주의와의 관계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와 경건주의는 그렇게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의 아들이다. 합리주의는 모든 인간 속에 내재하는 <내적인 빛><내적 진리>라는 신비주의적 경험에서 연원된다. 이성은 이 인간존재의 가장 심층에 내재되어 있는 신적인 것의 현존체다. 조지 폭스의 퀘이커 교도의 예가 바로 이런 예를 보여준다(1624-1691). 이것은 신비주의로 시작하였다가 도덕적 합리주의로 발전되어 간다.


IV 소지니주의
이것은 17세기의 합리주의의 한 유형이다. 창시자격인 인물인 파우스토 소지니(1525-1562) 르네상스의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에 의하여 종교개혁자들의 교설에 도전한 사람이다. 이것은 일종의 이탤리적 이신론(deism)이다(독일 하르낙에게 경향). 어떤 의미에서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원류정도에 해당된다.
1)성서의 권위를 받아들이되 역사비평학을 받아들인다. 이성과 상식을 중시하는 성서해석을 주장한다. 도덕적 중요성을 갖지 않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합리적 도덕종교를 지향한다.


2) 삼위일체론을 비판한다. 후기 유니테리안 주의의 선구자다(하바드 대학의 선구자). 정통주의가 제시한 삼위일체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또한 그리스도교의 초기교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그리스철학은 성서의 본질적 사상을 표현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본다. 그래서 교리에 대한 비판적이다(리츨의 선구자).


3) 신은 이 세계를 혼돈으로부터 창조하였다고 주장한다(토후 봐보후, 창 1:2). 인간 이성은 신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은 감각적 본성과 자유의지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죄의 악마적 기원은 부인하거나 그것에 무관심하다).


4) 자유의지를 옹호하고 원죄설 부인한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말은 원죄설과 모순이 된다고 본다. 역사적인 존재로서 타락한 존재이지 태어나기 전부터 죄를 안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계시를 보여준다. 새 존재를 보여준다(틸리히는 이 소지안주의 학설에 다소 동정적인데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본성을 가지고 있으나 신적 본성은 소유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일종의 초인이라는 것이다. 경배의 대상이 된 이유는 초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세 직책 중(왕, 제사장, 예언자) 예언자 직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형벌만족설 등은 비판당한다.


6)이신칭의설(인의설)은 도덕적인 용어로 해소된다. 의롭게 되기 위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나 법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7)종말론은 부정된다. 그것은 신화라고 본다.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믿는다. 이 사상과 신과 자유는 계몽주의 신학(칸트)의 바탕이 된다.


결론: 새로운 신학은 거대한 장강대하로 합류된 통일된 신학이 되었다가 또 나중에 많은 지류처럼 갈라져 흐른다. 새로운 운동은 항상 새로운 반동을 불러일으킨다(바퀴가 굴러가는 원리-무게중심의 이동원리). 신학은 축적된 지식의 산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처럼 자기반복적 운동을 하면서 발전한다. 기독교메시지는 휴머니즘의 자기비판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질문에 기독교는 응답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기독교사상사는 세상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형태로 발전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폴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론이다(the correlation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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