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련한 죄인이 자신보다 100배나 더 선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발에 입맞추게 하는 것은 비그리스도교적인 것, 아니 반그리스도교적인 것이다. 만일 이것이 교황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여 행해진다면 왜 교황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성성(聖性)에 경의를 표하여 이와같이 행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와 교황 두 사람을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닦아 주셨다(요13:1이하).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발을 씻지 않았다. 교황은 그리스도보다 더 높은 것처럼 사실을 일변시키고, 큰 호의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발에 입맞추게 한다. 물론 교황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발에 입맞추려고 한다면 그러한 짓을 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자기들을 신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말하기를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들이다”(행14:11-16)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아첨꾼들은 우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드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이제는 아무도 하나님을 교황만큼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도 하나님에게 이와 같이 예의바른 공경을 하지 않는다. 저들은 이러한 것을 참을 수 있다. 저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교황의 당당한 위신을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저들이 크리스찬이고 또 하나님의 명예를 자기들의 명예보다 더 높인다면, 교황은 하나님의 명예를 자기들의 명예보다 더 높인다면, 교황은 하나님의 명예는 멸시를 당하고 그 자신의 명예는 높임을 받는 현실을 보고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예가 다시 높여지고 도 그 자신의 명예보다 더 크시다는 것을 보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존경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교황이 말을 타거나 또는 마차에 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강하고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들어보지도 못하리만큼 화려하게 우상처럼 사람들에게 운반된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불손한 교만이다. 이러한 악마적인 교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일치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제자들이 맨발로 걸어다닌 것처럼 맨발로 걸어 다니셨다.
교황이 성찬을 받으려고 할 때에 점잖은 영주처럼 조용히 앉아서, 추기경이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서 금관으로 가져다 주는 성찬을 받는 것을 보고 크리스찬이 무슨 마음으로 즐거워할 수 있고 즐거워해야 하겠는가? 가장 거룩한 아버지인 교황보다 훨씬 더 거룩한 다른 모든 크리스찬들이 성찬을 가장 경건한 태도로 받는데, 악취를 풍기는 가련한 죄인인 교황은 성찬을, 하나님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하여 일어설 가치도 없는 것처럼 대한다.
교황이 행렬 중에 성찬을 가지고 다닐 때도 똑같다. 곧 교황은 반드시 운반되어야 하나 성찬은 식탁 위에 놓인 포도주 용기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기만 한다. 요컨대, 로마에서는, 그리스도는 무가치하게 여김을 받고 교황이 중요하게 여김을 받는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리에게 이러한 반그리스도적인 죄들을 시인하고 찬양하고 존경하라고 위협하며 강요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에 거역하는 일이다. 하나님! 이제 자유로운 공의회를 도와 주셔서 교황도 하나의 인간이며, 그 자신이 감화 되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3대 논문」, PP 85-88
출처 : 청 교 도 의 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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