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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영국교회 (英國敎會) 와 곱트교회

by 【고동엽】 2021. 11. 18.

영국교회 (英國敎會)


영국에서의 그리스도교 전도는 3세기 무렵부터 로마교황 관할 밖인 켈트계 선교사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597년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 로마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일원으로 재편되었으며, 왕권과 교황권이 상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관계를 유지했다. 헨리 8세는 왕비와의 이혼문제로 로마교황과 대립한 사실을 계기로,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에 의하여 영국의 교회를 로마로부터 이탈하게 한 뒤 스스로 그 최고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영국에서 보편적인 교회의 조직을 <국법에 의해 확립된 잉글랜드의 교회>로 개편했다. 1554년 메리 1세 치세하에서 국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로의 복귀를 실현했으나, 1558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다시 <교의적(敎義的)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정치와 예배양식은 가톨릭>이라고 일컬어지는 국교회체제가 확립되었다. 17세기로 접어들자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퓨리턴은 왕정을 타도함과 동시에 주교제(主敎制)와 기도서(祈禱書)에 의한 예배를 폐지했고, 장로주의(長老主義)에 이어서 회중주의(會衆主義)를 확립했는데,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주교제와 기도서가 회복되자 신종(信從)을 거부하고 비국교도(非國敎徒)가 되었으며, 1688년의 명예혁명 뒤에는 자유교회를 창설했다. 근세에 접어들어 영국국교회의 신앙부흥은 18세기의 메소디스트운동과 19세기의 옥스퍼드운동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산업혁명에 의하여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와 빈민에게 구원의 손을 뻗쳐 회개와 성화(聖化)를 역설한 J. 웨슬리의 메소디스트운동은 국교회 밖으로 나가서 한 교파를 만들었는데, 국교회 안의 복음주의자(低敎會派)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은 무력한 교회 수뇌부 대신에 교회에 필요한 개혁을 위로부터 강요하는 정부에 대하여 반발했으며, 국교회의 자기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목표로 한 J. 키블·J.H. 뉴먼의 옥스퍼드운동은 국교회 내에 생기를 되찾아 주었고, 예배에 장엄성을 부여했으며, 성직자의 교육 및 도덕수준을 높여주고 해외전도를 활발하게 했다.

조직
영국국교회는 캔터베리·요크의 2개 관구로 되어 있으며, 지금의 켄터베리에는 39개의 주교구, 요크에는 14개의 주교구가 있다. 웨일스교회는 전통적으로 국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나, 별개의 관구를 구성하고 있다. 각 주교구는 여러 개의 대집사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대집사구는 다시 여러 개의 교구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켄터베리·요크 양 대주교는 각기의 관구 관할자로서 성직회의를 소집하고 대주교재판소를 주관한다. 교구주교는 각기의 주교구에서 관할권을 갖는다. 종교개혁시대에는 로마로부터의 이탈도, 교의·예배양식의 결정도 모두 의회에서의 입법조치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자 비국교회원도의석을 차지하는 의회의 교회사항 심의에서 의의(疑義)가 제출되었기 때문에, 1919년의 <수권법(授權法)>에 의하여 신도도 참가하는 교회회의가 발족했으며, 1970년에는 영국성공회총회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의와 예배양식
영국국교회의 교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39개조(箇條, 1563)>를 들게 되는데, 이는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영국국교회를 모교회(母敎會)로 삼는 다른 지역의 성공회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의 교의적 입장은 1888년의 램베스회의에서 승인되었으며, 각 관구에서 받아들여진 《성공회 강헌(聖公會綱憲)》에 의하여 제시되어 있는데, ① 신의 계시인 《구약·신약성서》 ② 초대교회에 의하여 작성된 니케아·사도(使徒) 양 신조 ③ 구원에 필요한 새크러먼트인 세례와 성찬 ④ 사도계승에 바탕을 두는 주교·사제·집사의 3성직위(三聖職位)의 준수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예배양식은 1549년에 작성되었고, 3년 뒤에 보다 프로테스탄트적인 방향에서 개정된 기도서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는데, 옥스퍼드운동 이후 일요일의 주요 예배도 성찬식이 되었으며, 기도서도 보다 가톨릭적 방향에서 개정하는 노력이 실천되고 있다.

오늘날의 영국국교회
근세로 들어선 뒤부터 영국의 해외진출에 따라서 영국국교회도 북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로 확대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캔터베리대주교와의 접촉 가운데에 있는 38개의 관구와 4500만 명의 신도가 전성공회(앵글리컨커뮤니언)를 형성하고 있다. 각 관구는 독자적 교회조직·의사결정기관·교회법·기도서를 지니며 다른 관구의 간섭을 받지 않으나, 《성공회 강헌》에 의해 하나의 교회로서의 일체성(一體性)을 보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회일치운동>이 시작되자, 영국국교회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중간적 존재로서 여러 교회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로마가톨릭교회와의 사이에도 <로마가톨릭교회성공회국제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중요교의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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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트교회

 

이집트의 정통 그리스도교회. 정식 명칭은 <콥트 오서독스(정통)교회>이다.
<콥트(copt)>는 <이집트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이깁토스(Aigyptos)>의 아라비아어 발음에서 유래한다.


알렉산드리아에 주교좌를 둔 이집트의 교회는 2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교의(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451년 칼케돈공의회(公議會)에서 채택된 그리스도론(칼케돈신조)을 거부하고,
교리적으로 그리스도 단성론(신과 그리스도는 단일한 본성을 가진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인성보다 신성을 강조하는 설)을 채용하여 비잔틴제국 교회와 결별하였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하는 콥트교회의 내셔널리즘이 있었다.
이 일은 7세기 이후 이집트가 아랍화·이슬람화하여
콥트인이 소수파로 머무르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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