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슬라브어 (古代敎會Old Church Slavic language)
9세기 중엽 큐리로스(슬라브어 이름 키릴)와 형인 메토디오스(메토디이)에 의해 슬라브어문자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인위적으로 정해진 11세기말까지의 슬라브어 문헌의 언어. 슬라브어파(語派) 중 최고(最古) 문헌의 문어(文語)이다.
9세기 중엽 큐리로스(슬라브어 이름 키릴)와 형인 메토디오스(메토디이)에 의해 슬라브어문자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인위적으로 정해진 11세기말까지의 슬라브어 문헌의 언어. 슬라브어파(語派) 중 최고(最古) 문헌의 문어(文語)이다. 이 시대의 문헌에서도 개개의 슬라브어의 특징이 현저한 경우에는 이를 제거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국가나 학자에 따라 어느 정도 범위가 다르다. 또 이 시대에 존재했었다고 생각되지만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은 형태를 포함하여 넓게 생각하는 견해도 있어 그런 경우를 고려하여 <고대 슬라브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 언어는 제1기(유리로스메토디오스어라고도 불림)에 마케도니아(당시 불가리아의 일부)의 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리아에서는 <고대 불가리아어>라고 하고 있다. 고대교회슬라브어는 슬라브어 중에서도 가장 고풍적이며 각각의 슬라브어에서 상실된 오래 된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인구어(印歐語;인도 유럽어) 비교문법에서는 슬라브 조어(祖語) 대신 사용되고 있는데, 몇 가지의 특징으로 미루어 슬라브어파의 남쪽 그룹에 속해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이 언어는 현존하는 사본(寫本)의 언어로서 종교적인 면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슬라브문화 전체에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 지역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지방적 특징을 지닌 교회슬라브어로 그 모습을 바꾸어 갔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교회슬라브어는 러시아어 발달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후 수세기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언어는 우선 글라골문자로 쓰였으며 약 50년 뒤부터는 키릴문자로도 쓰이게 되어 2가지 문자의 문헌이 있다. 현존하는 문헌 중 복음서가 가장 많은데 그 대부분이 그리스어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다만 큐리로스 등의 원본은 없고 그 사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언어의 특징은 음성면에서는 비모음(鼻母音)·약화음(弱化音)을 지니고 있으며, 명사의 곡용(曲用)·동사의 활용, 나아가서는 분사(分詞)도 형식이 다양하여 통사론(統辭論)에서는 이른바 <독립여격(獨立與格)>이 특징적이다. 유형적으로는 고도로 굴절(屈折)된 형태의 언어이다.
루터파교회
16세기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성립시킨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복음주의 교파로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6세기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성립시킨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복음주의 교파로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독일·북유럽에서 북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로 전파되었으며, 신도수 약 7000만으로 그리스도교교파로서는 로마가톨릭·그리스정교에 다음가는 교파이다.
발단
가톨릭교회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은 영국의 J.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J. 후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종교개혁은 루터가 성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파고들어 하느님의 은혜를 재발견함으로써 시작되었고,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논제(論題)를 공개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루터의 개혁은 본래 교회 관습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성서의 이해를 통한 혁신으로서, 이것을 가톨릭교회 안에서 실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교회 상황이나 체제, 국제적·국내적 정치상황 등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고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함으로써 동조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교회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개
루터 자신은 <루터파> 교회라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교회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고 설교하였는데,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루터적 교회>라고 부른 것이 정착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에 관계한 각지의 교회가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루터파교회는 우선 루터가 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비텐베르크와 그 주변, 작센선제후령(選帝候領)으로부터 중부·북부 독일, 북유럽각국으로 퍼졌으며, 당시 각 지역에서 국교회 또는 이에 준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和議)에 의해서 마침내 제국법상(帝國法上)으로도 존재를 공인받아 그후 서구 그리스도교의 큰 주류의 하나가 되었다. 교리중심의 정통주의 시대 또는 경전주의에서 근대로 거쳐왔는데, 그 동안 미국에서도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을 중심으로 루터파교회가 성립하였고, 18세기 이후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각지에 전도되었다.
세계연맹
세계 각지의 루터파교회의 75%가 1947년 <루터세계연맹>을 결성하여 본부를 제네바에 두고 있다. 현재 가입한 신도수는 전체의 약 93%이다. 에큐메니컬운동에도 적극적이며, 최근에는 로마가톨릭과의 대화와 협력에도 획기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의 루터파교회수는 24개 교회, 신도수는 약 7000명(1993)이다.
교리
신앙과 교리와 신앙생활의 원천으로서<성서만>을 주장하며 신앙고백을 중시하고 있다. 성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죄인에 대한 용서와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은혜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에 있다고 하고, 이 믿음에서 신도들이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강조하고 있다. 루터의 이 <직업소명관>은 근대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리는 <소교리문답> <아우크스부르크신앙고백>에 잘 밝혀져 있다.
기독교 교파와 교단
e) 루터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창립된 가장 오래된 기독 교회
16세기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기독교 한국 루터회(http://www.lck.or.kr/) 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 학교: 루터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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